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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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仁老墓表 |
이칭/별칭 | 박인로 묘비,박인로 묘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정자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61년 - 박인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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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642년 - 박인로 사망 |
건립 시기/일시 | 1831년 - 박인로 묘표 건립 |
현 소재지 | 박인로 묘표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 |
성격 | 묘표 |
관련 인물 | 박인로 |
재질 | 돌 |
크기(높이) | 140㎝ |
너비 | 51㎝ |
두께 | 23㎝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장가 박인로(朴仁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묘표(墓表).
[개설]
박인로[1561~1642]의 본관은 밀양,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나 13세에 「대승음(戴勝吟)」이라는 한시 칠언 절구(七言絶句)를 지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정세아(鄭世雅)의 휘하에서 별시위로 전공을 세우고, 무과에 올라 수문장·선전관·만호를 지냈고, 40세 이후는 고향에 은거하면서 문인으로 활동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노계집(蘆溪集)』과 가사문학 작품으로 「태평사(太平詞)」·「조홍시가(早紅枾歌)」·「선상탄(船上嘆)」·「사제곡(莎堤曲)」·「누항사(陋巷詞)」·「영남가(嶺南歌)」·「노계가(蘆溪歌)」·「입암별곡(立巖別曲)」 등이 있다.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의 도계서원에 제향되었다.
[건립 경위]
박인로 묘표는 박인로 묘비·박인로 묘갈이라고도 하는데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많은 문학 작품을 남긴 박인로의 업적을 기리고자 그의 묘 앞에 세웠다.
[위치]
박인로 묘표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있으며, 도계서원 남쪽 샘골지 건너 구릉 능선에 박인로의 묘 앞에 있다.
[형태]
박인로 묘표는 비좌(碑座)와 비신(碑身) 그리고 비갓으로 구성된 형태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140㎝, 폭 51㎝, 두께 23㎝이다. 한편 묘는 봉분을 둔 조선 시대 무덤 형식으로 봉분의 높이가 1.5m, 폭 5m 정도이다. 비의 전면에는 비명을 세로로 새기고 우측면에 비를 세운 연대를 새겼다. 비갓은 처마선이 만곡선을 이루어 경쾌한 느낌을 준다.
[금석문]
박인로 묘표의 갈문(碣文)은 이정병(李鼎秉)이 쓴 것으로 비신의 전면에 ‘노계박선생지묘(蘆溪朴先生之墓)’라는 비명을 세로로 새기고 우측면에 ‘상지삼십이정신묘정월십팔일(上之三十二正辛卯正月十八日)’이라는 건비년대(建碑年代)를 새겨 1831년(순조 31)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처음에 조상에 대해 기록한 뒤 박인로가 어려서부터 총명해 문장을 잘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것, 수문장과 만호로 활동한 것을 기록하였다. 또 ‘성경충효’라는 글자를 벽에 걸고 자신을 성찰한 것, 효성스럽고 우애 있는 성품 등에 대해 쓰고, 끝으로 자손에 대해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