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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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堤堰 |
이칭/별칭 | 저수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집필자 | 권대웅 |
저수지 | 청제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 437-1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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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전통 시대에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설치한 수리 시설.
[개설]
제언(堤堰)은 농업용수를 저장하기 위해 설치한 제방(堤防)과 방축(防築)으로, 보통 ‘저수지’라고 한다.
16세기 이후 벼농사가 직파법(直播法)에서 이앙법(移秧法)으로 발전하면서 물의 확보가 농사에 중요한 문제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이앙법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전국에 많은 숫자의 제언이 설치된다.
이에 따라 조선 시대에는 수리 행정을 관장하던 제언사(堤堰司)가 있었고, 1778년(정조 2) 비변사(備邊司)에서 제언 수축에 관한 제언절목(堤堰節目)도 제정하였다. 한편, 농민들은 수리 시설의 공동 수축과 관리를 위하여 제언계(堤堰契)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내용/구성]
영천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수리 시설은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는데, 이는 영천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연 강수량이 적고 가뭄이 잦았기 때문이다.
영천 지역의 대표적 평야인 금호평야·주남평야·신녕평야를 비롯해 곳곳의 곡간평야에서는 벼농사가 주를 이루었으며, 이곳에 물을 대지 못한다면 자연적인 강우로는 도저히 답수가 해결될 수 없었던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영천은 보현산(普賢山)과 팔공산(八公山)이 둘러싸고 있고 그 내부로는 100~300m의 낮은 구릉성 산지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구릉성 지형은 제방을 축조하기에 적합한 역할을 했는데, 구불구불한 자연 지형을 이용해 많은 노역을 들이지 않고도 빠르고 많은 제방을 축조할 수 있었다.
1469년(예종 1)의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영천군 42개, 신녕현 7개가 기록되어 있고, 1765년(영조 41)의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영천군 170개, 신녕현 30개가 기록되어 있으며, 1899년의 『영천군읍지』에는 영천군 168개, 신녕현 60개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신라 시대 축조된 청제(菁堤)는 현재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에 있는데, 『영천군읍지』에는 군의 남쪽 10리에 있으며, 둘레가 5,882척, 물 깊이가 15척으로 수록되어 있다. 청제 저수지의 둑의 길이는 43.5m, 폭 14.9m, 높이 7.8m, 저수량은 약 59만 톤이며, 지금도 중요한 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신라 시대 당시 저수지 축조와 중수 내용을 기록한 청제비(菁堤碑)는 신라 시대의 수리 시설 실태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현황]
2010년 현재 영천의 수리 시설로는 저수지(貯水池)·양수장(揚水場)·보(洑)·암거(暗渠)·관정(管井) 등이 있는데, 이 중 저수지가 가장 많으며, 저수지와 함께 중요한 수리 시설인 보(洑)도 영천 지역에 산재해 있었다.
현재 영천시의 저수지 현황은 영천시 18개소, 고경면 195개소, 금호읍 45개소, 대창면 100개소, 북안면 196개소, 신녕면 33개소, 임고면 79개소, 임고면 25개소, 청통면 66개소, 화남면 73개소, 화북면 33개소, 화산면 62개소 등 모두 925개소가 분포하며, 숫자로는 경상북도와 전국에서 1위에 해당한다.
그 외 수리 시설로 양수장 28개, 보가 79개, 수면이 보이지 않도록 한 통수로인 암거(暗渠) 1개, 관정(管井) 292개가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