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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불의 발원에 관계된 설화. 영암군에서는 「개 심부름」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땔감이 되는 솔방울을 주우러 다니는 풍습이 전해 내려왔다. 여기에는 돌 속에 불씨가 들어 있다는 부싯돌과 관련된 설화가 함께 전해진다. 부싯돌이 쇠와 부딪쳐 불씨를 만들어 내는 것과 솔방울을 모아 불을 피우고 보존하던 모습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개 심부름 설화」는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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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거미가 줄을 치는 것을 묘사한 민요. 「거미 타령」은 전국적으로 동요로 애창되는 노래인데, 이와 같은 민요에는 「강강술래」, 「잠자리 노래」 등이 있다. 「거미 타령」은 거미가 허공에 줄을 만드는 모양을 묘사하는데, 지역마다 가사가 조금씩 다르다. 영암군에서 전승되는 「거미 타령」은 거미줄을 쳐 놓고 나비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둥덩애 타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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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 오는 길쌈하면서 부르는 노래. 「길쌈 노래」는 영암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다만 「길쌈 노래」는 전국적으로 보편적인 연행 양태를 보이기 때문에 영암만의 특징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성들이 부르는 노동요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편이며, 오랜 시간 일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부르다 보니 사설이 비교적 길어져 서사 민요로도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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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모내기를 끝낸 후 초벌부터 세벌까지 논매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김매기 소리」는 논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와 밭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 ‘논맴 소리’, ‘지심매는 소리’ 등 지역에 따라 달리 부른다. 이 가운데 논일을 하면서 부르는 「김매기 소리」를 통해 영암 지역 농요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영암군 갈곡리는 들노래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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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개흙을 얼굴에 칠하면서 노래 부르던 풍속과 관련된 설화. 영암군에서는 아이들이 개흙을 얼굴에 칠하고 바다에 들어가는 풍속이 있었다. 예부터 잘 생긴 사람, 특히 어여쁜 여자는 용왕[물귀신]이 데려간다고 하여 바다에 들어갈 때는 못생겨 보이도록 먼저 얼굴에 얼룩덜룩 칠을 하였다. 「깊은 모실 설화」는 누나가 바다에 나갔다가 용왕에게 끌려가 돌아오지 않자 남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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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지는 처녀들이 초봄에 나비를 날리면 부르던 유희요. 영암군 일대의 처녀들이 멋진 신랑감을 맞길 바라며 초봄에 나비를 날려 보내면서 「나비 날리기 노래」를 불렀다. 1998년 펴낸 『영암군지』에 「나비 날리기 노래」의 가사가 실려 있다. 사설이 매우 단순하여 민요로 분류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한다리 만다리」류로 분류할 수 있다. 일종의 놀이를 하면서 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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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겨울철 사랑방에 앉아 돌아가며 이야기할 때 이야기 대신 부르던 민요. 「내독 노래」는 「이야기 한자리」라고도 한다. 겨울밤 사랑방에 모여 앉아 돌아가며 이야기를 할 때 말 주변머리가 없거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없거나, 또는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남이 다 해 버렸을 때 「내독 노래」를 함으로써 이야기를 대신하였다. 1998년 영암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간행한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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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논을 매거나 밭을 맬 때 농사꾼이 부르던 노래. 전라남도의 「모심기 소리」는 「상사소리」, 「농부가」 등 몇 가지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거의 대부분 상사소리형의 소리가 전승되어 왔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영암 지역의 「농부가」는 일종의 농부가형 상사소리를 일컫는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몽룡이 농군들과 주고받는 상사소리가 그것이다.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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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지는 호박꽃과 박꽃에 얽힌 설화. 박꽃과 호박꽃에 대해서 영암군에는 아름다운 설화 한 편이 전해진다. 사이 나쁜 쌍둥이 자매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서로를 많이 그리워하더니 죽어서 호박꽃과 박꽃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도 연행되어 전승되었다. 1998년 펴낸 『영암군지』에 「단꽃 설화」와 이야기에 얽힌 노래가 같이 실려 있다. 아주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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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에 전해 오는 달 각시와 관련된 설화. 월출산 인근에 살던 칠뜨기라는 어수룩한 총각이 달 각시를 맞이하여 즐겁게 지내다 늙은 어머니 때문에 아내를 잃는다는 이야기이다. 달 각시는 달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풀벌레로 변하였다. 「달 각시 설화」와 관련된 노래도 함께 전하고 있다. 월출산 달밤의 풀벌레 소리를 서정적으로 승화시킨 설화이자 노래로 지역의 특성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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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아이들이 무거운 돌을 옮길 때 부르는 노래. 「돌 굴리기 노래」는 아이들이 무거운 돌을 움직여 옮길 때 돌에 매달려 부른 노래이다. ‘들돌 들기’와도 유사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들돌 들기가 지역에 따라 성년 의식의 하나로 치러지는 의례용 놀이이거나 마을 단합을 위한 민속놀이의 일종이라고 한다면, 「돌 굴리기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이 돌을 옮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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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지게에 짐을 지고 먼 길을 갈 때 부르는 민요. 지게 짐을 지면서 부르는 노래로, 주로 덩치가 큰 짐을 지고 갈 때 부른다. “앞산은 요만큼 가까워지고 뒷산은 저만큼 멀어진다.”라는 가사는 「모내기 소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나 영암에서는 등짐을 지는 사람들, 특히 장꾼들이 즐겨 불렀다고 한다. 1998년 펴낸 『영암군지』에 「등짐 지기 노래」의 가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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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강변에서 모래찜질을 하며 부르는 민요. 영암 월출산의 동쪽 골짜기 물을 받아 흐르는 덕진강변은 모래찜질로 유명하다. 「모래찜 노래」는 단옷날 인근 마을 사람들이 덕진강변에서 모래찜질을 하며 부르던 노래이다. 채록이나 수집 상황이 자세히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영암의 덕진강변 모래찜질은 다른 지역으로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한 곳이어서 민요의 구연 상황을 짐작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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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래. 영암 지역의 논일 노래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모심을 때 하는 소리이다. 「모내기 소리」라고도 하며 남도 민요로 분류한다. 영암 지역에서는 「영암 갈곡리 들소리」가 영산강 유역 논일 노래 중에서 으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외에도 각 면에서 전승되어 왔다. 「모심기 소리」에는 농부가형이나 상사소리형이 있는데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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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모내기를 할 때 모판에서 모를 뽑으며 부르는 노래. 「모찌기 노래」는 모판에서 모를 뽑아 내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한국 노동요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모심기 소리」를 부르기에 앞서서 모를 뽑으며 부르기 때문에 「모심기 소리」와 더불어 ‘모 노래’라 일컫는다. 물론 「모심기 소리」에 포괄되는 민요로 해석된다. 작업이 산만한 탓에 「모찌기 노래」는 매우 희귀하게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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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논에 물을 푸면서 부르는 민요. 「물 푸는 소리」는 「물골 노래」라고도 한다. 영암군 영암읍 역리에서는 여름철 논에 물을 품어 올릴 때 물골[맞두레]이라는 기구를 사용한다. 물골은 나무를 이용하여 길이 서너 자[약 90~120㎝], 너비 두어 자[약 60㎝], 깊이 서너 치[약 12㎝] 정도로 짠 것인데, 네 귀퉁이에 새끼를 달고 양쪽에서 두 사람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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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베를 짜기 위해 물레를 돌리면서 부르는 민요. 아낙네들이 물레를 돌려 실을 자으며 부르는 노래이다. 예부터 베틀을 이용해 무명, 삼베, 명주 같은 전통 옷감을 짜 왔으나 지금은 베를 짜는 이를 찾기가 힘들다. 솜을 타면서 활방구 장단에 부르는 노래와 물레를 돌리면서 부르는 노래, 그리고 베를 짜면서 부르는 노래들이 사실상 유사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영암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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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주로 여성들이 방아를 찧으며 부르던 민요. 영암군에서도 디딜방아나 절구를 찧으며 「방아 타령」을 불렀다. 「방아 타령」은 노동요의 일종이지만, 사실상 유희요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성적인 상황을 비유하거나 모사하는 가사를 통해 익살맞고 풍자적인 생활상들을 노랫말 속에 펼침으로써 유희요의 특징을 더하기 때문이다. 이명순[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2구 방축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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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의 부녀자들이 밭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 「밭매는 소리」는 주로 여성들이 부르는 여성 노동요로서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분포된 노래이다. 지역마다 ‘사디 소리’, ‘흥글 소리’, ‘검질 매는 소리’ 등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영암 지역의 「밭매는 소리」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된 노동의 힘겨움과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부르는 노동요이며, 시집살이의 한이나 노동의 힘듦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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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 오는 베틀에서 베를 짜면서 부르는 부녀자들의 민요. 「베틀가」는 베틀에 베를 짜면서 부르는 노래로, 「길쌈 노래」의 하나이다. 「길쌈 노래」가 「물레 타령」 등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라면 「베틀가」는 베틀에 베를 짜는 과정을 그린 보다 하위 개념의 노래라 할 수 있다. 베틀을 소재로 하여 “하늘에다 베틀 놓고”로 시작하는 「베틀가」와 축음기판에 의해 보급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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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벼룩을 소재로 노래한 민요. 「벼룩 타령」은 「비룩 타령」이라고도 하는데, 이나 벼룩 등의 미물에 빗대어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노래이나 지역적 특성에 맞는 상황이 구연되기도 한다. 그러나 영암군의 「벼룩 타령」에서는 지역적 특성이 크게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채록이나 수집 상황을 알려 주는 정보는 거의 없으나 다행히 『영암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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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제비의 이름과 관련된 설화. 제비가 지지배배 울게 된 유래가 담긴 이야기이다. 풍기문란으로 붙잡힌 원님의 딸과 총각이 ‘보리 서 되’, ‘쌀 서 되’라 실랑이를 하였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였지만 끝내 죽게 된 이야기이다. 딸과 총각은 죽어서 제비가 되었다. 「보리 서 되 쌀 서 되 설화」와 관련된 노래도 전해진다. 1998년 펴낸 『영암군지』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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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등짐을 지고 나를 때 부르는 민요. 「산아지 타령」은 영암군을 비롯한 호남 지역 사람들에게 애창되는 민요 중의 하나로, 「진도 아리랑」의 모태가 된 민요이기도 하다. 볏짐이나 나뭇짐 등 등짐을 지게를 이용해 지고 갈 때 부르거나 일과 상관없이 놀 때 부르는 노래이다. 김세원[영암군 도포면 수산리]과 김일덕[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1구]의 창이 문화재청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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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집짓기를 할 때 기둥 위에 마룻대를 올리면서 부르는 민요. 집을 지을 때는 집터를 닦고 나서 주추를 막고 기둥을 세워 대들보를 얹은 뒤 맨 뒤에 상량목을 올린다. 상량목을 올릴 때는 하루 날을 잡아 상량식을 한 뒤에 상량목을 올린다. 상량식은 먼저 상량목에 상량문을 쓴 뒤 베에 싸서 대들보 밑에 뉘여 놓고 고사를 지낸다. 헌작재배(獻酌再拜)하고 축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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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고기 잡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뱃노래. 영암군은 내륙 지역이면서도 영산강 하구를 중심으로 바다 일을 하는 반농반어의 생태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술비 타령」도 이러한 생태적 특징과 연관되어 전해지는 민요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그물 당기는 소리와 고기 퍼 담는 소리는 영산강 내안에서 행해진 고기잡이와 관련이 깊다.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 위원인 이소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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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아이들이 메뚜기나 방아깨비를 잡아 놀면서 부르는 노래. 「어부조 노래」는 영암 지역 아이들이 메뚜기나 방아깨비를 잡아 놀면서 부른 노래이다. 메뚜기나 방아깨비를 몇 마리 잡은 뒤에 큰 놈 등 위에 작은 놈을 업혀 주면서 떨어지지 말고 잘 놀라는 뜻으로 「어부조 노래」를 부른다. 영암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펴낸 『영암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영암군지』에 소개된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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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승된 이별의 정한을 소재로 한 민요. 「이별가」는 판소리 「춘향가」 등에 나온 「이별가」를 따라 부르다가 민요풍으로 정착된 것을 지칭하거나 「육자배기」나 「흥타령」 등을 부르면서 이별의 슬픔을 담아 낸 곡을 지칭한다. 그러나 넓게는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곡이면 모두 「이별가」의 범주로 포함시킬 수 있다.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 위원인 이소라가 조사 정리한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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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제방 공사를 할 때 장부로 흙을 던지거나 다지며 부르는 민요. 영산강 유역에 위치한 영암은 갯벌을 간척지로 만들어 활용하기 위해 크고 작은 제방 공사를 많이 해 왔다. 제방 공사를 할 때는 서로 협업을 해야 하기에 호흡과 동작을 맞추어 흙을 퍼서 던져야 한다. 이때 일사불란하게 일을 하기 위해 주고받는 소리가 「장부질 소리」이다. 영암군 서호면에 위치한 성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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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각설이패가 장판이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동냥할 때 부르는 민요. 「장타령」을 ‘각설이 타령’ 혹은 ‘품바 타령’이라고도 부른다. 장판을 돌아다니면서 기예를 팔기도 하고 구걸을 하던 각설이들이 즐겨 부르던 곡이 장타령이기 때문이다. 「장타령」의 연원을 살피면 매우 오래되었는데, 신재효(申在孝)[1812~1884]의 사설집에서 최초로 그 이름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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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지는 조개잡이와 관련된 민요. 강변 마을의 조개잡이 풍습이 묻어나는 노래이다. 엄마, 누나, 언니 등이 조개잡이를 갈 때면 아기를 업은 어린 소년이나 소녀가 조개잡이 일행을 배웅하거나 기다리면서 「조개잡이 갈 때 노래」를 불렀다. 자장가로도 불리는 노래이다. 1998년 펴낸 『영암군지』에 「조개잡이 갈 때 노래」의 가사와 관련 기록이 실려 있다. 『영암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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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집터를 다지면서 부르는 민요. 집짓기 전에 집터를 다질 때 부르는 노래를 「집터 다지는 소리」라고 한다. 일명 ‘다대기 소리’라고도 하고 ‘터다짐’이라고도 한다. 큰 바위를 여러 가닥의 줄로 묶은 뒤 사람들이 그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는데, 이때 「집터 다지는 소리」를 부르며 박자를 맞추거나 흥을 돋운다. 앞소리꾼이 한 장단의 앞소리를 메기면 여러 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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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발인하기 전날 상여꾼들이 모여 가상여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초경, 재경, 삼경 소리」는 큰 범주에서는 「상엿소리」에 속하고 작은 범주에서는 「밤샘 소리」에 속한다. 전라남도 신안군이나 진도군에서 ‘밤다래’, 다시래기 등이 연행되는 것과 유사하다. 영암군 군서면 성양리나 동구림리에서도 밤샘을 하며 다례를 올리는데, 9시경에 초경, 10시경에 이경, 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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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정월 대보름날 돌팔매질과 불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석전 놀이는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석전 놀이와 연관되어 영암군에서 전해지는 「팔매질 노래」는 자신이 던지는 돌멩이의 파괴력과 명중률을 과시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질은 불이 잘 타오르라는 주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영암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펴낸 『영암군지』에 사설이 간략하게 수록되어 있다. 한겨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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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아이들이 새의 깃털을 날리면서 부르는 노래. 「하늘 구경 노래」는 아이들이 닭이나 꿩 등의 가벼운 속털을 날리는 놀이를 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노랫말이 매우 단순하고 짧은 놀이요에 속한다. 그러나 「하늘 구경 노래」는 자장가류의 「한다리 만다리」, 「도리도리」, 「지엄지엄」 등과 같이 영암 지역 아이들의 심성을 고양시키는 기능성 놀이요라고 할 수 있다.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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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유흥의 목적으로 부르던 통속 민요. 「흥타령」은 「육자배기」와 더불어 전라도를 대표하는 통속 민요 가운데 하나다. 「육자배기」가 진양조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면 「흥타령」은 느린 중모리장단에 맞추어 부른다. 그러나 「육자배기」나 「흥타령」은 둘 다 곡조와 가사에 한이 서려 있어 한이 맺힌 사람들이 즐겨 부르고는 한다. 노래가 한을 풀어 주는 기능을 한다고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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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에서 기록한 동계 문서. 임진왜란 직후인 1605년(선조 38) 경주 이씨(慶州李氏)들의 동족 마을인 영암읍 망호리의 망호정을 중심으로 내·외손 간의 돈목과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동각계(洞閣契)가 창설되었다. 1643년(인조 21)에 이진황(李鎭璜)이 중수하면서 규모를 일신하였다고 한다. 망호정의 경주 이씨는 동각과 동계를 중심으로 동족적 기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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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영보리에서 기록한 동계 문서.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는 영보정 동계(洞契)가 있다. 『영보정 동계 문서(永保亭 洞契文書)』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의 내·외손을 중심으로 이미 결속되어 있던 구(舊) 계(契)를 중수하는 형태로 작성되었다. 기존의 조약들이 시의에 맞지 않거나 너무 번잡하고 소홀한 면이 있어서 다시 중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계를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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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영암군의 역사, 지리, 인물, 풍속, 군사, 재정 등을 기록하여 편찬한 읍지. 진보(鎭堡)·군기(軍器)·관애(關阨) 조 등의 군사적 내용과 진공(進貢)·상납(上納) 등의 지방 재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표지에는 ‘全羅南道靈巖郡邑誌輿地圖冊(전라남도 영암군 읍지여지도책)’이라고 쓰여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3.6cm, 세로 37.4cm이며 1책 40장으로 구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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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사회, 경제, 문화 등을 기록하여 편찬한 향토지. 『영암군지(靈巖郡誌)』는 영암군의 자연환경·역사·정치·행정·산업·사회·문화·민속 등을 총 정리하여 상, 하 2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1832년에 『영암군지』를 발행한 이후 영암의 향토사 기록을 정리한 책이 없었다. 이에 영암의 향토사 기록을 정리하고 자료화하기 위해, 1992년 영암군지 편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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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서 기록한 동계 문서. 『화수정 동계 문서』는 1655년(효종 6) 정만태(鄭萬泰)를 비롯한 영암읍 화수정 마을의 장로(長老) 2~3인에 의해 조직되었던 동약이다. 그 유서가 상세히 전하지는 않지만, 내용상 초기 향약들이 강조하는 4개 조의 덕목을 상·하민에게 주지시켜 임진년과 병자년 양란 이후 급격히 변모되어 가는 향촌의 기강과 질서를 재확립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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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초부터 4월 하순까지 영암 지역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전개된 항일 운동. 1919년 3월 초 영암군에도 3·1 운동의 소식이 전해지자 조극환(曺克煥)·최한오(崔漢五) 등 영암읍과 구림리의 뜻있는 이들이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시위를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가, 결국 4월 10일 영암읍 장날에 맞추어 아침 일찍 「독립 선언서」를 배포하고 오전 아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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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을 전후로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한 전국에서 전개된 민주주의 혁명 운동. 1960년 4월,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발생한 학생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지속되어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키고 제2 공화국을 출범하게 한 혁명이다.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대한 저항은 선거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마산에서 부정 선거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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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영암군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시민들이 전라남도 광주시를 중심으로 벌인 민주화 운동.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지금의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전라남도 지역의 시민들이 계엄 철폐와 전두환(全斗煥) 퇴진, 김대중(金大中) 석방 등을 요구하며 벌인 민주화 운동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전두환 등 신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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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말미암아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한국전쟁, 6·25 사변, 한국동란 등으로도 불리는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하여 1953년 7월 27일까지 남한과 국제 연합군이 북한과 중화 인민 지원군에 맞섰던 전쟁이다. 한반도 내부에서 좌익과 우익, 남한과 북한이 대결하는 내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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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6월 초 영암에서 발생한 국방 경비대와 경찰 간의 무력 충돌. 1947년 6월 1일 영암에서 경찰에 연행된 하사의 신병을 둘러싸고 시비를 벌이다 군과 경찰이 서로 폭행을 벌이게 되었고, 6월 2일 밤부터 3일 새벽 사이에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주둔하던 제4 연대 일부 병력이 무장한 채로 영암 경찰서를 공격하여 사상자가 발생하는 무력 충돌을 벌였다. 국군의 모태가 되는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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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도기와 분청사기, 백자 등을 구웠던 가마터. 가마는 점력을 가지고 있는 바탕흙으로 형태를 만든 후 이것을 높은 온도로 구워 내는 생산 시설을 말한다. 가마에서 구워 내는 그릇은 바탕흙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 굽는 온도, 유약 종류, 무늬와 장식 기법, 제작지, 용도 등에 의하여 다양하게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굽는 온도와 유약의 유무 등으로 토기(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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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집과 가정의 수호를 위해 가신(家神)을 모시는 신앙. 가정은 문화가 이루어지는 최소의 단위이다. 하나의 가정은 그 크기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완성된 세계이며, 그런 점에서 하나의 우주가 된다. 우주는 창성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능과 구조에 따라 많은 신격들이 제 위치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하늘은 천신이, 땅은 지신이, 그리고 태양신, 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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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가야금 산조를 창시한 김창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개최하는 축제. 영암군은 가야금 산조를 창시한 김창조의 고향이다. 영암군에서는 영암이 가야금 산조의 본향(本鄕)임을 널리 알리는 한편,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가야금 산조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가야금 산조 축제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야금에 접목시켜 가야금 산조를 창시한 악성 김창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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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산조 창시자 김창조와 영암의 가야금 전통. 악성(樂聖) 김창조(金昌祖)[1856~1919]는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세습 율객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회문리는 풍류객들이 자주 드나들던 월출산 자락의 산세 수려한 곳이어서 어려서부터 무의식적으로 음악 수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7~8세 때부터 가야금을 연주하기 시작하여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대금, 퉁소 등 모든 악기를 잘 다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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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가죽나무의 어린 순을 나물로 만들어 먹는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는 두릅나무 순이 나오기 전에 마을에 흔히 있는 가죽나무 어린 순을 물에 데쳐 초고추장 또는 된장에 찍어 먹거나, 갖은 양념을 넣어 나물로 만들어 먹는다. 혹은 찹쌀가루 죽에 반죽을 하여 튀겨 먹기도 한다. 특유의 향이 나는 가죽나무의 학명은 참죽나무이고, 원산지는 중국이다. 붉은빛이 돌아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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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자. 간죽정(間竹亭)은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18~1487]이 1479년(성종 10)에 관직에서 물러나 처의 고향인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구림 마을에 정착하면서 세운 정자이다. 박성건은 간죽정에서 인근의 선비들을 교육하였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죽정 서원 왼쪽에 위치한다. 간죽정은 창건된 뒤 1571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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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칡넝쿨과 같이 길게 형성되었다 하여 치릿실, 치릿 또는 갈촌동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갈곡리(葛谷里)라 했다. 갈곡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비음면은 1906년에 나주군에서 영암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종오리(終吾里)와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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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원갈곡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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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해 영산강, 서남 해안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걸쳐 전승해 오는 민속놀이. 강강술래는 영산강을 중심으로 전승·발전해 온 놀이 겸 노래를 말한다. 인근 전라남도 진도, 해남 지역에 전승되던 강강술래가 1966년 2월 15일 국가 무형 문화재 제8호로 지정됨에 따라 강강술래의 중심이 진도, 해남 쪽으로 급속하게 쏠리게 되었다.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영암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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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를 일컫는 말로서 루터가 독일에서 일으킨 종교 개혁을 시발로 기독교에서 분리된 교파이다. 로마 교황청 중심의 구교[가톨릭]에 대하여 회의감을 느낀 루터가 본연의 신앙을 회복코자 종교 개혁을 일으켰으며, 이에 동참하는 교회들이 하나둘 늘어나 초기 프로테스탄트를 형성하였다. 국내 개신교는 1885년에 언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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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 개항기는 일반적으로 1876년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이후 1910년 식민 통치 체제로 전환되는 시기까지를 통칭한다. 사회적으로는 근대문물의 유입과 수용을 통해 기존의 봉건적인 지배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근대체제로 변화되어 가는 상황이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된 이후 각 나라와도 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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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를 시조로 하고 신후경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거창 신씨(居昌愼氏)의 시조인 신수(愼脩)[?~1101]는 원래 송나라 개봉부 사람이었으나 고려 문종 때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신수가 죽은 뒤 신수의 아들인 신성(愼成)이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내려가 살면서 거창 신씨의 시원이 되었다. 영암 지역의 거창 신씨는 참판공파 후손들이며, 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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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에서 고려 전기까지 활동했던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승려. 구림(鳩林) 출신으로 속성은 김씨, 자는 광종(光宗). 경보(慶甫)[869~948]는 법명이다. 아버지는 알찬(閼粲) 김익량(金益良)이며, 어머니는 박씨이다. 출생지 구림에 대해서는 영암 구림으로 보는 견해와 계림(鷄林), 즉 경주의 이칭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경보는 어려서 부인산사(夫人山寺)[현 대구광역시 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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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반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신라 박혁거세(朴赫居世) 때 아찬(阿粲)에 올랐고 32년(유리왕 9) 양산촌(楊山村) 이씨(李氏)로 사성(賜姓) 받았다고 전하는 이알평(李謁平)이 시조이다. 우리나라 이씨는 중국에서 귀화한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경주 이씨 이알평의 후손에서 분파하고 있다. 이알평의 후손에서 이개(李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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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고등학교는 중학교 교육의 기초 위에 고등 보통 교육과 전문 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교육 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나, 일반계와 실업계를 동시 운영하는 종합 고등학교도 있다. 그 외 특수 목적 고등학교인 외국어 고등학교, 과학 고등학교, 체육 고등학교, 예술 고등학교 등도 있다. 일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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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에서부터 멸망[918~1392년]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와 문화. 현재의 영암군 지역에는 고려 시대에 영암군[영암읍·군서면·덕진면 지역], 곤미현(昆湄縣)[미암면·학산면·삼호면 지역], 야로현(野老縣)[금정면과 나주 세지면 지역], 반남현(潘南縣)[시종면과 나주 반남면 지역]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중 영암군은 지금의 전라남도 서남부 지역의 거점으로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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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던 영암 고미현 서원에서 종을 주조하였던 사실을 알려 주는 고려 전기의 주종 명문. 고미현 서원 종명(古彌縣 西院 鐘銘)은 영암 고미현의 사찰인 서원에서 주조되었던 서원종(西院鐘)의 종신(鐘身)에 주조 사실을 기록한 명문(銘文)이다. 서원종은 원래 고미현의 서원에서 963년(고려 광종 14)에 주조하여 전해 왔는데 일본으로 흘러가 2013년 현재 히로시마 현[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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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흙덩이를 깨뜨리고 골을 다듬으며 씨 뿌린 뒤 흙을 골라 씨앗을 덮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 곰방메는 쟁기로 간 논밭의 흙덩이[쟁깃밥]를 두들겨 잘게 부수는 데 쓰는 농기구이다. 또 씨앗을 뿌리기 위해 쟁기로 골을 타면 곰방메로 이랑을 편평하게 고르고, 씨를 뿌린 뒤에는 흙덩이를 깨어 고르면서 씨앗을 덮는 데에도 사용한다. 곰방메로 하루 보통 약 500여 평[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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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 공공 기관은 국가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관과 지방 자치 단체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관, 기타 공공 단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영암의 공공 기관은 영암의 지방 자치 행정을 실현하기 위하여 설립 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국가에서 영암군에 설치한 공공 기관으로는 영암 경찰서, 영암 소방서, 영암 우체국,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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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광주 지방 법원 산하 등기 업무 담당 기관. 영암군 지역의 등기 사무 및 민사 소액 조정 사건과 즉결 심판을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광주 지방 법원 영암 등기소는 1914년 5월 1일에 조선 총독부령으로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 70번지에 광주 지방 법원 영암 출장소로 설치되었고, 1948년 6월 1일에 법령 제192호로 광주 지방 법원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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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1월 광주에서 시작하여 영암군을 비롯한 전국으로 확산되었던 대규모 학생 반일 운동.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 열차 안에서 한국인 통학생과 일본인 통학생 간의 충돌을 계기로 대규모 항일 학생 시위가 일어났다. 신간회와 청년 학생 운동 세력은 진상 규명과 함께 항일 투쟁의 확대를 시도하여 3·1 운동 이래 최대의 항일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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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교육 기관, 시설 및 관련 시책. 교육은 인간사회가 본디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기능이다. 사회가 있는 곳에는 교육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시 시대에는 교육 시설이 없었으며, 다만 일상생활 가운데서 생활에 필요한 범위의 지식이나 기술이 전수되고 생활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다만 원시 시대에 제사장은 일반인이 가지고 있지 못한 고도의 지식이나 제사의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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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인들의 신앙 공동체. 국내에 개신교가 태동할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 교파는 크게 미국의 장로회와 감리회로 구분되었다. 하지만 2003년 한국 세계 선교 협의회 통계 자료에 따르면 10개 교단에 63개 분파로 분열되었으며, 2008년 문화 체육 관광부에서 발간된 ‘2008 한국의 종교 현황’ 통계에 따르면 개신교 단체 수는 124개 분파로 늘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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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김완 장군의 사당과 부조묘. 김완(金完)[1577~1635]은 영암 출신의 조선 후기 무신으로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인물이다. 구고사(九皐祠)는 김완 장군의 위훈을 기리는 사당으로 김완 장군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부조묘(不祧廟)에는 보물 제1305호로 지정된 「김완 초상」이 봉안되어 있다. 구고사 및 김완 장군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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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공업 계열의 고등학교. 구림 공업 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민주 시민의 자세를 갖추어 기초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 자율적으로 학업에 정진하여 자기 지로를 개척하는 사람, 덕성을 연마하여 건전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 과학적인 사고로 기능을 익혀 최선을 다하는 사람, 건전한 정신과 강인한 체력이 조화된 사람의 육성이다. 또 구림 공업 고등학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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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돌정 고개길에 있는 공립 중학교. 