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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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裕榮 |
이칭/별칭 | 계인(季仁),만졸당(萬拙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순홍 |
출생 시기/일시 | 1793년 3월 15일 - 정유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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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31년 - 정유영 문과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834년 12월 30일 - 정유영 사망 |
출생지 | 정유영 출생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평천리 |
묘소|단소 | 정유영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보성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영일 |
대표 관직 | 무공랑(務功郞)|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 |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정유영(鄭裕榮)의 본관은 영일. 자는 계인(季仁), 호는 만졸당(萬拙堂)이며, 1793년(정조 17) 3월 15일 임고면(臨皐面) 평천리(平泉里)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통사랑(通仕郞) 정중선(鄭重善)이며, 증조는 정일진(鄭一鎭), 조부는 정하준(鄭夏浚)이다. 아버지는 정복휴(鄭復休)이며, 어머니는 재령 이씨(載寧李氏)로 이우기(李宇基)의 딸이다.
부인은 하양 허씨(河陽許氏)로 허재(許梓)의 딸이며, 슬하에 정치업(鄭致王+業)과 정치박(鄭致璞)이며, 사위는 여주인(驪州人) 이능규(李能奎)이다.
[활동 사항]
정유영은 1831년(순조 31) 문과에 급제하여 주서(注書)로 무공랑(務功郞)과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를 지냈다. 기주관(記注官)일 때 왕이 그의 손을 잡고, “영외(嶺外)의 출신이 이처럼 착한 아이가 있었느냐?”라고 하였다. 정유영은 1834년(순조 34)에 아버지 상을 당하였고, 복중(服中)에 질환을 얻어 이듬해 12월 30일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정유영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淸通面) 보성리(甫城里) 대왕산(大旺山)에 있으며, 파산(巴山) 조용우(趙鏞宇)의 갈문(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