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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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皇甫星 |
이칭/별칭 | 경우(景虞)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미애 |
출생 시기/일시 | 1700년 3월 12일 - 황보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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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56년 추정 - 황보성 사망[추정] |
출생지 | 황보성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별곡(別谷) |
묘소|단소 | 황보성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촌(龜田村) 서쪽 미좌(未坐)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영천 |
[정의]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가계]
황보성(皇甫星)은 고려 초 상장군(上將軍) 황보능장(皇甫能長)을 시조로 하는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의 후손이다. 5대조 황보덕(皇甫德)이 장기(長鬐)[포항시 장기면]에서 영천으로 이주하였으며, 고조는 황보령(皇甫齡), 증조는 황보남(皇甫楠), 조부는 황보익(皇甫益), 아버지는 황보탈(皇甫侻)이며 어머니는 영천 이씨 영양군(永陽君)의 후손인 이광익(李光益)의 딸이다.
황보성(皇甫星)의 자는 경우(景虞)이며, 1700년(숙종 26) 3월 12일 영천시 화남면 별곡(別谷)에서 태어났고, 1756년(영조 32)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인은 영인(令人) 김녕인(金寧人) 김자건(金自鍵)의 딸로 슬하에 4남을 두니,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황보우(皇甫瑀)와 황보호(皇甫瑚)·황보완(皇甫玩)·황보욱(皇甫頊)이다.
[활동 사항]
황보성은 12세 때 아버지 상을 당하였으나 어른과 다름없이 상주 노릇을 하였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성묘를 다닐 때 호랑이도 효심에 감복하여 소년을 호위하였다고 한다.
홀어머니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으며, 무슨 일이던 꼭 여쭤 보고 실행을 하였으며 쉰 살이 넘어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칠성단을 집 뒤에 쌓아 항시 배례(拜禮)·축수(祝壽)하였고 의복을 몸에 따뜻하고 편하게, 음식은 입에 달고 맞게 해드렸다.
병환으로 입맛을 잃은 어머니가 겨울철에 고사리를 원하시기에 아버지의 산소에 가서 기도하니 갑자기 고사리가 돋아났다고 하며, 위급한 때에는 손가락을 잘라 목숨을 연명케 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피눈물로 곡을 하며 물도 마시지 않고 여윈 몸으로 몇 번이나 쓰러질 듯 일어나서 여묘와 성묘를 함에 무덤 길 풀밭이 길이 되고, 무릎을 꿇은 자리는 구덩이가 파이기도 하였으며, 오가는 길에는 언제나 지켜주는 동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난 후 이러한 사실을 고을 선비들이 조정에 올리자 임금님께서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이란 증직을 내렸다.
[묘소]
황보성의 묘소는 영천시 화남면(華南面) 구전촌(龜田村) 서쪽 미좌(未坐) 향이며, 한산(韓山) 이돈우(李敦禹)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칠성단 자리에 세운 반백대(攀栢臺)와 어머니를 위한 영천이씨 적덕비각(永川李氏積德碑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