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5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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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鳴皐影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안길 29-6[녹전동 51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수환 |
제작 시기/일시 | 18세기 초중반경 - 명고영정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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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2월 29일 - 명고영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명고영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명고영정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안길 29-6[녹전동 519] |
성격 | 영정|문화재 |
소유자 | 정명채 |
관리자 | 정명채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명고(鳴皐) 정간(鄭榦)[1692~1757]의 영정.
[개설]
정간의 본관은 영일[오천]이며, 초명은 정권(鄭權)이었다. 그의 자는 도중(道中), 호가 명고이다. 그는 임진왜란 의병장 창대(昌臺) 정대임(鄭大任)[1553~1594]의 5대손으로 경상북도 영천 녹전동에서 태어났다. 1715년(숙종 41) 사마시 합격, 1725년(영조 1)에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보령 현감, 청양 군수, 동래 부사, 경주 부윤 등을 역임했다. 1757년(영조 33) 승지를 역임하고 세상을 떠났다. 동래 부사 재임 당시 선정을 베풀어 치성이 높았으며, 왜인(倭人)들도 그를 위한 청덕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형태 및 구성]
정간의 영정은 오사모에 단령을 입은 채 호피가 드리워진 의자에 앉아 있는 전신 좌상이다. 정면을 향해 앉은 모습에 높은 사모, 그리고 손을 모은 공수자세가 묘사되었으며, 복식으로는 불거진 좁고 긴 소매가 잘 묘사되어 있다. 영정은 처음에 족자로 제작되었으나 최근 액자에 보관되는 과정에서 원형이 일부 손상되었다.
[특징]
명고영정의 밑 부분의 돗자리는 후대에 새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정간이 선천 부사 재임 당시 그의 인품과 선정에 감화된 백성들이 초상화를 그려 봉안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데, 그 당시 초상과 본 자료와의 관련성은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명고영정의 묘사 기법은 18세기 초엽 관복을 입은 사대부상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전체적인 형식이 숙종~영조 대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984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