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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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選擧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경희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투표로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는 근대 사회에서 정치 집단뿐만 아니라 사회 단체, 경제인 단체, 노동자 단체, 농민 단체 등 모든 사회 집단에서 실시되는 대표자 선출 방식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정치적 행위로서의 선거, 특히 주민이 투표로 특정 직위의 공직자를 선출하는 방법으로 이해되며,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보통·평등·직접·비밀이라는 4대 원칙에 의한 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영천 지역에서는 9회의 대통령 선거, 3회의 부통령 선거, 19회의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또 1952년 이후 8회의 지방자치 선거를 치렀다.
[내용]
1. 정·부통령 선거
1) 대통령 선거
초대 대통령은 국회에서 간접 선거로 선출되었다. 1952년 8월 5일 실시된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영천군에서는 총 유권자 67,959명 중 62,176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자유당의 이승만(李承晩) 42,063표, 무소속 이시영(李始榮)은 8,033표, 조봉암(曺奉岩)은 3,649표를 얻었다.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에는 66,841명이 투표에 참가해, 무소속 조봉암이 37,783표, 자유당 이승만이 30,786표를 얻었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선거에는 이승만이 단일 후보였으며, 영천군은 80,577명이 투표에 참가, 72,542명이 지지표를 던졌다.
1963년 10월 15일 실시된 제5대 대통령 선거에는 77,602명이 참여했으며, 민주공화당의 박정희(朴正熙) 39,255표, 민정당의 윤보선(尹潽善)은 27,117표를 기록했다.
1967년 5월 30일 실시된 제6대 대통령 선거에는 80,400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민주공화당 박정희 48,900표, 신민당 윤보선은 21,491표를 얻었다.
1971년 4월 27일 실시된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유권자 91,640명 중 76,045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결과는 민주공화당의 박정희 51,874표, 신민당의 김대중(金大中) 20,236표였다.
1972년 11월 21일 국민투표에 의해 유신헌법이 확정됨으로써 제8대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였다. 이후 대통령은 제12대에 이르기까지 간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다.
1987년 12월 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정의당의 노태우(盧泰愚) 후보가 총 유효 투표의 36.6%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1992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인 53,898명 중 76.9%인 41,452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민주자유당의 김영삼(金泳三) 25,048표, 통일국민당 정주영(鄭周永) 6,879표, 민주당 김대중 4,839표를 기록했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인 90,107명 중 77.3%인 69,634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42,016표, 국민회의 김대중 10,821표,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 13,480표를 기록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2002년 12월 19일 실시되었다. 이 선거에서 영천시의 유권자 수는 89.586명이었으며, 69.4%인 62,230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선거 결과 한나라당 이회창 44,091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14,481표,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이 2,200표를 각각 획득했다.
2007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인 89,531명 중 70.4%인 60,974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44,263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鄭東泳) 4,348표, 무소속 이회창이 7,326표를 획득했다.
2) 부통령 선거
초대 부통령과 제2대 부통령은 헌법 제53조에 따라 국회에서 선출했다.
제3대 부통령 선거 당시 영천군에서는 총선거인 67,959명 중 62,122명이 투표에 참가하여, 무소속 함태영(咸台永)에 33,726표, 자유당 이범석(李範奭)에게 5,157표의 지지를 보냈다.
제4대 부통령 선거에서는 66,757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민주당의 장면(張勉) 44,174표, 자유당 이기붕(李起鵬) 13,502표를 기록했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5대 부통령 선거에는 80,505명이 참가하여, 자유당 이기붕이 57,966표, 민주당 장면이 18,952표를 얻었다.
2. 국회의원 선거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건국 후 처음으로 제헌 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의원 200명을 선출했다. 영천군에서는 갑구와 을구로 나뉘어 2명의 의원이 선출되었는데, 국민회 소속 정도영(鄭島榮)과 이범교(李範敎) 후보가 무투표 당선되었다.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천군 갑구는 무소속 권중돈(權仲敦) 후보가 7,239표, 을구는 무소속 조규설(曺奎卨) 후보가 11,039표로 각각 당선되었다.
1954년 5월 20일 실시된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천군 갑구에서는 자유당 김상도(金相道) 후보가 16,487표, 을구에서는 무소속 권중돈 후보가 10,009표로 당선되었다.
1958년 5월 2일 실시된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천군 갑구에서는 자유당의 김상도 후보가 재선되었고, 을구에서는 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권중돈 후보가 14,046표를 얻어 3선 의원이 되었다.
