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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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梧山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공길[오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신촌면 오산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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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4년 4월 1일 - 영천군 신촌면 오산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오산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북면 오산동에서 영천군 화북면 오산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북면 오산리에서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오산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8.94㎢ |
가구수 | 134가구 |
인구[남, 여] | 277명[남 136명, 여 141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오산리(梧山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월지(月旨)·운산(雲山)·오동(梧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였다. 당시 오동과 운산의 이름을 따서 오산리라 일컫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오산리는 약 520여 년 전에 황씨(黃氏)와 범씨(范氏)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며, 농사를 짓기 위해 못을 막아 범못[范池]이라 하고, 마을 뒷산이 반월형(半月形)이라 하여 월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마을 밖으로 흘러가는 물이 보이지 않아야 잘 살 수 있다는 전설에 따라 220여 년 전에 숲[월지(月旨)숲]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운산은 경주 이씨 이왕삼 선비가 화동면 생천리에서 이곳으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앞 뒷산이 높이 솟아 구름이 걸려 있다 하여 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군·면을 통폐합할 때, 신녕군을 영천군으로 통폐합함에 따라 영천군과 신녕군의 경계 지역은 화동면·지곡면·신촌면으로 재구성하여 영천군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신녕군 지곡면 삼창·안천·월곡·오산·금호의 5개 동과, 영천군 자천면(慈川面) 용계·온천·구전의 3개 동을 합하여 영천군 지곡면(知谷面)으로 하였다. 오산리는 본래 신녕군 지곡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오동의 일부와 운산·월지를 합해서 오산리라 개칭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4년에는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오산은 영천군 화북면에 속하게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자로 오산리는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함에 따라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오산리는 기룡산(騎龍山)의 지맥이 공덕리 상단에서 양쪽으로 갈라져 계곡을 형성하여 들과 마을을 만들었으며, 산맥은 점차 약해져서 야산을 이루고 있다. 공덕 상류에서 발원한 내가 마을 앞을 흐르고 있으며, 마을 밖 서북쪽으로 넓은 들판을 이루어 살기가 비교적 좋은 곳이다.
특히, 사과를 일찍부터 재배하여 지금은 과수 단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전형적인 전원 농촌이다. 또 오산리 마을 뒷산에는 해마다 수백 마리의 백로가 날아와 살고 있다.
[현황]
오산리의 동쪽은 공덕리, 남쪽은 화남면, 북서쪽은 오동리·자천리와 접하고 있으며, 오산1리와 오산2리로 구분된다. 자연 마을로는 월지(月旨)[오산]·새뜸[양지·음지·운산] 등이 있다. 오산리의 면적은 8.94㎢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134가구, 277명으로, 남자가 136명, 여자가 141명이다.
옛날에는 오산리가 못사는 마을로 알려져 왔으나 하천 부지를 개간하여 사과밭을 만들고 과수원을 조성한 후부터 점점 소득이 늘어나 지금은 화북면 내에서도 가장 소득이 높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1,100년 전부터 오산리 운산숲을 중심으로 왜가리가 이른 봄에 와서 가을에 남쪽으로 가곤 했는데, 많을 때는 200마리 정도까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백로와 왜가리가 같이 서식을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보호에 힘쓰고 있다. 또한 문화재로는 광사재(廣思齋)·영사재(永思齋)·우모재(寓慕齋)·운강정사(雲岡精舍)·이호당(二皓堂)·자계정(慈溪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