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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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克立 |
이칭/별칭 | 강재(强哉),동봉(東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558년 3월 24일 - 권극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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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11년 - 권극립 사망 |
출생지 | 권극립 출생지 - 경상북도 영천시 천미촌 |
묘소|단소 | 권극립의 묘소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 이매봉 |
사당|배향지 | 입암서원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권씨 |
대표 관직|경력 | 공조참판 추증 |
[정의]
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자.
[가계]
권극립(權克立)[1558~1611]의 본관은 안동. 자는 강재(强哉), 호는 동봉(東峯)이며 문절공(文節公) 권중화(權仲和)의 6세손이다. 고조는 부승(副丞) 권영신(權永愼)이며, 증조는 사정(司正) 권균(權勻)으로 처음 영천에 옮겨 살았고, 조부는 사직(司直) 권필신(權弼臣)이다. 아버지는 통훈랑(通訓郞) 울산훈도(蔚山訓導) 권해(權楷)이며,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成氏)로 훈도(訓導) 성렬(成烈)의 딸이다.
권극립은 1558년 3월 24일 천미촌[현 경상북도 영천시 언하동]에서 태어났으며,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영일 정씨(迎日鄭氏)로 생원(生員) 정거(鄭琚)의 딸이다. 슬하에 1남 4녀를 두니 아들은 수직(壽職) 절충호군(折衝護軍) 권봉(權崶)이며, 사위는 영천인(永川人) 이숙(李塾), 영일인(迎日人) 만호(萬戶) 정안번(鄭安藩), 평해인(平海人) 생원(生員) 황중신(黃仲信), 순천인(順天人) 찰방(察訪) 김경장(金慶長)이다.
[활동 사항]
권극립은 구봉(龜峯) 주박(周博)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두터운 학문과 독실한 행실로 당시 여러 현자들의 추중(推重)함이 되었다.
권극립은 느지막이 입암(立巖)의 산중에 숨어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과 더불어 도의를 강마하였으니, 여헌이 언제나 도의로 인연[道契]하였다고 칭송한 네 명의 벗[권극립·손우남(孫宇男)·정사상(鄭四象)·정사진(鄭四震)] 가운데 한 사람이다.
판서 이헌경(李獻慶)이 그의 무덤에 새기기를 “땅에도 드러나고 감춰짐이 있다 말하지 않던가? 입암의 빼어남은 선생을 얻어 비로소 이름을 얻었으니, 선비가 때를 만나고 못 만난다 말하지 않던가? 선생의 아름다움은 제현(諸賢)을 얻어 더욱 드러났으니, 그러나 진실로 그 실체가 없다면 뉘 있어 드러낼 것이며, 진실로 그 실체가 있다면 이치는 끝내 감춰지지 않는 것. 충신의 자질과 고고한 정취는, 그것이 가려짐은 잠시지만, 그 전해짐은 오래인 것. 아아! 선생의 덕은 입암과 더불어 영원하리라.” 하였다.
권극립은 1611년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권극립의 저술로는 1권 1책의 『동봉유고(東峯遺稿)』가 남아있다.
[묘소]
권극립의 묘소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 이매봉(梨邁峯)에 있다.
[상훈과 추모]
권극립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추증되고,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서원(立巖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