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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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惟岱 |
이칭/별칭 | 맹담(孟澹),학와(壑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가계]
서유대(徐惟岱)의 본관은 달성. 자는 맹담(孟澹), 호는 학와(壑窩)이며, 1761년(영조 37)에 태어나 1822년(순조 22) 12월 17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서진후(徐振後)이며, 증조는 서원징(徐元徵), 조부는 서시대(徐始大)이다. 부친은 서루(徐婁)이며, 모친은 팔거 도씨(八莒都氏)로 도세범(都世範)의 딸이다.
부인은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생원(生員) 정희(鄭熺)의 딸이며, 슬하에 2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서석(徐 王+昔)과 서온(徐溫)이며, 사위는 오천인(烏川人) 정산휴(鄭山休)이다.
[활동 사항]
서유대는 영일인으로 『몽암집(蒙巖集)』을 남긴 정희(鄭熺)[1723-1793]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문학과 행의(行義)가 있어 사림이 추중하였다. 만년에 풍호정(風乎亭)을 짓고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였다.
[묘소]
서유대의 묘소는 영천시 나곡(羅谷) 못안 원봉(圓峰)에 사좌(巳座) 향으로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봉동(鳳洞)에 만년에 장수(藏修)를 목적으로 세운 풍호정(風乎亭)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