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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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선사/철기 |
집필자 | 권혜인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8년 - 어은동 유적, 금호강 남안 구릉의 경사면에서 유물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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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3월 10일 - 용전리 유적, 수습 조사 실시 |
유적지 | 어은동 유적지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어은리 |
유적 | 용전리 유적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 1297-2번지 |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철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개설]
철기 시대는 청동기 시대 다음 단계로 청동기와 함께 철기가 확인된다. 우리나라 철기 시대에 대한 학계의 견해는 여러 가지인데, 대체로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후 300년경까지로 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중국 연(燕)나라의 영향으로 주조 철기가 보급되는 초기 철기 시대[B.C.300~B.C.100]와 한군현의 영향으로 단조 철기가 대량 보급되는 원삼국 시대[B.C.100~A.D.300]로 구분하기도 한다.
초기 철기 시대의 집자리는 반움집 형태가 주류이며 내부 시설로 부뚜막과 쪽구들이 설치되기도 한다. 무덤은 고인돌 대신 돌덧널무덤과 널무덤이 유행하며, 이 외 독널무덤도 사용되었다. 토기는 점토띠 토기와 외반구연 항아리형 토기, 고굽다리접시형 토기 등이 나타난다. 청동기는 각종 청동기 거푸집과 이형동기 등이 제작되었다. 원삼국 시대는 지역적으로 크게 북부, 중서부, 영남 지역으로 구분하는데, 북부 지역은 낙랑과 관련된 자료들이 등장하고, 중서부 지역은 평면 ‘呂’자형이나 ‘凸’자형의 집자리와 타날문 토기가 특징을 이룬다. 영남 지역은 와질 토기와 널무덤, 덧널무덤, 청동 의기, 철기와 외래 유물 등이 이 시기의 요소에 해당한다.
특히 이 시기는 주변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이 고고 자료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거울과 동전, 말방울, 허리띠 장식, 말이나 수레 부속구 등 위세품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낙랑 관련 유물이 가장 많으며, 안테나식 청동칼, 주조 철부, 청동솥 등은 북방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유물이다. 또한 왜계(倭系) 유물은 남해안 지역에서 주로 확인되는데, 중광형 동과와 야요이[彌生] 토기가 대표적이다.
영천 지역에서는 이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어은동 유적지와 용전리 유적이 있다. 두 유적에서 나온 유물 중에는 중국과 북방의 교류를 보여 주는 것이 다량 출토되었다.
[어은동 유적지]
어은동 유적지는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어은리에서 1918년 금호강(琴湖江) 남안 구릉의 경사면에서 출토되었다. 이곳은 송림이 있고 주위에는 무덤이 있는데, 산사태로 인해 노출된 구멍에서 다량의 유물들이 나무꾼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출토 유물은 한식경 12개, 마형 대구, 호형 대구, 말모양의 녹두 조각, 다수의 마구 혁대 장식물 등이다. 한식경은 6.2㎝ 크기의 거울로 꽃무늬 사이에 ‘견일지광천하대명(見日之光天下大明)’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호형 대구는 길이 19㎝, 높이 6.9㎝의 호랑이 형태이며, 한대(漢代)의 호부(虎符) 외형과 동일하다. 가슴과 배에 띠 모양의 문양이 있으며, 자세는 무릎을 꿇은 형태이다. 마형 대구는 길이 15.6㎝, 높이 6.9㎝의 말 형태이고, 앞의 반면만 나타내고 있다. 유물 중 동물형 장식품, 청동 단추, 청동 팔찌 등은 중국과 북방계의 교류상을 시사하는 것들이다.
이 유물들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 손에 발굴 및 반출되어, 현재 세형 동검과 호형 대구 등 몇 점만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용전리 유적]
용전리 유적은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 1297-2번지 밭의 소유주 이칠영 씨가 포도나무 이식 작업 중 동꺾창과 철꺾창이 발견되어 2003년 12월 29일 영천시에 신고하였다.
영천시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의뢰를 하였으며, 국립경주박물관은 현장 답사 후 2004년 3월 10일부터 4월 25일까지 긴급 수습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조사 결과 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널무덤의 무덤 구덩이 규모는 길이 325㎝, 너비 165㎝, 깊이 275㎝이고, 널의 규모는 길이 260㎝, 너비 90㎝, 높이 30㎝이다. 널무덤 내부에는 바닥 구덩이를 설치하고, 바닥에 철기를 깐 후 그 위에 널을 놓았다. 널과 구덩이 사이에는 흙을 보강하고 널 위에 청동꺾창집과 동꺾창 등을 부장하였다.
널무덤의 봉토로 추정되는 부분에서 청동투겁창, 쇠뇌부품, 오수전(五銖錢), 철도끼, 철투겁창, 토기 등이 수습되었으며, 널무덤 내에서는 완형의 철꺾창 청동 과초 1세트, 와질 토기, 철꺾창, 다량의 주조 철도끼, 유리 구슬 등 17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시기의 널무덤은 통재널과 목재널로 구분되는데, 용전리 유적의 널무덤은 판재널로 보고되어 있다. 출토 유물 중 오수전과 청동 거울편은 B.C. 1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금동 쇠뇌 부품은 남부 지역 최초의 것인데, 외부를 금으로 장식한 것이 유입품으로 추정된다.
청동기는 한계(漢系), 북방계의 것들이 출토되었고, 철기는 한계로 보이는 둥근 고리가 달린 손칼과 허리띠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의 구성으로 보아 피장자는 최상위 계층에 해당되며, 중국과의 교섭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