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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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漢基 |
이칭/별칭 | 치록(致麓),괴은(槐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868년 6월 27일 - 이한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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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3년 - 이한기 효릉참봉에 임용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9월 16일 - 이한기 사망 |
묘소|단소 | 이한기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고도리 |
사당|배향지 | 침수정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성산 |
저술 | 『괴은유고(槐隱遺稿)』 |
대표 관직|경력 | 효릉참봉(孝陵參奉) |
[정의]
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가계]
이한기(李漢基)의 본관은 성산. 자는 치록(致麓), 호는 괴은(槐隱)이며, 1868년(고종 5) 6월 27일에 태어나 1945년 9월 16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이관인(李寬仁)이며, 증조는 이규(李奎), 조부는 이문표(李文杓), 아버지는 이희석(李熙碩)이며,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成氏)로 성덕운(成德運)의 딸이다.
부인은 의인(宜人) 창녕 성씨(昌寧成氏)로 성재우(成在祐)의 딸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니 아들은 이종택(李鍾澤), 사위는 오천인(烏川人) 정기동(鄭箕東)과 계림인(鷄林人) 김욱희(金昱熙)이다.
[활동 사항]
이한기는 어려서부터 총민하였으며, 경전을 비롯한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두루 섭렵하여 향중에 추중되어 1903년에 효릉참봉(孝陵參奉)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명리(名利)를 추구하지 않고 임천을 즐기며 학문 탐구에 진력하였다.
스스로 지은 침수정(枕嗽亭) 기문에 “우리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 살고, 여기에 잠자고 하여 나의 검소함을 스승으로 한다면 이 정자는 무궁하게 보존할 것이 아니겠는가?”라며, 힘써 배우며 근검하게 살라는 유지를 남겼다.
[학문과 저술]
금석본인 2권 1책의 『괴은유고(槐隱遺稿)』가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고도리 장곡제하(長谷堤下) 남록(南麓) 곤좌(坤坐) 향으로 있으며, 채산(蔡山) 권상규(權相圭)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에 장수처(藏修處)인 침수정(枕嗽亭)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