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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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圭弼 |
이칭/별칭 | 주범(周範),관천(觀川)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878년 8월 3일 - 이규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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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9월 - 이규필 산남의진 좌영장에 임명되어 활동함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이규필 산남의진 우영잔에 선임되어 활동함 |
몰년 시기/일시 | 1915년 4월 6일 - 이규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6년 - 이규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 이규필 추모비 건립 |
출생지 | 이규필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임포리 |
활동지 | 이규필 - 경상북도 일원[영천, 영일, 청송 등] |
묘소 | 이규필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관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대표 경력 | 산남의진 연습장·우영장·좌영장·우포장 |
[정의]
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가계]
이규필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주범(周範), 호는 관천(觀川)으로 1878년(고종 15) 지금의 영천시 북안면 임포리에서 태어나 1915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이정영(李庭榮)과 어머니 김녕 김씨(金寧金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이규필(李圭弼)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주축이 된 영천 지역의 의병 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의 군사 소모단계에서부터 참여하여 각 지역을 연락하며 편성에 힘썼고, 창의 당시에는 연습장에 선임되었다. 1907년 산남의진을 재결성할 때에는 흥해·청하 등지에 파견되어 군사를 모집하는 한편, 본진의 우영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정용기 대장이 1907년 9월 입암 전투에서 전사한 후 그의 아버지 정환직이 새로이 의진을 구성하자, 이규필은 좌영장에 임명되어 영천·영일·청송·영덕 등지에서 여러 차례 일군경과의 전투를 치러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정환직 대장이 순절한 후 최세윤(崔世允)이 또 다시 의진을 재구성하자 우포장을 맡아 활약하였고, 최세윤이 체포된 후에도 이세기(李世紀)와 함께 끝까지 대일 항전을 계속하다가 국권 회복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울화병으로 사망하였다.
[묘소]
이규필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관리 선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1997년 후손들이 영천시 북안면 임포리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