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복심 법원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에서 만세 운동을 주동한 독립운동가. 김재홍(金在洪)[1892~1938]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해창리(海倉里)가 본적이며, 1919년 4월 10일에 펼쳐진 영암 지역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다가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다. 김재홍은 1919년 4월 10일 영암 장날에 펼쳐진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동하고, 직접 참가하였다. 김재홍은...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에서 시위운동을 주동한 독립운동가. 문성선(文性善)[1912~?]은 영암 출신으로, 본적은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場岩里) 579번지이다. 1931년 9월 영암에서 청년회를 조직한 후 항일 투쟁을 논의하였고, 이듬해인 1932년 6월 항일 시위를 강행하였다. 문성선은 1931년 9월 영암군 영암면 교동리(校洞里) 최판옥(崔判玉)의 집에서 김판권(金判權)·문사...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규상(朴奎相)[1893~1921]은 1919년 경성 약학 전문학교에 다니던 중 3·1 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고향인 영암에서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펼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박규상은 1919년 3·1 운동 당시 경성 약학 전문학교생(京城藥學專門學校生)으로 서울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갈 때 「독립 선언...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유성(朴裕成)[1907~1958]은 영암 출신으로, 본적과 활동지는 영암군 덕진면(德津面)이다. 1932년 영암 지역의 소작 쟁의에 참여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진상(朴珍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박유성은 1931년 영암군 덕진면에 야학을 개설하고 이듬해 「처(妻)의 후회」라는 연극 공연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
일제 강점기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춘수(李春洙)[1911~1948]는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은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이다. 일제 강점기 비밀 결사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29년 광주 학생 독립활동 시위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렀다. 이춘수는 전라남도 공립 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9년 7월 초순, 전라남도 광주(光州) 소재 수피아 여학교 뒷산에서 송동식(宋東...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학순(鄭鶴順)[1892~1950]은 영암 출신으로, 본적 및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성양리(省陽里)이다. 1919년 영암 지역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정학순은 1919년 3·1 운동 당시 구림리(鳩林里)에 거주하는 최한오(崔漢五)·조병식(曺秉植)·박규상(朴奎相) 등과 서로 연락하여 영암읍내와 구림리...
-
1919년 전라남도 영암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조병식(曺秉植)[1892~1926]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 및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동구림리(東鳩林里)이다. 1919년 영암 지역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조병식은 1919년 4월 7일부터 9일 사이의 기간에 영암군 군서면사무소에서 박규상(朴奎相)·최기준(崔琪焌) 등과 함께 독립 만...
-
일제 강점기에 항일 학생 결사인 성진회에서 활동한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규창(崔圭昌)[1908~1949]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東鳩林里)였다. 1926년부터 광주 비밀 결사 모임인 성진회(醒進會)에서 활동하면서 독립 사상을 고취하였고, 고향인 영암에서 소작 쟁의를 주도하였다. 최규창은 광주 고등 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6...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기준(崔琪焌)[1896~1957]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호는 지암(芝菴)이다. 활동당시 주소는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西鳩林里)이다. 1919년 영암 지역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영암 지역에서는 영암읍의 조극환(曺克煥)·정학순(鄭鶴順)과 서구림리의 박규상(朴奎相)·최한오(崔漢...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최동환(崔東煥)[1907~1946]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은 영암군 금정면(金井面) 아천리(鴉川里)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였다. 1932년 3월 영암에서 연극을 공연해 주민들의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고, 소작 쟁의를 주도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하였다. 1931년 6월에 영암읍 내의 도로...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석호(崔碩鎬)[1910~?]는 영암 출신으로,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이다. 1930년대 초 영암에서 연극 공연 등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고, 소작 쟁의에 간여하여 옥고를 치렀다. 최성호(崔成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최석호는 영암군 덕진면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자식은 야학에서 공부...
-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하의철(河誼喆)[1907~1980]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은 영암군 미암면(美岩面) 채지(採芝) 마을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광주시(光州市) 서구(西區) 양동(良洞)이었다. 광주 지역의 학생 비밀 결사 성진회(醒進會)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의철은 광주 사범 학교 3학년 재학 시절에 광주 지역의 중심적 항일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