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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001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민병곤

[개설]

보현산(普賢山)은 선비 문화와 서민들의 삶을 함께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선비들은 횡계천(橫溪川)의 자연을 벗 삼아 횡계구곡(橫溪九曲)을 설정한 뒤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 양성에 전념했고, 서민들은 햇빛과 별빛이 가장 잘 비치는 보현산 자락에 삶의 터전을 일궜다.

선비들의 은거지와 서민들의 삶터는 모두 보현산 하늘길로 이어져 있다. 보현산 하늘길은 횡계구곡길·태양길·구들장길·웰빙숲길·천수누림길 등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어, 저마다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경치와 삶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수많은 인재 길러 낸 보현산]

영천시 화북면 오리장림(五里長林)을 지나 노귀재보현산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우회전한 뒤 횡계교를 지나 보현산 천문대 쪽으로 가다 보면 소나무 30여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계곡에 옛 선비들이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양성한 정자들이 있다.

영천시에서 2011년 관광 활성화를 위해 횡계구곡의 위치와 사진, 설명을 곁들인 안내판을 설치했으며, 횡계천 옆길을 횡계구곡길이라 이름 붙였다. 보현산의 맑은 물이 흘러내려 큰 내가 가로로 흐른다는 횡계리에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 같은 횡계구곡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지나치기 쉽지만 보현산에서 선비들의 멋과 풍류를 엿볼 수 있는 계곡이다.

횡계구곡은 영남 사림으로 조선 후기 학자인 훈수(塤叟) 정만양(鄭萬陽)[1664~1730]과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1667~1732] 형제가 경영한 구곡원림으로, 도로와 횡계저수지에 의해 일부 훼손됐지만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현재 보현산으로 나 있는 아스팔트 도로는 신작로이며, 옛길은 횡계리에서 횡계들판의 산기슭을 따라 화북면사무소 뒤쪽의 화북정수장 옆으로 이어져 있다.

정만양정규양은 노론이 집권한 당시 영남 남인이 가지는 한계를 알았기 때문에, 벼슬을 하지 않고 향촌에 은거하는 삶을 살았다. 횡계에 태고와(太古窩)옥간정(玉磵亭) 등 정자를 지은 뒤 후진 양성에 전념해 뛰어난 인재를 배출했다.

정만양정규양의 문인으로는 『동문록(同門錄)』에 등재된 111인을 비롯해 추가로 기록된 61인을 합쳐 172인에 달한다. 대표적 문인으로 참의 정중기(鄭重器), 승지 안경설(安景說), 승지 조석룡(趙錫龍), 장령 권응규(權應奎) 등이 있다.

[주자의 삶 구현 ‘횡계구곡’]

횡계구곡 제1곡인 쌍계(雙溪)는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에서 횡계리로 가는 입구의 횡계교 아래로 노귀재 쪽에서 흘러오는 옥계와 보현산에서 내려오는 횡계가 만나는 곳이다. 이 지점에 있는 넓은 바위가 반암으로,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형상이다. 쌍계의 오른쪽에 횡계들판이 있으며 왼쪽에는 옥계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쌍계에서 횡계를 따라 600m 정도 올라가면 제2곡 공암(孔巖)이 나온다. 구멍이 많다는 공암은 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많이 잘려 나가 낮아졌지만, 이전에는 높이 솟아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정만양정규양은 공암을 공자바위로 설정하고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공암에서 400여m 오르면 횡계구곡 제3곡인 홍류담(紅流潭)의 절벽 위에 세운 태고와(太古窩)가 나온다. 태고와정규양이 35세 되던 1701년(숙종 27)에 건립했으며 1730년(영조 6) 제자들이 개축해 모고헌(慕古軒)이라 불렀다. 가운데 온돌방을 두고 동서남북 사방을 모두 마루로 두른 특이한 평면구조를 이루고 있다.

태고와 뒤의 횡계서당은 1927년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정만양정규양은 당시 물이 제법 깊은 홍류담에 배를 띄워 달빛 아래 유생들과 뱃놀이를 하며 거문고를 타기도 했다.

태고와 위쪽의 제4곡인 영과담(盈科潭)가에 세운 옥간정(玉磵亭)정만양정규양이 학문 연구 및 후학 양성을 위해 1716년(숙종 42) 봄에 세운 정자이다. 정자 앞 오른쪽에 300여 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옥간정 앞에는 요즘도 물길이 20여m에 이르는 작은 소가 있다. 당시 이곳의 바위틈을 막아 작은 못을 만들었다고 하며, 못에서 뗏목을 타고 거문고를 켜기도 했다.

옥간정의 남쪽 언덕을 격진병(隔塵屛)이라 하고 그 밑의 대를 광풍대(光風臺)라 하였다.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 옥간정을 찾으면 계곡 건너 언덕의 나무 밑 바위에 새겨진 ‘광풍대(光風臺)’ 글씨를 확인할 수 있는데, 빗물에 글씨의 일부 획이 떨어져 나갔다. 광풍대 서쪽을 지어대(知魚臺)라 하여 낚시하기에 좋다고 했고, 동쪽에 있는 것을 제월대(霽月臺)라 하여 밤이면 좋다고 했다.

