항목 ID | GC05101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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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谷書院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길 188-2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조영화 |
건립 시기/일시 | 1702년 - 송곡 서원에 묘우 경현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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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712년 - 경현원에서 송곡 서원으로 개칭, 이현보·심지원·이보흠·윤봉오를 추가로 배향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송곡 서원 훼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6년 - 송곡 서원 복원, 유방선과 이보흠 배향 |
현 소재지 | 송곡 서원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길 188-22[애련리 227-1] |
성격 | 서원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에 있는 서원.
[개설]
송곡 서원은 유방선(柳方善)과 곽순(郭珣)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유방선[1388~1443]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 서산(瑞山), 자 자계(子繼), 호 태재(泰齋)이다. 학문에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문에도 능하였고, 산수화도 잘 그렸다. 그의 문하에서 서거정(徐居正)·이보흠(李甫欽) 등 이름 있는 학자가 배출되었다. 문집에 『태재집』이 있다.
곽순은 1502년(연산군 8)부터 1545년(명종 즉위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현풍이다. 인종 즉위 후 소윤과 대윤 간의 세력 투쟁이 첨예화되어 시국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렸다. 명종 때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장살되었으나 선조 때 복관되었다.
[위치]
[변천]
송곡 서원은 1702년(숙종 28)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묘우(廟宇) 경현원(景賢院)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원호를 ‘송곡’으로 고치고 1712년(숙종 38) 이현보(李賢輔)·심지원(沈之源)을 모시고, 그 뒤 이보흠과 윤봉오(尹鳳五)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1966년 유림의 공의로 복원하여 유방선과 이보흠만 배향하였다.
[형태]
송곡 서원의 경내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동서 협문(夾門), 강당, 서재(西齋),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집으로 유방선과 이보흠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서재는 경의재라 부르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황]
송곡 서원은 매년 3월 상정(上丁)[첫번째 정일(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밭 600평 등이 있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서재는 유생들이 공부하면서 거처하는 곳인데 현재는 향례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송곡 서원은 1966년 복원한 것으로 서원의 전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