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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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剛山城 |
이칭/별칭 | 대의리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철영 |
소재지 | 금강 산성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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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산성 |
형식 | 포곡식산성 |
높이, 폭 | 2~3m[높이]|2~2.5m[폭]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에 있는 산성.
[개설]
금강 산성은 영천시 완산동과 고경면 대의리에 걸쳐 있는 금강산[해발 150m]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산봉우리를 따라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금강 산성은 지금까지 『삼국사기』 지증왕조의 기록에 의거하여 당시 골벌국(骨伐國)에 축성된 골화성(骨火城)으로 보기도 하며, 『영양지(永陽誌)』 성곽조의 기록을 근거로 나말여초(羅末麗初)에 활약한 이 지역의 호족 황보능장(皇甫能長)이 축성한 성곽으로 추정한다.
현재 이 성은 대의리성으로 불리어지고 있으나 이 명칭은 임진왜란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성곽의 체성은 돌과 흙을 섞어 만든 토석혼축으로 성벽 내부에는 돌과 흙을 채우고 그 밖을 흙으로 마무리하였다. 성벽의 평균 높이는 2~3m 정도이며, 토루(土壘)의 폭은 약 2~2.5m 정도이다. 산성의 북쪽은 자연 절벽이며 산성의 북동지역으로는 몇 개의 하천들이 흘러 자연적인 해자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변천]
현재 금강 산성의 축성과 관련하여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삼국사기』 지증왕조에 503년(동왕 5) 9월에 골화(骨火)[현 영천], 미실(彌實)[현 흥해], 파리(玻璃)[현 삼척], 진덕(珍德)[현 경주 남단 추정] 등 12성을 축조하였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당시 골벌국에서 축성된 골화성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는 『영양지』 성곽조에 통일 신라 말 영남의 대부분 주(州)들이 견훤에게 함락되었을 때 금강성장군 황보능장이 세력을 일으켜 골화, 도동 등의 현을 회복하고 이곳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을 토대로 나말여초 이 지역에서 활약한 호족 황보능장이 축성하였다고 보는 설이다. 이후 금강 산성의 유지와 경영, 폐성(廢城) 시기 등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위치]
금강 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영양지(永陽誌)』, 『경상도읍지』 등 대부분의 고문헌에 모두 군의 동쪽 8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 성은 영천시 완산동과 고경면 대의리에 걸쳐 있는 금강산 정상을 중심으로 북쪽을 향해 내려가는 산능선을 따라 성벽 유구가 남아 있다. 지형상 산성의 북쪽은 수직 절벽을 형성하고 바로 아래에는 자호천(紫湖川), 고촌천(古村川), 의곡천이 만나 금호강[南川]을 이룸으로써 자연 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산성의 남쪽으로는 능선과 계곡들이 이어진다. 성내 정상에서는 영천 시가지와 단포리 평지, 주변 도로와 하천 등이 한눈에 들어와 최상의 조망을 형성한다. 입지적으로 볼 때 이곳은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경주와 영천 지역을 이어주는 교통로 상의 중심지였으며, 특히 삼국 시대에는 영천 지역에서 신라 왕경[경주] 방어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충지였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금강 산성은 이러한 요충지에 전략적으로 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황]
금강 산성은 남쪽 산 정상에서 시작된 좌우 능선이 약간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며 계곡을 감싸 안고 있어 전체적으로 말굽모양[馬蹄形]의 형태를 띤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그 유구는 우측 능선 상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지표상에 노출된 체성은 돌과 흙을 섞어 만든 토석혼축으로 성벽 내부에는 돌과 흙을 채우고 그 밖을 흙으로 마무리하였다. 성벽의 평균높이는 2~3m 정도이며, 토루의 폭은 약 2~2.5m이다.
성곽의 전체 규모나 성문지의 위치 및 형태, 치성, 내부 시설 등에 대해서는 발굴조사를 포함한 전문적인 학술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서측 능선 상의 작은 봉우리에는 체육시설이 조성되어 있으며, 1995년 3월 26일 ‘영천향토사연구회’와 ‘보이걸스카우트 골벌지역대’가 ‘금강 산성지(金剛山城址)’라는 표지석 1기를 설치해 놓았다.
[의의와 평가]
금강 산성은 영천 지역에 소재한 성곽 중 잔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여 고대산성의 축성 기법을 연구하는데 있어 소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삼국 시대부터 경주와 영천 지역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 상의 요충지에 축성한 성곽이라는 점에서 신라 시대 교통로와 성곽의 연관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