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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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方逸老妻月城鄭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미애 |
추모 시기/일시 | 1924년 - 방일로 처 월성 정씨의 효를 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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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방일로 처 월성 정씨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운천리 |
추모 | 방씨삼세돈윤각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월성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가계]
월성 정씨(月城鄭氏)는 정필용(鄭弼容)의 딸로 부군(夫君)은 방일로(方逸老)이다. 방일로는 온양 방씨로 영천 입향조인 방이복(方以福)의 후예이다.
방일로의 고조는 방이복의 5세손 방덕흡(方德洽)이며, 증조는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추부사(中樞府使) 방세적(方世迪), 조부는 통덕랑(通德郞) 방선원(方善圓)이다. 아버지는 방처극(方處極)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로 박상열(朴相悅)의 딸이다.
방일로는 1800년(정조 24)에 태어나 중부(仲父) 방처중(方處中)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니 아들은 방영희(方永熙)와 방영탁(方永鐸)이며, 사위는 김해인(金海人) 허흘(許迄)이다.
[활동 사항]
방일로의 처 월성 정씨는 행실이 좋았으며, 아들 방영희와 손자 방두원(方斗元)·방두천(方斗天)과 함께 살았다.
월성 정씨는 시부모와 남편이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손가락을 베어 피로 생명을 이어가게 하였으며, 남편이 죽자 3년간 머리도 빗지 않고 목욕도 않으며 묘소에서 애곡하였다.
아들 방영희 역시 손가락을 잘라 병든 모친에게 드렸으나 3년이 되어도 병환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가시니, 역시 3년간 얼굴도 씻지 아니하고 머리도 빗지 않은 채 3년간 시묘를 하였다.
손자 방두원도 모친이 병환에 들자 하늘의 별을 보고 기도하였고, 부친의 병환을 완치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드렸다. 방두천은 입산하여 부모님 병환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니 호랑이가 길을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 신통한 약을 구하여 부친의 병환을 완치시켰다고 한다.
[묘소]
월성 정씨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운천리 예곡지내(禮谷池內)에 갑좌(甲坐) 향으로 있다.
[상훈과 추모]
1924년 방씨 집안 3세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문중에서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에 세운 ‘방씨삼세돈윤각(方氏三世惇倫閣)’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