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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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應生 |
이칭/별칭 | 덕수(德秀),명산(明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516년 - 김응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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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49년 - 김응생 사마시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575년 - 김응생 사망 |
묘소|단소 | 김응생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
사당|배향지 | 원모재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
사당|배향지 | 자양 서당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저술 | 『명산실기(明山實記)』 |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김응생(金應生)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덕수(德秀), 호는 명산(明山)이다. 고조는 호연당(浩然堂) 김자양(金自養)으로 경주 김씨 영천 입향조이고, 증조는 청풍 부사(淸風府使) 김계돈(金季敦), 조부는 직장(直長) 김장미(金長美)이다. 부친은 성균 진사(成均進士) 영릉 참봉(英陵參奉) 김준(金濬)이며, 모친은 한양 조씨(漢陽 趙氏)로 참봉(參奉) 조문경(趙文瓊)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오천 정씨(烏川 鄭氏)로 정중호(鄭仲護)의 딸이며,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참봉(參奉) 김척(金滌)과 도사(都事) 김한(金澣), 해동소무(海東蘇武) 김완(金浣)이며, 사위는 오천인(烏川人) 정용(鄭容)과 부림인(缶林人) 홍거원(洪巨源)이다.
[활동 사항]
김응생은 1496년(연산군 2)에 태어나 1555년(명종 10)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3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애통해하며 상례를 어른과 같이 행하고 3년간 시묘(侍墓)를 행하였다. 이어 어머니를 효성을 다해 모시다가 상을 당하자 전과 같이 하였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 종유하였고, 1549년(명종 4)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고 성리학에 심취하였다. 노수(盧遂)·정윤량(鄭允良)·정거(鄭琚)와 더불어 부래산(浮來山)에 임고 서원(臨皐書院)을 세웠으며, 또한 후진 양성을 위해 자양 서당(慈陽書堂)을 건축하니 황준량(黃俊良)이 기문을 지었다.
김응생의 아들 김완(金浣)의 임진왜란 때 공훈으로 호조 참의(戶曹參議)로 추증되었다.
[학문과 저술]
석판본인 2권 1책의 『명산실기(明山實記)』가 있다.
[묘소]
김응생의 묘소는 영천시 자양면(紫陽面) 성곡리(聖谷里) 중대산(中大山)에 있으며, 이중직(李中稙)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묘소 아래 묘재인 원모재(遠慕齋)가 있으며, 임고면(臨皐面) 삼매리(三梅里)에 자양 서당(慈陽書堂)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