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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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湖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천문로[신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신호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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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지곡면 신호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신호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6년 4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신호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신호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남면 신호동에서 영천군 화남면 신호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남면 신호리에서 영천시 화남면 신호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신호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신호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23㎢ |
가구수 | 111가구 |
인구[남여] | 237명[남 114명, 여 123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신호리는 기룡산(騎龍山) 기슭에서 발한 시냇물이 마을 앞을 흐르면서 큰 못을 막아, 마치 못 안에 뜬 마을처럼 새로운 호수가 형성되어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신호리(新湖里)는 사라들[沙羅谷]·야수골[也水谷]·신흥(新興)·대내실[다내곡(多內谷)] 등의 마을이 있다. 그 중 사라들에는 10여 가구의 오천 정씨가 주로 살고 있으며 현재는 신호1리에 속해 있다. 야수골은 조선 중기 최헌(崔憲)이란 선비가 처음 개척할 때, 마을 모양이 ‘야(也)’자 형으로 생겼다 하여 그렇게 불렀지만, 약 260년 전에 이씨(李氏)가 이 마을을 다시 이루었다 하여 신흥(新興)이라 개칭하였고 오늘날에는 신호1리에 속한다. 대내실·다내곡은 임진왜란 때 김순부(金順富)의 처 현풍 곽씨(玄風郭氏)가 두 아들을 데리고 피난 와서 이 마을을 개척한 곳으로, 오늘날에는 신호2리이다.
신호리는 1914년에 지곡면(知谷面)에 속하였고 1934년 4월 1일 화북면이 되었다. 1986년 4월 1일 영천군 화남면에 속하였으며, 1995년 1월 1일자로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신호리는 기룡산(騎龍山)에서 나온 한 산맥이 서남쪽으로 향하여 작은 연봉을 이루고 있다. 그 산기슭에서 발한 시냇물이 새로운 호수가 형성되어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다. 더욱 못 밖에 형성한 신흥은 오목한 산골에 아담하고 따뜻한 양지쪽에 형성되었다.
[현황]
신호리는 신호1리와 신호2리로 구분되며, 자연 마을로는 대내실[다내실]·사라들·신흥 등이 있다. 신호리의 면적은 4.23㎢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112가구, 231명으로, 남자가 109명, 여자가 122명이다.
고속 도로 나들목이 바로 앞에 입지하여 교통 여건이 좋아져 도시인들의 전원 주택 및 산업 단지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화재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공이 많은 김상기(金相基)·김애상(金愛相)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용호 서당(龍湖書堂)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