구림 중학교는 옳고 바른 일에 헌신하여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협동인],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지식인], 적성과 소질을 꾸준히 계발하여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창의인],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갖고 세계 문화에 대한 식견이 넓은 사람[세계인], 환경을 깨끗이 관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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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구림 초등학교는 참된 마음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으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어린이, 소질과 취미를 살려 꿈과 개성을 키워가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어린이, 우리 고장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는 어린이로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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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무형의 문화 자원. 구비 전승이란 말로 된 문학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글로 표현된 문학인 기록 문학과 구별된다. 말로 창작되고 전승되기 때문에 전승 과정에서 계속 변하며, 그 변화의 누적으로 개별 작품이 존재하게 된다. 구비 전승의 범위로는 설화, 민요, 전설, 무가, 판소리, 속담과 수수께끼 등을 들 수 있는데, 영암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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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산리(龜山里)는 마을 뒷산이 거북이처럼 생겨서 거북 구(龜) 자에 뫼 산(山) 자를 써서 구산(龜山)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아홉 구(九) 자를 쓰는 구산(九山)으로 바뀌었다. 거북 구의 획수가 많고 쓰기가 어려워 쓰기 쉬운 아홉 구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구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이시면(北二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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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남평 문씨 문중 사우. 구암사(龜巖祠)는 1668년에 향사우(鄕祠宇)로 건립되었지만, 지금은 남평 문씨 문중의 사우이다. 2013년 현재 5위를 제향하고 있고, 배향 인물은 문극겸(文克謙)[1122~1189], 문익주(文益周)[1535~?], 서명백(徐命伯)[1678~?], 문맹화(文孟和)[1433~?], 곽추(郭樞)[1338~?]이다.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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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구암사의 소장 자료. 구암사(龜岩祠)는 1668년(현종 9) 영암의 향사우(鄕祠宇)로 창건되어 이후백(李後白)과 문익주(文益周)를 제향하다가 서명백(徐命伯)을 추배하여 삼현사(三賢祠)로 불렸다. 이후 1920년대에 문극겸(文克謙), 문맹화(文孟和), 곽추(郭樞)를 추배하였으나 1945년 이후백의 후손들이 위패를 청련사로 옮겨 현재는 모두 5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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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학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구정(九亭)의 구(九) 자와 학송(鶴松)의 학(鶴) 자를 따서 구학리(九鶴里)라는 이름을 붙였다. 구정 마을은 마을 지형이 거북과 같이 생겼고, 거북 머리가 있고 그 옆에 우물이 있어서 거북 구(龜) 자와 우물 정(井) 자를 써서 구정(龜井)이라고도 불렀다. 현재는 거북 머리도 도로 확장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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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월출산 국립 공원을 관리하는 사무소. 국립 공원 공단 월출산 국립 공원 사무소는 「자연 공원법」 제44조 및 제80조의 규정에 따라 국립 공원 관리청인 환경부 장관의 권한을 위탁받아 월출산 국립 공원의 보호 및 보전과 공원 시설의 설치·유지·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국민의 보건 및 여가와 정서 생활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월출산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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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역리에 있는 농산물 품질 검사와 농업 통계를 관리하는 행정 기관. 영암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품질 관리 및 검사·유통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국립 농산 품질 관리원 전남 지원 영암 출장소는 1932년 10월 1일에 조선 총독부 곡물 검사소 영암 출장소로 출범하여 광복 이후인 1949년 1월에 농산물 검사법 제정에 따라 농산물 검사소 영암 출장소로 명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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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춘양리에 있는 국민 건강 보험 공단 광주 지역 본부 소속 지사. 국민 의료 보험 공단 영암 장흥 지사는 영암군민의 질병 부상에 대한 예방, 진단, 치료, 출산, 사망 및 건강 증진에 대하여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63년 12월에 의료 보험법이 제정되고, 1988년 1월부터 농어촌 의료 보험 확대 실시에 따라 영암군 의료 보험 조합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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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낭주 최씨 문중 사우. 국암사(國岩祠)는 1972년에 세워진 낭주 최씨(朗州崔氏)의 문중 사우로, 최지몽(崔知夢)[907~987], 최안우(崔安雨)[1361~?], 최진하(崔鎭河)[1600~1673], 최몽암(崔夢嵒)[1718~1802]을 배향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낭주[영암의 옛 이름]를 본관으로 하며, 영암 지역에 거주하였던 인물들이다.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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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천주교 공소. 군서 공서는 2004년 1월에 영암 성당 주임이었던 최민석[첼레스티노] 신부와 배상권[베드로] 선교사가 영암군 군서면 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 공동체 건설을 계획하면서 시작되었다. 군서 공서는 2004년 7월에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8-92번지 건물 2층을 임대하여 성전으로 이용하였고, 8월 1일에 공소 설립 인가를 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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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영암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이다. 1939년 진행된 간척 사업으로 인해 넓은 해수면이 농토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의 서쪽 첫머리여서 서시면(西始面)이라고 하였다. 성지천(省之川) 등 34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 1898년(광무 2) 지방 행정 개편에 따라 서종면(西終面)의 서호정(西湖亭) 등 19개 마을을 병합하고, 영암군의 서쪽이므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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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에 있는 군서면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의 읍[영암읍·삼호읍], 9개의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군서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군서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조선 정조(正祖) 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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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에 있는 산성 터. 궁성산성(弓城山城)에 대한 문헌 기록과 일제 강점기까지의 조사 기록은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궁성산성이 있었던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 때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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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수확한 벼의 알곡을 훑는 데 쓰는 농기구 그네는 주로 수확한 벼[나락]의 알곡을 훑는 데 쓰이는 농기구다. 그네가 표준말이지만 대부분의 농가에서 홀태라 부르고 있다. 지방에 따라서 경기도 덕적에서는 기네·베훌깨, 충청북도 봉양에서는 훌챙이·치개, 충청남도 서산에서는 청치기개·찌개·첨치, 경상북도 안강에서는 호리깨, 전라북도 봉동에서는 벼훑이라고 부른다. 일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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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식 교육. 일제는 민족 교육을 약화시키기 위해 조선 교육령, 사립 학교 규칙, 서당 규칙을 공포하여 민족 교육을 하는 학교와 야학 등을 탄압하고 약화시켰다. 이와 더불어 1910년대 6면 1교제, 1920년대 3면 1교제, 1930년대 1면 1교제 등 기만적인 공립 보통학교 설립 정책을 통해 우리 민족의 교육 열기를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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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금강리에 세거하고 있는 광산 김씨 집성 마을.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인 신무왕(神武王)의 셋째 아들 김흥광을 시조로 한다. 김흥광은 고려가 삼한을 통일하자 경주를 떠나 무진주(武珍州) 서일동(西一洞)[지금의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은거함으로써 광산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 후 고려 태조가 김흥광을 광산 부원군(光山府院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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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강리(錦江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산리(錦山里)의 금(錦) 자와 강정리(江亭里)의 강(江) 자를 따서 개설되었다. 금산 마을은 마을 뒤쪽에 금성산이 있어 마을 이름을 금산이라 하였다. 강정 마을은 영암천과 금강천에 둘러싸여 있어 강 강(江) 자와 정자 정(亭) 자를 붙여서 강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금강리는 1914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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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금계(金鷄)라는 새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 형국의 등성이와 뒤편으로는 영산강이 흐르고 있어 금강(錦江) 마을이라 칭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영산강 물이 비단처럼 맑고 깨끗해 금강(錦江)이라 칭했다는 설이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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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 중 윤금(潤金)의 금(金) 자와 계천(溪川)의 계(溪) 자를 따서 금계리(金溪里)라 했다. 금계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초안(草岸), 초동(草棟), 윤금, 신풍(新風), 계천 지역이 병합되어 곤이시면 금계리로 개설되었다.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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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에 있는 해주 오씨 집성 마을. 해주 오씨(海州吳氏)의 시조는 고려 성종 때 중국에서 건너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오인유(吳仁裕)이다. 금계리 해주 오씨 집성촌은 오찬주가 지금의 초안(草岸) 마을에 정착한 이후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금계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윤금리(潤金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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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소재하고 있거나 이전에 소재하였던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글씨. 금석문(金石文)은 글자 그대로 쇠붙이와 돌에 새겨진 글씨를 의미하는데, 근래에는 포괄적으로 금속이나 돌뿐 아니라 나무와 그릇 또는 기와 등에 새겨진 글씨와 그림 등도 아울러 일컫는다. 금석문은 긴 세월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록자의 신원과 연대가 표기된 경우가 많고 중앙 중심의 문헌 자료를 보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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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생금(生金)[캐낸 그대로의 금], 생수(生水)가 많이 나와 쇠 금(金)과 물 수(水)를 따서 금수리(金水里)라 했다. 금수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으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평류동(坪柳洞), 화정리(花亭里), 만년리(萬年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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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영나로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생활 습관이 바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학생, 기초 기본 능력을 갖춰 창의력을 기르는 학생, 개성과 소질을 살려 새롭게 생각하는 학생, 튼튼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가꾸어 가는 학생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고운 마음을 가꾸며 바른 행동을 실천하는 금정 어린이이다. 1923년 10월 1일 금정 공립 보통학교로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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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금정면(金井面)은 조선 시대 나주군의 금마면(金磨面)과 원정면(元井面) 지역이었다. 1895년 영암군으로 편입되고, 그 후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마면의 금(金) 자와 원정면의 정(井) 자를 따서 금정면이라 했다. 금마면은 사금(砂金)이 많이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남송(南松)을 포함하여 57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었다. 원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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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용흥리에 있는 금정면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 읍[영암읍·삼호읍]과 9개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금정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금정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금정면은 본래 전라남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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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내리(錦內里)의 금 자와 달지리(達池里)의 지 자를 따서 금지리(錦池里)라고 하였다. 금내리는 원래 나주군 종남면(終南面)의 소재지로 종남(終男), 본촌(本村), 금내, 금지라고도 불렸다. 금지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군 종남면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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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대기 현상의 평균적인 상태. 영암군은 서해와 가까운 한반도 서남단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 여름에는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의 특성을 보이고 겨울에는 온난 건조한 온대 동계 건조 기후대의 특성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기후구에서는 온대 기후구의 남부 서안형(南部西岸型)에 속한다. 영암군에는 기상 관측소가 설치되지 않아 기후 자료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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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 증조할아버지는 김진(金軫)이고 할아버지는 판관(判官)을 지낸 김광후(金光厚), 아버지는 병조 판서에 추증된 김견(金堅)이다. 군기시 첨정을 지낸 김홍발(金弘發)이 형이다. 김경발(金景發)[1597~1624]은 1622년(광해 14)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병절교위를 거쳐 녹도 만호를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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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출신의 국악인. 김병호(金炳昊)[1910~1968]는 본관이 김해(金海)이고 호는 금암(錦巖)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서 김기봉과 박연례의 차남으로 태어나, ‘김병호류 가야금 산조’라는 독자적인 유파를 창시한 가야금 산조 명인이다. 김병호는 한학을 배우던 1915년 무렵에 같은 고향 사람인 김창조(金昌祖)[1856-1919]의 문하에서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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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언론인이자 한반도 평화 통일 운동가. 김삼규(金三奎)[1908~1989]의 호는 형석(馨石)이고,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서 태어나 영암 공립 보통학교를 다녔다. 1920년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 생활을 하였으며, 1931년에 일본의 도쿄 제국 대학[東京帝國大學] 독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광복 후 『동아 일보』에서 근무하였고, 퇴사 후 일본에서 한반도 중립화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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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효자비. 김상순(金商順)은 경주 김씨(慶州金氏) 김병희(金秉喜)의 아들이고 백촌 김문기의 후손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김상순의 효성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고 칭찬하며 지역 유림들이 효자비를 세웠다. 김상순 효자비(金商順 孝子碑)는 1925년에 건립되었다.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 천해 마을에 있다. 김상순 효자비는 갓석과 지대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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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에 유배 온 문신.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이다. 서인으로서 2차례의 예송(禮訟) 때 남인과 대립했다. 1675년(숙종 1)에 남인인 윤휴(尹鑴), 허적(許積), 허목(許穆) 등의 공격으로 관직을 빼앗겨 전라도 영암에 유배되었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했던 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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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시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김시혁(金時爀)은 순조 대 사람으로 호는 송은(松隱)이며, 김덕양(金德陽)의 후손이다. 김시혁 정효문(旌孝門)은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신송 마을에 있다. 구송 마을에서 신송 마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2013년 현재 김시혁 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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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 있는, 1868년 김시혁이 백성을 구제한 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김시혁(金時爀)은 본관이 김해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며 진사(進士)이다. 김시혁은 유순한 성격을 가졌고 부모를 잘 섬겼으며, 백성을 구제하고 폐단을 개혁하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김시혁 제민 불망비(金時爀 濟民 不忘碑)가 있는 신송 마을은 윗마을인 구송 마을과 함께 송간(松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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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구고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완의 초상화. 「김완 초상(金完 肖像)」은 조선 시대 무관인 김완(金完)[1577~1635]의 초상으로 좌안 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상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김완 초상」은 진무공신 책록 시 공신도상으로 1634년(인조 12) 도화서(圖畵署)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완 장군의 사당인 구고사의 영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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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완 장군의 묘와 신도비. 영암군 시종면에 조성된 김완(金完)[1577~1635]의 묘와 신도비이다. 1979년 8월 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영암 출신의 무신인 김완은 정유재란 때 활약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1624년(인조 2)에 발생한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올랐다. 이어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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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원식(元植), 호는 노체정(老體亭)이다. 김해 김씨 중시조인 도사공(都事公) 김휘연(金諱連)의 17세손이다. 김인신(金仁臣)[1775~?]은 1799년(정조 23) 24살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위도 첨사(蝟島僉使),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을 지냈다. 1805년(순조 5)에 만경현[현 전라북도 김제시] 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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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겨울부터 봄까지 먹을 김치 등을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조리법으로 담그는 일, 또는 그렇게 만든 음식. 영암군에서는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철에 먹기 위해 영암군에서 생산되는 무나 배추 등의 채소와 각종 젓갈을 이용하여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조리법으로 김치를 담근다. 이렇게 김치를 담그는 일, 또는 담근 김치를 김장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김치가 문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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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조경학자. 김장수(金樟洙)[1919~2004]는 영암군 금정면에서 태어났으며, 수원 농림 전문학교[현 서울 대학교 농과 대학]와 일본 교토 대학교(京都大學校) 농학부를 졸업한 후 한국의 조경학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김장수는 1953년 고려 대학교에 임학과를 창설하였고, 1985년 정년이 되어 고려 대학교 교수직을 퇴임했다. 재직 시절 고려 대학교 농과 대학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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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육군 장성. 김종관(金鍾悹)은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출신으로, 대한민국 육군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김종관은 단국 대학교 정치학부 법률학과를 졸업한 뒤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인 조선 경비대에 입대하였다. 조선 경비대는 1946년 1월 15일 남조선 국방 경비대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어 그해 6월 15일에 조선 경비대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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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가야금 유파를 창조한 국악인. 김죽파(金竹坡)[1911~1989]는 영암 출신으로, 본명은 김난초(金蘭草)이다. 가야금산조의 명인이자 처음으로 가야금 산조의 틀을 짰다고 일컬어지는 김창조(金昌祖)의 손녀이다. 본관은 김해(金海), 예명은 김운선(金雲仙)이다. 여덟 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할아버지 타계 후 11세부터 13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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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6·25 전쟁 때 전사한 김준병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11월 4일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학산 지서에 보안 주임 경위 김준병 등의 주력 부대와 완도·진도에서 진주한 경찰 약 30명, 의경, 청년 단체 등 6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각 시군에서 집합된 북한군 100여 명이 지서를 습격할 목적으로 기습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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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관료이자 농업 경제학자. 김준보(金俊輔)[1915~2007]는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西南里) 출신이다. 일본 규슈 제국 대학[九州帝國大學] 농학부를 졸업한 후 일제 강점기 말에 관료를 지냈고, 여러 대학에서 농업 경제학자로 활동하였다. 김준보는 1941년 일본 규슈 제국 대학 농학부를 졸업한 후 일제 강점기 말에 조선 총독부 광공국(礦工局)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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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김준연(金俊淵)[1895~1971]은 영암 출신이며, 독립운동 당시 본적은 전라남도 영암군 서남리(西南里) 32번지이다. 일제 강점기에 언론 활동을 통한 항일 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 정계에 진출하여 국회 의원과 법무부 장관 등을 지냈다.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낭산(朗山)이다. 아버지는 김상경(金相逕)이며, 어머니는 청주 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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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행정 관료. 김준혁(金俊爀)[1912~?]은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출신으로, 1940년에 경성 제동 공립 심상 소학교(京城劑洞公立尋常小學校)를 졸업하였다. 전라남도 곡성 군수, 화순 군수, 무안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김준혁은 전라남도 내무국 지방과 주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영암·영광·장성에서 내무과장, 전라남도청에서 공보과장·상공과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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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근대 시기 가야금 산조의 명인. 김창조(金昌祖)[1856~1919]는 영암읍 회문리 출신으로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악성(樂聖)이다. 세습 율객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적 소질은 천부적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공교육을 통해서 음악을 배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8세 무렵부터 가야금 수업을 시작하였고 그 솜씨가 탁월하여 많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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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무관 김함의 묘에서 출토된 장례 복식류 17건. 김함의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4월 15일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해 김씨 문중 선산 묘역을 재정리·확장하기 위하여 이장하던 중 무관 김함(金涵)[1568~1598]의 묘에서 출토된 장례 복식류 일괄 유물 17건을 일컫는다. 출토 당시 김함의 시신 대신 나무로 시신 형상을 만들어 염습(殮襲)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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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을 시조로 하고 김한성(金漢城)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김해 김씨는 조선 중기에 영암 지방에 입향한 성씨로, 영암군 서호면 일대에 집거하고 있다. 입향조 김한성의 증손인 김완(金完)이 영암 향안 중수 작업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김극희(金克喜), 김함(金涵), 김여옥(金汝沃) 등 다수의 인물이 국란을 당하여 창의하거나 군공을 세웠다. 김극조·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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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김성린·김정묵·김상윤 세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과 비각. 김해 김씨 삼효문(金海 金氏 三孝門)은 김해 김씨 문중의 김성린(金成鱗)과 그의 아들 김정묵(金正默), 김상윤(金相奫)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87년(고종 24)에 건립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죽정 마을에 있다. 영암에서 구 도로로 군서로 향하다 보면 회전 차로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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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천주교 단체의 부설 농장. 까리따스 수녀회는 일본에서 포교 활동을 펼쳤던 몬시뇰 빈체시오 치마티 신부와 안토니오 가볼리 신부에 의하여 1937년 일본 미야자키에서 처음 설립되었다. 이후 1956년 당시 천주교 광주 대교구장이었던 현 하롤드 몬시뇰의 요청으로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입회한 선교 수녀가 파견되면서 까리따스 한국 지부의 선교 활동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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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영산강 하굿둑 공사 전까지 나불리(羅佛里)는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나불도(羅佛島), 외도(外島), 문도(文島, 門島), 계도(鷄島), 오가리섬[吾可里島] 중에서 제일 크고 중심인 섬이 나불도인데, 1914년 중심이 되는 이 섬의 명칭을 따서 나불리(羅佛里)라 했다. 나불도라는 명칭은 섬의 모양이 나발같이 생겨서 나불도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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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금의 전라남도 영암군이 속했던 행정 구역. 나주목은 983년(성종 2) 전국에 설치된 12개의 목(牧) 중 하나이다. 1018년(현종 9)에 지방 제도를 완비하면서 12목을 8목으로 조정할 때에도 주목(主牧)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암군은 나주목의 영군(領郡)이었다. 영암은 지방 제도가 재정비되던 성종 때에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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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저두리(猪頭里), 매산리(梅山里), 난대리(蘭臺里), 도음전(道音田), 윤덕리(允德里), 검길리(檢吉里), 당두리(堂頭里)를 병합하면서 난대리의 난(蘭) 자와 도음전의 전(田) 자를 따서 난전리(蘭田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이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곤일종면 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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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전승되고 있는 대표적인 논일 노래.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서 전승되어 온 「영암 갈곡리 들소리」는 영산강 유역인 나주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농요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나주 루트를 통해서 동쪽 화순 지역의 세화자 소리 및 북쪽 장성군의 장원질 소리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으며, ‘우야 헤헤야’ 소리라는 풍장소리를 창출해 낸 영산강 하류 문화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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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곤미현(昆湄懸)의 남쪽 산 밑에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하여 남산(南山)이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남산리(南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남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는데,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쳐서 곤일시면(昆一始面)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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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송리(南松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이 지역의 옛 이름이었던 남송(南松)에서 이름을 따 왔다.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으로 남송이라고 불렸으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입석리(立石里), 지초리(芝草里), 용반리(龍盤里), 요동(堯洞), 반계리(盤溪里), 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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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었던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남송리(南宋里) 반계(盤溪) 선돌은 ‘선독거리’로 불리기도 하며,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해 세워졌다. 마을 입구에 위치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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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인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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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용반 마을은 50호(戶), 반계 마을은 15호, 인곡 마을은 20호 정도였지만, 2013년 현재는 용반 마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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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맹화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제20대 왕인 자비 마립간 때의 인물로 남평현[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출신이었다.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진지왕 대에 걸쳐 고위 관직을 지내고 남평 문씨(南平文氏)의 시조가 되었다. 문맹화(文孟和)[?~1487]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처인 서흥 김씨(瑞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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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제의를 행하던 신사의 터. 남해당지(南海堂址)는 남해신사(南海神祠)의 제의를 행하던 신사 터로, 고려 시대 전라남도 지방의 국가 제사 중의 하나를 모시던 곳이다. 조선 시대의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국사(國祀)를 모신 삼대 해신사(海神祠)를 기록하고 있다. 동해를 수호하는 동해묘(東海廟)를 강원도 양양에, 서해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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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지금의 영암 지역인 낭주에 설치되어 1012년(현종 3)까지 유지되었던 지방 행정 단위. 낭주 안남 도호부(朗州安南都護府)는 고려 940년(태조 23)에 처음 등장한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가 995년(성종 14)에 지금의 영암군에 해당하는 낭주(朗州)에 옮겨 설치된 것이다. 1012년(현종 3)에 고부(古阜)로 옮겨갈 때까지 약 17년간 영암을 거점으로 서남 해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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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흔을 시조로 하고 최진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영암군에 기반을 둔 낭주 최씨(朗州 崔氏)는 신라 말 인물인 최흔(崔昕)을 시조로 하였다. 최흔의 아들 최지몽(崔知夢)[907~987]은 구림[현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서 태어나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서 고려 개국에 힘썼다. 최지몽이 죽은 뒤 신라계가 고려 왕실의 주도권을 가진 후부터 동족 기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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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리는 낮은 산의 안쪽이라 하여 안굴[내동]이라 하였다. 내동리 쌍무동 마을은 내동리의 으뜸 마을로서 주변에 고분인 쌍무덤이 있어 마을 이름이 붙었다. 내동리는 본래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이었다. 조선 고종 32년(1895)에 영암군에 편입되어 시종면 내동리라 명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도군의 화산리(花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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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노동 마을에 있는 밀양 김씨 유남공파의 사우. 1936년에 밀양 김씨(密陽金氏) 김병규(金炳圭)가 선조를 배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祠宇)로 김견을 중심으로 김경발, 김종환을 배향한다. 김견(金堅)[1565~1608]의 자는 중실(仲實), 호는 신제(愼齊)로, 1585년에 무과에 올랐고, 임진왜란 때 의거(義擧)하여 이순신의 휘하에서 당항포 대첩과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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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송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류천리(柳泉里), 송외리(松外里), 송내리(松內里), 노노리(老老里), 홍암리(紅岩里), 부항리(夫項里), 신동리(新東里), 옥동리(玉洞里)를 병합하면서 노노리의 노(老) 자와 송내리의 송(松) 자를 따서 노송리(老松里)라 하였다. 송내리는 1438년 연촌 최덕지가 남원 부사를 사직하고 귀향하여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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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거창 신씨 집성 마을. 영암의 거창 신씨(居昌愼氏)는 신수(愼脩)[?~1101]를 시조로 하고 신후경(愼後庚)을 입향조로 한다. 신후경이 전주 최씨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사위로 덕진면 영보리에 입향하면서 영암 지역에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신희남(愼喜南)[1517~1591], 신천익(愼天翊)[1592~1661] 등 화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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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역리 영암 공원에 있는 김인신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노체정 영당(老體亭 影堂)은 김인신(金仁臣)을 기리는 영당이다. 김인신의 본관은 김해, 자는 원식(元植), 호는 노체정(老體亭)이다. 영암 출신으로 도사공 김련의 후손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였으며 사서오경을 통달하고 무예가 출중하여 순조 때에 무과에 올라 위도 첨사와 오위부의 여러 관직을 거쳤고 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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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액 서원. 녹동 서원(鹿洞書院)은 원래 존양사(存養祠)라는 이름으로 1630년(인조 8)에 건립되어 1713년(숙종 39)에 ‘녹동(鹿洞)’이라는 사액을 받은 영암 유일의 사액 서원이다. 창건 당시에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를 배향하다가, 1665년(현종 6)에 최덕지의 손자인 산당(山堂) 최충성(崔忠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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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농민들이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식적, 조직적으로 전개하는 사회 운동. 직접 농업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들이 지배 계급이나 국가에 대한 저항을 벌이는 일은 고대부터 자주 있었지만, 농민 스스로 자신의 독자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싸우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였다. 1894년의 동학 농민 운동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봉건적 수탈로부터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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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대불 초등학교는 생활 습관이 바르고 배려·봉사 생활을 실천하는 어린이[인성인],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키워가는 어린이[창의인], 자기 소질의 계발을 위하여 노력하는 어린이[재능인], 규칙적인 운동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으로는 ‘소통과 협력으로 격려, 칭찬, 사랑을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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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승려. 대우(大愚)[1676~1763]는 어머니 이씨(李氏)가 임신하였을 때 푸른 새가 어깨 위로 날아와 앉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미간에 하얀 털이 있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성장하면서 모든 일을 슬기롭게 해결하여 신동 소리를 들었다. 소년 시절에 우는 새소리를 듣고 발심하여 출가를 하였다. 대흥사에 기거하며 불도를 닦았는데,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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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대한 적십자사 봉사회 소속 영암군 지부에 협력하는 사회봉사 단체. 