1960년 7월 29일 실시된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인 민의원과 도의원인 참의원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다. 민의원의 경우, 영천군 갑구에서는 민주당 조헌수(趙憲秀) 후보가 13,736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고, 을구에서는 민주당 권중돈 후보가 주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4선 의원이 되었다. 참의원은 각 도 단위로 선출되었는데, 경상북도에서는 8명 정원에 38명이 출마하였으며, 영천군에서는 신판재(愼判宰)가 민주당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하였다.
1963년 11월 26일 실시된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를 지역구[131명]와 전국구[44명]로 나누어 선거를 치렀으며, 소선거구 다수 대표제와 비례 대표제를 병용하여 실시하였다. 이 때문에 영천군은 단일 선거구가 되어 1명의 국회의원만 선출하게 되었고, 민주공화당 이활(李活) 후보가 25,598표를 얻어 19,237표를 얻은 민정당 권중돈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1967년 6월 8일 실시된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이원우(李元雨) 후보가 34,801표를 얻어 신민당 33,464표를 얻은 김상도 후보 등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1971년 5월 25일 실시된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정진화(鄭晋和) 후보가 35,356표를 획득하여 30,636표를 얻은 김상도 후보를 이겼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는 1973년 2월 27일 실시되었는데, 1972년 11월 21일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된 유신 헌법에 따라 영천군은 경상북도 제3선거구[포항·영일·영천·울릉]에 편입되었다. 국회의원은 이 4개 지역에서 2명을 선출했는데, 포항·영일에서 65,891표를 득표한 민주공화당 정무식(鄭茂植) 후보와 영천에서 55,954표를 득표한 무소속 권오태(權五台) 후보가 당선되었다.
1978년 12월 12일 실시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영천 출신인 무소속 권오태 후보와 신민당 조규태(趙圭泰) 후보가 각각 73,560표와 66,868표를 획득해 당선했다.
1981년 3월 25일 실시된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선거구의 조정이 이루어졌는데, 영천군은 경상북도 제12선거구로 편성되어 경산군과 함께 2인의 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다.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염길정 후보와 한국국민당 박재욱 후보가 각각 51,306표와 30,270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1985년 2월 12일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영천시·영천군·경산군이 한 개의 선거구로 편성되어 경상북도 제9선거구가 되었고, 민주정의당 염길정(廉吉正) 후보가 51,306표, 신한민주당 권오태 후보가 35,724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정동윤(鄭東允) 후보는 민주자유당 비례 대표로 전국구 의원이 되었다.
1988년 4월 26일 실시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기존의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로 바꾸어 실시되었다. 따라서 지역구가 92개에서 224개 선거구로 대폭 늘었다. 영천시·영천군 선거구에서는 민주정의당 정동윤 후보가 37,237표를 얻어 33,715표를 획득한 권오태 후보를 이겼다.
1992년 3월 24일 실시된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천시·영천군에서는 무소속 박헌기(朴憲基) 후보가 38,822표로 당선되었으며, 지역 출신 최상룡(崔相龍) 후보가 민주자유당 전국구 의원이 되었다.
1996년 4월 11일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박헌기 후보는 24,113표를 획득해 15,261표를 획득한 자민련 최상용 후보와 13,204표를 얻은 국민연합 정동윤 후보를 누르고 재선의원이 된 데 이어, 2000년 4월 13일 실시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24,113표를 얻어 3선의원이 되었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정동윤 후보를 내세웠으나 20,440표를 얻는 데 그쳤다.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덕모(李德模) 후보가 23,161표를 얻어 15,386표를 획득한 열린우리당 최상용(崔相龍) 후보, 8,550표를 획득한 무소속 이동근(李東根) 후보를 이겼다. 그렇지만 이덕모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해 2005년 4월 30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이 동시에 선거를 치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정희수(鄭熙秀) 후보가 당선되었다.
2008년 4월 9일 실시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정희수 후보는 32,701표를 얻어 3,878표를 얻은 자유선진당 송두봉 후보, 3,305표를 얻은 평화통일가정당 박준범 후보를 압도했다.
2012년 4월 11일 실시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정희수 후보는 23,331표를 얻어 17,767표를 얻은 무소속 최기문 후보와 6,590표를 얻은 김경언(金京彦) 후보를 이기고 3선의원이 되었다.
3. 지방 자치 선거
지방 자치 선거는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 의회 의원과 지방 자치 단체장을 선출하는 선거이다.
