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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230
한자 龜田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로[구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영천군 지곡면 구전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구전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구전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6년 4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구전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구전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남면 구전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구전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남면 구전리에서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로 개편
행정구역 구전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76㎢
가구수 73가구
인구[남, 여] 144명[남 71명, 여 73명]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구전리(龜田里)의 지형을 보면 타원형의 평지를 중심으로 분지를 형성하고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거북 형상의 산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구전리라는 지명은 마을의 지형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쪽 산기슭에 새로운 생활 터전인 신전(新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생활 터전을 구전(舊田)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형성 및 변천]

구전리는 조선 시대 단종세조에게 살해당한 지봉(芝峰) 황보인(皇甫仁)의 후손들이 피난하여 이 산중 골짜기에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마을로, 520여 년 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정착 이후 높은 산의 나무와 흙과 돌로 집을 짓고 땅을 파 우물을 만들며 들의 풀과 나무를 벌목하여 높은 곳은 밭으로 낮은 곳은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지었다. 또 소를 먹여 경작하고 닭을 길렀으며, 서당을 지어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학문의 기틀을 만들어 앞서 가는 마을을 형성하였으니, 예부터 별곡(別谷)[구전(龜田)] 황보씨(皇甫氏)라고 인근에서 추앙을 받던 마을이다.

현재의 구전리는 1914년에 지곡면(知谷面)에 속하였고, 1934년 4월 1일 화북면에 흡수되었다. 1986년 4월 1일 영천군 화남면에 속하였고,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구전리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험준한 산 속의 아담한 분지에 터를 잡은 마을이다. 경림산(瓊林山)에서 바로 남으로 급경사를 이룬 산의 맥이 그치는 곳과 파계(巴溪)와 목리(木里)에서 남으로 흐르는 급류가 약간 경사진 분지에 마을이 형성된 곳이 바로 구전, 즉 별곡(別谷)이다. 군위군 고로면으로 통하는 고개 살구재가 서쪽 산허리를 통하여 나 있다.

[현황]

구전리의 면적은 5.76㎢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73가구, 144명으로, 남자가 71명, 여자가 73명이다. 자연 마을로는 신전·신녕땅[성부]·새터[신부]·머물동[유부]·중간뜸[중부] 등이 있다. 2001년 7월 23일에 스포츠 전문 놀이공원인 ‘오각 놀이공원’은 폐교된 용구 초등학교 시설을 활용하여 개관하였다.

구전리 마을은 정조 때 효자인 황보성(皇甫星)과 관련이 깊어 주로 이와 관련한 유적지가 많다. 황보성은 효성이 지극하여 인근으로부터 추앙을 받아오던 차 동몽교관(童蒙敎官)의 직을 나라로부터 받았으며, 어머니 영양 이씨(英陽李氏)[영천 이씨(永川李氏)]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비가 ‘오각 놀이공원’의 바로 뒤에 있다.

그리고 황보성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 달라며 하늘에 빈 곳인 함루대(含淚臺)와 그의 정자인 영모정(永慕亭)·반백정(攀柏亭)이 있으며, 황보양(皇甫樣)의 덕과 학문을 기린 귀남정사(龜南精舍)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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