대한 적십자사는 1905년에 설립되었다. 이후 1919년에는 상해 임시 정부 하에서 독립권과 재외 거주 동포를 위한 인도적 활동을 전개하였고 1950년 6·25 전쟁에서는 수많은 피난민 구호에 앞장섰다. 4·19 혁명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도 중립적 입장에서 인도주의적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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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는 낭주 최씨 문중의 재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으며 국암사 옆에 위치한다. 덕성당(德星堂)은 낭주 최씨(朗州崔氏) 문중의 재실로 창건 연대나 창건 주체자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1940년에 중건되었다. 1972년에 낭주 최씨 선조이자 고려 개국 공신인 최지몽(崔知夢)[907~987], 최안우(崔安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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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덕진 초등학교는 기본 학력을 다지며 새로운 생각을 키우는 어린이를 기른다[智]. 건강한 몸을 만들며 튼튼한 체력을 기르는 어린이를 기른다[體]. 기본 예절을 지키며 넉넉한 마음을 다듬는 어린이를 기른다[德]. 자기 소질을 찾으며 남다른 특기를 가꾸는 어린이를 기른다[技]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과 행복을 가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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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안모실을 내촌(內村)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정(新亭), 교변(橋邊) 마을과 통합하면서, 덕진 다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진리(德津里)라고 하였다. 예전에 주막을 경영하던 덕진이라는 과부가 이 지역에 다리가 없어 많은 행인들이 불편한 것을 보고 푼푼이 모아 둔 돈을 모두 털어 큰 돌로 다리를 놓았고, 여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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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행정면. 덕진 다리[德津橋] 전설과 전해지는 덕진리가 면소재지가 되면서 덕진면(德津面)이라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 주막을 경영하던 덕진이라는 과부가 이 지역에 다리가 없어 많은 행인들이 불편한 것을 보고 푼푼이 모아 둔 돈을 모두 털어 큰 돌로 다리를 놓았고, 여인의 이름을 따서 다리에 덕진교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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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에 있는 덕진면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 읍[영암읍·삼호읍]과 9개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덕진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덕진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덕진면은 일제 강점기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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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인덕리(仁德里)의 덕 자와 완화리(完化里)의 화 자를 따서 덕화리(德化里)라 부르게 되었다. 인덕 마을은 마을 앞에 개울이 있었으며 어질고 덕이 많은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해서 인덕(仁德) 마을이라고 하였다. 완화 마을은 구러리, 구래울, 구유월, 완화, 완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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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갑사(道岬寺)의 이름을 따서 도갑리(道岬里)라고 부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영암군 서종면(西終面)의 선인동·평리·선장리·죽정리·동구와 서시면(西始面)의 탑동 일부를 병합하여 군서면 도갑리를 개설하였다. 도갑리는 오래 전부터 사람이 거주한 역사가 오랜 지역이다. 죽정 마을은 고인돌이 남아 있고, 옛 기와 조각과 댓돌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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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에 있었던 석장생. 도갑리(道岬里) 석장생(石長生)은 주민들에게 ‘석장승’이라 불리기도 하며, 글씨의 흔적이 보인다. 1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잡귀 방지 및 사찰 수호의 역할을 하였다 월출산 안내도에 따르면 도갑리 석장생은 원래 도갑리 해탈문 앞에 흐르는 계곡 건너편 주차장 앞에 있었다. 그러다가 해탈문 입구의 100m 앞 밭 가운데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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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 세워진 수미 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한 비. 도갑사 수미 왕사비(道岬寺 守眉 王師碑)는 1633년에 영암군의 도갑사에 세워진 비석으로 조선 세조 대 왕사(王師)를 지낸 묘각 화상(妙覺和尙) 수미(守眉)의 행적과 도갑사 중창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세조 대 흥불 정책의 상징적 인물인 수미와 왕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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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에 있는 산성 터.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옛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군서면(郡西面)에는 성묘산 정상부에 위치한 성묘산성(城妙山城)과 월출산 죽순봉의 가지 능선 상에 위치한 도갑산성(道岬山城) 등 2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도갑산성이 있는 군서면은 영암읍 및 덕진면(德津面) 지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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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곡물이나 채소 따위의 농산물을 말리는 데 사용하는 자리. 도래방석은 탈곡한 곡물이나 채소 따위의 농산물을 말리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 자리를 말한다. 지방에 따라서 경상남도 양산에서는 방석, 전라남도 구례에서는 도트레방석, 전라남도 보성에서는 두리방석처럼 다르게 부른다. 『과농소초(課農小抄)』에서는 한문으로 소석(小席)이라 했다. 생김새가 둥글다고 해서 ‘도래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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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영암 출신의 승려. 법휘는 도선(道詵), 시호는 요공(了空), 선각(先覺). 속성은 김씨(金氏)이며 영암에서 출생하였다. 신라 흥덕왕 원년인 826년에 출생하였고, 15세에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다가 20세에 선종으로 개종하고 동리산파 개조인 혜철(惠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863년(헌안왕 4)부터 35년간 백계산(白谿山) 옥룡사(玉龍寺)에 주석하며 제자들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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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 국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서 매년 개최하는 문화행사. 도선 국사는 영암군이 배출한 신라의 4대 고승이자 풍수지리의 대가이다. 도갑사에서는 매년 가을 도선 국사의 탄신을 기념하고, 도선 국사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기 위한 문화 행사로 도선 국사 문화 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도선 국사의 탄신을 기념하기 위해 880년 통일 신라 때 도선 국사가 창건한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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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리촌의 도(道)자와 장사리의 장(長)자를 따서 도장리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시면(西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리촌(道理村), 장사리(長沙里), 가내말(可乃末)을 병합하여 군서면 도장리를 개설하였다.도리촌 마을을 도장리 1구로, 장사리 마을을 도장리 2구로 운영하고 있다. 도리촌의 입향은, 박민우가 무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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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영호리에 있는 천주교 공소. 도포 공소는 한센병에 걸린 나환우 신자의 정착촌에 설립된 공소로, 5~6명의 신자가 모여 가정집에서 미사를 거행한 것이 시작이다. 1973년 8월 영암 성당에 부임한 외국인 주임 신부 우 프란치스코가 신자들로부터 성전 건립 기금을 모금하였으며, 천주교 광주 대교구의 지원을 받아 1973년 10월 4일에 도포 공소 건물을 건립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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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원항리에 있는 기독교 대한 성결회 소속 교회. C. E. 카우맨과 E. A. 킬버른 등이 1901년 일본에 동양 선교회를 세웠다. 동양 선교회를 1907년 5월 30일에 졸업한 김상준(金相濬), 정빈(鄭彬)이 경성 염곡[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가]에 동양 선교회 복음 전도관이라는 전도관을 세우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의 성결 교회가 독립된 교파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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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덕화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건전한 생활 습관 향상으로 더불어 사는 어린이[도덕인], 기초·기본 학력을 익혀 새롭게 탐구하는 어린이[창의인], 소질과 취미를 계발하여 개성을 가꾸는 어린이[개성인], 체육·보건의 생활화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더불어 배우며 미래를 일구는 어린이’이다. 1925년 4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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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영호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분교장. 도포 초등학교 영농 분교장은 건전한 생활 습관 향상으로 더불어 사는 어린이[도덕인], 기초·기본 학력을 익혀 새롭게 탐구하는 어린이[창의인], 소질과 취미를 계발하여 개성을 가꾸는 어린이[개성인], 체육·보건의 생활화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를 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교훈은 ‘더불어 배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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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포리는 도싯개, 도삿개, 또는 도시포, 도포라고 하였다. 도포리의 동쪽에 있는 동도포 마을 뒷산인 저산(猪山)[37m]의 한글 이름이 돛뫼이다. 이 돛뫼 밑 개[浦]를 돛개라 하였으며, 한자로 옮기면서 도포(都浦)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도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나포리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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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남도 영암군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도포만 연안의 넓은 간석지를 방조제로 막아서 간척지를 형성하고 있다. 도포면(都浦面)은 도포리(都浦里)가 있어 유래한 이름인 듯하다. 도포리는 도싯개, 도삿개, 도시포, 도포라고 했다. 도포리의 동쪽 동도포 마을에는 저산(猪山)[37m]이 있는데, 한글로는 돛뫼이다. 돛뫼 밑 개[浦]를 돛개라 하였으며,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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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구학리에 있는 도포면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 읍[영암읍·삼호읍], 9개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도포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도포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도포면은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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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지방에서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반대한 개인과 단체의 저항 운동. 전통적으로 영암은 전라도 지역 교통의 요지이며 물산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그만큼 일본 제국주의 자본의 주요한 침투 대상으로, 강한 경제적 침략의 위협 아래 놓여 있었다. 여기에다 일찍부터 사족의 문화가 발달하고 일제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활동이 활발한 고장이었던 만큼 항일 운동의 전통도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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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한 전라남도 영암군의 인물. 영암 지역에서는 조선 말기부터 식민 통치가 이루어진 일제 강점기에 걸쳐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이어졌다. 국가 보훈처로부터 독립 유공자로 지정받은 인물가운데 영암과 관련된 인물은 총 63명이며, 이 가운데 39명이 영암 출신일 정도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되었다.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은 의병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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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천주교 성당. 영암군 학산면은 교통량이 많고 독천리에는 독천 초등학교, 영암 낭주 중학교, 영암 낭주 고등학교, 동아 보건 대학교 등 교육 시설들이 있어 다른 읍면에 비하여 상권이 발달하였으며, 학생 인구가 많은 곳이다. 이러한 특성과 학산면 천주교 신자들의 적극적인 포교 활동을 통하여 영암 성당의 관할 공소에서 2007년 1월 독천 성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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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독천 초등학교는 고운 품성을 지닌 착한 어린이[도덕적인 사람], 기초·기본을 갖춘 실력 있는 어린이 [창의적인 사람], 이웃과 더불어 즐겁게 생활하는 어린이[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 몸과 마음이 건강하며 자긍심을 지닌 어린이[건강한 사람]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더 높이, 세계로, 미래로’이다. 1946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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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마을의 하천변에 소시장에 크게 열려 송아지 독(犢) 자와 내 천(川) 자를 써서 독천리(犢川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독천리는 조선 시대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산직촌(山直村), 덕수정(德水亭), 벽계동(碧溪洞), 구흥동(九興洞), 영복리(永福里), 광산리(光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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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해주 최씨 문중 사당. 동계사(東溪祠)는 최충, 최만리, 최경창, 최석징, 최치헌 등 해주 최씨(海州崔氏)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최충(崔沖)[984~1068]의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이고, 해주 대녕(大寧) 사람이다. 고려 목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나이가 많고 덕이 높은 사람으로서 정치를 논하고 국사를 경륜하여 국가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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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군서면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남쪽은 학산면 용산리, 서쪽은 군서면 서구림리, 북쪽은 성양리, 동쪽은 도갑리와 인접해 있다. 자연 마을은 구림 마을, 동계 마을, 법석골 마을, 신근정리 마을, 쌍와촌 마을, 학암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구림(鳩林)이라는 지명은 도선 국사의 탄생과 관련 있다. 신라 때 성기동 최씨원(崔氏園)에 사는 최씨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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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 마을에 있는 현대 순교비. 동구림리 구림 순교비(東鳩林里 鳩林 殉敎碑)는 6·25 전쟁 당시 희생된 기독교인 82명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1950년 6·25 전쟁의 발발과 함께 전라남도 영암 지역도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1950년 10월 4일 영암까지 내려온 북한군은 먼저 행정권과 치안권을 장악하고, 읍내 교회당을 방화하거나 파괴하였다. 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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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해주 최씨 집성 마을. 해주 최씨(海州崔氏)는 시조를 최온(崔溫)[?~1268]으로 하고, 최석증(崔碩曾)을 입향조로 하여 군서면 동구림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고 있다. 최온은 벼슬이 판이부사(判吏部事)에 이르렀으며, 해주(海州)의 목민관(牧民官)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누대에 걸쳐 그곳에 세거하면서 해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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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전문 대학. 동아 보건 대학교의 건학 이념은 애향(愛鄕)·애국(愛國)을 위하여 기술 인재 교육을 통한 국가와 지역 사회에 이바지할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데 있다. 설립 목적은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에 입각한 최고의 전문 교육을 하는 것이다. 교훈은 ‘하늘을 공경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동아 인재인[경천애인(敬天愛人)]’이다. 교육 목표는 산업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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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호리에 있는 탐진 최씨 집성 마을. 탐진 최씨(耽津崔氏)의 시조는 최정(崔靖)의 아들 최사전(崔思全)[1067~1139]이다. 영암의 탐진 최씨는 효노파 진사공파 후손들로 돈재 최대천이 입향한 이래 지금까지 세거해 오고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서종면(西終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에 당시 동변리(東邊里)와 서시면(西始面)의 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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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산강 지류의 동쪽에 호수처럼 생긴 반도라 하여 동호리(東湖里)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종면(西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종면의 동변면(東邊面)과 서시면(西始面)의 지남(指南), 탑동(塔洞)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군서면 동호리로 개설되었다.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동강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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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서호리(西湖里) 동쪽에 위치하여 동호리(東湖里)라 하였다. 동호리는 조선 시대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동역리(東驛里), 동변리(東邊里), 감치리(甘峙里), 백야리(白也里)를 병합하여 동호리로 개설되었다. 1917년 곤일종면이 삼호면(三湖面)로 이름을 바꾸면서 삼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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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전승된 전통적인 농사 공동 작업 조직. 두레는 조선 중기 이후 이앙법이 보편화되면서 마을 단위로 조직되어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따라서 영암 지역만의 독특한 구성 특색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두레 조직을 말할 때는 농사 협업체인 두레와 남성들의 두레삼, 여성들의 길쌈 두레 등이 소개된다. 영암 지역에서는 논농사 조직인 만두레와 삼베 조직인 두레삼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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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두억봉[도산천] 밑이어서 두억리(斗億里)라 하였다. 두억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월정리(月亭里), 수산리(水山里), 학평리(鶴坪里), 청현리(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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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두억리 수산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수산 마을에서는 두억리(斗億里) 수산(水山) 선돌을 ‘선독’이라고도 부른다. 두억리 수산 선돌은 질병이 돌던 해에 주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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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두억리 장수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장수 마을에서는 선돌을 ‘선바우’ 또는 ‘선독’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나쁜 일이 없고 질병을 막기 위해 두억리(斗億里)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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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발로 디디어 곡식을 찧거나 빻는 데 사용했던 농기구. 디딜방아는 디디는 방아다리가 하나인 외다리방아와 둘인 양다리방아가 있다. 방아채의 앞머리 부분에는 공이가 달려 있어서 돌로 만든 확 속의 곡식을 찧거나 껍질을 벗기는 구실을 한다. 즉 방아다리를 디뎠다 얼른 놓는 서슬에 내려쳐진 공이의 힘으로 곡식을 찧거나 왕겨를 벗기는 것이다. 또 공이 끝에는 용도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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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청용리 동산 마을에 있는 산성 터.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을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나주목(羅州牧)에 편입된 이래 조선 시대까지 계속 나주목 소속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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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말처럼 생긴 산 밑에 있다 하여 말 마(馬) 자와 뫼 산(山) 자를 써서 마산이라 하였다. 17기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 서시면(西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목천(五木川), 오산(蜈山), 잠사두리, 척동(尺洞), 자경동(自耕洞), 저동(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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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오산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오산 마을에서 마산리(馬山里) 선돌을 세운 이유는 비보(裨補)로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다. 오산 마을 뒤 봉화가 있었던 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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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에 있는 법화종 소속의 사찰. 시종면 시외버스 터미널 앞길에서 국도 821호선을 따라 시종 파출소와 시종 중앙 교회를 지나서 오른편 길로 빠지면 만수 마을이 보인다. 마을 회관을 지나 뒤편 낮은 산 아래 만덕사가 자리하고 있다. 만덕사는 1977년에 해인사 출신의 승려 관덕(觀德)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관덕은 영암군 덕진면 출신으로 속성은 최(崔)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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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수리는 만석굴이라고도 하는데,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만수리는 조선 시대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천리(錦川里), 회동(回洞), 구송리(九松里) 일부와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신기리(新基里)를 병합하여 만수리라 하고, 시종면에 편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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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화동리(化洞里), 오복리(烏伏里), 망우정리(望牛亭里), 장산리(長山里), 목우촌리(牧牛村里) 일부를 병합하면서 망우정리의 망(望) 자와 장산리의 산(山) 자를 따서 망산리(望山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망산리로 개설되었다.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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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에 있는 경주 이씨 집성 마을. 영암 지역의 경주 이씨(慶州李氏)는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익재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9세손 이반기(李磻琦)를 입향조로 하고 있다. 원래는 영암군 군종면(郡終面) 지역이었던 곳으로 망호정(望湖亭) 정자가 있어서 망호정리(望湖亭里) 또는 망호리(望湖里)라고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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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에 있는 한국 기독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매월 교회는 영암군에 분포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 장로회 교회 중 영암읍 교회 다음으로 오래된 교회이다. 매월 교회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 4월에 세워졌다. 이후 1950년 10월 6·25 전쟁 중에 임자임[여, 당시 45세], 이태일[남, 당시 55세] 이양심[여, 당시 15세] 등 세 명의 순교자가 발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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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한 마을 중 매곡리(梅谷里)의 매(梅) 자와 대월리(待月里)의 월(月) 자를 따서 매월리(梅月里)라 했다.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책인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서 주룡(注龍), 매곡(梅谷), 미교(美橋) 등의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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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동리(明洞里)에는 옥정 마을, 와우동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옥정 마을은 마을의 바위틈에서 샘물이 솟아 구슬 같은 샘물이라 하여 구슬 옥(玉)과 우물 정(井)자를 합하여 옥정(玉井)이라 했다. 와우동 마을은 서룽골이라 부르기도 하며, 큰 암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업드릴 와(臥) 자와 소 우(牛) 자를 합쳐서 와우동(臥牛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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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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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에 있었던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명동리(明洞里) 선돌 주위에는 여섯 그루의 당나무(堂나무)가 함께 있었다. 명동리 선돌은 마을 입구에 있는 선인정(仙人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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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산리(茅山里)에 관한 명칭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첫 번째로 예로부터 마을 안에 못이 있어 못안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못산으로 변하고 다시 모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마을의 주변에 띠[茅(모)]가 무성하여 바람이 불어오면 띠 잎이 난무하여 금물결을 이루었다.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수림이 아름다워 띠 모(茅)와 뫼 산(山)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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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문화 유씨 집성 마을. 영암 지역의 문화 유씨(文化柳氏)는 유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고 있으며 유용공(柳用恭)[1492~1551]을 입향조로 하고 있다. 관향은 지금의 황해남도 신천군 문화면이다. 모산리는 본래 나주군 비음면(非音面) 지역으로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못안이라 하였는데 못안이 모산으로 변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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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하동 정씨 장령공파의 문중 사우. 모산사(茅山祠)는 1822년(순조 22)에 영암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한 하동 정씨(河東鄭氏) 문중 사우(祠宇)이다. 모산사에서 배향하는 인물은 기묘사화[1519] 때 200여 명의 진사와 함께 상소를 올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모효(慕孝) 정문손(鄭文孫)[1473~1554], 기대승(奇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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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데친 모시 잎과 불린 쌀을 곱게 갈아 소금 간을 해 떡으로 만들어 먹던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는 유두나 추석에 데친 모시 잎과 불린 쌀을 곱게 갈아 소금 간을 해 인절미나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 모시 잎의 독특한 향과 텁텁한 맛이 특이하며, 모시 잎의 생즙 덕분에 떡이 쉽게 굳어지지 않는다. 습기가 많고 더운 지역에서 자라는 모시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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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정(茅亭)이라는 이름은 마을 내에 있는 쌍취정(雙醉亭)과 관련이 있다. 임구령(林九齡)에 의해 지남제가 축조된 뒤, 영풍정 자리에 쌍취정이라는 별장을 지어졌다. 하지만 나라에서 너무 호화롭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이 내렸다. 그때부터 기와지붕에 띠를 엮어 사용하였고, 띠 모(茅) 자와 정자 정(亭) 자를 써서 모정이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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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어린 숭어를 손질해 회로 떠서 초고추장과 곁들인 향토 음식. 모치회는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어린 숭어를 손질해 회로 떠서 초고추장 혹은 된장과 곁들여 먹던 향토 음식이다. 영암 지역에서는 이를 ‘모챙이회’라고도 부른다. 모치회는 맛이 담백해서 예로부터 술안주로 즐겨 먹었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작은 것을 속칭 등기리(登其里)라 하고 가장 어린 것을 속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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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몽해리(夢海里)라는 이름은 김완(金完) 장군과 관련이 있다. 김해 김씨 김극조(金克祧)가 풍수에게 아천 포구 앞이 명지라는 권유를 받고 이거하였다. 김극조는 엄길리에 사는 천안 전씨와 결혼하였고 김완 장군을 낳았다. 김완 장군을 임신할 당시, 마을 앞 영암만 바닷물이 부인의 치마폭으로 몰려드는 꿈을 꾸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몽해라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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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의 대표 재배 작물인 무화과를 홍보하기 위한 문화 행사. 무화과는 단백질과 섬유질이 많은 알칼리성 영양 과일로 국내에서는 영암군 삼호읍 일대에서 주로 재배되는 작물이다. 전국 생산량의 70% 이상이 영암군에서 재배될 정도로 지역 특산품으로서 명성을 지니고 있다. 무화과 축제는 무화과를 널리 홍보하고, 산업화를 위해 개최하는 문화 행사이다.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 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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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묵동리(墨洞里)는 옛부터 먹을 만드는 곳이라 하여 묵동 혹은 먹뱅이라고 하였다. 혹은 마을 북쪽에 병풍처럼 산이 펼쳐져 있어 옥녀가 글을 쓰려는데 붓과 벼루는 있는데 먹이 없어서 마을 이름을 먹뱅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1940년경에 먹뱅이라는 명칭의 어감이 좋지 않아 명동(明洞)이라 개칭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때 마을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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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 호동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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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함양 박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함양 박씨(咸陽 朴氏)는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후손으로 문규원(文奎源)의 처가 되어 정성껏 시부모를 봉양하고 종인(宗人)들의 모범이 되었다. 1854년에 나주의 친가에 가 있을 때 남편이 갑자기 죽었다. 박씨는 자결을 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슬픔을 참고 정성껏 3년간 초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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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서당. 문산재(文山齋)는 왕인(王仁)이 수학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왕인은 생몰 연대를 파악할 수 없으나, 백제인으로 추정된다. 왕인은 『천자문(千字文)』 1권과 『논어(論語)』 10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인본 문학의 시조가 되었다. 1688년(숙종 14)에 구림(鳩林) 대동계(大同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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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밀가루 반죽에 솔잎이나 쑥을 넣고 기름에 지져 떡으로 만들어 먹던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는 유두나 칠석에 냄비나 솥뚜껑 위에 기름을 두르고 밀가루 반죽에 솔잎이나 쑥 등을 버무린 반죽을 부어 해 먹은 얇은 떡을 문지떡이라 한다. 문지떡은 곡식 가루를 반죽해 기름에 지져서 만든 떡으로 ‘지진 떡[유전병(油煎餠)]’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지진 떡 중에서 찹쌀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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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영암 문학의 범주는 영암 출신 문인이 창작한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외지 문인이 영암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창작한 문학 작품이나 여행을 와서 영암의 자연 환경을 노래한 문학 작품을 모두 포함한다. 영암 지역의 문학은 크게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고전 문학의 경우, 누정(樓亭)을 중심으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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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관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문화 유씨(文化柳氏)는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세거하는 성씨로, 입향조는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던 유관(柳寬)[1346~1433]이다. 문화 유씨가 모산에 오랫동안 세거했기 때문에 모산 유씨(茅山柳氏)라고도 불린다.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이전에 모산리는 나주군 비음면 모산리에 속했다. 문화는 황해도 신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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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이루어진 미술, 음악, 서예, 사진 부문 등의 활동 또는 그 작품. 고려 시대,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문화·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못했다. 이는 엄격한 유교 정신과 궁핍을 벗어나기 어려운 백성들의 실정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이어 내려온 창작 활동도 예술이라기보다는 현실에 예속된 힘든 삶을 벗어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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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과 관련된 문화적 활동의 결과물로 계승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지정·관리하는 유·무형의 문화유산. 문화재(文化財)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 중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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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0월 미군정의 쌀 강제 공출 정책에 맞서서 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 1946년 경제 정책 실패로 쌀 가격이 폭등하자 미군정은 농민들에게서 쌀을 강제로 수집했고, 조선 공산당 등 좌익은 민중의 불만이 고조되자 총파업과 공출 거부 투쟁을 시도하였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1946년 9월과 10월에 대규모 폭동과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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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미나리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혹은 데쳐서 먹는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는 양지바른 습지대에서 미나리를 재배해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다. 특히 식초를 가미한 양념과 낙지, 오징어, 가오리, 홍어 등의 어류를 가늘게 썰어 미나리와 함께 주물러 만든 회는 술안주나 반찬으로 인기가 많다. 자생하던 미나리를 언제부터 재배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고려사(高麗史)』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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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색채를 이용하거나 조형적으로 형상화하여 사물의 아름다움과 사상, 감정, 정서 등을 표현한 예술 활동. 영암군은 영산강이 흐르는 비옥한 농토와 수려한 월출산이 있음으로 해서 일찍부터 문화의 발상지로 많은 문화 유적지가 산재해 있으나, 미술 분야에 있어서는 바위에 조각된 불상이나 석탑 정도 외에 문헌상으로 기록되어 전하는 것은 없다. 대표적인 불상은 영암 월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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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미암 초등학교는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고장을 사랑하는 바른 어린이[도덕인], 스스로 공부하며 창의성을 키우는 슬기로운 어린이[창의인], 소질 계발에 힘쓰며 꿈을 가꾸는 개성 있는 어린이[개성인], 즐겁게 생활하며 체력 관리를 잘하는 건강한 어린이[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꿈, 슬기, 사랑을 가꾸는 자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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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진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미촌리(美村里)의 미(美)자와 흑암리(黑岩里)의 암(岩)자를 따라 미암리(美岩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미암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쳐서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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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1928년 면의 중심인 미암리의 이름을 따서 미암면(美岩面)이라 하였다. 미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미촌리(美村里)의 미(美)자와 흑암리(黑岩里)의 암(岩)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미암면은 백제 때 고미현(古彌懸)의 중심지였다. 신라 경덕왕 대에 이르러 이름을 곤미현(昆湄懸)으로 바꾸었다. 곤미현은 다시 두 개의 방으로 나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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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에 있는 미암면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 읍[영암읍·삼호읍]과 9개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미암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미암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미암면(美岩面)은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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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내려온 신앙과 그 행위. 