횡계구곡 제5곡인 와룡암(臥龍巖)은 옥간정에서 150m 정도 올라간 곳의 횡계리 다리 밑에 자리하고 있다. 횡계의 왼쪽 넓은 바위가 와룡암이며, 오른쪽에는 수직의 바위와 느티나무가 보인다. 지수 정규양은 횡계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35세 때인 1701년(숙종 27) 영천 대전리에서 횡계리로 거처를 옮겼다. 먼저 와룡암 위에 작은 집을 지어 ‘육유재’라 이름 붙였다.

제6곡 벽만(碧灣)은 “바위 사이로 푸른 물이 흐르는 굽이”다. 와룡암에서 350여m 올라가면 시내 양쪽에 넓은 바위가 자리하고, 가운데로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제7곡 신제(新堤)는 현재의 횡계저수지 제방 지점이다. 훈수지수가 횡계에 거주했을 때 이미 만들어진 제방이다. 일제 강점기에 기존의 제방이 있던 곳에 둑을 막아 지금의 횡계저수지를 만들었다.

제8곡 채약동(採藥洞)은 횡계저수지 끝의 오른쪽 건너편에 보이는 소나무 군락 지점이다. 횡계저수지가 축조되기 전에 이곳에 사람들이 밭을 일구며 살았다고 한다. 횡계저수지에 수몰돼 마을과 골짜기의 모습을 볼 수 없다.

횡계구곡 제9곡은 고암(高庵)으로, 고산사(高山社)를 의미한다. 지수 정규양은 대전리에서 횡계로 거처를 옮긴 지 6년 후인 1707년(숙종 33) 고산사를 창건해 유생들을 가르쳤다. 후손들은 고산사를 고밀서당(高密書堂)이라 하고, 서당이 있던 곳을 서당골이라 한다. 채약동에서 자하봉 산길을 따라 500여m 올라간 지점에 있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햇빛마을, 별빛마을]

보현산은 햇빛과 별빛이 가장 많이 드는 산이다. 보현산 자락에는 정각2리의 양지마을과 음지마을, 정각1리의 별빛마을절골, 보현산 너머 포항(浦項) 죽장면의 두마리 등 서민들의 생활 터전인 산촌 마을이 곳곳에 남아 있다. 양지마을은 햇빛이 잘 비치는 곳에 있고, 별빛마을은 별빛이 초롱초롱 빛나는 곳에 있다.

양지마을은 가파른 산 중턱에 위치해 보현산 천문대 가는 길로 차를 달리다 보면 지나치기 쉽다. 횡계리 마을을 지나 왼쪽의 ‘태양길’ 표지판 옆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양지마을이 나온다. 흙으로 가득 찬 밭뙈기와 돌담이 많아 마치 화전민촌 같은데, 입구에는 밑동만 남은 당산목이 나지막한 돌담에 둘러싸여 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당산목 옆에는 소나무 등 예닐곱 그루의 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320여 년 전 능주 구씨(綾州具氏)구규징(具規徵)이라는 선비가 벼슬을 마다하고 이곳에 마을을 개척한 뒤 아침에 해가 일찍 뜨고 양지바른 곳이라 ‘양지’라 이름 붙였다 한다. 능주 구씨 집성촌으로 마을 오른쪽에 재실(齋室)도 있다. 현재 이 마을의 열일곱 가구 중 열두 가구가 능주 구씨 집이다. 마을 주민 구진회는 “아직도 경운기 대신 소를 이용해 6천여 ㎡의 밭에 고추와 콩을 재배하며 산 아래에 있는 논 4천여 ㎡에서는 벼농사를 짓고 있다”면서 “이전에는 능주 구씨 가구만 30여 집에 달했다”고 말했다.

양지마을은 소나무 숲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절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동쪽 산등성이를 따라 아름드리 노송들이 우뚝 솟아 있는데, 능주 구씨 동산으로 문중에서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경치가 아름다워 외지인들의 전원주택도 세 곳이나 들어서 있다. 집터는 많지만 팔려고 내놓은 곳이 없어 화북면 소재지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흙집과 장작이 쌓여 있는 양지마을 오른쪽 길을 따라 산기슭을 내려가면 음지마을이 나온다. 소나무 20여 그루가 솟아 있는 입구를 지나면 산자락을 따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보현산 천문대정각1리 별빛마을, 양지마을 등을 볼 수 있어 전망이 좋다. 공기가 맑아 외지인들도 네 가구나 들어와 살고 있다.

정각1리 별빛마을은 우리나라에서 밤에 가장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직경 800㎜ 천체망원경, 5D 돔영상관 등을 갖춘 보현산 천문과학관이 있다. 보현산 별빛 축제와 개기월식 관측, 별빛 투어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밤하늘에 수놓은 별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봄이면 별빛마을에서 청정미나리와 고로쇠나무 수액을 맛볼 수 있다. 별빛촌 미나리는 보현산의 청정 암반수로 재배해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해마다 보현산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 비닐하우스에서도 구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잘 팔린다. 별빛마을의 식당에서는 미나리로 만든 국수를 맛볼 수도 있다.

