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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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州丁氏 |
이칭/별칭 | 압해 정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전민욱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348년 - 정몽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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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07년 - 정몽길 사망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356년 - 정몽상 출생 |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423년 - 정몽상 사망 |
본관 | 나주 - 전라남도 |
입향지 | 신녕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일대 |
세거|집성지 | 나주 정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 |
세거|집성지 | 나주 정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 |
세거|집성지 | 나주 정씨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상리 |
성씨 시조 | 정덕성 |
입향 시조 | 정몽길|정몽상 |
[정의]
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하고, 정천학(丁千鶴)을 중조(中祖)로 하며, 정몽길(丁夢吉)과 정몽상(丁夢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에서 신라의 압해(押海)로 유배를 당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압해가 나주에 소속되면서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후손들은 압해 정씨(押海丁氏)로 통칭하고 있다. 고려 때 시랑(侍郞) 정천학(丁千鶴)을 중조(中祖)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입향 경위]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태조 때 개국원종공신으로 책봉되고, 삼도 관찰사와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지낸 정몽길과 그의 아우 참판(參判) 정몽상이다. 이 두 사람이 의성에서 당시 신녕현(新寧縣)으로 옮겨 살게 된 이유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낙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황]
입향 이후 인물은 향지를 통해 살펴보면, 먼저 『화산지(花山誌)』 충의(忠義) 편에 영조 무신년에 창의한 정남석(丁南晳)과 정만제(丁萬齊), 정재흥(丁載興)이 있고, 효행(孝行) 편에 정대걸(丁大杰), 과환(科宦) 편에 입향조인 정몽길(丁夢吉)과 정몽상(丁夢祥) 형제, 부사(府使) 정사의(丁思義), 판관(判官) 정사례(丁思禮), 예좌(禮佐) 정귀종(丁貴宗), 참봉(參奉) 정순돈(丁順敦), 참봉(參奉) 정윤(丁尹), 참봉(參奉) 정석(丁奭), 부호군(副護軍) 정도화(丁道和), 진사(進士) 정흥교(丁興敎), 수직(壽職) 편에 가선대부(嘉善大夫) 정용태(丁龍泰), 문학(文學) 편에 정응숙(丁應叔), 정희운(丁熙運), 정갑조(丁甲祖), 정주우(丁周祐), 정태하(丁泰夏)가 있다.
『영양지(永陽誌)』에는 입향조 정몽길,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정응거(丁應琚), 임진왜란 때 순절한 정응규(丁應奎), 무과(武科)로 무신년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된 정재흥(丁載興), 학문으로 이름난 정우용(丁雨龍)과 정상하(丁相夏)가 있다.
세거지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와 화남면 대천리, 북안면 상리 등이다.
[관련 유적]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연정리에 정응백(丁應伯)과 정응숙(丁應叔) 등의 묘재인 품산재(品山齋)가 있고,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는 효정리에 정몽길의 돈남정(遯南亭)과 정응거(丁應居)와 형 정응기(丁應璣), 종제인 정응호(丁應湖), 정응방(丁應芳)의 사위정(四韡亭) 및 관찰사 정몽길 후손 정윤(丁尹) 이하 묘재인 곽남재(郭南齋), 영천 효정리 아계서사(永川孝亭里莪溪書社), 정응기(丁應琪)의 처 오천 정씨의 오천 정씨 효열각(烏川鄭氏孝烈閣), 정갑조(丁甲祖)의 활천정(活川亭)이 있으며, 화산리에 정몽상(丁夢祥) 이하 5세의 묘재인 첨모재(瞻慕齋)와 정순돈(丁順敦)의 묘재인 두곡재(斗谷齋)가 있다.
그리고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는 사천리에 정몽길의 묘재인 원모재(遠慕齋)와 대천리에 정응생(丁應生)의 해은정(海隱亭), 정대걸(丁大杰)의 석류정(錫類亭)과 정대걸 정려각(丁大杰 旌閭閣)이 있으며,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상리에 정병하(丁秉夏)의 영모재(永慕齋)가 남아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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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3 | 내용 수정 | [이칭] (추가) 압해 정씨 ------------------------------------------------------------------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08년 - 정몽길 출생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16년 - 정몽상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83년 - 정몽상 사망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348년 - 정몽길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07년 - 정몽길 사망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356년 - 정몽상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23년 - 정몽상 사망 ------------------------------------------------------------------ [정의] 정영손(丁令孫) -> 정천학(丁千鶴) ------------------------------------------------------------------ [연원]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시조는 정덕성으로 당나라에서 신라의 압해(押海)로 유배를 당하여 정착하게 되고, 조선 중기 압해가 나주에 포함되어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하였으며, 조선 개국공신으로 의성군(義城君)에 봉군된 정영손을 중조(中祖)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시조는 정덕성으로 당나라에서 신라의 압해(押海)로 유배를 당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압해가 나주에 소속되면서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압해 정씨(押海丁氏)로 통칭하고 있다. 고려 때 시랑(侍郞) 정천학(丁千鶴)을 중조(中祖)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 [입향 경위]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세종 때 삼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지낸 정몽길과 그의 아우 참판(參判) 정몽상이다. 이 두 사람이 의성에서 당시 신녕현(新寧縣)으로 옮겨 살게 된 이유나 시기는 알 수 없다. ->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태조 때 개국원종공신으로 책봉되고, 삼도의 관찰사를 지내고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지낸 정몽길과 그의 아우 참판(參判) 정몽상이다. 이 두 사람이 의성에서 당시 신녕현(新寧縣)으로 옮겨 살게 된 이유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낙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현황] 참봉(參奉) 정순돈(丁順敦), 참봉(參奉) 정석(丁奭), -> 참봉(參奉) 정순돈(丁順敦), 참봉(參奉) 정윤(丁尹), 참봉(參奉) 정석(丁奭), 정갑조(丁甲祖), 정태하(丁泰夏)가 있다. -> 정갑조(丁甲祖), 정주우(丁周祐), 정태하(丁泰夏)가 있다. ------------------------------------------------------------------ [관련 유적] 정응방(丁應芳)의 사위정(四韡亭) 및 정민도(丁敏道)의 배위 묘재인 곽남재(郭南齋), 영천 효정리 서당(永川孝亭里書堂), -> 정응방(丁應芳)의 사위정(四韡亭) 및 관찰사 정몽길 후손 정윤(丁尹) 이하 묘재인 곽남재(郭南齋), 영천 효정리 아계서사(永川孝亭里 莪溪書社), ------------------------------------------------------------------ [참고문헌] 『羅州丁氏義城君派族譜』(1981) -> 『義城丁氏族譜)』(1874), 『羅州丁氏族譜』(1881) ------------------------------------------------------------------ [지식연계] 나주정씨종친회 http://www.najujung.com/default2.asp -> 압해정씨대종회-인터넷족보(daum) http://www.aphaejeong.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