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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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三達 |
이칭/별칭 | 군형(君炯),영고정(潁皐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전민욱 |
출생 시기/일시 | 1570년 - 전삼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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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전삼달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움 |
활동 시기/일시 | 1599년 - 전삼달 무과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32년 - 전삼달 사망 |
묘소|단소 | 전삼달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
묘소|단소 | 전삼달의 이장전 모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 |
사당|배향지 | 어서각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약남리 수남마을 |
성격 | 무인 |
성별 | 남 |
본관 | 용궁 |
대표 관직 | 병마절도사 |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전삼달(全三達)의 본관은 용궁. 자는 군형(君炯), 호는 영고정(潁皐亭)이며, 1570년(선조 3)에 태어났으며, 1632년(인조 10)에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로 인해 3대가 추증되었다.
고조는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典籍)과 감찰(監察) 등을 역임한 전회옥(全懷玉)이며, 증조는 참봉(參奉) 전언(全彦), 조부는 전희상(全希祥),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전몽룡(全夢龍)이다. 어머니는 정부인(貞夫人) 함양 박씨(咸陽朴氏)로 도사(都事) 박등(朴登)의 딸이다.
첫째부인은 정부인(貞夫人) 광주 노씨(光州盧氏)로 중추(中樞) 노준(盧遵)의 딸이며, 둘째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영양 최씨(永陽崔氏)는 선무원종공신으로 이조참판인 최기남(崔起南)의 딸이고, 셋째부인은 함안 조씨(咸安趙氏)로 진사(進士) 조충양(趙忠良)의 딸이다. 슬하에 2남을 두니 통덕랑(通德郞) 전중성(全仲性)과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 전내성(全乃性)이다.
[활동 사항]
전삼달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기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여 전공(戰功)이 많았으니, 이러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에 보직되고, 원종공신록에 등재되었다.
1599년(선조 32) 무과에 급제하여 창원별장이 되어서는 마음을 다해 방어를 갖추니, 임금께서 가상히 여겨 상을 내리시면서 편지를 더하여 간략히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이미 근로(勤勞)함을 다하였으니, 무엇으로 총애하는 물건을 줄까?”라 하시고 병사들을 모집하는 임무를 주시니, 능히 조정의 백성에게 베푸는 마음을 체득하여, 이미 백성들을 어루만져 복종하게 함에 정성을 다하자, 사졸(士卒)들은 소속되기를 원하였다.
전삼달은 다시 적의 침략을 막고 힘써 방비하여 기치(旗幟)를 새롭게 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고을의 목사[수령]와 진(鎭)의 수령을 지냈는데, 모두 명성과 업적이 있었고 벼슬은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묘소]
전삼달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花山面) 화산리(花山里)에 사좌(巳坐) 향으로 있었으나, 근간에 영천시 금호읍으로 이장을 하였으며, 정헌(定軒) 이종상(李鍾祥)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약남리 수남마을에는 전삼달의 유서(諭書)와 유품이 있고, 또한 이를 보호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어서각(御書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