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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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地區戰勝碑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자 |
건립 시기/일시 | 1958년 10월 20일 - 영천지구 전승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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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영천지구 전승비 - 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 1번지 |
성격 | 비 |
양식 | 기념비 |
관련 인물 | 유재흥|이승만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6.4m |
관리자 | 영천시장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의 영천문화원 내에 있는 6·25 전쟁 때 영천지구 전투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개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1950년 9월 4일 파죽지세로 남침한 북한군 제2군단은 일거에 부산을 석권할 목적으로 전략의 요충지인 영천을 점령하고자 최후의 공세를 폈다.
북한군은 우세한 화력으로 공격해 옴으로써 필사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전쟁 발발 후 70여 일 만인 9월 6일에 남한의 남쪽 지역 영천이 적의 손에 넘어갔다. 이때 국군 제2군단[군단장 유재흥] 장병이 필사적인 공격을 가하여 적을 퇴각시켰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모든 전선에서 국군의 총반격 의지를 되새기게 되면서 북진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한편 영천 방어선이 무너질 때를 대비해 유엔군은 울산~밀양을 잇는 이른바 데이비드슨(Davidson,G.H) 방어선[맥아더 장군이 계획한 경상남북도의 경계 90㎞에 설치한 낙동강 방어선의 후방 방어선]으로 철수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었다. 제2군단장 유재흥은 경산시 하양읍 하양초등학교 내에 그의 전적을 기리기 위한 전적비를 세웠다.
영천 지역에 한국전쟁과 관련한 현충 시설로는 교촌동의 마현산[꽃동산] 정상에 1980년에 세워진 영천지구 전적비가 있고 그 앞에 충혼탑이 있다. 또 신녕면에는 신녕지구 전승비가 있고 고경면에 국립 영천호국원이 있다.
[건립 경위]
1950년 9월 6일 영천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뒤 한국군 제2군단 장병들이 필사적인 공격을 가하여 적을 퇴각시켰다. 하지만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계속적인 수호가 어려워지자 잠시 북한군에게 영천을 내어주었다. 이에 분노한 영천의 주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총을 잡고 공격에 가담하여 국군 제2군단은 다시 재정비를 할 수 있었다. 마침내 1950년 9월 9일 총반격을 감행하고 금호강 변에서 적을 포위하여 섬멸하고 영천 탈환에 성공했다. 이런 중요한 전투를 기리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비문을 쓰고 1958년 10월 20일 육군 제1205 건설공병단에서 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위치]
영천지구 전승비는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 1번지로 현재 영천문화원 건물 동편에 금호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다. 영천문화원은 영천군의 치소로 포은 정몽주가 건립한 명원루[현재의 조양각]가 있었던 터로 알려져 있다. 영천 서문 오거리에서 포항 방면으로 오면 남문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직진해 야트막한 언덕길에 올라서면 우측에 바로 조양각공원이 있다. 비는 이 공원 남쪽의 영천문화원 동편에 있다.
[형태]
영천지구 전승비는 약 30평 규모의 부지에 3단의 높은 기단[높이 2.5m]을 계단식으로 놓고 그 위에 주형[배 모양]의 자연석 화강암을 세우고 전면에 세로로 긴 비면을 음각으로 다듬고 비문을 새겼다.
비의 건립 면적은 10㎡이고 평면은 정방형[기단부]이며, 전체 높이는 6.4m이다. 맨 아래의 땅과 접해 지대석을 놓고[현재 시멘트로 마감] 입면 상 사다리꼴[제형]의 제1층 기단을 마련했다.
그 위에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제2층 기단을 놓고 그 위에 다시 제2층 기단과 같은 형태의 조금 좁은 제3층 기단을 놓고 자연석 화강암을 세로로 세웠다. 기단은 모두 화강암을 다듬어 조성했는데 제1층은 수평 쌓기, 제2층은 수직으로 쌓은 후 수평으로 쌓아 마감했다. 다시 제3층은 수직으로 옆 세워쌓기를 했다.
[금석문]
영천지구 전승비에는 자연석 화강암에 쓴 ‘영천지구전승비(永川地區戰勝碑)’라는 비명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제1층 기단 서 측면에는 비스듬히 경사지게 쌓은 기단면석에 아래에서 제4벌대와 제5벌대의 가운데에 건비 내용을 주조한 동판이 붙어있다. 동판에는 상부에 비를 세우게 된 이유와 건립자 및 건비년대(建碑年代)가 한글로 적혀 있고 하부에 위의 내용을 영문으로 다시 적었다.
[현황]
영천문화원 건물 서편 모퉁이에 있는 영천지구 전승비는 주변을 대나무 등으로 조경하고 바닥은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잘 정비되어 있다. 비의 남쪽은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한편 문화원 건물 동편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4호인 조양각이 늠름하게 서 있다. 비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조양각 북쪽의 잘 정비된 조양공원을 지나고 문화원 정문 앞의 산남의진비를 지나야 된다.
[의의와 평가]
영천지구 전승비는 6·25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국군의 총반격의 기회를 마련하고 북진을 할 수 있었던 영천지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의미 깊은 유적이다. 하지만 누구나 지나가면서 또 강 건너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높게 세운 이 비는 현재 오래된 나무와 최근의 조경 등으로 가려져 있어 그 의미가 퇴색되어 있다. 원래의 건비 의미를 되새겨 이에 맞게 주변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