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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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林寺七星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죽방길 279-57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동철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봉죽리 유봉산 죽림사에 봉안된 불화.
[개설]
「죽림사 칠성탱」은 죽림사 삼성각에 봉안된 칠성탱화이다. 중앙에 본존인 치성광여래를 두고 양 엽으로 칠성여래, 칠원성군을 적절히 포치하였다. 칠성 신앙의 대상은 칠여래(七如來)의 화현(化現)인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칠여래의 증명을 거친 칠성신이다. 따라서 칠성탱화를 그릴 때에는 칠여래와 함께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반드시 묘사하게 된다.
칠성탱화가 널리 봉안된 것은 칠성의 주불(主佛)인 치성광여래가 약사여래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자식이 없는 부인이나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부인, 자식의 수명을 비는 신도들에게서 큰 인기를 모았다.
「죽림사 칠성탱」의 크기는 가로 238㎝, 세로 121㎝이며 상태는 양호하다. 하단부의 화기에 ‘대한광무사년(大韓光武四年)’의 제작년대가 기록되어 있어 1900년에 영운(永雲)·봉수(奉秀) 등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형태 및 구성]
「죽림사 칠성탱」는 후불화로 그려진 탱화로 화면의 가로가 길다. 가로로 긴 화면의 중앙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큼직하게 그리고 좌우에는 칠성여래와 칠원성군을 비롯한 권속들을 배치하였는데, 치성광여래의 협시가 되는 일광·월광 보살이 표현되지 않고 있음이 특이하다.
[특징]
특히 칠성탱화는 칠성신앙과 더불어 꾸준히 그려져 왔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칠성여래와 칠원성군만을 표현하는 등 간략화되는 경향이 있다. 국내에 있는 대표적인 칠성탱화로는 1749년(영조 25년)에 제작된 「천은사 탱화」와 1895년에 제작된 「선암사 탱화」를 꼽을 수 있는데, 「죽림사 칠성탱」은 시기적으로 「선암사 탱화」와 연결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