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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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碩祖 |
이칭/별칭 | 여승(汝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652년 5월 11일 - 정석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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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6년 - 정석조 무과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89 12월 12일 - 정석조 사망 |
묘소|단소 | 정석조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아래 하천(夏泉) |
성격 | 무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일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정석조(鄭碩祖)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여승(汝承)이다. 고조는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이며, 증조는 증(贈) 호조정랑(戶曹正郞) 정의번(鄭宜藩), 조부는 해남현감(海南縣監) 정호례(鄭好禮)이다.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정시교(鄭時僑)이며, 어머니는 월성 최씨(月城 崔氏)로 진사(進士) 최동치(崔東치)의 딸이다. 부인인 성주 이씨(星州 李氏)는 진사(進士) 이이장(李而樟)의 딸로, 슬하에 후사(後嗣)가 없어 조카 정중선(鄭重善)으로 뒤를 이었으며, 사위는 손시옹(孫是雍)과 권수(權洙)이다.
[활동 사항]
정석조[1652~1689]는 1625년(효종 3) 5월 11일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독서를 함에 대의를 통하였으며, 14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5년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심에 능히 상례대로 행함에 허물이 없었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고 1689년에 비로소 선전관(宣傳官)을 제수 받아 왕명으로 평안도에 봉수(烽燧)를 시찰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병을 얻어 그해 12월 12일에 3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영천시 자양면(紫陽面) 성곡리(聖谷里) 아래 하천(夏泉)에 있으며, 족손(族孫) 정규일(鄭揆一)의 갈문(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