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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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炳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인호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손병헌(孫炳憲)은 1870년 영천에서 태어났으며 1946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19년 3·1 만세 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극장(孫克章)·독고욱(獨孤旭)·이천민(李天民) 등과 함께 남만주 환인현에서 인근 청년들을 규합하여 한교공회(韓僑公會)를 조직하였다.
한교공회는 본부를 환인현 마권자에 두고 각처에 지부를 두었으며, 간부는 특무부장 이천민(李天民), 서무부장 손병헌(孫炳憲), 재무부장 윤세용(尹世茸), 검무부장 독고욱(獨孤旭), 청년부장 사병희(史秉熙), 외무위원 김창천(金蒼天) 등이었다.
이들은 일제의 침략 기관을 습격하여 파괴하는 한편, 일제의 앞잡이를 적발·숙청하여 남만주 일대에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적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홍승국(洪承國)과 백토벌(白討伐)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만주 토군과 결탁하여 독립 운동가를 검거·살해하는 등 행패가 빈번하자, 백토벌을 사살하고 홍승국 등 이적 행위자들을 설득시켜 귀국하도록 하였다.
1922년 8월 북로군정서·광복군총영 등 8개 단체 대표가 모여 대한통의부를 결성하자, 손병헌은 이에 가입하여 참모부 참모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1926년부터는 간도 용정에서 대성중학교의 교사로 민족 교육을 실시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며, 2005년 6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동부동 새천년숲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