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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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菁堤碑 |
이칭/별칭 | 청제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 7-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이정자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에 신라 시대 청못[靑池]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우리나라 최고의 수리비(水利碑).
[개설]
경상북도 영천은 전국에서 저수지가 가장 많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청제비는 신라 시대에 축조된 영천 청제[경상북도 기념물 제152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이 비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못으로 인식되고 있어 그 역사적 가치가 크다. 1968년 신라삼산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흔히 ‘청제비’라고 부른다.
[건립 경위]
영천 청제비는 신라 시대 영천에 청못이라는 저수지를 축조하고 그 내용을 자연석에 새긴 것으로, 조선 시대에 비가 파손되어 다시 세웠다는 중립비(重立碑)와 함께 있다. 먼저 자연석에 새긴 것은 앞면에 536년(법흥왕 23)의 명문이 있는데 이는 청못을 처음 축조할 때 새겼고, 뒷면에는 798년(원성왕 14)의 명문으로 청못을 수리한 내용을 새긴 것이다. 그 후 1688(숙종 14)에 세워진 청제 중립비가 있는데 이는 1653년 청제비가 두 동강으로 파손된 것을 최일봉 씨 등 세 사람이 다시 맞추어 세웠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위치]
영천 청제비는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 산7-1번지에 있다. 이곳은 넓은 청제가 경부고속도로로 인해 나뉘어 있는데 못의 제방 북쪽 산 아래에 비각이 보인다. 청제는 행정구역으로 금호읍 구암리에 속해 있고 비는 영천시 도남동에 있다.
[형태]
영천 청제비는 청못 제방 북쪽 산 아래에 있는데 단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비각 내에 두 기의 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각은 정면이 넓은 평면 장방형으로 근래에 세워져 비를 보호하고 있다.
신라 시대에 세워진 비는 그 형태가 세로로 약간 더 길고 면이 판판해 비석으로 쓰기에 적당한 형태이다. 비의 상부는 양쪽으로 경사가 있고 하부의 한쪽은 둥글게 모가 접힌 형태이다. 비의 전면과 후면에 각각 연대를 달리하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는 어떤 장식도 하지 않은 자연석 면에 세로로 비문을 새겼는데, 돌의 재질은 청석이 굳은 혼펠스[퇴적암의 종류로 화산활동에 의해 열을 받아 굳어진 돌]로 보인다.
옆의 조선 시대 비는 모양이 직사각형에 상부의 양 모서리를 경사지게 깎은 형태이다. 비의 전·후면에 비문을 새긴 양면 비(兩面碑) 형태로 재질은 화강암이다. 전면 상부에 가로로 비명을 새기고 그 아래에 세로 10열로 비문을 새겼다. 비는 화강암의 자연 판석으로 장방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크기는 높이 114㎝, 폭 94㎝, 두께 16㎝이다.
[금석문]
영천 청제비의 전·후면에는 세로로 각기 비를 세운 연월일, 공사 명칭, 규모, 내용, 동원된 인원수 등이 기록되어 있다. 비면에는 행간이나 윤곽선은 없고 양면을 가공하여 글자를 새겼는데 그 양면의 비문(碑文)은 각기 다른 연대와 내용을 담고 있다. 비의 한 면은 병진(丙辰)의 간지(干支)가 적혀 있는데 청못을 처음 축조한 기념으로 새긴 것이다.
다른 면은 정원 14년(798)의 절대 연대가 적혀 있는 것으로 청못의 일부 무너진 둑을 다시 수리한 사실이 적혀 있다. 조선 시대에 세워진 비는 신라 시대 청못이라는 저수지 수축과 관련이 있는 비다.
[현황]
영천 청제비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된 영천 청제 북쪽에 있는데 1968년 신라삼산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다. 수리비 중에서는 건비년대(建碑年代)가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최고의 수리비로 인정받고 있다. 1969년 11월 21일 보물 제51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목조 비각을 세워 비를 보호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삼국 시대 토기편도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영천 청제비는 신라 시대 농사와 관련한 수리 시설의 축조를 알 수 있는 역사적, 학술적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