민간 신앙의 제의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신을 달래고 위로하여 화를 피하고 복을 바라는 인간 중심적인 목적에서는 공통적이다. 계급 사회의 제도적 차별로 인해 늘 상대적으로 빈곤하면서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하층민들은 무엇보다 ‘먹고 사는 일’이 큰 문제였다. 따라서 그들이 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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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생활 풍속. 민속은 민중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전승되어 온 전통적인 문화이다. 따라서 민속의 가장 큰 특징은 지속성과 전승성이라 할 수 있다. 민속에는 의식주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생활 민속, 민간 신앙, 세시 풍속, 일생 의례, 구비 전승, 민속놀이 등 매우 많은 영역이 포함된다. 영암 지역은 월출산과 영산강을 끼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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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전승되어 오고 있는 여러 가지 민간 놀이. 민속놀이는 민중의 생활 습속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놀이로 향토색을 지니고 있다. 민속놀이는 개인적인 것보다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하는 놀이가 많으며, 공동체 환경에 맞게 놀이 환경이 조성된다. 민속놀이는 놀이가 전승되고 있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전문인들의 놀이와 일반인들의 놀이, 놀이를 하는 시기에 따라 세시(歲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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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사람들 사이에 전해 오는 노래. 민요는 민족 집단의 노래로서, 오랜 세월 속에서 민중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생활 감정이 자연 발생적으로 불리면서 다듬어진 노래다. 그러기에 민요는 국가나 사회 또는 관리들을 거침없이 비판하거나 풍자하며 민중의 한을 노래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작자나 작곡자도 알 수 없으며, 곡도 가사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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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개항기 때 효자비. 민재식(閔宰植)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흥 민씨(驪興閔氏) 종족들과 지역 유림들이 민재식을 기리기 위해 민재식 효자비(閔宰植 孝子碑)를 건립하였다. 민재식 효자비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진년 3월 한자헌대부 장예원 경원 임 규장각 학사 종하 민경호 근찬(戊辰年 三月 澣資憲大夫 掌禮院 卿原 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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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현대 경제학자. 민준식(閔俊植)[1925~1992]은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출신이다. 동국 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남 대학교 상과 대학 학장을 거쳐 전남 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민준식은 전남 대학교 지역 개발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 낙후 지역 개발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1974년 전남 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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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밀을 빻아서 만든 밀가루를 반죽해 만들어 먹던 떡. 전라남도 영암군에서는 유두날이나 백중날 맷돌에 밀을 갈아 가는 밀기울을 가려내 떡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를 ‘밀개떡’ 혹은 ‘밀겨떡’이라고 한다. 밀은 한자로 ‘소맥(小麥)’이라고 하는데,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 유적이나 백제 군창지 등에서 탄화(炭化)된 밀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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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에 있는 손훈립·손응호·손응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밀양 손씨 삼충 정려(密陽孫氏 三忠 旌閭)는 임진왜란 때 출정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밀양 손씨 손훈립(孫塤立)·손응호(孫應虎)·손응록(孫應祿)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각이다. 특히 손훈립은 임진왜란 당시 최경회(崔慶會)·김천일(金千鎰)과 힘을 합하여 금산·무주·진주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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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자는 이경(而經), 호는 고광(孤狂)이다. 아버지는 전적(典籍)[성균관에 속하여 성균관 학생을 지도하던 일을 맡아 보던 정육품 벼슬]을 지낸 박성건(朴成乾)[1414~1487], 할아버지는 박언(朴彦)이다. 박권(朴權)은 1486년(성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2년(성종 23)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정언(正言)[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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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현대 애국 순절비. 박규상(朴奎相)은 1893년 1월 21일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로, 1919년 4월 10일에 발생한 영암 지역 3·1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1920년 1월 25일 고문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박규상 애국 순절비(朴奎相 愛國 殉節碑)는 이를 추모하기 위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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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인·학자. 박규정(朴奎精)[1493~1580]은 1528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평생 당대 명유(名儒)들과 함께 시와 문장을 논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특히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구림 대동계의 중창자이며, 영암 향약을 창설하고 향안을 마련하는 데서 주동적 역할을 하는 등 조선 전기 영암 지역의 사족을 이끈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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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인. 본관은 함양(咸陽)이고, 자는 양종(陽宗), 호는 오한(五恨)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계원(朴季元), 할아버지는 박사경(朴思敬), 아버지는 박언(朴彦)이다. 박권(朴權)이 아들이다. 박성건(朴成乾)[1414~1487]은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472년(성종 3)에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 5위로 급제하였다. 박성건의 관직은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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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 의사(義士)이자 효자. 박유원(朴有遠)은 영암 출신으로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624년(인조 2)에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仁祖)를 호위하였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원지(遠之)이다. 장수 현감(長水縣監)을 지낸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14년~1487년]이 5대조이고, 아버지는 박재(朴栽)이다. 박유원은 1624년 이괄이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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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언론인이자 정치인. 박철(朴澈)[1928~2006]의 본적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이다. 조선 대학교 정치학과를 수료하였고, 조선 대학교 행정 대학원과 전남 대학교 경영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활동하였고, 국회 의원을 역임하였다. 박철은 『호남 신문』 편집국장 겸 논설 위원을 맡았으며, 『전남 매일』 편집국장을 거쳐 『전남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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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시조로 하고 박동열(朴東說)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반남 박씨는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의 하나이며, 박응주를 중시조로 삼고 있다. 반남 박씨 현조(顯祖)로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한 남곽공 박동열(朴東說)[1564~1622]의 묘소가 서호면 엄길리에 있다. 반남은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옛 지명이다. 중시조 박응주는 반남에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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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곡식을 펴서 널고 고르거나 씨를 뿌린 뒤 흙을 긁어 덮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 발고무래는 멍석에 곡식을 말릴 때 쓰는 고무래와 흙덩이를 깨는 곰뱅이보다 능률적으로 긁거나 밀어서 고를 수 있도록 그 기능이 발전된 농기구다. 즉 곰뱅이의 몸체 아래쪽 면에 4~6개의 구멍을 뚫고 그곳에 5~10㎝ 길이의 손가락 굵기만 한 나무막대나 대나무를 깎아 만든 발을 일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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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우리나라 방송은 1927년 사단 법인 경성 방송국이 호출부호 JODK로 전파를 발사하면서 시작되어, 해방 이전까지 전국에 17개의 지방 방송국이 개설되었다. 전라남도에서는 1942년 3월 광주 방송[KBS]이 최초로 개국했고, 이어 기독교 광주 방송[CBS]이 1961년 8월 개국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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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동백정(冬栢亭)의 백(栢) 자와 청계리(淸溪里)의 계(溪) 자를 합하여 백계리(栢溪里)라 하였다. 동백정 마을의 마을 이름은 당초에는 동백나무라는 뜻인 백동(栢冬)이라 하였으나 언젠가부터 동백나무 숲 가운데 정자가 있어 동백정(冬栢亭)이라 바뀌었다고 전해온다. 청계 마을은 마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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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의병장. 백상빈(白尙賓)[1594~?]은 전라도 영암 출신으로 시와 문필이 능하였고, 병자호란 때 동생 백상현(白尙賢)과 함께 이기발(李起浡)[1602~1662]의 격서(檄書)에 응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경양(景揚)이다. 할아버지는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고, 아버지는 백진남(白振南)[1564~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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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사찰. 6·25 전쟁 직후인 1953년에 창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과 영암군 금정면 경계에 있으며, 국도 23호선에서 금정면사무소를 지나 안노리 모정 마을 안쪽으로 약 2.5㎞ 들어가면 나온다. 절의 창건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는 전하지 않는다. 1961년에 편찬된 『영암군지』의 불우(佛宇) 항목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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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무명·비단·모시·삼베 따위의 피륙을 짜는 틀 베틀은 무명·비단·모시·삼베 따위의 피륙을 짜는 틀로 오늘날의 직조기와 원리가 비슷하다. 무명베는 미영다래에서 실을 뽑아내어 짰고, 비단[명주] 베는 누에고치에서 얼레와 자세를 통하여 실을 뽑아서 짰다. 모시·삼베는 모시와 삼대에서 실을 뽑아내어 짜서 옷감으로 이용하였다. 각각의 피륙은 그 날이 얼마나 촘촘한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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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구정봉에 있는 굴. 베틀굴은 임진왜란 당시 이 근방에 사는 여인들이 전쟁을 피해 이곳에 숨어서 베를 짰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월출산 주봉인 천황봉과 구정봉 그리고 향로봉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고도 약 670m이며, 좌표는 북위 34°, 동경 126°이다. 바람재가 왼쪽에 위치하며, 바로 위에는 아홉 개의 암정(巖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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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주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 및 증진하기 위해 행하는 제반 활동. 보건 의료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 증진하기 위하여 국가, 지방 자치 단체, 보건 의료 기관 또는 보건 의료인 등이 행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보건 의료는 크게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으로 나뉜다. 공적 영역은 중앙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중심이 되며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공중 보건과 보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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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입향조인 봉암(鳳巖) 강연(姜淵)과 관련하여 마을에 봉소정(鳳巢亭)이 있어 봉소리(鳳巢里)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봉소리 연동 마을은 부근에 연동지라는 못이 있었는데 연이 많이 자생하였으므로 거주민들이 연꽃 연(蓮)자와 마을 동(洞)자를 써서 연동(蓮洞)이라 불렀다고 하며, 괴목정 마을은 예전에 태산봉 남봉에 괴목으로 지은 정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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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호리(鳳湖里)는 둠벙이 있어 둠벙개라고 부르다가, 이것이 변하여 봉개, 붕개 또는 봉호정, 봉호정리라 불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여러 마을을 병합하면서 봉호리가 되었다. 봉호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일종면(北一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죽정(松竹亭), 태산리(泰山里), 망교리(望橋里),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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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봉호리에 있는 제주 양씨 집성 마을. 제주 양씨(濟州梁氏)의 시조는 탐라 개국 설화(耽羅開國說話)에 나오는 삼신인(三神人) 중의 맏이인 양을나(良乙那)이다. 양을나는 제주도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혈(毛興穴)에서 고을나(高乙那), 부을나(夫乙那)와 함께 용출(湧出)하여 탐라 개국 군왕(耽羅開國郡王)이 되었고, 양을나의 자손은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921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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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는 종교. 1. 백제 시대 영암 지역의 불교는 삼국 시대 백제로부터 시작되었다. 『속고승전』과 『삼국유사(三國遺事)』에 7세기 초 백제 수도 지역에서 활동하던 혜현(慧顯[惠現])이 달나산(達拏山) 즉 월출산으로 옮겨와 수행하다 입적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혜현 이후 월출산을 중심으로 하여 영암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었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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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붕어를 재료로 하여 만든 향토 음식. 영암군의 영산강 등에서 잡은 붕어를 솥에 넣고 1차로 찌고, 밤과 대추 등을 넣고 2차로 쪄서 만든 음식이다. 붕어는 봄에 산란을 하기 때문에 살이 오른 겨울철에 주로 많이 먹는다. 붕어는 잉어과 민물고기로 우리나라의 호수나 하천, 농수로 등에 널리 분포한다. 잉어와 모양이 비슷하나 잉어에 있는 콧수염이 없다. 붕어는 손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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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 사당은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묘(祠廟)·사우(祠宇)·사(祠) 등으로도 사용한다. 위패 대신 조상의 영정을 봉안한 곳은 영당(影堂)이라고도 한다. 민간의 사당을 가묘(家廟)라고도 하는데 왕실의 것은 특별히 종묘(宗廟)라 한다. 고려 말에 전래된 주자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근원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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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불상을 모시고 공적으로 불교 신앙을 행하는 장소. 사찰은 부처의 불상이나 불화 등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중들이 수행을 하거나 불교 신자들이 찾아가서 수행과 부처의 법음을 듣는 곳이다. 영암 지역에는 백제 시대에 처음 사찰이 생겨나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영암에 사찰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은 고려 시대부터이지만 월출산의 여러 절터에서 백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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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사회적인 변화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거나 저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집단적 행동. 사회 운동은 구체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회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하여 대중이 자발적으로 하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이며 지속적인 행위이다. 정당이나 이익 단체의 활동보다는 덜 체계적이지만 군중 행동보다는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다. 기든스(Giddens)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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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 당시 산호정(山湖亭)이라는 정자 이름을 따서 산호리(山湖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동암리(銅岩里), 경재리(京才里), 신호정리(新湖亭里), 장도리(獐島里), 금곡리(金谷里), 산호정리(山湖亭里)를 병합하여 산호리로 개설되었다. 1917년 곤일종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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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삼충각 소장 자료. 삼충각(三忠閣)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박형준(朴亨俊)과 아들인 박효남(朴孝男), 박호남(朴好男) 삼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46년(헌종 12) 지역 유림이 발의, 상소해 나라에서 1860년(철종 11)에 삼부자를 정려하였다. 1901년과 1932년에 개수한 뒤 1946년에 중창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2년에 중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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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에 있는 현대의 사당. 1919년 세 명의 충신을 기리기 위해 삼충려(三忠閭)를 창건하였는데 1939년 훼철(毁撤)되었다. 광복 후에 다시 삼충사(三忠祠)를 세우고 박광춘(朴光春)[1550~1608]을 주벽으로 박광년, 박계원을 배향하였다. 박광춘의 자는 해화(海華), 호는 읍천(挹川), 본관은 밀양이며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이지함(李之涵)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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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삼봉리(三峯里), 엄포리(奄浦里), 간내항(艮乃項), 영호정(永湖亭)을 병합하면서 삼봉리와 엄포리의 이름을 따서 삼포리(三浦里)라고 했다. 혹은 엄포리와 간내항, 영호정의 세 개의 포구(浦口)를 상징하여 삼포리(三浦里)라 했다고도 전한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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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삼호 서 중학교는 월출의 얼을 이어받아 내 고장을 빛내는 사람[애향인], 고운 마음씨를 길러 바른 예절을 실천하는 사람[예절인], 알차게 배우고 익혀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창의인], 심신을 단련하여 건강한 체력을 관리하는 사람[건강인], 소질을 계발하여 생활의 멋을 가꾸는 사람[정서인]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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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삼호 서 초등학교는 생활 습관이 바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어린이[도덕인], 기초,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창의성을 키워가는 어린이[창의인], 세계화 시대를 이끌어갈 재능을 계발해 가는 어린이[재능인], 규칙적인 운동과 바른 생활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나보다는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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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는 천주교 성당.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는 삼호 성당은 천주교 광주 대교구 목포 지구에 속하며, 수호성인은 바다의 별이다. 삼호 성당은 2004년에 전라남도 목포시 하당 본당에서 분리된 성당이다. 삼호 성당은 공소 시절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독자적인 성당으로 설립된 곳으로서, 삼호읍 일대를 관할하고 있다. 성당 건축을 위해 신도들은 토하젓, 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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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중앙촌길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삼호 중앙 초등학교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씩씩한 학생, 깊이 생각하고 머리가 트인 학생, 이웃을 사랑하여 감동을 주고 받는 학생, 소질을 가꾸어 재주가 남다른 학생, 내 고장 영암을 아끼고 자랑하는 학생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몸은 튼튼하게, 마음은 새롭게, 행동은 바르게’이다. 1944년 5월 24일에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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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삼호 중학교는 자기의 삶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자기 주도적인 학생[민주인], 새로운 생각과 탐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 슬기와 지혜를 갖춘 학생[창의인], 삶의 아름다움이 깃든 문화와 예술 체육을 사랑하며 배려와 존중이 넘치는 학생[감성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誠實)’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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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읍. 조선 시대에 곤미현(昆湄縣)의 끝 지역이므로 곤일종면(昆一終面)이라 하다가, 1914년 명칭이 삼호면(三湖面)으로 변경되었다. 삼호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현재는 명칭대로 영산호(營山湖), 영암호(靈岩湖), 목포 내해(內海)로 둘러싸여 지명과 같이 삼호(三湖)가 되었다. 삼호읍은 조선 시대의 1789년 『호구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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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에 있는 삼호읍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 읍[영암읍·삼호읍], 9개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삼호읍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삼호읍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삼호읍은 조선 시대에 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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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상여의 운반 등 장례에 관계되는 일을 위해 조직된 계.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협조를 도모하는 계 조직이다. 마을과 상여의 규모에 따라 20~30가구 정도로 이루어지는 상두계는 두레 형식을 모방한 공동 조직이다. 상여의 운반, 무덤 터 다지기, 묘 쓰기 등 장례에 관계되는 일을 전담한다. 장례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 평상시에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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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곱게 간 상수리가루로 묵을 만들어 먹는 향토 음식. 전라남도 영암군에서는 상수리나무 열매를 곱게 갈아 묵을 만들어 먹었다. 상수리 가루를 물에 담근 후 떫은맛을 우려내고, 웃물은 따라내 앙금만 모아서 끓이고 다시 식혀서 두부처럼 굳어지면 양념을 해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상수리나무 열매는 예로부터 구황 식품이나 별식으로 이용되었는데, 요즘은 건강식품으로 알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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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에 위치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교회. 상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 중 가장 먼저 영암군에 자리 잡은 교회이다. 1947년 개인 주택에서 첫 예배를 거행했으며, 6·25 전쟁 때에 영암군 내에서도 가장 많은 순교자가 나온 교회이다. 현재의 교회 자리에 세워진 것은 1972년부터이며, 교회 한편에 1993년에 세워진 순교비가 있다. 상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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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상사동(上舍洞)의 상(上) 자와 월하촌(月下村)의 월(月) 자를 따서 상월리(上月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상월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부곡리(富谷里), 월하촌, 유천동(柳泉洞), 쌍암리(雙岩里), 상리(上里), 상사동을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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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상사 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는 퇴화된 상감 청자가 전국에서 생산되었는데 이것이 점차 변모하여 실용적 형태로 바뀌고, 무늬가 그릇 전체로 확대되며, 유약의 투명도가 높아졌다. 이렇게 변모한 상감 청자를 분청사기라고 한다. 분청사기는 여말 선초의 사대부들이 추구하였던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과 맞아 떨어져 대량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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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열녀. 본관은 김해(金海). 양무공(襄武公) 김완(金完)의 딸이며 서경택(徐景宅)의 처이다. 서경택 처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열아홉 살에 시집을 갔으나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 남편이 천연두에 걸렸다. 병석에 누워 있는 남편의 병을 치료하고자 항상 옆에서 정성을 다하였으나, 결국 남편은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에 남편을 따라 죽기를 각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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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암군 군서면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쪽은 서호면 엄길리, 남쪽은 서호면 몽해리, 동쪽은 군서면 동구림리, 북쪽은 군서면 모정리와 인접하고 있다. 서호정 마을, 남송정 마을, 백암동 마을, 상대포 마을, 신흥동 마을 등이 있다. 구림(鳩林)이라는 지명은 도선 국사의 탄생과 관련 있다. 신라 때 성기동 최씨원(崔氏園)에 사는 최씨 처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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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낭주 최씨 집성 마을. 낭주 최씨(朗州崔氏)의 시조 최흔(崔昕)은 신라 진성왕 때 사람으로 원보상(元輔相)을 지냈다. 최흔이 낭주에 정착하여 가세가 크게 번창하자 후손들이 낭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최흔 이후는 세대가 확실치 않아 고려 말 전객령(典客令)을 지낸 최희소(崔希沼)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서구림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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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집성 마을.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의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부제학 충정공 조상치(曺尙治)의 6세손 남은(南隱) 처사 조세풍을 입향조로 하는 부제학공파 후손들이다. 7세손 조기서(曺麒瑞)[1556~1591]는 영암군 서호면 일대의 유력 성씨인 선산 임씨 임혼(林渾)의 사위가 되었고, 1589년(선조 22) 기축옥사 후 영암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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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에 있는 함양 박씨 집성 마을. 함양 박씨(咸陽朴氏)는 조선 전기에 박성건(朴成乾)[1418~1487]의 구림 입향 이후 영암 지방의 유력 성씨로 발전하며 그 기반을 조선 후기까지 유지·존속시켰다. 박성건의 구림 입향 이후 처족(妻族)이자 구림 마을에 먼저 정착한 성씨였던 난포 박씨(蘭浦朴氏)와 연결되었으며, 뒤에 입향한 선산 임씨(善山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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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창 초등학교는 건강한 체력으로 심신의 조화를 이루는 어린이[건강인],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실력을 기르는 어린이[실력인], 취미와 소질을 가꾸어 재능을 발휘하는 어린이[재능인], 우리 것을 살펴보고 새로움을 가꾸는 어린이[창조인], 바른 생활을 실천하고 남에게 봉사하는 어린이[도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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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는 마을의 모양이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국이고, 주변에 울창한 소나무가 많다 하여 학 학(鶴) 자와 소나무 송(松) 자를 따서 학송(鶴松)이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는 미곡의 집산지이자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영암군의 서쪽에 있는 창고라는 뜻으로 서쪽 서(西) 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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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합 당시 동호리(東湖里)의 서쪽이 되므로 서편(西便), 세편이라 부르다 서호리(西湖里)라 하였다. 서호리는 조선 시대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동리(新洞里), 응치리(鷹峙里), 토동리(兎洞里), 변두리(邊頭里), 송죽정(松竹亭), 냉천리(冷泉里), 목우촌(牧牛村)의 일부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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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영암군의 서쪽인 영산강에 접해 있어 서호면(西湖面)이라고 불린다. 백제의 곤미현(昆湄懸)에 속하였지만, 신라 때 영암에 편입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곤미현에 속하였던 지역의 끝자락에 있다 하여 곤이종면(昆二終面)이라 불렸으며 아천(牙川) 등 32개의 마을을 관리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곤이시면(昆二始面)의 신소정(新沼亭)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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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영모정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서호면(西湖面) 청용리(靑龍里) 선돌에 관한 정보가 매우 미약하다. 공사로 인해 선돌이 묻혀 온전한 모습을 파악하기 힘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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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서호면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의 읍[영암읍·삼호읍]과 9개의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서호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서호면은 본래 곤이종면(昆二終面)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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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 사우. 서호사(西湖祠)는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祠宇)이다. 조행립은 임진왜란 때 외가인 구림으로 피난하면서 영암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당시 구림의 선산 임씨(善山林氏), 함양 박씨(咸陽朴氏), 낭주 최씨(朗州崔氏)와 함께 구림 대동계를 창설하는 등 향론을 이끌어갔던 인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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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서호사의 소장 자료. 서호사(西湖祠)는 원래 태호사(兌湖祠)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가 1677년(숙종3)에 서호사란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서호사는 구림 대동계에서 조두 제물(俎豆祭物)을 보냈던 사우이며,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을 제향하고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서호사 소장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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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를 시조로 하고 김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서흥 김씨는 영암 지역의 사족이었다. 입향조는 김총(金緫)으로, 영암 지역 대표 사족인 전주 최씨 최덕지(崔德之)의 사위이며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숙부이다. 서흥(瑞興)은 황해북도 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시조는 김보(金寶)이다. 김보는 신라 왕실의 후예로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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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뽑는 행위. 선거 제도는 민주 정치 과정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으로 의회의 성격, 정당의 특성, 이익 집단의 형태, 정부의 안정성과 나라의 통합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 5월 10일 국회 의원 선거에서 선출된 198명의 국회 의원으로 제헌 국회가 구성된 이래 선거 제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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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저를 시조로 하고 임만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선산 임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입향조는 선산 임씨 중시조인 임만(林蔓)으로, 1388년에 영암에 입향한 이래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였다. 선산 임씨는 신라 경순왕의 손주 사위인 태사공(太師公) 임양저(林良貯)를 시조로 하고 있다.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려 하자 그 부당함을 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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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선황산(仙皇山)에 서낭당이 있어서 서낭당, 선황당, 화산 또는 당리(堂里)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선황리(仙皇里)라고 하였다. 선황리는 조선 시대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계양리(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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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율리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율리 마을은 선황리(仙皇里) 선돌을 마을의 평안을 위해 세웠으며, 주민들은 선돌이 쓰러지면 마을도 쓰러진다고 믿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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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선황산에 있는 산성 터. 영암군(靈巖郡) 미암면(美岩面)을 비롯하여 학산면·서호면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 고미현(古彌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곤미현(昆湄縣)으로 이름이 바뀌고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1080년(문종 34)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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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곽은 국가가 군사적인 목적을 갖고 국방이나 교통의 요지에 설치했던 군사 시설물이다. 본래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로서 성은 내성(內城)을 말하고, 곽은 성 주위를 에워싼 외성(外城)[羅城]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겹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성곽 또는 성이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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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천주교도들의 미사 및 예식이 행해지는 장소. 영암군 지역의 천주교는 1954년 영산포 성당을 오갔던 8명의 신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영산포 성당을 오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였고, 예비 신자였던 정종완의 개인 창고에 1954년 영암 임시 공소를 세워 공소 예절을 가졌다. 이들이 가졌던 모임이 영암군 지역 천주교의 모태라 할 수 있다. 6·25 전쟁 이후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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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성묘산에 있는 산성 터.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옛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군서면(郡西面)에는 성묘산(城妙山) 정상부에 위치한 성묘산성(城妙山城)과 월출산 구순봉의 가지 능선에 위치한 도갑산성(道岬山城) 등 2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성묘산성이 입지하고 있는 군서면은 영암읍 및 덕진면 지역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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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성덕리(聖德里)의 성(聖) 자와 우산정(牛山亭)의 산(山) 자를 따서 성산리(聖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성덕 마을은 배산임수의 평화롭고 어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성덕(聖德)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산정 마을은 용동 마을 남쪽에 있던 마을로 1920년경에 폐동되었다. 성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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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성산에 있는 산성 터. 영암군(靈巖郡) 미암면(美岩面)을 비롯하여 학산면·서호면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때까지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 고미현(古彌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곤미현(昆湄縣)으로 이름이 바뀌고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으며, 1080년(고려 문종 34) 이래 계속 영암군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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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성지천(省之川)의 성(省) 자와 양지촌(陽之村)의 양(陽) 자를 따서 성양리(省陽里)라 하였다. 성지천의 토박이 이름은 ‘쇠지내’인데, 불뭇골이 있어 야철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성양리는 본래 영암군 서시면(西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성지천, 미남리(美南里), 양지촌과 지남(指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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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성재리에 있는 천주교 공소. 성재 공소는 1967년 4월 박판익[베드로]이 두 명의 다른 신자와 함께 서호면 금강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공소 전례를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968년 8월 영산포 본당 소속이었던 영암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영암 성당 관할이 되었다. 1970년 4월에 영암 성당 주임 우 프란치스코 신부는 공소를 면 소재지가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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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재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성인이 태어날 명당지라 하여 성재(聖才) 또는 성재동(聖才洞)이라 하였다. 