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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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瓊 |
이칭/별칭 | 중헌(仲獻)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묘소|단소 | 조경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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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배향지 | 의락당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대표 관직|경력 | 군자감 봉사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개설]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고 전한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영천 입향조는 조송무의 5세손 가선대부 좌익병마사 판희천군사(嘉善大夫左翼兵馬使判熙川郡事) 조신충(曺信忠)이며 조경(曺瓊)의 6대조이다.
[가계]
조경(曺瓊)의 자는 중헌(仲獻)이며, 고조는 예조참의(禮曹參議) 조변안(曺變安)이며, 증조는 장흥고부사(長興庫副使) 조세보(曺世輔), 조부는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조맹성(曺孟誠)이다. 부친은 증(贈) 호조참의(戶曹參議) 조충개(曺忠愷)이며, 모친은 증(贈) 숙부인(淑夫人) 중화 양씨(中和楊氏)로 양배선(楊拜善)의 딸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군수(郡守) 박호(朴虎)의 딸이다. 슬하에 후사(後嗣)가 없어 삼종질 조탁연(曺卓然)의 아들 조승효(曺承孝)로 뒤를 이었다.
[활동 사항]
조경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며 의병장으로도 활약한 조호익(曺好益)[1545-1609]의 문하에 종유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아우인 조성(曺珹)과 더불어 의병 활동을 하였다.
1596년(선조 29)과 1597년에 걸쳐 ‘공산회맹’(公山會盟)이란 이름의 의병장 회동이 3차례나 열렸는데, 조경이 참여하니 여럿이 수성장으로 추대하였다. 공산회맹은 경상도 의병들이 중심이 되어 전라·충청·경기도 의병들이 대구 팔공산에 모여 행한 회맹이다.
경남 창녕 화왕산성에서도 화왕산 회맹이 있었는데, 이때 조경이 사정이 있어 불참하자, 이안눌(李安訥)이 시를 주어 “화왕산 머리에 그대 모습 뵈지 않으니, 뉘라 동남방의 적을 막은 공 있음을 알리오”’라 하여 참여하지 않음을 애석해 하였다.
원종공신으로 책록되었고, 군자감 봉사의 벼슬이 내렸다. 난리가 평정되자 호수 위에다 집을 짓고 형제가 같이 기거하면서 아침부터 밤늦도록 경전과 사서를 강론하고 토구(討究)하니 조호익이 그 집을 일러 ‘의락(宜樂)’이라 하였다.
[묘소]
조경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고모곡(古毛谷)에 진좌(辰坐) 향으로 있으며, 후손 조규철(曺圭喆)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에 의락당(宜樂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