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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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溪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금창로[오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미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금호면 오계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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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73년 7월 1일 - 영천군 금호면 오계동에서 영천군 금호읍 오계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금호면 오계동에서 영천군 급호읍 오계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금호읍 오계리에서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오계리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05㎢ |
가구수 | 182가구 |
인구[남, 여] | 400명[남자 216명, 여자 184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오계리(五溪里)는 행정구역 통폐합 시에 오종동(五宗洞)과 단계동(丹溪洞)을 병합하면서 오종동의 ‘오(五)’자와 단계동의 ‘계(溪)’자를 따서 오계리라 하였다. 영천은 예로부터 남조북정(南曺北鄭)이라 하여, 조씨가 남쪽에선 으뜸가는 가문이다. 그래서 조씨 마을을 종동(宗洞)이라 하여 오종동이라 이름 붙였다. ‘단계’는 오계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을사사화 때 경재(警齋) 곽순(郭詢)이 옥사할 때 마을 안 개울이 피로 인해 붉게 흘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오계리는 조선 말 영천군 창수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에 거여면·고현면·창수면·칠백면을 통합하여 금호면을 신설함에 따라 영천군 금호면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 오종동과 단계동을 병합하여 영천군 금호면 오계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호면이 금호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영천군 금호읍 오계동이 되었으며, 1988년 5월 3일 동(洞)을 이(里)로 바꾸면서 오계리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 통합으로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오계리는 구릉 야산이 사방으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곳이다. 남서쪽의 금박산(金泊山)[432m]과 남동쪽의 채약산(採藥山)[499m]이 마을 뒤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남성리, 북동쪽으로는 어은리의 구릉 야산이 둘러싸고 있다.
한편, 동쪽의 대성지에서 흘러나온 소하천이 마을의 남부를 휘감고 서쪽으로 흘러 대창천에 합류하여 금호강(琴湖江)으로 흘러들어간다. 서쪽은 금호평야를 지나 팔공산(八公山)의 연봉들을 볼 수 있다.
[현황]
오계리는 금호읍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호남리, 북쪽으로 냉천리, 서쪽으로 원기리, 남쪽으로 대창면 병암리와 접하고, 자연 마을로는 단계·종동·골목골·새터·서당골 등이 있다. 법정리인 오계리는 오계1리와 오계2리, 두 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오계리의 면적은 2.05㎢이며, 인구는 2011년 말 현재 182가구, 400명으로, 남자가 216명, 여자가 184명이다.
오계리의 문화재로는 경재 사당(警齋祠堂)·사효재(思孝齋)·만취당(晩翠堂)[중요 민속 문화재 제175호]·함양재(涵養齋)·금산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3호] 등이 있으며, 주민 편익 시설로는 금호 119안전센터, 오계1리 노인 회관, 오계2리 노인 회관, 오계리 마을 회관, 오계2리 마을 회관 등이 있다. 공업 단지로 금호 오계 공단이 있으며, 지방도 909호선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