각 자연 마을 이름은 학파 농장을 조성한 현준호 일가의 이름과 관계가 깊다. 무송동은 현준호의 호, 남하동은 현준호의 맏형 현용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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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가족의 안녕을 관장하는 집안의 신. 성주는 가정 신앙에서 가장 으뜸의 신격으로 친다. 그래서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의례에는 성주신이 최고의 신격으로 모셔지고 있다. 영암 지역에서는 집이 곧 성주라는 의식이 강하며, 또한 비유적으로 집의 대들보를 성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암 지역에서 성주신은 주로 곡령 신앙과 결합하여 전하고 있으며, 그래서 일반 민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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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해서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 성씨의 연원은 고조선 시대로 올라가는데, 성씨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시기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개국한 이후이다. 고려 이전 고대 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지방 귀족, 이른바 호족들이 고려의 개국과 후삼국 통일에 적극 참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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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야가 좁고 계곡이 많아, 그 형세가 실버들나무 같아서 가늘 세(細) 자에 버들 류(柳) 자를 써서 세류리(細柳里)라 했다. 세류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봉황리(鳳凰里), 세류정(細柳亭), 열사리(列沙里), 칠성리(七星里), 내동(內洞)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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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세류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세류리(細柳里) 선돌이 세워진 시기는 대략 178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영암군의 문화 유적』을 비롯한 기존 연구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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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으로 행하는 생활 풍속. 세시 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전해오는 주기 전승 의례(週期傳承儀禮)로 대체로 농경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설과 정월 보름, 추석을 큰 명절로 인식하면서 24절기를 포괄하여 그에 맞는 풍습들을 전해 왔다. 영암 지역은 월출산과 영산강을 끼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농촌의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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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있는 사립 대학교. 세한 대학교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통하여 고도의 지성과 합리적 사고 능력을 함양하고, 다양한 학사 운영을 통하여 민주 사회의 시민 의식과 도덕적 품성을 도야(陶冶)하며, 21세기 고도의 첨단 산업화, 국제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전문 기술 능력을 배양 육성함’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진리 탐구, 덕성 함양, 기술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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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난전리에 있는 공립 특수 학교. 소림 학교는 고운 품성을 지닌 착한 학생, 바른 예절을 아는 똑똑한 학생, 건전한 정신과 마음을 지닌 튼튼한 학생, 별난 자기 빛깔을 극복한 멋있는 학생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한 인간’이다. 사회 복지 법인 목포 농아원[1955년 5월 10일 설립]이 1979년 4월 2일에 처음 목포 소림 학교 설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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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소흘리의 소(蘇) 자와 송산리의 산(山) 자를 따서 소산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흘리와 송산리를 병합하여 북이종면 소산리로 개설되었다. 이후 1930년 북이종면이 서호면으로 이름을 바꿈에 따라 서호면 소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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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창작한 산문체 문학. 고전 문학의 경우 영암 지역을 배경으로 하거나 영암 출신 문인이 쓴 소설 작품은 전무하다. 현대 문학의 경우도 시에 비해 소설을 쓰는 문인이나 소설 작품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1970년대 이후 영암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소설가는 다음과 같다. 김광욱은 1974년 월간 『영화』에 시나리오 「여름과 가을 사이」가,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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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거창 신씨 문중 사우. 송양사(松陽祠)는 1796년(정조 20)에 영암 지역 유림의 발의로 건립된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 사우(祠宇)이다. 송양사에는 2013년 현재 5위를 배향하고 있다. 거창 신씨 영암 입향조 신후경(愼後庚)의 아버지인 경제(景齊) 신기(愼幾)[?~1493]를 주벽(主壁)으로 하고, 신후경의 아들 산정(山亭) 신영수(愼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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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송양사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 송양사(松陽祠)는 덕진면 노송리에 있으며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 사우이다. 1796년(정조 20)에 신희남(愼喜男), 신천익(愼天翊), 신해익(愼海翊)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1826년(순조 26) 신기(愼幾)를 주벽으로 하고 신영수(愼榮壽)도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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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승려. 법명은 수미(守眉), 법호는 묘각(妙覺)이다. 영암 출신으로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가계와 정확한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13세에 월출산(月出山) 도갑사(道岬寺)에서 출가한 후 교학에 뜻을 두고 수학하다가 선종으로 전향하였으며, 세조(世祖) 대에 판선종사(判禪宗事)로서 불교계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였고, 왕사에 책봉되었다. 태조(太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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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산리(水山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유수동(流水洞)의 수(水) 자와 당산리(堂山里)의 산(山) 자에서 이름을 따 왔다. 유수동 마을은 마을 수원이 좋아서 어느 곳을 파도 물이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당산리는 마을 뒤에 있는 산의 당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냈는데 매우 영검해 마을 이름을 당산(堂山)이라 하였다. 수산리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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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경(白宇經)을 시조로 하고 백광훈(白光勳)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수원 백씨(水原白氏)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의 하나이며, 조선 시대까지는 영암에 속했던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기반을 둔 성씨이다. 수원 백씨의 시조 백우경은 중국 소주(蘇州) 출신으로, 당(唐)나라에서 첨의사(僉議事)와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으나 간신(奸臣)들의 모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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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배경으로 하거나 영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창작한 자유로운 형식의 산문체 문학. 영암 지역의 문학은 예로부터 시(詩)와 시조(時調)가 주류를 이루었다. 따라서 소설이나 수필은 상대적으로 작가 층이 형성될 기반이 미약하였다. 고전 문학의 경우,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인 이하곤(李夏坤)은 1722년 호남 지방을 여행하면서 기행 일기인 「남유록(南遊錄)」을 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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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숭어를 손질하여 회로 떠서 초고추장과 곁들인 향토 음식. 예로부터 숭어는 횟감으로 그 맛이 일품이었는데, 특히 영암군에서 생산되는 숭어는 영산강 뻘의 영향으로 그 맛이 특이하였다. 숭어회는 숭어를 손질하여 회로 떠서 초고추장 혹은 된장과 곁들여 먹던 향토 음식이다. 전라남도 목포 하굿둑에서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에 이르는 해안 지역에 서식하던 숭어는 담백한 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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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 작품.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가 문학[시조, 가사, 시, 동시 포함]은 영암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영암의 시가 문학은 고대에는 누정(樓亭), 현대에는 문학 동인지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영암의 시가 문학과 관련하여 문헌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문인은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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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김선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시서 영당(市西 影堂)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시서(市西) 김선(金璇)[1568~1642]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김선은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한탄하며 통문을 돌리고 이이첨을 탄핵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관료로 진출하지 않은 채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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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시서 영당에 있는 조선 후기 시서 김선의 초상화. 「시서 영정(市西 影幀)」은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강정 마을 시서 영당에 있는 시서(市西) 김선(金璇)[1568~1642]의 초상화로 1626년(인조 4) 이응하(李應河)가 영암을 방문하였을 때 아들 김시호(金時晧)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었다. 「시서 영정」은 원화를 그대로 모사해 놓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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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5대조 이상의 조상 묘소에서 지내는 제사. 예서(禮書)에 의하면 시제는 묘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인 까닭에 묘제(墓祭) 또는 묘전 제사(墓前祭祀)라고 한다. 5대조 이상의 조상에 대해 1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신다고 해서 세일제(歲一祭) 또는 세일사(歲一祀)라 하며, 오늘날에는 묘제를 시제(時祭), 시사(時祀), 시향(時享)이라고도 부른다. 시제는 기제와는 달리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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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에 있는 천주교 공소. 1974년에 영암 본당 주임 신부였던 우 프란치스코가 시종 공소로 임명한 것을 시작으로, 서정원[베드로] 신자의 개인 집에서 3~4명, 예비 신자 1명이 한 달에 한번 정도 미사를 거행했다. 이후 전교 회장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어 와해될 위기에 처하였으나, 1977년부터 가톨릭 매스컴 위원회에 협조를 구하여 공소 예절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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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자기를 알고 겨레에 이바지 하는 사람[애국인],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자주인], 과학적 사고와 기술로 생활을 창조하는 사람[창의인], 근검 절약하여 합리적인 경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경제인], 심신을 단련하여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부지런히 밝게 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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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시종 초등학교는 기초 능력을 갖춰 창의성을 발휘하는 어린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 기본 생활 습관을 길러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더불어 사는 생활로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어린이, 튼튼한 몸과 강한 의지를 지닌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바른 마음, 밝은 지혜, 착한 행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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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금지로에 있었던 공립 종남초등학교. 시종 초등학교 종남 분교장은 기초 능력을 갖춰 창의성을 발휘하는 어린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소질을 계발하는 어린이, 기본 생활 습관을 길러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더불어 사는 생활로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어린이, 튼튼한 몸과 강한 의지를 지닌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바른 마음, 밝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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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남도 영암군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저지대에 간척지를 형성하고 있다. 시종면은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의 북쪽 첫머리가 된다고 하여 북이시면(北二始面)이라 하였다. 1914년 나주군 종남면(終南面)의 25개 마을과 진도군 명산면(命山面)의 14개 마을을 합할 때, 북이시면의 시(始) 자와 종남면의 종(終) 자를 따서 시종면(始終面)이라 하였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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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시종면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 읍[영암읍·삼호읍], 9개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시종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시종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시종면은 영암군의 북쪽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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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식품과 음식에 관련하여 행해지는 생활과 풍습. 식생활이란 식품의 산출과 조리, 가공 및 유통, 상차림의 규범, 의례와 음식의 관행, 용구와 식기, 식품의 금기 및 풍습, 기호 등 음식물 섭취 행위와 관련된 생명 유지의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영암 지역은 농업 외에 낙지 숭어 등 수산물이 풍부하고, 한우 등의 축산물도 유명하다. 영암 지역은 지리적 특성상 농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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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전라남도 영암 지역 사회주의자들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연계하여 결성한 사회 운동 단체. 신간회는 1927년 2월 공개적 정치 활동과 좌우익 협동 전선의 필요에 공감한 사회주의자들과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이 연계하여 결성하였다. 이후 각 지방마다 신간회 지회가 설립되었다. 신간회 영암 지회는 1927년 8월 결성되어 각 지역마다 분회를 두고 지역 상황에 맞는 활동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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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신흥(新興)의 신(新) 자와 덕흥(德興)의 덕(德) 자를 따서 신덕리(新德里)라고 이름 붙였다. 용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흥, 덕흥, 부귀동(富貴洞), 화암리(禾岩里)를 병합하여 곤이시면 신덕리로 개설되었다. 1932년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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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소식이나 정보를 정기적으로 인쇄·발행하거나 인터넷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언론 매체. 2000년 이전까지는 영암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없었다. 대신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목포시에서는 발행되는 지역 신문과 서울에서 발행되는 『동아 일보』, 『조선 일보』, 『한국 일보』, 『중앙 일보』, 『경향 신문』, 『서울 신문』, 『세계 일보』, 『국민 일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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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에 있는 천주교 성당. 신북 성당은 2007년 공소에서 성당으로 승격하여, 현재 자리 잡고 있는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 272-1번지에 본당을 신축하였다. 현재 신북 성당의 관할 공소로는 시종 공소와 도포 공소가 있다. 1980년대 초부터 2001년 중반까지 근 22년 동안 유등열[요한] 외 10여 명의 신자들이 영암 본당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이후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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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신북 중학교는 온화한 품성으로 질서 있고 예의 바른 사람[도덕인],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슬기롭게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지혜인], 창의력을 발휘하여 인류 문화에 기여하는 사람[창조인], 생명을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건강인], 개성이 넘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문화인] 의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참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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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신북 초등학교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여 타인을 배려하는 어린이, 학습 방법을 익혀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어린이, 특기와 소질을 계발하여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어린이, 기초 체력을 길러 몸과 마음이 튼튼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착하고 슬기롭고 튼튼하게’이다. 1922년 10월 1일에 신북 공립 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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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신북면은 조선 시대 말까지 영암군의 북쪽 끝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북이종면(北二終面)이라 하였으며, 수현(水峴) 등 65개의 마을을 관할하였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를 보면 영암군 북이종면에 159호, 656명(남자 327명, 여자 329명)의 주민이 살았다는 기록을 확인 할 수 있다. 나주군 비음면에는 275호 862명(남자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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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에 있는 신북면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 읍[영암읍·삼호읍], 9개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신북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신북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신북면은 19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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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신사준(愼師浚)[1734년~1796]은 성리학을 전공하였으며, 궁핍한 생활에서도 책을 읽어 경전에 두루 통하였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가 병에 걸렸을 때는 변을 맛보고 자기 손가락의 피를 내 간호를 하였고, 상을 치를 때도 예를 다하였다. 이러한 신사준의 효행을 보고 고을 사람들이 모두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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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사선(士善), 호는 매당(梅堂)이다. 통례(通禮) 신후경(愼後庚)의 후예이고, 감사(監司) 신기(愼幾)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봉사(奉事) 신원개(愼元凱)이다. 부인은 함평 이씨(咸平李氏)로 생원 이유회(李惟誨)의 딸이며, 동생으로는 신여훈(愼汝訓)·신여원(愼汝謜)·신여눌(愼汝訥)이 있다. 신여의(愼汝誼)[1567~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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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연리(新嚥里)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신사리(新沙里)의 신(新)자와 연소리(燕巢里)의 연(燕)자를 따서 신연리가 되었다. 신연리의 연소(燕巢) 마을은 본래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인데 마을 모양이 제비집 같다 하여 제비 연(燕), 집 소(巢)를 따서 연소라 하였다. 신연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군 종남면 지역이며, 1895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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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의병장. 신예교(辛禮敎)[?~1908]는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출신으로, 구국 결사대를 조직한 뒤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일본군과 교전 중에 순국하였다.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남시(南市)이고, 본명은 신재빈(辛在彬)이다. 신석황(辛錫璜)의 3남으로 태어났다. 신예교는 1902년 영암에 온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구국 강론(救國講論)을 듣고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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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 종교. 신종교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종교에 비하여 성립 시기가 오래되지 않은 종교를 말한다. 영암 지역에는 1970년대에 신종교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며, 교세를 확장하였으나 영암군이 초고령화 도시에 접어들면서 교인 수가 차츰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3년 현재 영암군의 대표적인 신종교 단체로는 원불교, 통일교, 한국 S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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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포리는 과거 기동 마을 북쪽에 있는 배들이 마을까지 배가 드나들었던 작은 포구(浦口)가 있었다. 포구 주변에 새로운 마을이 생겨 신포리(新浦里)라 불렸다. 신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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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학리(新鶴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당시 자연 마을 중 신항(新項)의 신(新) 자와 학림(鶴林)의 학(鶴) 자를 따서 신학리(新鶴里)라고 이름을 지었다. 신항 마을은 도포면 원항리 마을에 식수가 모자라 잔등 너머에 새 터를 잡아 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에 신항(新項)이라 하였다는 지명 유래가 내려오고 있다. 학림 마을은 마을 야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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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학리 정동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공동 제사. 신학리 정동 정호제는 시종면 신학리 정동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작과 풍어를 비는 뜻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정호제는 매년 음력 1월 15일 새벽에 지낸다. 마을의 이름인 정동(井洞)은 우리말로는 샘골이라고 불렀고, 정호제는 우물제라고도 한다. 이런 이름과 관련해서 정동 마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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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 중 한정리(漢亭里)의 한(漢) 자와 신정리(新亭里)의 신(新) 자를 따서 신한리(新漢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신한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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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송평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신흥 교회는 영암읍 교회[1915], 구림 교회[1922], 독천 교회[1930] 등과 함께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영암군의 대표적인 개신교 교회이다. 1938년에 창립된 신흥 교회는 영암읍 송평리에서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지역을 대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송평리가 고령화 마을에 접어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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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흥리(新興里)는 새로 마든 마을이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신흥리의 신원 마을은 세원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 마을은 새로 생겼다 하여 새로울 신(新) 자와 으뜸 원(元) 자를 따서 신원(新元)이라 부른다. 화수 마을은 마을에 꽃피는 나무가 많아서 꽃 화(花) 자와 나무 수(樹) 자를 따서 화수(花樹)라 하였다. 신흥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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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인곡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쌍계사(雙溪寺)는 영암군과 장흥군이 경계를 이루는 보림사 가지산(迦智山) 동북 면에 있었던 절이다. 쌍계사 터 입구에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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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장승. 쌍계사지 장승(雙溪寺址 長丞)은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산 18-2번지에 있다. 인곡 마을에서는 산길 숲속으로 약 2㎞의 거리이고 폐사된 절터와는 약 400m가 되는 지점이다. 쌍계사지는 영암군과 장흥군이 경계를 이루는 남송리 인곡 마을에 있으며 가지산의 보림사가 인접하고 있다. 주장군의 높이는 2.47m 둘레는 1.75m이고, 당장군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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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신풍리(新豊里)와 영풍리(永豊里)의 이름에서 풍(豊) 자를 따와 쌍풍리(雙豊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영풍리, 신풍리, 월평리(月坪里), 수양리(水良里)를 병합하여 곤이종면 쌍풍리로 개설되었다. 이후 1930년 곤이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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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효자 형제가 살았다 하여 쌍효리(雙孝里)라 하였다. 쌍효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모효리(慕孝里), 석교리(石橋里)를 병합하여 쌍효리라 하고 금정면에 편입하였다. 석교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간 마을이다. 계곡 사이에 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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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쌍효리에 있는 하동 정씨 집성 마을. 하동 정씨는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하고 있으나, 계통을 달리하는 세파가 있다. 한 계통의 시조는 하동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923년(경명왕 7)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성을 지킨 정도정(鄭道正)이고, 다른 한 계통은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금자광록대부 도첨의좌정승(金紫光祿大夫都僉議左政丞)을 지낸 정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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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쟁기로 갈아놓은 논밭의 흙덩이를 잘게 부수거나 땅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 데 쓰는 농기구. 써레는 쟁기로 갈아놓은 논밭의 흙덩이[쟁깃밥]를 잘게 부수거나 바닥을 판판하게 고르는 데 사용하는 농기구를 말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논에서 쓰는 것을 ‘무논써레’, 밭에서 쓰는 것을 ‘밭 써레’ 또는 ‘마른써레’라 하여 두 가지로 쓴다. 무논써레는 쟁기로 갈아놓은 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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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연한 쑥을 쌀가루와 버무려 떡으로 만들어 먹던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는 어린 쑥을 캐어 쌀가루와 섞은 후 시루에 쪄서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을 쑥떡이라고 한다. 설, 차례 상에 올리기도 하는데, 이때는 산에서 채취한 떡쑥[제비쑥]을 넣어 만든 쑥떡을 올린다. 쑥은 우리의 건국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그 이용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약쑥·떡쑥·물쑥·모기태쑥 등 그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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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연한 쑥을 쌀가루, 밀가루, 보릿가루 등과 잘 버무려 떡으로 만들어 먹던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는 어린 쑥을 캐어 쌀가루, 밀가루, 보릿가루 등과 잘 버무린 후 시루에 쪄서 떡으로 만들어 먹었다. 시루에 담아 찌면 떡이 한데 엉기어 푸석한 모양이 되는데, 간식이 부족했던 농촌 지역에서는 별미였다. 쑥은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쑥을 이용한 역사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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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은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경리의 사당. 아산사(雅山祠)는 공조 참판을 지낸 오경리(吳慶履)[1813~1893]를 배향하는 사당으로 영정과 신위를 모시고 있다. 오경리는 자는 중화(仲和), 호는 소포(素圃), 본향은 해주(海州)이다. 1849년(헌종 1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承政院假注書)가 되었고, 정자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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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천리(鴉川里)라는 명칭은 아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아천 마을은 백룡산(白龍山) 동남쪽 아래 제일 큰 마을로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하천이 운치 있고 아름다워서 조선 시대에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후손이 살면서 하천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아천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아천 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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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노리(安老里)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다만 백제 때 아실 또는 안로, 안로촌이라 하였으며, 고려 시대에 안로현(安老縣)으로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주변의 마을을 병합하면서 안노리라 했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의 마을 명칭 중에서 안노(安老)를 확인할 수 있다. 안노리는 백제 때 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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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감산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감산 마을은 마을의 재앙을 막는 한편, 자손 발복(子孫發福)을 위해 안노리(安老里) 감산 선돌을 세웠다. 안노리 감산 선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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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모정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안노리(安老里) 모정 선돌에는 선돌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도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안노리 모정 선돌은 마을 입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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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열녀. 본관은 완산(完山). 현감을 지낸 이감(李瑊)의 딸이며 안세웅(安世雄)의 처이다. 안세웅 처 이씨는 시집간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알 수 없는 병을 얻자 정성을 다하여 간병하였으며, 남편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밤낮으로 하늘에 빌었다.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죽게 되자, 슬픔을 못 이겨 가슴을 치며 울다가 스스로 목을 매 자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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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쪽의 시내가 합하여진 마을이라 하여 양계(兩溪)라 불리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양계리(兩溪里)라 하였다. 양계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백우리(白羽里), 금계리(金溪里), 서동(西洞)와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의 남산점(南山店), 대갑리(大甲里), 나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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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을묘왜란 때 의병장 양달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양달사(梁達泗)[1518~1555]의 자는 도원(道源)이고 호는 남암(南岩)이며,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감역(監役) 양흥효(梁興孝)의 증손이며, 주부(主簿) 양승조(梁承祖)의 아들이다. 삼종숙(三從叔)인 양팽손(梁彭孫)의 문인이다. 제주 주부(濟州主簿)를 지낸 양승조와 청주 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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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서당. 양사재(養士齋)는 왕인(王仁)이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왕인은 『천자문(千字文)』 1권과 『논어(論語)』 10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인본 문학의 시조가 된 인물이다. 조선 시대 때 구림(鳩林) 대동계(大同契)에서 문산재(文山齋)라는 서당을 열었는데, 인재가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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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최몽암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양오당 영당(養吾堂 影堂)은 국암사(國巖祠) 내에 있는 최몽암(崔夢嵒)[1718~1802]의 영당이다. 최몽암은 낭주(郎州) 사람으로 호는 양오당(養吾堂)이다. 1750년(영조 26)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거쳐 공조 참판을 지냈으며 자헌대부에 올랐다. 그 후 나이 때문에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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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소금을 구어 염장(鹽場) 또는 양장(羊場)이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종면(西終面)의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군서면 양장리로 개설되었다. 원래는 동쪽 모정(茅亭)을 접한 반도(半島)였지만, 1500년대에 임구령(林九齡)이 지남제를 조성한 이후 마을이 생겼다. 1940년 현준호의 학파 농장 조성, 1970년 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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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숭어의 알을 소금이나 간장에 절여 햇볕에 말려 먹던 향토 음식. 어란은 영암군에서 숭어의 알을 채취해 참기름과 소금에 오랫동안 절여 만든 음식으로 고소하고 깊은 맛이 있어 술안주로 애용되었다. 어란은 바다에서 잡은 숭어의 알을 채취해 만든 음식으로 임금님께 올리던 진상품 중의 하나이다. 예로부터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영암 지역에서 잡히는 숭어는 살이 기름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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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수산물을 채취·포획 또는 양식하여 생활에 유용하도록 이용·개발하는 산업. 영암군은 남서부가 영산강 하구를 끼고 남해에 면해 있어 내수면 어업과 바다 어업이 가능하다. 해안선을 따라 삼호면과 미암면이 위치해 있으며, 영산강을 중심으로는 삼호면, 학산면, 서호면, 도포면, 군서면 그리고 시종면이 위치해 있어서 일찍부터 영산강변 및 연호만을 중심으로 수산업이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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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방송, 신문, 잡지, 인터넷, 인쇄물 등의 매체를 통해 사실을 전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영암 지역에서 발생하는 대소사는 각 언론 매체에서 방송, 신문, 인터넷 신문 등을 통하거나 음성·영상 및 인쇄물로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언론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한 유형으로 신문사, 방송국, 통신사 등의 언론 기관들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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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명은 입향조와 관련이 있다. 강진군 태동에서 전승무(全丞武), 전승문(全丞文) 형제가 엄길에 기거한 이후, 후손들이 문과와 무과에 다수 급제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입향조를 존경한다는 의미에서 존경할 엄(嚴)과 전승무·전승문 형제의 아호인 길촌(吉村)·길림(吉林)의 길(吉)를 따서 엄길(嚴吉)이라 하였다. 하지만 ‘엄길’에서 존경할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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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와 삼호읍 난전리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 교단 소속 교회. 여호와의 증인 왕국 회관은 여호와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종교 단체로서, 19세기 말 미국의 찰스 테이즈 러셀(C. T. Russel)이 주도한 성서 연구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국내에는 1912년 미국 선교사인 로버트 R. 홀리스터(R. R. Hurister)를 통하여 여호와의 증인 교리가 전파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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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칭도를 시조로 하고 민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여흥 민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의 하나로 현 거주지인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는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이전에 나주군 금마면 지역에 속했다. 입향조는 거창 신씨(居昌慎氏) 영암 입향조 신후경(愼後庚)의 사위 민문이다. 