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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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醉醒堂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96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7세기 말 - 취성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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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30년경 - 취성당 중수 또는 중건 |
현 소재지 | 취성당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
성격 | 누정 |
양식 | 소로수장|홑처마|맞배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시간(鄭時衎)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정시간[1635~1690]의 본관은 영일, 자는 열지(悅之), 호는 취성당(醉醒堂)이다. 효성이 지극했고 1669년 성균관 생원(生員)이 되었으나 자양(紫陽)의 구계산(龜溪山)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술을 좋아해 당호를 취성당이라 했다.
저서로는 『취성당일고(醉醒堂逸稿)』가 전하고, 묘소는 경주시 강동면 인동리에 있는데 아래 인동재(仁洞齋)가 남아 있다.
[위치]
취성당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 966번지에 있다. 신방리는 임고면소재지에서 영천댐 방면으로 가다 보면 댐 제당 직전에 우측으로 난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노항리 다음에 신방리가 있다.
[변천]
취성당은 정시간이 조선 인조 때 영천 자양의 신방리에 강학을 목적으로 건립한 것으로 당호를 자신의 호를 따 취성당이라 했다. 그 후 1830년 경 중수 또는 중건을 한 것으로 파악되며, 최근에 번와 공사와 주변정비가 있었다.
[형태]
취성당은 신방리 산비탈을 평평하게 정지한 다음 토석 담을 두르고 ‘一’자형으로 독립 배치되어 있다. 담장 정면의 일각문을 통해 마당으로 진입한 다음 정자 정면으로 오른다.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구성하는데 평면 구조가 특이하다. 기본 평면은 우측에 한 칸 대청을 마루방으로 만들고 좌측으로 연접해 두 칸의 온돌방을 드린 편당형인데 여기에 대청 칸 우측면과 좌측 온돌방 측면에 반 칸의 퇴를 덧붙인 형태이다.
대청 측면의 퇴가 좌측 퇴보다 더 넓은 공간으로 구성했다. 각 퇴의 지붕은 맞배지붕의 측면에 덧 댄 가적지붕으로 처리했다. 건물의 전면과 배면에는 쪽마루를 두어 동선에 편의를 제공했다. 건물의 진입은 먼저 대청으로 진입한 다음 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대청 전면과 측면에는 쌍여닫이 굽널 세살문을 달아 출입하게 했고 청방간은 외여닫이세살문으로 해 방으로 출입하도록 했다. 방의 전면 창호는 머름 위에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고 배면에는 외여닫이 세살창호를 내었다.
특히 가운데 방 배면의 쪽마루는 다른 쪽 보다 좀 더 돌출되게 했다. 기단과 마루와의 높이차가 적다. 낮은 두벌대 자연석 바른 층 쌓기 한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앉히고 건물 전체에 방형기둥을 썼다. 주 상부는 마루방에만 소로 수장하고 나머지는 장혀 수장으로 처리했다. 특히 좌측 온돌방 우주 상부에는 장혀 아래 단여[짧은 장여]를 덧대었다. 지붕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을 기본으로 하고 양 측면에 가적지붕을 덧대었다.
[의의와 평가]
취성당은 관리 상태가 양호하며, 전면 가운데 방 상부에 ‘취성당(醉醒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또한 평면 구조가 특이한 것으로 영천 지역의 누정 건축에서는 유일한 평면 구조이다. 공간의 활용과 동선의 체계가 타 누정 건물과 비교될 만큼 실생활에 적합하도록 계획한 건축주의 의도가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