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0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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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時諶 |
이칭/별칭 | 노경(老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641년 5월 1일 - 정시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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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6년 - 정시심 무과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80년 - 정시심 방답첨사에 임명됨 |
몰년 시기/일시 | 1690년 6월 8일 - 정시심 사망 |
묘소|단소 | 정시심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운주산 |
사당|배향지 | 신방재(新昉齋)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운주산 아래 |
성격 | 무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일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츌신의 무인.
[가계]
정시심(鄭時諶)의 본관은 영일. 자는 노경(老卿)이다. 고조는 창릉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 증조는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 조부는 증(贈) 호조정랑(戶曹正郞) 정의번(鄭宜藩)이다.
아버지는 해남현감(海南縣監) 정호례(鄭好禮)이며, 어머니 순천 박씨(順天 朴氏)는 참판(參判) 박팽년(朴彭年)의 6세손인 박종우(朴宗祐)의 딸이다. 부인은 야성 송씨(冶城 宋氏)로 송시철(宋時哲)의 딸이며, 슬하에 2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정석달(鄭碩達)과 정석진(鄭碩進)이며, 사위는 이덕기(李德祺)이다.
[활동 사항]
정시심[1641~1690]은 1641년(인조 19) 5월 1일에 태어났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1679년에 선전관(宣傳官)에 배임되고, 1680년에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에 올라 성(城)을 쌓은 공로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으나 회수되고, 방답첨사(防踏僉使)에 제수되어 병기를 수선하고 사졸을 훈련시키니 암행어사의 장계로 나라로부터 표창이 있었다.
훈련장(訓練將)과 부호군(副護軍)을 거쳐 전주영장(全州營將)을 역임하고 대호군(大護軍)으로 승급되었다. 1690년(숙종 16) 금위장(禁衛將)과 겸하여 사복장(司僕將)이 되었으나 병을 만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6월 8일에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정시심의 묘소는 영천시 자양면(紫陽面) 신방리(新坊里)의 운주산(雲住山)에 있으며,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묘소 아래 묘재인 신방재(新昉齋)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