1952년 4월 25일 실시된 제1차 시·읍·면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된 것이 우리나라 지방자치 선거의 효시이며 1960년 12월 29일 제3차 선거까지 계속되어 왔으나 1961년 이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중단되었다.
이후 1991년 3월 26일 기초 의회[구·시·군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30년 만에 지방 자치 시대가 다시 열리게 되었다. 석 달 뒤인 6월 20일 광역 의원[시·도] 선거가 실시되어 광역 의회도 출범했다. 1995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원을 함께 선출하는 전국 동시 지방 선거가 실시되어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기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광역의회의원 선거, 기초의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게 되었다.
또 2010년부터는「지방자치에 관한 법률」이 개정됨으로써 광역의회에 교육 분야를 담당하는 교육위원회를 설치하고 교육위원도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 교육위원의 임기는 모두 4년씩이며, 지방자치단체장의 연속 재임은 3기로 제한된다.
1) 기초 의회 의원 선거
1991년 3월 26일 실시된 기초 의회 선거에서 영천시 지역은 9개 동에서 권영성 등 9명의 의원, 영천군 지역은 11개 읍·면에서 이명수 등 11명의 의원을 각각 선출하여 제1대 영천시의회와 제1대 영천군의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1991년 1월 1일 영천시와 영천군이 통합됨에 따라 영천시·영천군 의회도 영천시의회로 통합되었다.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20개 읍·면·동에서 서정수 등 20명이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16개 읍·면·동에서 김준호 등 16명이 당선했다.
제3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는 2002년 6월 13일 실시되었으며, 영천시 의원은 16개 읍·면·동에서 임상원 등 15명이 선출되었다.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제4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선거구를 4개로 구획하여 임상원 등 10명의 의원을 선출하고 비례 의원 2명을 배정했다.
2010년 6월 2일 실시된 제5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는 정기택 등 10명의 지역의원과 2명의 비례 대표가 선출되어 제6대 영천시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2) 광역 의회 의원 선거
광역 의회인 경상북도 의회 의원 선거는 1991년 6월 20일 실시되었는데, 경상북도 의회는 1952년·1956년·1960년의 지방자치 선거에서 구성되었던 의회의 역사를 감안하여 이 시기에 구성된 의회를 제4대 경상북도 의회로 칭한다.
제4대 경상북도 의회의 영천 지역 의원은 5개 선거구에서 김종덕 등 5명이 선출되었으며, 이들은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제1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모두 재선되었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제2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그 동안 23개 시·군에서 87명을 선출하던 의원 수를 60명[비례 대표 6명 포함]으로 조정함에 따라 영천 지역 의원 수도 5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어 이종칠과 이광언이 선출되었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제3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김준호와 이종칠이 당선되었고, 한혜련이 비례 대표로 도의회 의원이 되었다.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제4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김수용과 한혜련이 당선되었으며, 이들은 2010년 6월 2일에 실시된 제5회 전국 동시 지방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3)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
기초 자치 단체장 선거인 영천시장 선거는 1995년 6월 27일 처음 실시되었으며, 민선 초대 영천시장으로 정재균(鄭宰均)이 당선되었다. 정재균은 1998년 실시된 민선 2기 시장 선거에서 재선되었지만, 업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협의로 실형을 선고받는 바람에 2000년 7월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2000년 10월 보궐선거를 통해 박진규가 영천시장으로 당선되었고 2002년 실시된 민선3기 영천시장 선거에서도 이겼지만, 2005년 3월 뇌물 수수로 인해 시장직을 사퇴했다.
2005년 5월 31일의 영천시장 보궐 선거와 2006년 5월 31일의 민선 4기 영천시장 선거에서는 손이목(孫貳睦)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손이목은 당선된 지 1년 만에 선거법 위반으로 시장직을 잃었고, 이 때문에 영천시에서는 2007년 12월 19일 영천시장 재선거를 실시해 김영석을 새 시장으로 선출했다. 김영석은 2010년 6월 2일 실시된 민선 5기 영천시장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4)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
광역 자치 단체장 선거인 경상북도지사 선거도 1995년 6월 27일 처음 실시되었다. 민선 초대 경상북도지사로 당선된 이의근(李義根)은 1998년의 민선 2기, 2002년의 민선 3기까지 세 차례 연임했다.
2006년 실시된 민선 4기 경북도지사 선거에서는 김관용(金寬容)이 당선되었고, 2010년 6월 2일 실시된 민선5기 경북도지사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