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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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昌彦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미애 |
출생 시기/일시 | 1811년 - 강창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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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52년 - 강장언 효자각 건립 |
효자각 | 강창언 효자각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진주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의 효자.
[가계]
강창언(姜昌彦)은 고구려 말 백마원수(白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는 진주 강씨 후손으로 1811년(순종 원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강우석(姜遇錫), 어머니는 청도 김씨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 이달주(李達周)의 딸로, 슬하에 네 아들이 있으니 강재정(姜在廷)·강재하(姜在夏)·강재익(姜在翊)·강재주(姜在朱)이다.
[활동 사항]
강창언은 가세가 빈곤하였으나 주경야독(晝耕夜讀)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지극정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특히 아버지가 탈항증(脫肛症)으로 자주 변소를 오고 감으로, 그때마다 반드시 업고 다녔으며, 아버지가 생선을 좋아하시나 동네에는 낚시할 곳이 없어 애를 태웠는데, 하루는 흰 눈 속에서 홀연히 자라가 뛰어나오므로 잡아다가 끓여 드렸다.
또 아버지가 설사병이 나자 변의 맛을 보고는 자신이 대신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하늘에 빌었다. 이어서 아버지가 중풍에 걸리자 앉고 누울 때마다 부축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부인과 함께 따뜻한 물로 몸을 씻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슬퍼하는 가운데에도 아버지께 약을 끓여드리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다. 이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역시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르고 자신의 몸을 부지하기 어려운 지경에도 묘소를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주변에서 군수와 관계관에게 추천하여 보고하니 나라에서는 정려를 명하였고, 조정과 지방관의 표창이 있어 그 지극한 효성이 널리 퍼져 주변의 칭송이 자자하였기에 효자각을 세워 기리고 있다.
[표창 및 추모]
나라에서는 정려를 명하였고, 조정과 지방관의 표창이 있었고,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에 정려각이 있으며 비문은 문소(聞韶) 김만주(金萬周)가 지었다.
자양면 신방 마을에 있는 강창언 효자각은 군수 및 관계기관의 추천으로 정부의 표창을 받은 후 1952년 문중에서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