여흥은 경기도 여주시의 옛 지명이다. 시조 민칭도(閔稱道)는 공자(孔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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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서남해 지역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영암은 바다와 강, 산이 어우러진 풍요로운 자연 환경과 내륙과 도서·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고대부터 이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고대에는 옹관 고분 문화권의 중심지였고, 고려 시대에는 주변의 8개 군현을 아우르는 지역 거점이었다. 조선 시대 이후 주변 지역이 분리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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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차내리(次乃里), 보촌리(寶村里), 연산리(連山里), 양계리(兩溪里), 다련리(多蓮里), 다보리(多寶里)를 병합하였고, 연산리의 연(連) 자와 다보리의 보(寶) 자를 따서 연보리(連寶里)라 했다. 연보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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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연소(燕巢) 마을의 이름을 따서 연소리라 했다. 연소 마을은 지형이 제비집 형국을 하고 있어 제비 연(燕) 자에 집 소(巢) 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다. 연소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오동(金烏洞), 연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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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둥글고 판판한 아랫돌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윗돌을 옆으로 세우고, 이를 소나 말이 끌어 돌림으로써 곡식을 찧는 방아 연자(硏子)방아는 연자매라고도 한다. 맷돌처럼 둥글게 다듬은 판판한 아랫돌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윗돌을 옆으로 세우고 나무 테를 씌운 다음, 한쪽 끝을 소나 말에 걸어서 끌게 하여 전체를 돌림으로써 곡식을 찧는 방아다. 육중한 윗돌에 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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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담윤을 시조로 하고 현윤명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연주 현씨(延州玄氏)는 조선 시대 영암에 입향한 세거 사족으로, 조선 전기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로 입향한 현윤명(玄允明)의 후손들이 향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며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현윤명의 증손 현건(玄健)은 구림에서 동족 기반을 다지는 데 노력하였으며, 구림 대동계 중수에 참여하고 회사정(會社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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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최덕지의 영정을 모셔놓은 영당. 연촌 영당(煙村 影堂)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영정 1본(本)과 유지 초본(油紙草本)을 모셔놓은 건물이다. 최덕지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한 후 남원 부사(南原府使) 등 전라도 여러 곳의 수령을 지냈고, 문종이 즉위한 14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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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열녀와 열부. 조선 시대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국가는 이들 덕목의 실천자들인 충신·효자·열녀들에게 관작을 제수하거나 정려(旌閭)로서 칭송토록 배려하였다. 영암 지역에는 많은 열녀와 열부들이 기록과 정려를 통하여 전하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충·효·열의 기념비적 유적들이 남아 있은데, 정려 외에도 효열비나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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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의 열무정에 보관되어 있는 사포계 문서. 열무정(閱武亭)은 일명 사정(射亭)이라 불리는 정자로, 1797년(정조 21) 열무정 구성원들이 사정을 유지하기 위해 사포계(射布契)를 창설하였다. 열무정은 1797년의 사포계 창설을 계기로 계속 지역 사학들의 보호 아래 관리되다가 1880년(고종 17) 당시 군수이던 민창호(閔敞鎬)의 협조로 중수되었다. 열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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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망동리(望洞里), 영흥리(永興里), 장등리(長嶝里)를 병합하면서 영흥의 영(永) 자와 장등의 등(嶝) 자를 따서 영등리(永嶝里)가 되었다. 영흥리는 마을 근처에 운중반월형(雲中半月形)의 명당이 있어 이곳에 살면 영원히 흥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장등리는 덕진면 영보리에서 영정(永亭)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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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영암 성당 관할의 공소 . 영보 공소는 1986년 6월 5일 공소가 생기기 전까지 10여 명의 신자들이 마을 회관에서 공소 예절을 행하였다. 이후 최안나가 땅을 기증하고 영암 성당 5대 신부인 탁 프란치스코 신부가 직접 설계를 하여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328-12에 영보 공소를 신축하였다. 이후 누수와 건물의 노후화로 인하여 신자들이 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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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보리(永保里)는 청암도(靑巖道)[조선 시대에 전라도 나주의 청암역(靑巖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 찰방이 딸린 영보역(永保驛)이 있어서 영보역, 역촌(驛村), 역몰, 영보촌이라고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냉천(冷泉), 관곡(寬谷), 내동(內洞), 서당(書堂), 은행정(銀杏亭)을 병합하면서 영보리라 하였다. 영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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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전주 최씨 집성 마을. 영보리의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가 입향한 15세기 초반 이후 영암 지방 사족 활동을 주도하였다. 전주 최씨 집성촌인 영보리는 조선 초기의 학자 최덕지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영보리에는 최덕지의 셋째 아들 진사공 최숙(崔淑)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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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영산강 들녘에서 전승되어 온 농요.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 위원인 이소라가 영암 지역 민요를 조사하여 정리한 것을 계기로, 「영암 갈곡리 들소리」 전승자인 유승림[신북면 갈곡리, 1931년생, 남]과 갈곡리 주민들을 대상으로 채록함으로써 그 가치가 인정되었다. 이후 전라남도 문화재 전문 위원인 이윤선이 추가 조사를 실시하여 2013년 7월 전라남도 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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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문로에 있는 영암군 관할 치안 행정 기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법과 질서를 수호하고, 영암군민이 안전하고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영암군 치안 유지를 실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찰 행정은 고려 시대부터 시작되어, 별도 조직이 아닌 상태로 군사와 병행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중앙에는 포도청, 지방에는 도 감사나 고을 원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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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 있는 공립 남자 고등학교.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른다[애국인(愛國人)]. 맑은 품성으로 심신이 건강한 사람을 기른다[덕성인(德性人)]. 알찬 실력을 토대로 창의력을 키우는 사람을 기른다[창조인(創造人)]. 다양한 활동과 경험으로 세계화에 대비하는 사람을 기른다[세계인(世界人)]. 내 고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자긍심이 높은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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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공공 도서관 영암 공공 도서관은 주민들의 정보 이용, 문화 활동, 평생 교육 등의 증진을 주목적으로 영암군에서 설립하였다. 1986년 8월 27일 영암군 공공 도서관을 착공하여 1987년 2월 8일 준공하였고, 7월 27일 영암군 공공 도서관을 개관하였다. 1991년 3월 25일 전라남도 공공 도서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2075호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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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 있는 통일 신라 때의 도기 가마터. 영암 구림리 요지(靈巖 鳩林里 窯址)는 통일 신라 말에 운영되었던 대단위의 도기 생산 유적이다. 학술적 조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간헐적으로 실시되었으나 1987년과 1996년에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행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의 돌정 고개로 불리는 구릉 상에 있다. 이곳은 월출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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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용흥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영암 금정 중학교는 생활 습관이 바르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학생, 기초 기본 능력을 갖춰 창의력을 기르는 학생, 개성과 소질을 살려 새롭게 생각하는 학생, 튼튼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가꾸어 가는 학생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고운 마음을 가꾸며 바른 행동을 실천하는 금정 학생이다. 1971년 12월 31일에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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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활동한 기독교 청년 단체. 영암 기독 청년회는 복음적 기독교에 기초하여 회원 상호의 친목을 도모하고, 기독교 전파와 애국 계몽 활동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동아 일보』에 의하면 영암 기독교 청년회(靈岩基督敎靑年會)는 1922년 5월 28일에 영암군 야소 교회에서 설립하였다. 기독교 관련 청년 단체로, 전도 활동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회 참여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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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 영암 낭주 고등학교는 투철한 민주 시민 의식으로 국가 발전에 참여하는 사람[애국인], 자기 스스로 공부하고 탐구하여 기본 학력을 갖춘 사람[실력인], 과학적 사고와 정보 관리 능력을 길러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창의인], 공익과 질서를 존중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사람[도덕인], 부단한 자기 수련으로 심신이 건강한 사람[건강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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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영암 낭주 중학교는 건전한 가치관 함양으로 민주 시민 의식을 가진 사람[도덕인],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알찬 실력을 가진 사람[지식인], 탐구적 체험 학습으로 창의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창의인], 특기·적성 계발로 진로를 개척해 가는 사람[자주인], 기초 체력 증진으로 심신이 건전한 사람[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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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야간 교육 기관. 일제 강점기 영암 지역 노동 계층의 향학심을 높이고,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영암 청년회에서 영암 노동 야학회를 설립하면서, 영암의 여러 지역별로 노동 야학회가 별도로 설립 운영되었다. 1922년 가을에는 농덕 청년회(農德靑年會) 노동 야학회를 결성하였고, 1922년 겨울에는 영보 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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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에 있는 승려 도선과 수미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 영암 도갑사 도선 국사·수미 선사비(靈巖 道岬寺 道詵 國師·守眉 禪師碑)는 1653년에 전라남도 도갑사에 세워졌다. 통일 신라 때 승려인 도선 국사와 조선 시대 승려 수미 왕사의 행적과 더불어 비의 건립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귀부의 사선문(斜線紋)과 비신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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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도갑사 오층 석탑(道岬寺 五層 石塔)은 도갑사 대웅보전 앞에 위치한 석탑으로 이중 기단 위에 5층의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석탑이나 석등의 지붕돌], 노반(露盤)[탑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과 보주(寶珠)[탑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를 올렸으며, 안정된 조형미가 돋보이는 고려 초기 석탑의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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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구학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기초 체력을 길러 몸이 튼튼한 사람, 바른 인성을 가꾸어 바르게 행동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공부하여 학력과 창의력이 갖춰진 사람, 소질과 특기를 키워 개성 있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튼튼한 몸, 참된 마음, 밝은 지혜’이다. 1971년 12월 31일 영암 도포 중학교로 인가[2학급]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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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사회봉사 단체. 국제 라이온스 협회는 시카고 출신의 사업가 멜빈 존스가 만들었다. 멜빈 존스는 사업가들의 사교 모임인 비즈니스 서클의 회원이었다. 멜빈 존스는 클럽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의 발전, 나아가 전 세계 인류 발전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생각을 클럽 내에 설파하여 라이온스 클럽이 탄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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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사회봉사 단체. 로타리 클럽은 경제 공황이 극심하던 1905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시작되었다. 청년 변호사 폴 해리스는 공황으로 민심이 황폐해지자 이를 염려하여 세 사람의 친구와 1905년 2월 23일 첫모임을 가졌다. 이것이 제1회 시카고 로타리 클럽이다. 국제 로타리 클럽은 지금도 꾸준히 성장 발전하고 있다. 국제 로타리 한국 지국은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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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영암군청 산하 행정 기관. 영암 문화 유적 관리 사업소는 1987년 1월 17일에 왕인 박사 유적지 관리 사무소로 개설되었다. 1986년 9월 29일에 장천리 선사 주거지, 2006년 6월 13일에 마한 문화 공원이 개소되어 3개소가 별도로 관리되다가 통합하여 영암 문화 유적 관리 사업소로 개칭되었다. 전라남도 영암군의 주요 문화 유적지인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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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남산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영암 미암 중학교는 민주 시민 의식을 길러 공동체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민주인], 맑은 품성과 바른 행동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봉사하는 사람[예절인], 합리적 사고와 탐구 능력을 지닌 창의적인 사람[창조인],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 능력을 길러 실력을 갖춘 사람[실력인], 심신 단련과 건전한 생활 습관을 길러내고 건강한 사람[건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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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박항(朴恒)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밀양 박씨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 대군(密城大君) 박언침이며, 밀양 박씨에서 분파된 영암 박씨(靈巖朴氏)는 박언침의 10세손으로 고려 시대에 좌정승을 지낸 박항[1227~1281]을 중시조로 하여 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박항의 5세손인 박기(朴璣)는 고려 충숙왕 때 은청광록대부(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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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봉사 단체. 영암 상록회는 자연 사랑과 자연 보호 운동 단체이며 환경 단체의 성격을 갖고 있다. 박애와 봉사를 통하여 지역 사회에 헌신하고 지역민이 신뢰하는 향토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영암 상록회는 봉사 정신과 협동 정신을 함양하여 건전한 사회도덕의 앙양과 지역사회 개발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전국 단위의 한국 상록회는 197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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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서호로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영암 서호 중학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나라와 겨레에 이바지하는 사람[애국인], 스스로 공부하며 품위와 슬기를 겸비한 사람[지성인], 과학적 사고와 기술로 창의적인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창의인], 주체적 개성의 함양으로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사람[자주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위생 관념이 뚜렷한 사람[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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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천주교 성당. 영암 성당은 1954년 9월 15일, 영암읍 서남리 104번지 정종완의 자택 창고에 영산포 본당에서 관리하는 임시 공소를 설립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로써 영암군에서 천주교가 태동하게 되었다. 1957년 10월 4일 영암읍 서남리 76에 공소 건물 설립을 승인받았으며, 1968년 8월 15일에 영암 성당으로 승격되었다. 영암 성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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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성풍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靈巖 聖風寺址 五層石塔)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영암읍 용흥리 성풍사 터에 남아 있다. 오랫동안 무너져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하면서 ‘통화 27년 기유(統和二十七年己酉)’에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탑지(塔誌)와 청자 사리합을 발견하였다. 탑지의 내용을 통해 1009년(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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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영암군 관할 소방 행정 기관. 영암 소방서는 영암 군민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설립된 기관으로 각종 재난 예방 활동과 재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영암군을 관할하는 소방 관서의 시작은 1994년 7월 개소한 나주 소방서 영암 파출소이다. 1998년 10월 1일 영암군과 강진군을 관할로 하는 영암 소방서가 개서하였고, 1998년 6월 20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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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6·25 전쟁 때의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 6·25 전쟁 중 영암군 일대는 인근 7개 군을 관장하는 빨치산 지휘부가 있어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되었다. 순교자는 박석현[당시 광주 양림 교회 목사], 노흥균[순회], 나옥매[천해 교회], 임자일[매월 교회] 등 모두 88명에 이른다. 영암군에서는 1950년 10월에 집중적으로 순교자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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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철암산 바위에 새겨져 있는 고려 후기 매향 명문.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靈巖 奄吉里 岩刻 埋香銘)은 엄길리 철암산(鐵岩山)[120m] 7부 능선에 있는 속칭 글자 바위의 한쪽 작은 틈새 안쪽에 새겨져 있다. 주변 서호면 청용리, 장천리 일대의 지석묘를 발굴 조사하던 중 현지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총 18행 129자가 음각(陰刻)되어 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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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영암 여자 고등학교는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증진하여 창의력, 사고력을 기르는 사람[실력인], 수업에 충실하고 탐구력을 신장하여 진로 개척하는 사람[창조인], 기초 체력을 단련하여 맑은 품성으로 심신이 건강한 사람[건강인],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바람직한 인성을 도야하여 예절 바른 사람[예절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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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사립 중학교. 적성과 소질을 개발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갖춘 사람[실력인], 수업에 충실하고 탐구력을 신장하며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창조인], 기초체력을 단련하여 맑은 품성을 지닌, 심신이 건강한 사람[건강인],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바람직한 인성을 도야하는 예절 바른 사람[예절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슬기롭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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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왕인 박사를 주제로 매년 4월 초에 개최하는 문화 축제. 전라남도 영암군은 고대부터 한·중·일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던 유서 깊은 고장이고, 일본 학문의 시조로 아스카 문화를 꽃피우게 한 선각자 왕인 박사를 배출한 곳이다. 영암 왕인 문화 축제는 왕인 박사의 업적을 조명하고,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전라남도 영암군 왕인 박사 유적지 일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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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우편·체신·금융 업무 담당 기관. 영암 우체국은 영암 지역의 우편·체신·금융 관련 사업이나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영암 지역에서 현대식 우편 제도는 1907년 영암읍 서남리에 영암 우편소를 개설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1949년 10월 영암 우편소가 영암 우체국으로 개칭되었고 우편 집배와 함께 우편 통신, 저축 사무까지 취급하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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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용암사 터에 있는 고려 초기의 삼층 석탑.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 석탑(靈巖 月出山 龍巖寺址 三層 石塔)은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흩어져 있던 부재들이 수습되어 1996년에 복원되었다. 내부 감실에서 사리기와 금동 보살 좌상 등이 출토되었으며, 백제계 석탑의 요소를 잘 보여 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8년에 보물 제1283호로 지정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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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장암리에서 기록한 동계 문서. 장암정 동계는 남평 문씨들이 영보로부터 장암정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던 시기인 1667년(현종 8)에 창설되었다. 장암정 동계를 주도한 성씨는 남평 문씨와 거창 신씨였는데, 남평 문씨들의 동족적인 배경과 일정한 관련을 가지면서 발전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남평 문씨들이 주축이 되어 1667년에 건립한 구암사 창건 직후 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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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에 있는 공립 공업계 고등학교. 영암 전자 과학 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바른 인성과 기본 생활 습관 정착으로 도덕적인 사람을 기른다[도덕인],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여 실천할 수 있는 자주적인 사람을 기른다[자주인],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지식과 기능을 갖춘 능력 있는 사람을 기른다[능력인], 탐구 학습과 특기, 적성, 계발로 창의력을 지닌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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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영암 중학교는 ‘자율적인 민주 생활로 애국하는 사람을 기른다[애국인]. 자기 주도적 학습으로 사고력과 학습 능력을 신장한다[실력인]. 타고난 소질을 계발하여 창의적인 사람이 되도록 한다[창의인]. 밝고 맑은 심성을 길러 바르게 행동하도록 한다[인성인]. 심신을 연마하여 건강한 체력과 정신을 기르도록 한다[건강인]’를 교육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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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전라남도 영암 지역 청년들이 설립한 사회 운동 단체. 영암 청년회는 1920년 7월 김자명(金子明), 한동석(韓銅錫)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다. 처음에는 계몽 활동과 민립 대학 설립 등 민족주의 운동 단체로서 활동하였으나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적 단체로 전환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1920년 7월 21일 영암 열무정에서 영암 청년회가 창립 총회를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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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초중고길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영암 초등학교는 남을 배려하여 고운 마음을 지닌 도덕적인 어린이, 스스로 학습하여 기본 학력을 갖춘 창의적인 어린이, 특기를 신장하여 멋진 개성을 지닌 감성적인 어린이, 운동을 즐겨하여 튼튼한 몸을 만든 건강한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바르게[眞], 착하게[善],아름답게[美]’이다. 1898년 10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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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영암 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의 역대 영암 군수 공적비. 조선 시대 지방관은 이임(移任)하면 선정비를 세우는 게 관례로 되어 있었다. 선정비, 불망비, 영세불망비 등의 이름으로 세워졌는데, 재료는 철비나 석비, 형태는 호패형이거나 비갓을 갖추는 경우도 있었다. 영암 향교 공적비군(靈巖 鄕校 功績碑群)은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에 이르기까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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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조선 시대 재실과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고반재(考槃齋)는 밀양 김씨(密陽金氏)의 재실로서 해명재(海明齋) 또는 강명재(講明齋)라고도 한다. 1628년에 김홍발(金弘發)[1582~1643]이 노동 마을에 정착한 후 155년이 지난 1783년에 김치상(金致商)[1738~1797]이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3년에 중수된 건물이다. 고반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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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구림리의 구림 대동계 관련 문서. 『영암 구림 대동계 문서』는 구림 대동계 청사(廳舍)인 강수당(講修堂)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98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림 대동계(鳩林大同契)는 1565년(명종 20)에서 1580년(선조 13) 사이에 박규정(朴奎精)·임호(林浩)·이광필(李光弼)·박성정(朴星精)·유발(柳潑)·박대기(朴大器)·임완(林浣)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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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군(郡). 영암군은 전라남도의 서남해안 지역의 최남단에 위치한 군으로 중국의 주요 항구인 상해, 청도 등과 최단 거리에 있어 중국 대륙 및 동남아시아,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곳이다. 그리고 대불 국가 산업 단지[영암 테크노폴리스]를 비롯한 현대 삼호 중공업, 삼호 산업 단지, 대불항 등의 산업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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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의 농업 관련 기술의 개발 보급, 농민 교육 및 지도를 담당하는 행정 기관. 영암군 농촌의 진흥 개발을 위해 농업 시험 연구, 계몽 지도, 기술 보급 및 농촌 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으로 농촌의 복지 증진을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 1957년 12월 농사 교도법 제정에 따라 영암군 농촌 지도 사업을 위하여 1958년 3월 1일 영암군 영암읍 역리에 청사를 신축하고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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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국가 유공자 복지 시설. 영암군에 있는 국가 유공자와 그 유족의 자활 능력을 배양하고 순국선열과 호국 전몰장병의 유지를 이어받는 활동에 이바지하기 위해 세워졌다. 1963년 8월 7일 제정 공포된 법률 제1389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대한민국 전몰군경 유족회, 대한민국 전몰군경 미망인회 등 3개 단체의 국가 유공자와 그 유족이 상부상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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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춘양리에 있는 선거와 국민 투표의 공정한 관리, 정당 및 정치 자금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국가 기관. 영암군 선거 관리 위원회는 1963년 2월 7일 전라남도 제12지역 선거구 선거 관리 위원회로 개설하였다. 영암군 내의 각종 선거와 국민 투표의 공정한 관리, 정당 및 정치 자금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있다. 1963년 1월 16일에 법률 제1255호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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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영암군의 사무를 심의·의결하는 기관. 1990년 12월 91일 법률 제4310호로 지방 자치법을 개정하고, 이에 따라 1991년 3월 26일 영암군 의원 선거에 의하여 1991년 4월 15일 의원 정수 11명으로 제1대 영암군 의회가 개원하였다. 영암군 의회는 영암군 행정을 수행하는 영암군청의 행정 수행을 감시·견제하고, 군민의 민의를 반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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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대한민국 재향 군인회의 영암 지역 분회. 영암군 재향 군인회는 군에 복무하고 예비 병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재향 군인의 국가 기여에 대한 긍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조직된 단체이다. 재향 군인회는 회원 상호 간의 상부상조를 통한 친목 도모, 둘째, 회원의 복지 증진과 권익 신장, 셋째, 국가 발전과 사회 공익 기여의 기치를 내걸었다. 영암군 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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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군립 도서관 영암군 정보 문화 센터 영암 도서관은 영암군민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 정보 및 문화 활동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4년 12월 14일 영암 군립 도서관은 영암군 영암읍 역리에서 개관하였다. 당시 도서관은 군민 회관을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증축,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2006년 10월 지역 문화 기반 시설 확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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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영암군민의 화합과 출향민(出鄕民)의 애향심 고취를 위해 제정한 날. 영암군은 영암군민의 화합과 출향민의 애향심을 고취하고, 영암군의 이미지를 드높이기 위해 10월 30일을 영암군민의 날로 제정했다. 매년 10월 29일~30일까지 영암군민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영암군민의 날 행사는 이틀간 진행된다. 첫째 날에는 영암군 산악회가 주관하는 월출산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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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영암군 관할 행정 기관. 영암군청은 영암군의 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설치되었다. 영암군정을 운영하기 위하여 하부 행정 기관을 두어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고, 주민의 복지 증진과 지역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전라남도 지사가 임명한 임명직 군수는 1948년 1대 이영조(李永造) 군수부터 35대 강박원 군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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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녹동 서원과 관련된 목판과 고문서. 녹동 서원(鹿洞書院)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는 녹동 서원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1868년 서원 훼철 이후 목판각(木板閣)과 합경재(合敬齋)로 이관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녹동 서원은 영압읍 교동리에 위치해 있고, 목판각과 합경재는 덕진면 영보리에 위치하고 있다. 녹동 서원은 1630년(인조 8)에 존양사(存養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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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메밀 방죽 옆에 있는 장승. 영암(靈巖) 메밀 방죽 옆 장승(長丞)은 영암 죽정리 국장승이나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과 비교하여 석재의 풍화 상태나 고어체의 명문 등으로 보아 그 조성 연대가 상한될 것으로 추정된다. 1986년 9월 29일 전라남도 민속 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학산면 용산리의 경계인 메밀 방죽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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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박형준·박효남·박호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 영암 삼충각(靈巖 三忠閣)은 임진왜란 때 전사한 박형준(朴亨俊)[1548~1592]과 그의 두 아들인 박효남(朴孝男)[1568~1592], 박호남(朴好南)[?~1592] 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박형준은 예안 현감으로 재임 시 향곡(餉穀)을 거두지 못해 영암으로 유배되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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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장승. ‘장생(長生)’이란 표기는 주로 신라와 고려 전기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고려 말과 조선 전기 이후로는 ‘장승(長丞)’이란 표기가 많이 보인다. 이를 미루어 영암(靈巖) 소전머리 황장승(皇長丞)의 건립 연대도 매우 오래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생은 『동국여지승람』에 영암 죽정리 국장승과 함께 기록이 발견되는데, 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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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기독교 장로교회.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위치한 영암읍 교회는 영암군 최초의 교회 중 하나로, 교단은 한국 기독교 장로회이다. 목포 선교부 소속의 맹현리 선교사가 설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암군의 장자 교회인 영암읍 교회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한 초가를 임대하여 설립하였다. 교회 설립 초기에는 목포 선교부에서 선교사를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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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현대 순교비. 영암읍 교회 순교비(靈巖邑 敎會 殉敎碑)는 영암읍 교회 교인 24명이 6·25 전쟁 당시 처형당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순교비이다. 영암읍 교회는 1917년 당시 목포 선교부에서 사역을 하던 맹현리 선교사가 설립하였다. 이후 영암에서 모교회가 되었고, 맹현리 선교사가 당회장으로 재직하였다. 영암읍 교회는 6·25 전쟁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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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영암읍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 읍[영암읍·삼호읍]과 9개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영암읍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영암읍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영암읍(靈岩邑)은 영암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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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남풍리·동무리·역리에 걸쳐 있는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읍성 터. 영암읍성이 있는 영암읍 일대는 삼국 시대부터 군현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나군[月奈郡]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靈巖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성종 때는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하였으며, 1018년(현종 9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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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있는 조선 후기 이래 영암의 대표적인 집성촌. 영암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마을 영보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한 마을로, ‘영보 12동네’로 구성되어 있다. 영보 12동네는 내동, 서당동, 관곡, 참새굴[냉천], 노로동, 솔안, 홍암, 장동리, 운곡, 송석정, 선암, 세류정을 말한다. 이를 행정 구역 기준으로 보면, 서당동과 내동은 영보 1구, 관곡과 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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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천안 전씨 문중 사우. 영암 장동사(靈巖 長洞祠)는 천안 전씨(天安全氏)의 문중 사우(祠宇)로, 전몽성(全夢星)[1561~1597]과 아우인 전몽진(全夢辰)[1565~1597], 전몽태(全夢台)[1571~?]를 배향하고 있다. 영암 장동사는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전몽성은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 참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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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죽정 마을에 있는 고려 시대 국장생. 영암 죽정리 국장승(靈岩 竹亭里 國長丞)은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미수기언』, 『동국명산기』, 『동환록』 등에 기록이 보인다. 건립된 시기는 최근의 판독에서 대안 6년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는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국장승이 세워진 1085년(고려 선종 2)과 비슷한 시기이다. 또한 영암 죽정리 국장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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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유교 성현의 봉사와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설치한 조선 시대의 교육 기관. 영암 향교(靈巖 鄕校)는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다. 영암 문화원에서 영암군청 방향으로 20m 정도 가면 영암 향교가 보인다. 