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0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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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益祐 |
이칭/별칭 | 수중(綏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603년 3월 6일 - 신익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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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30년 - 신익우 무과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79년 10월 20일 - 신익우 사망 |
묘소|단소 | 신익우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 |
성격 | 무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산 |
대표 관직 | 전력부위 부장 겸 사복장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개설]
영산 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仁宗)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辛鏡)으로,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다.
8세(世) 전교령(典校令) 신지화(辛至和)의 아들 대에서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지낸 신천(辛蕆)을 파조로 하는 덕재공파(德齋公派)와 좌찬성(左贊成)을 지내고 영산부원군(靈山府院君)에 봉해진 신혁(辛革)을 파조로 하는 초당공파(草堂公派) 등으로 분파(分派)되었는데, 경상북도 영천에 세거하는 영산 신씨는 초당공파 후손이다.
[가계]
신익우(辛益祐)의 고조는 종사랑참봉(從仕郞參奉) 신언륜(辛彦倫)이니 영천 입향조이다. 증조는 장사랑(將仕郞) 신진(辛軫), 조부는 신응주(辛應周)이다. 아버지는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 신택룡(辛澤龍)이며, 어머니는 평창 이씨(平昌李氏)로 찰방(察訪) 이시익(李時益)의 딸이다.
신익우의 자는 수중(綏仲)이며, 1603년 선조(宣祖) 계묘년(癸卯年) 3월 6일에 태어났다. 부인은 진주 하씨(晋州河氏)로 하달해(河達海)의 딸이며, 슬하에 3남을 두니 영장(營將) 신치관(辛致寬)과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신치정(辛致鼎), 신치웅(辛致雄)이다.
[활동 사항]
신익우는 1630년(인조 8) 무과에 급제하여 전력부위(展力副尉) 부장(部將) 겸 사복장(司僕將)으로 병자호란 때 창의하였으며, 1679년(숙종 5) 10월 20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신익우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 뒷산에 유좌(酉坐) 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