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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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川里 |
이칭/별칭 | 사라골,효자문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천문로[사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사천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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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사천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사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6년 4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사천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사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남면 사천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사천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남면 사천리에서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사천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5.72㎢ |
가구수 | 156가구 |
인구[남, 여] | 340명[남 164명, 여 176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사천리(沙川里)는 마을 앞 냇가에 금빛 나는 고운 모래가 많이 있기에 사라골[沙羅谷]이라 칭하여 왔다. 모래[沙]가 많은 하천[川]이란 의미에서 지명이 변형되어 사천리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사천리는 사라골 또는 효자문(孝子門)이라고 하며, 처음 이곳에 정착한 것은 400여 년 전 오천 출신 정차순(鄭次淳)이라는 사람과 양산 이씨이득정(李得禎)·이득록(李得祿) 형제, 그리고 밀양 박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현재는 양산 이씨가 주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는 곳으로, 안노방·[늘바우·상노방]은 백연(白淵)이라는 선비가 400여 년 전에 처음 개척하여 사천리 마을을 형성했다.
사천리는 고현면에 속하다가 1914년에 화동면(華東面)으로 흡수되었으며, 1934년 4월 1일 화북면이 되었다. 1986년 4월 1일 영천군 화남면에 속했으며,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사천리 남쪽에는 고현천이 흐르고, 고현천의 하식애는 매우 크고 아름답다. 보현산(普賢山)에서 뻗어 오는 산마루 끝에 구릉지가 형성되어 있다. 고현천이 굽이치는 맑은 물이 마을 앞 언덕을 감돌아 흘러, 동남쪽으로 펼쳐지는 넓은 들은 이 마을의 곡창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개울을 건너 멀리 보이는 기암절벽은 고현천의 하식애로서 높이는 150m에서 200m에 이른다. 하식애의 길이는 사천리에서 온천리 방향의 하천변을 따라, 짧게는 수 ㎞이나 길게는 수십 ㎞에 이르기 때문에 하식애의 규모가 큰 편에 속하고 그 광경도 매우 아름답다.
[현황]
사천리의 면적은 5.72㎢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156가구, 340명으로, 남자가 164명, 여자가 176명이다. 자연 마을은 상뜸[중뜸·중뜸·하뜸·사라골·효자문]·안노방[늘바우·상노방]·매배이[매방골] 등이 있다. 화남면에서 지형적 조건이 농사에 유리한 하천과 평지가 많은 지역으로 여전히 벼농사를 많이 하고 있지만, 차츰 포도 등 밭농사로 전용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고속 도로 나들목이 바로 앞에 입지하여 교통 여건이 좋아져 도시인들의 전원 주택 및 산업 단지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화재로 서당인 사천리 장학소와 양산 이씨 가문의 가묘인 사천리 가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