영암 향교는 조선 시대 현유(賢儒)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고, 영암 지역 사람들의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설치한 지방 교육 기관이다.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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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에 있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의 교회.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의 영은 교회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단의 교회로서, 영암 지역에 최초로 들어온 감리 교단의 교회이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는 1884년 맥클레이 선교사가 내한하여 고종 황제의 윤허를 받아 의료 선교와 교육 사업을 통해 시작되었고, 1930년 조선 감리교가 자치 교회를 설립하면서 발표한 기독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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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호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영평리(永平里)의 영(永) 자와 회호정(回湖亭)의 호(湖) 자를 따서 영호리(永湖里)라고 했다. 영평 마을은 운월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영원히 풍요롭고 평안하라는 뜻으로 길 영(永) 자와 평안할 평(平) 자를 써서 영평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호정 마을은 어느 도사의 말을 믿고 바다에 둑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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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이제현과 조선 전기의 무신 이인걸을 모신 사우. 영호사(靈湖祠)는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과 이제현의 11세손인 월재(月齋) 이인걸(李仁傑)[1566~1593]을 배향한 사우(祠宇)이다. 이제현은 고려 말에 성리학을 들여와 발전시켰으며 예문 춘추관 등의 관직을 지냈다. 이인걸은 임진왜란 때 권율의 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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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오경리(吳慶履)[1813~1893]는 영암군 학산면(鶴山面) 은곡리(隱谷里)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영암 서호면 구적동정사(球積洞精舍)에서 수학하였고, 18세 때에는 영암 구림 문수암(文殊庵)에서 수학하였다. 영암에 거주하다가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고종 때 공조 참판을 지냈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화(仲和), 호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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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야리(沃野里)는 마을에서 기와를 구웠기 때문에 왯골, 외얏골, 오야촌, 오야, 옥야, 효동이라고 불렸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옥야리라고 명명하였다. 옥야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종남면 신산리(新山里), 서촌리(西村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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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보를 시조로 하고 육기평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옥천 육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입향조 육기평(陸基平)이 학산면 매월리에 입향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옥천은 충청북도 남쪽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의 충청북도 옥천군이다. 시조 육보(陸普)는 당나라 사신으로 신라에 파견되었다가 귀화하였고, 경순왕의 총애를 받아 부마가 되었다. 관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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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사용한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총칭. 옹기그릇은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총칭이다. 질그릇은 진흙만으로 초벌구이를 한 그릇으로 잿물을 입히지 않아 윤기가 없고 겉이 테석테석한 그릇이고,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오짓물을 입혀 다시 구운 그릇으로 윤이 나고 단단하다. 그런데 근대 이후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옹기는 주로 오짓물이 입혀진 오지그릇을 지칭하는 말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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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와우리(臥牛里)는 지형이 누운 소 모양이라 하여 누리 또는 와우(臥牛)라고 불렀다. 와우리 와우 마을은 앞산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 되새김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 와우리(臥牛里)라 부르고 있다. 와우 마을에서 안산 잔등을 넘어가면 소의 아래라 하여 소아래 마을이라고도 부르는 우정(牛井) 마을이 있다. 와우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북이시면(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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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화산리(花山里), 분수리(汾水里), 신기리(新基里), 양와리(羊臥里), 강변리(姜邊里), 운동리(雲洞里), 기동(基洞)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양와리의 와(臥) 자와 운동리의 운(雲) 자를 따서 와운리(臥雲里)라 했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의 원정면에서 양와, 기동 등의 마을 기록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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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영암의 연안 및 내륙에 출몰하였던 일본 해적. 왜구는 13세기 “왜구금주(倭寇金州)”라는 구절과 함께 역사 속에 등장하였다. 고려로 침입한 왜구는 미곡을 실은 조운선 약탈과 인명 살상 등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섬, 연안에 사는 사람들은 연해 및 육지로 이주하여 섬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을 정도였다. 영암도 1350년(고려 충정왕 2)에 순천부에 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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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아산길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용당 초등학교는 기초·기본을 다져 창의력을 발휘하는 어린이, 소질을 계발하여 자기 꿈을 키워 가는 어린이, 몸과 마음을 가꿔 건강을 다지는 어린이, 고운 심성을 길러 바르게 행동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정하고 있다. 교훈은 ‘바르고 슬기롭게’이다. 용당 초등학교는 1949년 9월 1일에 삼호 서 국민학교 용당 분교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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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원용당(元龍塘) 마을의 이름을 따서 용당리(龍塘里)라 했다. 원용당 마을 동쪽에 구태 못[池]이 있어 사철 마르지 않아 주변 농토의 농업용수로 이용되었다. 이 못에 용(龍)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용당(龍塘)이라 부르고, 주변 마을 중 중심이 되는 마을이라 하여 원용당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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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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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산리(龍山里)는 용처럼 생긴 산이 있어 이름이 유래하였다. 용산리 원용산 마을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여 원용산(元龍山)이라 하였다. 용의 머리를 ‘암태고랑’이라 하여 암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용산리는 본래 북일시면(北一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우, 용동, 기동, 당산, 치등, 신기촌 일부를 병합하여 용산리를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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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변의 백용산, 오봉산이 용의 형국과 비슷하다 하여 용산(龍山)이라 하였다. 용산리는 본래 영암군 원정면(元井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흥리(新興里), 서당리(書堂里), 용계리(龍溪里), 기동(基洞) 마을 일부와 나주군 금마면(金磨面)의 서천리(西川里)를 병합하여 용산리(龍山里)라 하여, 금정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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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용지리(龍池里)의 용(龍) 자와 복산리(福山里)의 산(山) 자를 따서 용산리(龍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용산리는 조선 시대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용지리, 복산리, 구산리(龜山里), 신소정리(新沼亭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곤이시면 용산리로 개설되었다. 1932년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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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되었던 천해(泉海) 마을 남쪽에 있던 깊은 소(沼)에서 용(龍)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소리(龍沼里)라 하였다. 용소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지소(紙所), 용계(龍溪), 신안정(新安亭), 천해(泉海), 도림정(桃林亭)을 병합하여 용소리로 개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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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 떼. 월출산 용암사지 입구에 있는 용암사(龍岩寺) 터 부도(浮屠) 떼는 135㎝, 156㎝ 크기의 석종형(石鐘形) 부도로서 왼편의 승탑에만 ‘죽암당(竹菴堂)’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으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건립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나, 그 형태로 미루어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용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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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용암사 터의 서쪽에 위치한 고려 전기의 삼층 석탑. 용암사(龍岩寺) 터 서(西) 삼층 석탑(三層石塔)은 용암사 터의 서쪽에 있는 석탑으로,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고 그 위에 1층 탑신과 3층의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이 정면으로 보이는 좋은 위치에 세워져 있다. 고려 전기의 탑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제작 시기 등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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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용두리(龍頭里), 궁항리(弓項里), 모가두(毛可頭), 상앙리(上仰里), 하앙리(下仰里), 앙감(仰甘), 호동(虎洞)을 병합하고, 용두리의 용(龍)과 앙감의 앙(仰)을 합하여 용앙리(龍仰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곤일종면 용앙리가 개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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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봉덕리(鳳德里), 용두리(龍頭里), 용강리(龍江里), 용현(龍峴), 안기리(安基里), 우적리(牛跡里), 세흥리(世興里), 안적리(安適里), 학동(鶴洞), 용천리(龍泉里), 흥리(興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용두리의 용 자와 세흥리의 흥 자를 따서 용흥리(龍興里)라 하였다. 용흥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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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운곡(雲谷) 마을의 운(雲) 자와 선암(船岩) 마을의 암(岩) 자를 따서 운암리(雲岩里)라 하였다. 또한 덕진면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고, 오봉산(五峰山) 기슭이라 항시 구름이 끼고 암석이 많아서 운암리라고 했다고도 전해진다. 운암리의 운곡 마을은 선암 위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구름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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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송석정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운암리 선돌은 ‘선독골’ 또는 ‘비석거리’라고 불리는 마을 중앙 하천 옆에 위치한다. 운암리 선돌은 남근형으로 남성의 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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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에 있는 운호사 소장 자료. 운호사(雲湖祠)는 서호면 몽해리에 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문중 사우이다. 1817년(순조 17)에 김극희(金克禧), 김함(金涵), 김완(金完), 김여준(金汝俊), 김여옥(金汝沃)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1년에 복원되었다. 운호사 소장 자료는 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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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원불교 교당. 원불교는 1916년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이 창시한 종교이다. 박중빈은 전라남도 영광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삼라만상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의문을 품고 독자적으로 구도를 시작하였다. 1916년 스스로 대각하였으며, 이후 다양한 종교를 접하고 스스로 뜻을 세워 새로운 종교를 창설할 계획을 세웠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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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李申佑)를 시조로 하고 해남에 정착한 이영화의 후손들이 전라남도 영암군에 분거하여 기반을 마련한 세거 성씨. 원주 이씨(原州李氏)는 조선 시대 해남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445년 이영화의 해남 입향으로 해남 인근 지역에서 활발한 향촌 활동을 하였다. 다수의 인물이 중앙 관료로 진출하였고, 영암 옥천면에 살았던 옥봉 백광훈의 아들 백흥남을 사위로 맞이하는 등 해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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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원목(元木)의 원(元) 자와 항동(項洞)의 항(項) 자를 따서 원항리(元項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목 마을은 마을 길가에 원목점이라는 주막이 있다 하여 원목점이라고 부르다가 행정 개편 이후 원목 마을이라고 개명하여 부르고 있다. 항동 마을은 마을 남쪽에 있는 개[浦]의 지형이 구부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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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원항리에 있는 현풍 곽씨 집성 마을. 현풍 곽씨(玄風郭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한 곽경(郭鏡)[1117~1179]이다. 곽경은 중국 관서(關西)의 홍농인(弘農人)으로 고려에 귀화한 후, 1138년(인종 16)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랐으며, 포산군(苞山君)에 봉해졌다. 이후 곽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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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암군 군서면사무소가 위치한 곳이다. 남쪽은 월출산을 경계로 군서면 도갑리, 서쪽은 군서면 성양리, 동쪽은 영암읍 회문리, 북쪽은 군서면 마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월산(月山)의 월(月) 자와 호곡(虎谷)의 곡(谷) 자를 따서 월곡리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시면(西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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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임구령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우. 월당 영당(月堂 影堂)은 임구령(林九齡)[1501~1562]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우(祠宇)이다. 임구령의 자는 대년(大年), 호는 월당(月堂)으로서 조선 중종 대에 광주 및 홍주 목사를 지냈다. 월당 영당은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영모정 마을의 깊숙한 곳에 있다. 월당 영당은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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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롱리(月弄里) 원월롱(元月弄) 마을 앞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을에 거주하는 한 노인이 깊은 달밤에 연못가에 나와 달을 구경하다가,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달그림자가 사람을 희롱한다고 하여 달 월(月) 자와 희롱할 롱(弄) 자를 따서 월롱(月弄)이라 하였다는 구전이 있다. 한편 원월롱 마을에서 남으로 야트막한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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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망월리(望月里)에서 월(月)자와 송산(松山)의 송(松)자를 따서 월송리(月松里)가 되었다. 월송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북이시면(北二始面)의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명목리, 치리(峙里), 신당(神堂), 송산, 회덕리(回德里) 일부와 진도군 명산면(命山面)의 망월리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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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악리(月岳里)는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으므로 다라기 또는 월동, 월악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월악리라 명명하고, 시종면에 편입하였다. 월악리의 중계 마을은 예로부터 달악리, 다라기, 달애기, 다래기 등으로 불리다가 중월(中月)과 하월(下月) 마을로 이름을 바꿔, 1955년까지 이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하월이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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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에 있는 근대의 문인 김형식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제단. 김형식은 좌참찬을 역임한 영광 김씨 김찬(金瓚)의 후손으로 자는 경화(敬華), 호는 난은(蘭隱)이다. 과거에는 출사하지 않았지만 학문이 뛰어나 많은 문인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김형식이 사망한 뒤 1935년에 문인들이 월암단을 세워 배향하였다. 또한 월암단은 월암사(月巖祠)로도 불린다. 월암단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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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달못[군산천]이 있으므로 달못 또는 월지(月池)라 불렀다. 월지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달신기(達新基), 중촌리(中村里), 백옥동(白玉洞), 호동(虎洞), 칠거리(七距里), 덕림정(德林亭) 일부와 나주군 종남면(終南面)의 복룡동(伏龍洞) 일부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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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봉사 활동 단체. 월출 청년 동우회는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를 실천하고 회원 간 친목도 도모하는 향민 단체이다. 지역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더 살기 좋은 영암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월출 청년 동우회는 내 고향을 지키며 가꾸는 청년들이 모여 지역 사회의 발전과 단결, 봉사, 창조의 이념으로 지역 개발에 솔선수범하는 데 그 창립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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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는 용암사의 폐사지. 월출산(月出山) 용암사(龍巖寺) 터는 영암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는 폐사지(廢寺址)로서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 여래 좌상과 삼층 석탑 2기(基), 조선 시대 후반의 부도 2기가 현존하고 있으며, 문헌 기록과 출토된 기와의 명문을 통해 용암사 터임이 확인되었다. 월출산 용암사 터는 ‘용암사지(龍嵒寺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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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 있는 영암의 대표적 관광 명소. 영암 월출산 기찬랜드는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월출산 국립 공원의 왕성한 기(氣)와 천황봉 자락 계곡의 맥반석에서 흘러나오는 청정수를 활용하여 영암읍 회문리 94번지 일원 6만 7000㎡ 부지에 조성된 영암의 대표적 관광 명소이다. 이곳은 월출산의 정기를 받아 불후의 민족 음악을 창시한 악성 김창조를 비롯하여 제헌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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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평리(月坪里)라는 명칭은 월평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마을 앞으로 금천(金川)이 흐르는데 금천 건너 삼망산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넓고 비옥한 논이 무리지어 있는 때논들[群畓坪]이 금천과 어울려 월형(月形)을 이뤄 월평이라 했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통합한 마을의 중심인 월평 마을의 이름을 따서 월평리라 했다. 아천리는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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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들에 달풀이 많아 달들 또는 월평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월평리(月坪里)라 했다. 월평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간은리(干隱里), 병정리(並亭里), 안정리(安亭里), 호산점(虎山店), 여동(汝洞), 수양리(水良里) 일부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의 모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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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역리에 있는 종교 단체. 월혜 법단이 속한 일관도는 중국에서 유입된 종교로서 1947년 이덕복(李德福)·장서전(張瑞荃)·김은선(金恩善)에 의하여 국내에 전파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명명상제(明明上帝)와 미륵불이다. 일관도는 ‘국제 도덕 협회[일관도]’라는 이름으로 1965년 공보부에 등록하였으며, 2005년 현재 전국에 164개의 법단이 있다. 일관도에서는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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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운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 김완(金完)은 1577년(선조 10) 8월 23일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구(子具)이다. 1597년 무과에 급제한 후 무신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활약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1624년(인조 2)에 발생한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올라 학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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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地形)이 닭 벼슬 형국(形局)이라 하여 닭실, 또는 닭 유(酉) 자와 골 곡(谷) 자를 써서 유곡(酉谷)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유곡리(酉谷里)라 했다. 유곡리(酉谷里)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유곡(酉谷), 옥정리(玉井里), 용덕리(龍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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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이루어진 유학과 관련된 제반 활동.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예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유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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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정치인. 유인곤(柳寅坤)[1904~1970]은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출신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를 졸업한 후 만선 척식 회사(滿鮮拓植會社) 사원으로 재직하였고, 제2대 국회 영암 지역구 국회 의원을 지냈다. 유인곤은 1950년 5월 30일 제헌 국회에서 제정한 「국회 의원 선거법」에 따라 실시된 제2대 국회 의원 선거에 대한 국민당 후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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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학령기 전 아동 교육 담당 기관. 유치원은 만 4세부터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기관으로 창의적인 놀이와 사회 및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기초를 제공하여 유아의 자아 개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유치원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기본적인 사회성과 도덕, 인격 형성, 지식 등을 갖추고 입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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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육만태(陸萬泰)는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치질병과 담병(痰病)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고, 산에 올라가 노루를 잡아 아버지의 병을 구완하는 효행을 보였다. 본관은 옥천(沃天), 자는 래숙(來叔), 호는 은산(隱山)이다. 옥천 육씨 덕곡공파(德谷公派) 육보의 후손이며, 육세록의 손자이다. 육만태는 효성이 지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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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육우당(六友堂)은 박흡(朴洽) 장군이 지은 정자이다. 박흡 장군의 자는 여윤(汝潤), 호는 육우당(六友堂)으로,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증손이다. 구림에서 출생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김천익 장군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전투 등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운 충절의 장군이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23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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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은적산(隱蹟山) 아래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은곡리(隱谷里)라 했다. 1789년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서 은곡(隱谷)이라는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은곡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양지리(陽地里), 음지리(陰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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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신호정길 43-17번지에 있는 사립 특수 학교. 은광 학교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애국인], 더불어 살아 갈 줄 아는 공동체 의식을 지닌 사람[도덕인],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자립인], 사회 적응 능력과 부단히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기술인], 맑은 마음과 건강한 체력을 갖춘 사람[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성실하자, 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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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소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예술 활동. 영암 지역의 고유한 예술 정신이 담겨 있는 음악으로는 민요, 농악, 산조, 강강술래 등의 민속 음악을 들 수 있다. 김창조를 산조의 시조로 추앙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영암 지역은 전반적인 민요의 전승이 활발한 것은 물론 격조 높은 산조 음악을 탄생시킬 만큼 음악적 토양이 풍부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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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각종 의례 때에 특별히 갖추어 입는 예복. 의례복은 혼례나 상례 등 각종 의례 때 예를 갖추기 위해서 입는 옷이다. 영암 지역에서 입었던 의례복에는 혼례복, 제복(祭服), 상복(喪服), 돌복 등이 있다. 관복은 고대 관리들의 예복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에는 혼례복으로 사용되었다. 도복은 도학자나 유학자들이 입는 예복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제례복으로 통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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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에서 1910년 사이 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자발적으로 조직한 군대. 의병은 국가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무력 항쟁으로 이를 타개하고자 각 지방의 유생과 농민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으로 조직한 군대이다. 항일 의병의 시작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대한 반일 감정에서부터 출발하였는데, 호남 지역의 경우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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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된 생활 풍속. 옷은 인간 생활을 영위하고 필수적으로 몸을 보호하며 예의를 갖추는 데 필요한 것으로 오랜 세월과 더불어 고유한 현상을 지니면서 변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조선 시대까지 남자는 바지·저고리, 여자는 치마·저고리를 기본으로 하는 복식이 이어져 왔다. 개항기 이후에 외래 문물의 유입과 서구화로 급격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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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개항기 때 효열부 나주 나씨의 행적비. 나주 나씨(羅州 羅氏)는 통정대부 나도현(羅燾炫)의 딸이자 경주 이씨 이경우(李絅雨)의 부인이다. 조선 고종 대의 인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출가한 후에는 남편을 공경하고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였다. 또한 순한 말과 바른 행동으로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고 한다. 영암 지역 유림들이 나주 나씨의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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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육군 장성. 이백우(李白雨)[1919~?]는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출신으로, 군사 영어 학교와 육군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준장을 지냈다. 이백우는 광복 후 미 군정청이 세운 군사 교육 기관인 군사 영어 학교를 1946년 5월 1일에 졸업하였으며, 대한민국 육군의 중견 및 고급 장교를 교육시키기 위해 1951년에 설립된 육군 대학을 나왔다. 6·25 전쟁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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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행정 관료. 이영의(李泳儀)[1927~2009]는 서호면 몽해리 출신으로, 전라남도에서 행정 관료로 공직 생활을 하였다. 조선 대학교 대학원 행정 연구 과정을 수료하였다. 전라남도 공무원 교육원 서무과장, 농정국 농지과장, 내무국 세정과장, 전라남도 기획 담당관, 민방위과장, 민방위 국장 등을 지냈고, 무안 군수와 함평 군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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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국악인. 이창윤(李昌允)은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미상이다. 명창 이날치(李捺致)에게 서편제(西便制)의 법통을 이어받아,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에 걸쳐 활동하였다. 특히 「심청가(沈淸歌)」를 가장 잘 불렀는데, 심청이 밥 빌러 가는 대목과 심청이 공양미 300석에 뱃사람에게 팔려가게 되자 심 봉사가 통곡하는 대목을 잘하였다. 특히 슬프고 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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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 마을인 이목동(梨木洞)의 이(梨) 자와 천동(泉洞)의 천(泉) 자를 합하여 이천리(梨泉里)라 했다. 이천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남계리(南溪里), 이목동(梨木洞), 신덕동(新德洞), 천동(泉洞), 월평리(月坪里) 일부, 북일종면(北一終面)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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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이후백(李後白)[1520~1578]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하여 호남(湖南)에서 명망(名望)이 높았으며, 호남 암행어사·대사간·이조 판서·호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종계변무(宗系辨誣)[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중국 명나라에 잘못 기록된 이성계의 세계(世系)를 고쳐 달라고 주청하던 일]의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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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 구역, 인구, 교통, 관광, 산업 등의 분포와 특성. 영암군은 전라남도 남서부의 영산강 하류와 탐진강 상류에 위치한다. 동쪽 끝은 금정면 청용리 산29번지[동경 126°52′, 북위 34°52′]로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서쪽 끝은 삼호읍 용당리 2172-5번지[동경 126°21′, 북위 34°44′]로 전라남도 목포시 충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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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영암군은 영산강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과 바다를 경계로 목포와 마주보고 있는 지역이다. 1897년(대한제국 광무 원년) 목포가 개항된 이후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다. 육상 교통로의 경우 강진군 관내 병영을 경유하여 장흥에 이르는 도로가 개설되어 화물과 사람의 왕래가 편리해졌다.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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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영모정 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임구령의 무덤. 임구령(林九齡)[1501~1562]의 본관은 선산, 자는 연수, 호는 월당(月堂)이다. 임우형(林遇亨)의 다섯째 아들로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동생이다. 정난위사(靖亂衛社) 공신 2등에 책록되고 남원 도호부사, 나주 목사를 지냈으며, 지남제 간척을 주도하였다. 관련 유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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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침입하여 영암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정유재란까지 포함하지만, 때로는 1차와 2차를 나누어 1차는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는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 칭하기도 한다. 1591년 3월 일본이 조선에 전달하였던 요구는 가도입명(假道入明), 곧 ‘명으로 가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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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면적·지형·기후 등 포괄적인 자연 지리적 환경. 영암군은 전라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전라남도 장흥군, 서쪽은 무안군, 남쪽은 해남군·강진군, 북쪽은 나주시와 접한다. 영암군의 북쪽 끝은 신북면 학동리 학동 마을[동경 126° 41′, 북위 34° 56′], 동쪽 끝은 금정면 청용리 분토 마을[동경 126° 52′, 북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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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장동사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 장동사(長洞祠)는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천안 전씨(天安全氏) 문중 사우이며, 1677년(숙종 3) 임진왜란 때 순절한 전몽성(全夢星)을 추모하기 위해 서호면 장천리 장동 마을에 건립한 사우이다. 1706년(숙종 32)에 중수하였으며 1776년(영조 52)에 전몽진(全夢辰), 1836년(헌종 2)에 전몽태(全夢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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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긴 산에 둘려 쌓여 있다고 하여 산장산(山長山)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장산리(長山里)라 했다. 장산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수현리(水峴里), 신동(新洞), 대월촌(大月村), 산장산(山長山), 가막산(加幕山), 서당동(書堂洞), 기정(奇亭), 행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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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 양동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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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선리는 덕진면 소재지 서쪽에 있는 마을로 긴 산등성이 밑에 자리하여 장선 또는 장산(長山)이라 하였다. 또 마을의 지형이 긴 배[船]와 같다 하여 길 장(長), 배 선(船)을 써서 장선(長船)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장선리는 조선 시대에 북일시면(北一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옹점리, 자경리, 광길리, 당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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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남평 문씨 집성 마을.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입향조인 문맹화(文孟和)[?~1487]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아내인 연촌 최덕지의 외손녀 서흥 김씨의 고향인 영암에 은거하면서 장암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게 된 성씨다. 남평 문씨는 문익주(文益周)를 위시하여 문익행(文益行), 문익현(文益顯), 문후소(文後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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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장국에 절여 구운 민물 장어[뱀장어]를 원료로 만든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 나는 민물 장어는 다른 곳에 비해 그 맛이 담백하다. 또한 장국에 절여 구운 장어를 재료로 만든 장어덮밥은 맛이 일품이어서 영암군 사람들의 오랜 기호 식품이었다. 민물 장어는 강에서 자라다 성어(成魚)가 되어 산란기가 가까워지면 8~10월 무렵 에 강 하류로 내려온다. 강 하류에서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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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서호로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장천 초등학교는 새롭게 생각하며 탐구하는 어린이, 예절을 지키며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자기 빛깔을 찾아 가꾸어 꿈을 키우는 어린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씩씩한 어린이, 내 고장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세계와 미래로 향하는 희망찬 공간’이다. 장천 초등학교는 1924년 9월 24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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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장동(長洞)의 장(長) 자와 상천리(上川里)의 천(川) 자를 따서 장천리(長川里)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에 속해 있는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천리, 괴음(槐陰), 도리정(桃李亭), 장동을 병합하여 곤이종면 장천리로 개설되었다. 이후 1930년 곤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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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천안 전씨 집성 마을. 