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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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裕昆 |
이칭/별칭 | 덕부(德夫),만오(晩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782년 12월 20일 - 정유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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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65년 9월 21일 - 정유곤 사망 |
출생지 | 정유곤 출생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곡리 |
거주|이주지 | 정유곤 거주지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
묘소|단소 | 정유곤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매산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일 |
저술 | 『만오집(晩悟集)』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정유곤(鄭裕昆)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덕부(德夫), 호는 만오(晩悟)이다. 고조는 정석달(鄭碩達)이며, 증조는 통덕랑(通德郞) 정일빈(鄭一鑌), 조부는 정하온(鄭夏溫)이다. 아버지는 정경휴(鄭景休)이며, 어머니는 풍산 유씨(豊山 柳氏)로 유빈(柳濱)의 딸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 權氏)로 권동기(權東箕)의 딸이며, 슬하에 4남을 두니 정신재(鄭信在)·정연재(鄭淵在)·정관재(鄭寬在)·정홍재(鄭弘在)이다.
[활동 사항]
정유곤은 1782년(정조 6) 12월 20일 현재의 영천시 임고면(臨皐面) 매곡리(梅谷里)에서 태어나 1865년(고종 2) 9월 21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효성이 지극하여 6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초상을 치름에 성인과 같았다. 조우각(趙友慤)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을 성취하였으나 과거의 뜻을 접고 어머니를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였다.
1846년(헌종 12)에 영천시 화북면(華北面) 자천리(慈川里)로 이사를 하여 고암(高巖)에 정자를 지어 ‘만오당(晩悟堂)’이라 편액을 달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14권 7책의 『만오집(晩悟集)』이 있다.
[묘소]
정유곤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매산동(梅山洞) 월계(月溪)에 있으며, 이중철(李中轍)의 갈문(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