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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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遠觀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연계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900년 - 원관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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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원관정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연계리 |
성격 | 누정 |
양식 | 소로수장|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3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시대 학자 김재석(金在錫)이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김재석[1857~1925]의 본관은 영양, 자는 극중(極中), 호는 희암(希巖)이다. 이만인(李晩寅)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효도와 우애 그리고 덕행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1901년 종사랑(從仕郞)에 제수되었다. 김재석은 만년에 장수지소(藏修之所)로 원관정(遠觀亭)을 짓고 여생을 강학하며 보냈다. 저서로는 『희암집(希巖集)』이 있다.
[위치]
원관정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연계리 연제마을에 있다. 영천시내에서 의성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을 따라 화산면소재지를 지나면 우측에 화산 중학교로 진입하는 도로가 있다. 이 도로를 따라 학교를 지나치면 연계리 연제마을이 나온다.
[변천]
원관정은 광무(光武) 4년인 1900년에 김재석이 건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호는 염계옹(濂溪翁)의 「애련설(愛蓮設)」에 “가원관(可遠觀)”이란 말에서 취했는데 정자에서 멀리 팔공산과 운문산이 바라다 보인다.
[형태]
원관정은 토석담장을 두른 3칸의 문간채를 들어서면 좌측에 원관정, 우측에 관리사를 남향으로 배치시켰다. 원관정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ㄷ’자형 건물로 정자건물로는 그 규모가 가장 크며, 영천 지역에서는 유일한 ‘ㄷ’자형태이다. 평면은 중앙의 세 칸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방 두 칸, 좌측에 방 한 칸과 그 앞으로 누마루 한 칸을 두었으며, 대청과 누 가장자리에는 계자각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었다.
우측 방의 측면에는 벽장을 두어 수장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창호는 좌측 청방간에 쌍여닫이 불밝이 정자살문을 두고 좌우측에 문선을 세운 다음 그 옆으로 각각 외여닫이굽널세살문을 부설한 독특한 형태로 영천 지역에서는 유일한 형태이다. 대청 뒤로는 판벽에 머름을 들이고 그 위에 쌍여닫이판을 두었다. 대청 좌측의 누마루 좌측면은 판벽에 상여닫이 판창호를 두어 적절한 개방과 차단을 시켰다.
구조는 최근 화강석의 초장대석을 세벌대로 마감해 쌓고 자연석초석을 얹었다. 건물 전체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간결한 소로수장으로 기둥 상부를 처리했다. 가구는 삼량가로 팔작지붕에 한식기와를 이엇다.
[현황]
원관정은 최근 기단을 화강암 장대석으로 마감해 건물과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을 준다. 마당에는 쇄석을 깔아 잘 정돈되어 있고 담장도 보수되었다. 관리사 뒤편의 산 사면으로도 화계처럼 꾸몄다. 대청 전면 상부에 ‘원관정’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의의와 평가]
근대에 건립된 원관정은 규모와 형태 그리고 수법이 독특한 정자로 평가된다. 단지 장대석의 기단석은 건물과 전혀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 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