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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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仲榮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에 단을 만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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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중시조 |
성별 | 남 |
본관 | 영천 |
[정의]
영천 이씨의 중시조(中始祖).
[개설]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시행한 6부촌장의 의장(議長)이었으며, ‘혁거세(赫居世)’를 신라 초대 왕에 추대한 공이 있음으로 후에 법흥왕(法興王)은 문선공(文宣公)의 시호를 추증하고 무열왕(武烈王)은 은열왕(恩烈王)으로 추존하였다 한다.
영천 이씨(永川 李氏)는 알평공계 이씨에서 분종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문헌상 기록을 찾지 못하여 고려 초기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고울군(高鬱君)[영천의 옛 이름]에 봉해진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후 세계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어 영천 이씨 대부분이 이대영(李大榮)을 중시조(中始祖)로 하는 영양군파(永陽君派)와 이중영을 중시조로 하는 울산군파(鬱山君派)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가계]
이중영(李仲榮)은 슬하에 4남 2녀를 두니, 아들은 감무(監務) 이찬(李攢)과 참의(參議) 이지(李持), 광양현감(光陽縣監) 이협(李挾), 이항(李抗)이며, 사위는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 최유진(崔有珍)과 보승별장(保勝別將) 조상보(曺尙保)이다.
[활동 사항]
이중영은 원(元)나라에 들어가 원나라 순제(順帝)의 명으로 봉승랑(奉承郞) 겸 권농방어사(勸農防禦使)에 오르고 자금어대(紫金魚帶)를 하사받았다. 고려로 돌아와 지울주사(知蔚州事)가 되고 울산군(鬱山君)에 봉군되었다.
[묘소]
이중영의 묘소는 소실되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며,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에 단(壇)을 만들었고, 문소(聞韶) 김황(金榥)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에 모원당(慕遠堂)이 있으며, 경내 운천서사 유허비(雲川書社遺墟碑)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