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503 |
---|---|
한자 | 新寧縣 |
이칭/별칭 | 사정화현(史丁火縣),화산(花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행정구역의 명칭.
[제정 경위 및 목적]
신녕현(新寧縣)은 신라 시대 사정화현(史丁火縣)·화산(花山) 등으로 불리다가 757년(경덕왕 16) 군현재 한화개혁의 일환으로 지명을 고치면서 신녕현(新寧縣)이라 하였다. 바다의 풍파를 막아 평안하게 지나게 한다는 뜻으로 명명하였다 한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 잡지 지리조에 “신녕현(新寧縣)은 본시 사정화현(史丁火縣)으로, 경덕왕이 신녕으로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 하였고, 『고려사』 제57권 경상도조에는 “현종 9년에 경주에 소속시켰으며 공양왕 2년에 감무(監務)를 두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속현 이지은소(梨旨銀所)가 있으며, 본디 영주(永州)에 붙였었는데, 고려 말에 이지현(梨旨縣)으로 승격시켜 그대로 영주에 붙였다가, 본조 태조 갑술년에 이에 내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백제·고구려 지역의 유민을 흡수한 후 효율적 통치를 위해 685년(신문왕 5)에 행정구역을 9주 5소경 117군 293현으로 편성하였는데, 이때 신녕 지역을 사정화현(史丁火縣)으로 삼았다. 이후 757년(경덕왕 16) 신녕현으로 개편되었다.
고려조에 들어와 1018년(현종 9) 경주부(慶州府)의 임내가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왕조 개국 후 1394년(태조 3) 영주(永州) 임내 이지현(梨旨縣)을 이곳으로 이속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으로 고치고 치소를 14개 속역을 거느린 장수역(長壽驛)으로 옮겨 현의 소재지로 삼았다.
1497년(연산군 3)에는 길수(吉修)라는 현감이 향리들을 너무 엄하고 사납게 다스려 호장 10명이 반란을 일으키자, 현을 폐하고 영천군에 소속시켰다가 얼마 뒤 1503년(연산군 9)에 다시 복현을 하였다.
1789년(정조 13) 면리제(面里制)로 통일되면서 신녕현은 8개 면 95개 동으로 개편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를 23부제(府制)로 개혁할 때 대구부(大邱府) 소관 신녕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영천군에 병합되었으며, 1995년 영천군·영천시 통합으로 새로운 영천시 신녕면으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