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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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尹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전민욱 |
세거|집성지 | 영천 윤씨 - 경상북도 영천시 완산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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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영천 윤씨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계포리 |
성씨 시조 | 윤절생 |
[정의]
경상북도 영천을 관향으로 하며, 윤절생(尹切生)을 시조로 하는 성씨.
[연원]
영천 윤씨(永川尹氏)는 고려 시대 호장(戶長)을 지낸 윤절생을 시조로 하며, 4세(世) 윤승관(尹承琯)이 문과(文科)에 장원급제를 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고 고울백(高鬱伯)[영천의 옛 명칭]에 봉해져 문도(文度)라는 시호를 받음으로 해서 영천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많은 문과 급제자와 현조(顯祖)가 이어져 명문가로 자리 잡았다.
[현황]
주요 인물을 향지인 『영양지(永陽誌)』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면, 문과(文科)로 전랑(銓郞)에 이른 윤긍(尹兢), 학행이 뛰어난 윤빙(尹聘)과 윤담(尹聃), 임진왜란에 창의한 윤취선(尹就善),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 윤종선(尹從善), 문과(文科)로 별검(別檢)인 윤천각(尹天覺), 문과(文科)로 예조좌랑(禮曹左郞)인 윤효각(尹效覺) 등이 있다.
영천 윤씨는 전체 가구 수가 그리 많지 않으며, 서울과 대구 그리고 영천에 흩어져 살고 있다. 영천 지역에는 완산동과 청통면 계포리에 세거하였으나, 지금은 대부분 도시로 진출하여 남아 있는 가구가 얼마 되지 않는다.
[관련 유적]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신원사(新源祠)를 세워 윤긍(尹兢)을 제향하였으나 훼철되고 현재는 신원재(新源齋)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