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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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應銖肖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수환 |
[정의]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임진왜란 의병장 권응수(權應銖)[1546~1608]의 초상.
[개설]
권응수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중평(仲平), 호는 백운재(白雲齋)이다. 경상북도 영천 신녕에서 태어났다. 그는 1583년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부봉사를 거쳐 1592년 경상좌수사 박홍(朴泓)[1534~1593]의 막하에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향 신녕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5월부터 활동을 전개했으며, 6월에 경상좌도병마절도사 박진(朴晉)[?~1597]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7월에 의병장이 되었다. 그는 7월 영천, 신녕 일대의 의병장 정세아(鄭世雅)[1535~1612], 정대임(鄭大任)[1555~1594], 김윤국(金潤國), 관군 경주부판관 박의장(朴毅長)[1555~1615]과 더불어 영천성을 수복했다.
전공으로 1594년 경상좌도 방어사가 되었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 경리 양호(楊鎬) 등과 함께 울산성 전투에 참여했다. 전란 후 1603년 충무위부호군이 되었으며, 선무공신 2등으로 책록되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형태 및 구성]
권응수가 임진왜란 이후 선무공신 2등에 오르고 화산군에 봉해지면서 도상이 그려졌다. 크기는 가로 104㎝, 세로 220㎝이다. 의자에 앉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두 손은 소매 속에서 마주잡은 모습을 묘사했다. 가슴에는 호랑이 흉배가 있는 단령을 입고 있다.
[특징]
「권응수 초상」은 17세기 공신도상(功臣圖像)의 전형적인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세부묘사가 매우 안정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의의와 평가]
「권응수 초상」은 권응수와 관련한 유품 중 공신도상과 관련하여 1604년에 발급된 『선무공신녹권(宣武功臣錄券)』 등이 함께 전하고 있어 임진왜란사 및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1980년 8월 23일 보물 제668-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