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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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永川菁堤 |
이칭/별칭 | 영천 청지,청못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 437-1|437-4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정만진 |
조성|건립 시기/일시 | 536년 - 영천 청제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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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68년 - 영천 청제비를 신라삼산학술조사단이 발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69년 - 영천 청제비 보물 제51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5년 3월 14일 - 영천 청제 경상북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청제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 437-1, 437-4 |
성격 | 저수지 |
면적 | 만수면적 275,000㎥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과 금호읍 구암리 경계에 있는 신라 시대에 축조한 저수지.
[개설]
영천 청제는 신라 시대 476년 혹은 536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신라 시대 축조된 수리시설 중 지금까지 관개 수리시설로 이용되는 유일한 못이다. 2005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된 바 있으며, 청제를 축조한 기록을 담고 있는 청제비(菁堤碑)는 1969년에 보물 제517호로 지정되었다.
청제는 영천시청 건설과에서 관리하는 저수지로서 영천시 도남동과 금호읍 구암리 경계에 있으며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두 동강 났다. 영천시청에서 4번 국도를 따라 4㎞ 정도 가서 경부고속도로 영천 나들목 우측에 있으나 주위에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쉽게 찾기 어렵다.
신라 시대에 축조될 당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농업용수를 위한 농업용 저수지였고, 지금도 구암리 일원의 농업용수 저수지로 이용되고 있다.
[형태]
영천 청제는 영천시 도남동과 구암리 채약산 일원을 유역으로 하고 있으며 수혜 지역은 금호읍 구암리 일원이다. 청제의 제체(堤體)의 길이는 244m이고, 제체의 높이는 12.5m이다. 유효 저수량 52만 1500톤이다.
취수 형식은 사통(斜桶)형이며, 한발 빈도(旱魃頻度)는 10년이고, 홍수 빈도는 100년이다. 유역 면적은 135ha이고 인가 면적은 154.2ha이며, 만수 면적은 21.4ha이다. 청제는 영천시청 건설과와 문화재 관리 부서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천 청제 둑 아래에는 비각이 있으며 그 안에는 신라 시대 청제 저수지 축조에 대한 기록을 담은 청제비와 1688년(숙종 14) 절단되어 흙 속에 있던 청제비를 다시 세우게 된 경위를 기록한 청제중립비(菁堤重立碑)가 있다. 청제비는 이두 문자로 쓰여 있으며 여기에는 청못[청제]를 세우게 된 자세한 경위와 청 못의 여러 가지 제원을 기록하고 있다.
기록을 보면 536년(신라 법흥왕 23)에 280개 지역에서 각각 25명씩 선발하여 7,000여 명이 동원되어 536년(병진년) 2월 8일에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청제 축조가 당시 국가 차원의 사업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목책이나 말뚝으로 제방을 견고히 하는 기술이 사용되었고 나무 수문이 설치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청제의 기능을 추정해 볼 가능성이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