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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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권혜인 |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청동기나 간석기[마제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던 시대.
[개설]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 문화상은 비파형놋단검과 거친무늬거울[조문경], 고인돌로 대표될 수 있다. 토기와 석기는 서북 지방의 팽이형 토기, 동북 지방의 공열토기, 남쪽의 민무늬토기와 간석기가 대표적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앞 단계의 생업 경제가 수렵 채집 경제에서 농경 생활의 비중이 커지고, 이를 기반으로 대규모 공동체 생활이 조성되었다. 영천 지역에는 이 시대의 문화상을 밝힐 사례로 고인돌과 선돌, 집자리 유적 등이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내용]
1. 고인돌
영천 지역 고인돌은 금호강(琴湖江) 등의 하천변을 따라 117기가 분포하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그 후 지표 조사나 학술 조사가 진행되면서 실제 이보다 많은 고인돌이 보고되었다.
영천 지역 고인돌의 분포는 금호강의 지류를 따라 대창천변인 대창면의 직천리·신광리·어방리·오길리·대창리, 북안천변인 북안면의 상리·북리·명주리·고지리·유상리·내포리·임포리·고지리·도천리·용계리 등이다.
2003년도 연구 보고에 따르면, 영천 지역에서만 290여 기가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는데, 이 중 자양천 연안의 선상지에 분포하는 용산동 고인돌떼는 현존 10기 중 7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된 고인돌은 여섯 기가 군집을 이루고, 한 기는 떨어져 위치하는데, 대부분 포석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하부 구조는 지상식 돌덧널무덤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출토 유물은 없었다.
2. 선돌
영천 지역의 선돌은 화북면 정각리, 금호읍 봉죽리, 대창면 신광리, 신녕면 완전리 등에 남아 있다.
3, 집자리
영천 지역의 집자리는 고경면 청정리와 북안면 신리리에서 조사된 바 있는데, 주로 얕은 구릉 지대에 분포하고 있다.
조사된 영천 지역의 집자리는 총 12동으로, 좁은 장방형의 평면 형태를 가지고, 내부에 벽구와 노지, 주혈이 설치되었다. 청정리 유적은 1998년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영천 향군 묘지 조성 사업 예정 부지 발굴 조사에서 청동기 시대 집자리 여섯 동을 조사하였다. 출토 유물은 공열토기, 구순각목문토기, 삼각만입석촉, 일단경식석촉, 유구석부, 가락바퀴 등이다. 출토 유물로 보아 집자리의 조성 시기는 청동기 시대 전기 후반의 늦은 단계에서 중기 전반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리리 유적은 2005년 경북과학대학교 박물관에서 영천 북안~고경 간 도로 확장 및 포장 예정 부지 발굴 조사에서 집자리 여섯 동을 조사하였다. 내부 출토 유물은 공열문토기, 단사선문토기, 주상편인석부, 합인석부 등이다. 주거지의 조성 시기는 2호 연대 분석 결과, B.C. 1,280~1,110년으로 분석되어 송국리형 이전 단계로 비정되고 있다.
청동기와 민무늬토기조각 등 청동기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은 농지 개간이나 국책 사업을 위한 문화재 조사에서 확인된 경우가 많다.
청동기는 1929년 5월 신녕 간 국도 공사 중 화산면 연계리의 뽕나무밭에서 좁은 놋단검과 동과가 발견되었다. 좁은 놋단검은 길이 31.55㎝이고, 하반부가 일부 파손되었다. 동과는 길이 27㎝, 관부의 넓이 7.28㎝이고, 부분적으로 양쪽 날과 나무쪽이 파손되었다.
민무늬토기는 1985년 화산면 효정리 앞산에서 농지 개간 중 다량의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무문토기가 발견되었고, 1998년 학술 지표 조사를 통해 북안면 임포리, 도천리에서 확인되었다. 임포리는 완만한 경사를 가진 구릉에서 박편과 민무늬토기조각이 채집되었으며, 도천리 팥골마을의 서편 구릉에서는 민무늬토기조각이 다량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