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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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明彦 |
이칭/별칭 | 언경(彦卿),의암(宜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658년 - 노명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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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19년 10월 15일 - 노명언 사망 |
출생지 | 노명언 - 경상북도 영천시 도림동 직동리 |
묘소|단소 | 노명언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도림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광주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노명언(盧明彦)의 본관은 광주. 자는 언경(彦卿), 호는 의암(宜庵)이다. 당나라 한림학사 노수(盧穗)를 시조로 하는 광주 노씨(光州 盧氏)의 후손으로 영천 입향조인 통훈대부(通訓大夫) 용양위사직(龍驤衛司直) 노탁(盧琢)의 5대손이다.
고조는 충순위(忠順衛) 노응세(盧應世)이며, 증조는 진사(進士) 노수(盧遂), 조부는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 노기종(盧起宗)이다. 부친은 수문장(守門將) 노혁(盧赫)으로 대창면(大昌面) 직천동(稷川洞)의 불암제(佛岩堤)를 비롯한 7개의 못을 막았다.
노명언은 슬하에 1남 1녀가 있으니, 아들은 노형환(盧亨還)이고, 사위는 서종(徐鍾)이다.
[활동 사항]
노명언은 1658년(효종 9) 영천시 도림(道林) 직동리(直洞里)에서 태어나 1719년(숙종 45) 10월 15일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효성이 지극한 것은 물론 당시 선비로서는 드물게 농경과 수리에 관심을 가진 선각자로서 7개의 못을 막아 농토를 조성한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영천시 도림동(道林洞)에 못을 쌓아 영원토록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였다.
[묘소]
노명언의 묘소는 영천시 도림동(道林洞) 산전곡(傘田谷)에 계좌(癸坐) 향으로 있으며, 진성(眞城) 이가원(李家源)의 갈문(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