[두마리 가는 옛길과 구들장길]

정각1리 별빛마을 안쪽에는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절골이 있다. 절골 왼쪽 골짜기에는 고려 시대 석탑인 정각리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기단부를 포함한 탑 전체가 기울어지고, 3층 지붕돌은 땅에 떨어져 방치돼 있던 것을 1981년 해체, 복원했다. 절터는 현재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입구 가장자리에 주춧돌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돌무더기를 볼 수 있다. 절골 입구에는 수령 500년의 아름드리 당산목이 있는데, 주민과 출향인 50여 명이 음력 8월 15일 이곳에 모여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정각1리에는 보현산 너머 포항시 죽장면 두마리 마을 사람도 이곳으로 시집와서 살고 있다. 두마리 마을 사람들이 나물과 곡식을 지고 보현산을 넘어 영천시 화북면 자천장에서 정각리 사람들을 만나 중매로 결혼했다고 한다.

보현산에는 당시 두마리 마을 사람들이 넘나들던 옛길인 오솔길이 남아 있다. 이전에 두마리 마을 사람들은 자천장이 서는 날[4, 9일], 이 오솔길을 이용해 정각리를 거쳐 시장으로 오갔다고 한다. 오솔길은 절골 위쪽의 보현산 천문대 가는 길과 임도(林道)로 갈라지는 지점의 오른쪽에서 시작된다. 임도 입구의 무덤 옆 산길로 들어서면 작은 계곡을 따라 오솔길이 이어지며 현재 이곳에 웰빙 숲이 조성돼 있다. 오솔길은 산 중턱에서 흐릿해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웰빙 숲길로 계속 이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2층 팔각 전망대에 다다를 수 있다. 2층 팔각 전망대에서 두마리로 넘어가는 고개까지는 임도와 함께 웰빙 숲길 데크로드가 조성돼 있어 산책을 하며 참나무 등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 체험 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두마리로 가는 고갯길은 시멘트로 잘 포장되어 있다. 고갯길에서 보현산 천문대로 가는 길과 정각리로 내려가는 길 모두 시멘트길이다. 요즘도 두마리 마을 사람들은 대구로 갈 경우 포항시 죽장면 소재지를 거치지 않고 가까운 보현산을 넘어 정각리로 내려가는 시멘트 길을 이용한다.

정각1리 절골 위쪽의 보현산 천문대 가는 길과 임도의 갈림길에서 임도로 들어서면 황톳길을 따라 느긋하게 숲을 즐길 수 있다. 산악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걸으며 산책을 하기에도 좋은 코스다. 영천시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이 임도를 구들장길로 이름 붙여 탐방로를 조성하였다.

이 길을 따라 작은 산등성이를 굽이굽이 돌아 오르면 중간 지점에 구들장 채석장이 나온다. 20여 년 전까지 구들장을 캐낸 곳으로, 정각리 주민들이 지게로 져다 날라 팔았다고 한다. 오른쪽 산비탈에 온통 구들장 조각들로 덮여 있다. 관광객들을 위해 채석장 주변에 구들장 조각으로 쌓은 탑들이 눈길을 끈다.

[하늘 속 비경 ‘천수누림길’]

구들장길은 두마리 마을로 넘어가는 갈림길에서 보현산 천문대 가는 길로 이어진다. 보현산 천문대 가는 길의 굽이굽이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마치 푸른 하늘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중간의 쉼터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구불구불한 출입로는 물론, 구들장길과 별빛마을, 두마리 마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현산 천문대 앞에는 목재 데크길을 따라 시루봉까지 천수누림길이 조성돼 있다. 숲속에 조성된 목재 데크길을 걷다 보면 새소리와 아름다운 음악도 감상할 수 있는데, 사람이 발을 디디면 목재 데크 아래의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가을에 오르면 파란 하늘과 노랗게 물든 단풍을 볼 수 있고, 추운 겨울날 운이 좋으면 하얗게 핀 눈꽃이나 얼음꽃을 만날 수도 있다. 봄이면 연둣빛 숲을 볼 수 있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다.

천수누림길을 걷다 보면 언제나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 가슴속까지 시원하다. 가족끼리 산책하며 얘기꽃을 피울 수 있고, 연인끼리 걸으며 추억을 만들기에도 제격이다.

보현산을 찾는 사람들은 보통 차를 타고 곧바로 보현산 천문대까지 올라갔다 바람만 쐬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여행이라면 횡계구곡이나 양지마을, 천수누림길보현산의 숨은 비경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특히 모고헌이나 옥간정 아래 횡계계곡은 본래의 절경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양지마을과 음지마을, 별빛마을 모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도시인들의 귀촌이 늘고 있는 곳이다. 보현산 하늘길의 비경이 원래 모습을 잃지 않는 한 ‘별천지’를 찾는 도시인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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