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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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善長 |
이칭/별칭 | 인백(仁伯),병애(屛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661년 11월 27일 - 조선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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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26년 2월 20일 - 조선장 사망 |
묘소|단소 | 조선장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전리 |
사당|배향지 | 창주서원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 |
사당|배향지 | 계정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병암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저술 | 『병애집(屛厓集)』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개설]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영천 입향조는 조송무의 5세손 가선대부(嘉善大夫) 좌익병마사(左翼兵馬使) 판희천군사(判熙川郡事) 조신충(曺信忠)이다.
[가계]
조선장(曺善長)의 자는 인백(仁伯), 호는 병애(屛厓)이며, 1661년(현종 7) 11월 27일에 태어나 1726년(영조 2) 2월 20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영릉참봉(英陵參奉) 조이함(曺以咸)이며, 증조는 부사과(副司果) 조전(曺䡘), 조부는 참봉(參奉) 조진창(曺振昌)이다. 부친은 조효량(曺效良)이며, 모친은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목사(牧使) 정호인(鄭好仁)의 딸이다.
첫째부인은 현풍 곽씨(玄風郭氏)로 곽태재(郭泰載)의 딸이며, 둘째부인은 인천 채씨(仁川蔡氏)로 채인적(蔡仁迪)의 딸이다. 슬하에 6남 4녀를 두니, 아들은 영릉참봉(寧陵參奉) 조광국(曺光國)과 조광열(曺光烈)·조광한(曺光漢)·조광수(曺光遂)·조광적(曺光迪)·조광달(曺光達)이며, 사위는 안동인(安東人) 김계용(金啓鎔), 재령인(載寧人) 이천환(李天煥), 이문환(李文煥), 의성인(義城人) 김정한(金正漢)이다.
[활동 사항]
조선장은 타고난 자태가 온후하고 소박하였다. 일찍이 속학(俗學)의 누추함을 알아 사문의 큰 원로에게 나아가 수학하여 깊은 학문을 익히고 문행을 이루었다. 그는 또한 타고난 효성이 지극하여 거상(居喪)에 예를 다하였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3권 1책의 『병애집(屛厓集)』이 있다. 조선장에 대해 정규양(鄭葵陽)은 “홀로 성인이 남기신 경전을 안으니, 하나의 경(敬)만이 단방(單方)이로다”고 하였다. 또 이광정(李光庭)은 “기거(起居)와 시를 주고받음이 한결같이 가난과 핍박함에서 나왔으니 두텁게 행하는 군자로다”라고 평가하였다.
[묘소]
조선장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전동 본촌(本村) 내산(內山)에 현좌(玄坐) 향으로 있으며, 세마(洗馬) 이광정(李光庭)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병암리에 계정(溪亭)이 있으며,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 창주서원(滄州書院)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