천안 전씨(天安全氏)는 전섭(全聶)을 시조로 하며, 1504년(연산군 10)에 전승문이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 태동에서 장천리로 입향하면서 지금까지 세거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상천리(上川里), 괴음리(槐陰里), 도리정(桃李亭), 장동(長洞)을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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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연을 시조로 하고 고병윤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장흥 고씨는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영암군과 인접한 장흥에 본적을 둔 성씨이다. 19세기에 간행된 『영암군 읍지(靈巖郡邑誌)』 성씨 조에는 장택 고씨로 입록되어 있다. 장흥은 전라남도 장흥군을 일컫는 지명이다. 시조는 고중연(高仲淵)으로, 고려 말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공민왕을 호종하고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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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전몽성·전몽진·전몽태 삼형제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전씨 충효문(全氏 忠孝門)은 천안 전씨(天安全氏) 문중의 전몽성(全夢星)[1561~1597]과 전몽진(全夢辰)[1565~1597]의 충절을 기리고, 전몽태(全夢台)[1571~?]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워진 정문(旌門)이다. 전몽성은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 참여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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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상춘(李尙春)·이군화·이대남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전주 이씨는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 하나이다. 주요 세거지는 금정면 와운리와 도포면 성산리, 서호면 성재리 등이다. 전주는 전라북도 중앙에 위치한 지명이다. 전주 이씨 시조 이한[?~754]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하였고, 문성왕(文聖王)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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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작을 시조로 하고 최덕지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전주 최씨(全州崔氏)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최순작(崔純爵)이 시조이다. 최순작의 후손 최수강(崔秀岡)이 고려 말에 낙향해, 후손들이 최수강을 중시조로 삼고 완산(完山)[현재의 전라북도 전주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는 『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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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어패류를 소금에 절여 저장 식품으로 만들어 먹던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는 가까운 바다에서 잡힌 어패류를 소금에 절여 젓갈로 만들어 먹었다. 특히 숭어창자젓, 모치젓, 새우젓 등이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여서 어패류의 자원이 풍부하고 다양하다. 그래서 물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에는 소금에 절여 저장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젓갈로 계승되었다. 젓갈에 관해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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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강리 당산 마을에 있는 함풍 이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함풍 이씨(咸豊 李氏)는 사인(士人) 정몽열(丁夢說)의 처로 효심이 높아 시부모를 잘 섬겼다. 남편이 괴질에 걸려 4년간 지성으로 간호를 하였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죽자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렀다. 남편의 장례를 마친 이씨는 약을 먹고 자결을 하여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때 나이는 25세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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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문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정문손(鄭文孫)[1473~1554]의 본관은 하동(河東), 호는 모효재(慕孝齋)이다.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200여 명의 성균관생들과 함께 조광조의 신원을 구하기 위해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와 금강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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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비. 함양 박씨(咸陽 朴氏)는 오한 박성건의 후손으로 하동 정씨 정석렬(鄭錫烈)의 부인이다. 함양 박씨는 18세 때 정석렬과 혼인하여 시부모를 정성스럽게 모셨으며, 남편 정석렬이 병에 걸렸을 때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먹여 남편을 살리고 3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석렬 처 함양 박씨 열녀비(鄭錫烈 妻 咸陽 朴氏 烈女碑)는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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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국가 권력 혹은 지방 자치 단체가 권력을 획득 유지하고 변화시키는 활동에 영암군민이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활동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 영암군 지역의 정치 활동으로는 선거를 통한 대통령, 국회 의원, 광역 단체장, 지역 단체장, 시 의원 등을 선출하는 영암군민의 활동과 이를 통해 선출된 지역 단체장 및 시의원들이 영암군청과 영암군 의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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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사상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중세 사회에서 근세 사회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행정 편제, 인구와 성씨, 교통·통신, 경제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 초기 영암 지역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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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죽정 서원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박성오의 영당. 조양재 영당(朝陽齋 影堂)은 박성오(朴省吾)[1589~1651]의 영당이다. 박성오의 본관은 함양, 자는 자안, 호는 조양재(朝陽齋)이다. 인품과 학식을 겸비하여 인조 때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공주에서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였으며, 병자호란에는 남한산성에서 호가(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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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조인수(曺麟壽)는 천성이 착하고 어버이를 공경할 줄 알았으며, 열다섯 살에 아버지가 일찍 죽자 어머니를 43년 동안 섬기며 끝까지 효행을 다했다. 『영암읍지』에 “편모를 섬김에 있어 하루같이 하니 고을 사람들이 감탄을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항상 행동과 몸가짐을 바르게 하니 인근 주민뿐만 아니라 선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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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초월적인 존재 및 깨달은 존재, 혹은 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신앙 행위. 영암군에서 천주교 교인들이 모여 교우촌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광복 이후이다. 1954년 4월 천순임과 그의 남편인 정종완 외 영암에 거주하고 있었던 6명의 예비신자가 영산포 본당 주일 미사에 참례하였다. 1957년 10월 4일에 영암 공소가 확정되는데, 6·25 전쟁으로 인해 삶이 피폐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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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가옥을 기반으로 영위해 온 주거 형태와 공간 배치 및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생활. 전통 사회 영암 지역 상류 가옥의 특징적인 요소는 정지 안에 부속된 정지방, 대청 안의 골마루, 그리고 작은방 측면의 퇴 등이다. 정지방은 전라남도 지방의 상류 가옥에 흔히 있는 보편적인 공간이다. 정지방의 존재를 통해서 두 지역의 가옥이 전라남도 지방 상류 가옥의 전형을 따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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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문화 유씨 문중 사우. 죽봉사(竹峯祠)는 1729년(영조 5)에 건립된 문화 유씨(文化柳氏) 문중의 사우(祠宇)이다. 배향하는 인물은 의금부도사를 역임하고 말년에 향촌에서 향촌민 교화에 힘쓴 사교당(四矯堂) 유준(柳浚)[1584~1661]과 영의정을 역임한 약재(約齋) 유상운(柳尙運)[1636~1707]이다. 죽봉사는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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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죽정 서원(竹亭 書院)은 함양 박씨의 문중의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18~1487], 고광(孤狂) 박권(朴權)[1465~1506], 수옹(壽翁) 박규정(朴奎精)[1498~1580], 귀락당(歸樂堂) 이만성(李晩成)[1659~1723], 설파(雪波) 박승원(朴承源)[1562~?] 등을 배향하고 있다. 박성건은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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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죽정 서원 소장 자료. 죽정 서원(竹亭書院)은 1681년(숙종 7) 함양 박씨(咸陽朴氏) 영암 입향조인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18~148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역 유림의 발의로 건립되었다. 1683년에 박권(朴權)과 박규정(朴奎精), 1726년에 이만성(李晩成), 1835년에 박승원(朴承源)을 추배하여 5위를 제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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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짐을 얹어 등에 지고 나르는 데 쓰는 기구. 지게는 각종 짐을 얹어 어깨와 등에 메고 나르는데 사용하는 운반 농기구로 우리나라에만 있다. 지게의 종류는 보통 지게를 비롯하여 물이나 거름 따위의 액체를 통에 담아 나르는 물지게와 거름지게가 있고, 또 쪽지게·옥지게·거지게 따위가 있다. 또한 특수하게 쟁기나 극젱이만을 얹어 나르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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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정자. 지학정(止鶴亭)은 1942년 3월에 민병구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지역 사람들의 교학을 힘쓰기 위해 건립하였다. ‘지학정’은 아버지의 호를 딴 것이다.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 백학동 마을 입구 왼편에 있다. 1942년에 여흥 민씨 민병구가 건립하였다. 팔작지붕의 누정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전 1퇴, 후 1퇴의 특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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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이 자리 잡고 있는 땅의 생김새와 형세. 영암군은 한반도 서남단의 영산강 하류에 이웃하고 있으며 동서 방향으로 길게 늘인 형태를 하고 있다. 동쪽은 소백산맥의 줄기가 이어져 산지를 이루고 있으나 중부와 서쪽은 낮은 구릉과 함께 영산강 및 지류 하천의 유역을 따라 평야 지대가 넓게 전개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동고서저형(東高西低型)의 지세를 이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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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같은 성(姓)과 본관(本貫)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집성촌은 한 성씨가 주도하는 동족 마을을 포함해 나타나는 여러 성씨들이 모인 이성 잡거(異姓雜居) 형태의 촌락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동족 촌락, 동족 부락, 동성 촌락, 동성 마을, 동족 마을이라고도 한다. 영암 지역의 집성촌에 대한 기록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식민지 지배를 목적으로 조사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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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에서 생산한 빗살이 아주 가늘고 촘촘한 대빗. 참빗은 머리를 정갈하게 다듬는데 주로 사용하는 빗으로, 대쪽을 잘게 쪼개서 살을 만들고 앞뒤로 대쪽이나 목제·우골(牛骨)을 대어 굳힌 아주 가늘고 촘촘한 빗이다. 진소(眞梳)라고도 한다. 낙랑 유적에서 목제 머리빗이 발견된 일이 있고, 삼국 시대 고분에서도 대모로 만든 빗이 발견되었다. 또 통일 신라의 것으로서 특이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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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참빗을 만드는 장인. 참빗[眞梳]이란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머리빗으로 크기에 따라 대소(大梳)·중소(中梳)·어중소(於中梳)·진양소·화각소(畵角梳)·민갑소·밀소(密梳)·써울치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빗의 역사는 매우 길어 기원전 1세기경의 고대 고분에서도 이미 빗이 출토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공조(工曹)에 참빗을 만드는 죽소장(竹梳匠)을 배치할 정도로 참빗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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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창꽃[진달래꽃]을 쌀가루와 섞어 떡으로 만들어 먹던 향토 음식. 주로 봄철, 특히 삼짇날인 음력 3월 3일에 창꽃을 쌀가루와 섞어 떡으로 만들어 먹었다. 영암군에서는 진달래꽃을 참꽃, 철쭉꽃은 개꽃이라고 부른다. 진달래꽃과 철쭉꽃은 똑같이 철쭉과에 속하면서 봄에 피지만 진달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철쭉은 잎이 꽃보다 먼저 난다.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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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창꽃[진달래꽃]을 쌀가루와 섞어 전으로 만들어 먹던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는 봄철에 찹쌀가루를 연하게 반죽해 얇게 펴놓고, 그 위에 진달래꽃을 장식해 지진 떡으로 만들어 먹었다. 영암군에서는 진달래꽃을 창꽃이라고 부르며, 주로 삼월 삼짇날 많이 만들어 먹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갈라 붙여 둥근 떡을 만든 다음 참기름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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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룡(曺繼龍)을 시조로 하고 조행립(曺行立)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창녕 조씨는 영암 지역의 사족 성씨 중의 하나이며, 조행립을 입향조로 하고 있다. 조행립은 영암 구림 대동계 중수의 주역으로서 영암 향촌 사회에서 창녕 조씨의 위상을 높인 인물이다. 창녕은 경상남도 북부에 위치한 곳으로 옛 창녕현(昌寧縣)과 영산현(靈山縣)이 합하여 이루어졌다. 시조 조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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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지초를 많이 캔 곳이라 하여 캘 채(採) 자와 지초 지(芝) 자를 써서 채지리(採芝里)라 하였다. 채지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망월정(望月亭), 비래산(飛來山), 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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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섭을 도시조, 전낙을 중시조로 하고 전승문, 전승무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천안 전씨(天安全氏)는 조선 시대 영암 지역의 유력한 세거 사족으로, 1504년(연산군 10) 전승문, 전승무 형제가 강진군 퇴동 마을에서 서호면 엄길촌에 입향한 이후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입향조 전승문의 맏아들인 전윤은 흥양 현감과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충순위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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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활동하는 로마가톨릭 교회. 천주교는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서기 30년경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 등지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로마 집권자들에게 300여 년간 박해를 받았으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을 공표하여 박해를 중지하였으며, 곧 이어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이후 로마 제국 권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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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밀양 김씨 집성 마을. 밀양 김씨 집성촌인 청용리 노동(蘆洞) 마을은 갈대가 많다고 해서 청용리 입향조인 김홍발(金弘發)[1582~1643]이 붙인 이름이다. 그 전에는 마을을 감싼 은적산에 위치한 옥룡암이 있기 때문에 옥룡동(玉龍洞)으로 불렸고, 지형이 바짓가랑이를 연상하게 해서 윗 가랫골이라고도 했다. 16세기 초에 김윤신(金潤身)[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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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 덕령산[도산천]의 청룡날 밑이 되므로 청용(靑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청용리(靑龍里)라고 했다. 청용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동산리(東山里), 월암리(月岩里), 성자리(聖子里), 기암리(機岩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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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변의 푸른 숲과 신흥 마을·영모정 마을의 주산인 용지봉(龍池峰)을 담아 청용리(靑龍里)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노동리(蘆洞里), 연정리(連亭里), 영모정(永慕亭), 신흥정(新興亭), 안산(安山), 신월정(新月亭)을 합하여 곤이종면 청용리를 개설하였다. 이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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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초등 보통 교육 기관. 일제는 민족 교육을 약화시키기 위해 ‘조선 교육령’, ‘사립 학교 규칙’, ‘서당 규칙’을 공포하여 민족 교육을 하는 학교와 야학 등을 탄압·약화시켰다. 한편 통감부는 1906년 이른바 보통학교령이라고 불리는 칙령 제44호를 공포하여 종래까지 초등 교육 기관을 담당했던 소학교의 명칭을 보통학교로 고치고 한편 심상, 고등 2과를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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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 사우인 서호사의 강당. 총취정(叢翠亭)은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 문중 사우 서호사(西湖祠)의 강당이다. 서호사는 구림 대동계 창설 인물 중 한 명이자 창녕 조씨 입향조인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을 배향한 사우(祠宇)이다. 1667년에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신흥동 마을에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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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지역 전주 최씨 입향조이자 문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가구(可久), 호는 연촌(烟村)·우수(迂叟)·존양(存養)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용봉(崔龍鳳), 할아버지는 최을인(崔乙仁)이고, 아버지는 검교(檢校) 최담(崔霮)이다. 어머니는 박인부(朴仁夫)의 딸 전주 박씨(全州朴氏), 부인은 중랑장(中郞將) 조안정(趙安鼎)의 딸 평양 조씨(平壤趙氏)이다. 슬하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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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최덕지의 초상화 진본과 초본. 「최덕지 초상(崔德之 肖像) 및 유지 초본(油紙 草本)」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초상화 진본과 초본으로 조선 시대 사대부 초상화로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최덕지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한 뒤 남원 부사 등 전라도 여러 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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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의병. 최병손(崔秉巽)은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출신이다.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의 후예로, 자는 자환(子懽), 호는 송남(松南)이다. 홍매산(洪梅山)의 문인 이낭해(李朗海)에게 수학하였으며,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최병손은 1896년 이장헌(李章憲)·조경환(曺景煥) 등과 함께 영암 지역의 유림을 규합하여 총수가 되었고, 단발령 반대 및 반외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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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학자. 최선석(崔宣錫)은 학문과 덕행이 바르고, 수학과 경전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고 시문을 즐겼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초당(草堂)이다. 참봉 최진(崔璡)의 손자이며 부인은 이덕온(李德溫)[1562~1635]의 증손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사교당(四矯堂) 유준(柳浚)[?~1660]의 문하에서 수학과 경전을 깊이 연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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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최지몽(崔知夢)[907~987]의 원래 이름은 최총진(崔聰進)이고, 영암 구림 출신이다. 경사(經史)에 널리 통달했으며 천문(天文)과 복서(卜筮)에도 정통하였다. 924년(태조 7) 18세 되던 해에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에게 발탁되었다. 왕건의 꿈을 삼한 통일의 길몽으로 해석하여 지몽(知夢)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이후 왕건의 총애를 받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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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의 녹동 서원에 배향된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필경(弼卿), 호는 산당(山堂)이며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했다.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손자로, 아버지는 사용(司勇)[조선 시대 오위(五衛)의 정구품 군직] 최별(崔潎),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부인은 참의 이약수(李若水)의 딸인 전의 이씨이다. 최충성(崔忠成)[14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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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춘동 마을의 입항조인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광춘(朴光春), 박광년(朴光年) 형제가 선황산에 올라가 춘동 마을 지역을 내려다보니 황소가 쟁기를 찬 형상이라 크게 번창할 곳이라 믿고 정착하여,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뜻에서 춘(春) 자를 따 마을 이름을 춘동(春洞)이라고 붙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춘동에서 이름을 따 춘동리(春洞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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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 미중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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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에 있는 해미 곽씨 문중 사우. 충효사(忠孝祠)는 해미 곽씨(海美郭氏)의 문중 사우로, 한벽당(寒碧堂) 곽기수(郭期壽)[1549~1616], 현주(玄州) 곽성구(郭聖龜)[1606~1668], 남계(南溪) 곽제화(郭齊華)[1625~1675)를 배향하고 있다. 곽기수는 1579년(선조 12)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1583년(선조 16)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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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사전(崔思全)을 시조로 하고 최대천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탐진 최씨는 영암에 세거하는 여러 성씨 중의 하나로, 고려 시대 인물인 최사전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암 입향조는 조선 후기 수군절도사를 지냈던 최원립(崔元立)[1618~1690]의 양아들 최대천이다. 탐진은 전라남도 강진군에 속한 옛 지명이다. 1417년(태종 17)에 병마도절제사영을 도강현(道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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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태간리(泰澗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태산리(泰山里)의 태(泰) 자와 송간리(松澗里)의 간(澗) 자를 따서 태간리가 되었다. 태간리 명산 마을은 조선 시대에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으로, 그 지명을 따라 명산(命山)이라 한다. 송간 마을은 구송 마을과 신송 마을로 나뉜다. 구송 마을은 태간제 저수지의 북쪽에 있으며, 송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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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태평정(太平亭)의 태(太) 자와 백운동(白雲洞) 백(白) 자를 따서 태백리라 칭하였다. 한편 태평정이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다. 왕건이 나주목을 정벌하기 위해 영산강 지역에 내려갔지만, 거센 물살로 인해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이때 책사인 태평의 계략에 따라 태평정 마을 앞으로 적을 유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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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는 통일교 교회. 통일교는 1954년 문선명이 창시한 신종교이다. 창립 당시에는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 협회였으나 1996년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으로 변경하였다. 통일교의 교리는 ‘창조주 하나님’, ‘메시아 예수’, 그리고 ‘성경’을 믿으나, 문선명이 예수가 완성하지 못한 이상 세계를 완성하기 위한 사명을 이어 받은 참부모라는 것을 믿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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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에 있는 신대유·신직·신경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평산 신씨 삼효각(平山 申氏 三孝閣)은 평산 신씨(平山申氏) 문중의 신대유(申大有)[1780~1850]와 그의 아들인 신직(申(糸+式))[1791~1867], 신경(申經)[1795~1854]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이다. 신대유는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효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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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 사람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입는 옷. 영암 지역 사람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할 때 입는 평상복은 우리나라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게 전통 시대에는 바지, 저고리 등의 남자 복식과 치마, 저고리 등의 여자 복식을 기본으로 하여 자가 제작 혹은 바느질하는 사람들에게 맡겨 제작하다가, 해방 이후부터 급속하게 기성품으로 대체되는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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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곡물에 섞인 쭉정이나 먼지 등을 날리는 데 쓰는 기구. 풍구는 곡물 속에 들어 있는 쭉정이·겨·피·풀씨·먼지 등을 제거하는 구실을 하는 기구다. 즉 풍구의 둥근 통 속에 장치한 날개를 돌려 일으킨 바람으로 곡식에 섞여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쓰였다. 둥근 나무 통 안에 여러 개의 날개가 달린 축을 장치하고 이것을 밖에서 돌리면 큰 바람이 나게 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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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정를 시조로 하고 정의중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하동 정씨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가운데 하나로, 영암 입향조는 장령공파의 정의중(鄭宜仲)이다. 하동은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동 정씨는 본관을 같이하면서 계통이 다른 세 파가 있다. 한 계통의 시조는 하동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923년(경명왕 7)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범할 때 하동 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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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계리는 본래 마을에 넓은 바위가 있어서 광암(廣岩)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가학산(駕鶴山) 아래 위치하고 앞으로 맑은 계천이 흐르고 있어서 가학산의 학(鶴) 자와 계천의 계(溪) 자를 따서 학계리(鶴溪里)라 하였다. 학계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학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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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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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 있는 연주 현씨 집성 마을. 연주 현씨(延州玄氏)는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한다. 현담윤은 고려 의종 때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명종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고 연산군(延山君)에 봉해졌다. 현담윤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연주(延州)를 본관으로 삼았다. 연주 현씨는 현담윤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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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이 황새처럼 생겼다 하여 한새울 또는 학동(鶴洞)이라 하였다. 학동리(鶴洞里)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월리(新月里), 연곡리(連谷里), 연동(連洞)과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의 태산리(泰山里)를 병합하여 신북면에 편입하여 학동리라 했다. 마을 동쪽의 태산[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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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로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학산 초등학교는 기본 생활 습관을 익혀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덕(德): 도덕인], 자기 주도적 학습을 통해 창의성을 키우는 어린이[지(智): 실력인], 소질과 취미를 계발하여 꿈을 가꾸는 어린이[기(技): 창의인], 규칙적인 생활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체(體):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고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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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학산면(鶴山面)은 1932년 개설될 당시 관내 학계리(鶴溪里)의 학(鶴) 자와 용산리(龍山里)의 산(山) 자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학산면은 본래 고미현(古彌懸)의 중심지였으며, 신라 경덕왕 대에 이르러 명칭을 곤미현(昆湄懸)으로 바꾸었다. 곤미현은 다시 두 개의 방으로 나뉘는데, 학산면 지역은 으뜸이 되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곤일방(昆一坊)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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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학산면 관할 일선 행정 기관. 전라남도 영암군을 구성하는 2개 읍[영암읍·삼호읍]과 9개 면[덕진면·금정면·신북면·시종면·도포면·군서면·서호면·학산면·미암면] 중 학산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학산면사무소는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곤미현(昆湄懸) 지역의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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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교동리에 있는 농림 수산 식품부 산하 위탁 집행형 준정부 기관의 영암 지역 지사. 한국 농어촌 공사 영암 지사는 농업 기반 시설의 종합 관리와 환경 친화적 농업 생산 기반 구축, 농업인의 영농 규모 적정화 촉진으로 농업 생산성을 증진하는 농림 축산 식품부 산하 기관이다. 한국 농어촌 공사 영암 지사는 농어촌 관리 사업과 농업 시설의 체계적인 관리, 환경 친화적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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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백계리에 있는 한국 부인회 소속의 여성 단체. 한국 부인회는 1949년 창립된 대한 부인회를 모체로 하는 단체로서 양성평등 문화 구현 사업, 여성의 사회 문화 교육 및 여성 인적 자원 개발 사업, 건전 가족 육성 사업, 사회 복지 증진 사업, 소비자 보호 사업, 환경 보호 사업, 법률 구조 사업, 국제 교류 사업과 남북한 교류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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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영암군 관내 전력의 발전과 송전·변전·배전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한국 전력 공사의 영암 지역 지사. 한국 전력 공사 영암 지사는 전력 개발을 촉진하고, 전기 사업의 합리적인 운영과 전력 수급의 안정을 도모하여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54년 1월에 남선 전기 목포 지점 영암 출장소로 개설하였다. 전력 회사 3개 사가 통합함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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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청년들의 사회봉사 단체인 사단 법인 한국 청년 회의소의 영암 지방 회의소. 한국 청년 회의소는 흔히 ‘한국 JC’ 또는 ‘JC’라고 부르는데, 영문 명칭은 ‘Junior Chamber International Korea’이고 일반적으로 ‘JCI Korea’라고 한다. 청년회의소는 1915년 헨리 기젠비어가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처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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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역리에 있는 한국 SGI 소속 종교 단체. 한국 SGI 전남 제2 방면에 속하는 한국 SGI 영암 문화 회관은 니치렌[日蓮]의 불법을 수행하고 실천하는 종교 단체이다. 한국 SGI는 현실 속에 고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 속에 있는 ‘부처의 생명’을 솟아나게 하는 불교 철학과 실천을 통해 자신의 생명 변혁과 민중 구제 그리고 사회 번영을 추구하고 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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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조의 손녀 김죽파에게 가야금을 가르친 가야금 산조의 중시조. 한성기(韓成基)[1889~l950]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화 여자 대학교 문재숙 교수가 집필한 『김죽파 가야금 산조 연구』에서 일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또는 강진군 병영면 출신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그 진위가 밝혀진 바는 없다. 가야금의 비조로 불리는 김창조에게 가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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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수를 시조로 하고 조광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한양 조씨(漢陽趙氏)는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인하여 조광조(趙光祖)가 화를 당하자 후손인 조광재가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지종 마을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영암에 정착하였다. 시조인 조지수(趙之壽)는 중국에서 귀화한 인물이다. 그러나 언제 귀화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고려 때에 명종·신종·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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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성건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박언신(朴彦信)은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속함대군(速咸大君)으로 봉해졌는데, 후에 속함(速咸)[경상남도 함양군의 옛 지명]이 함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함양으로 삼아 함양 박씨(咸陽 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함양 박씨는 조선 전기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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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李彦)을 시조로 하고 이돈(李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함평 이씨는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의 하나로, 미암면 미암리에 집성촌이 있다. 입향조는 이돈이다. 함평(咸平)은 전라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함풍(咸豊)과 모평(牟平) 두 현이 합쳐진 지명이다. 함평 이씨 시조 이언(李彦)은 고려 태조 때 신무위 대장군(神武衛大將軍)을 지냈고 후에 함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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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존부를 시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영암에 세거하는 성씨 가운데 하나인 해남 윤씨는 1832년에 발행된 『영암읍지(靈巖邑誌)』에 지역의 성씨로 기록되어 있으나 영암 입향조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제 강점기 때인 1930~1940년경에 윤용하(尹龍河)가 외가가 있는 덕진면 영보리로 이주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남은 현재 전라남도 해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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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지금의 영암 지역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단위. 해양도(海陽道)는 995년(성종 14)에 전국을 10개 도(道)로 편성할 때 현재의 영암을 포함한 전라남도에 해당하는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단위로서 나주(羅州)·광주(光州)·정주(靜州)·승주(昇州)·패주(貝州)·담주(潭州)·낭주(郞州) 등을 포괄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전라북도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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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김에 오곡밥을 싸서 먹던 향토 음식. 영암군에서는 쌀, 조, 수수, 팥, 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지은 밥에 김을 싸서 먹었다.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먹었던 것으로 주로 정월 대보름에 먹는다. 오곡밥은 여러 가지 곡식을 섞어 지은 일종의 잡곡밥이며, 곡식의 종류는 가정에 따라 다르다. 해우는 전라도 지역에서 김을 가리키는데, 김은 한자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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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유를 시조로 하고 오유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해주 오씨(海州吳氏)는 영암 지역의 사족이다. 1490년경에 입향조 오유(吳裕)가 음직으로 청풍원 참봉(靑風院參奉)에 부임하면서 강진에서 영암으로 이주하였다. 해주는 황해남도 남해안에 위치한 곳으로 현재 황해남도 도청 소재지이다. 해주 오씨 시조는 중국 송(宋)나라에서 학사로 이름이 높았던 오인유(吳仁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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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온(崔溫)을 시조로 하고 최경창(崔慶昌)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해주 최씨는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세거하는 성씨이며, 입향조는 조선 시대 문인인 최경창이다. 해주 최씨의 시조는 고려 시대 인물인 최온이다. 최온은 해주에 토착한 세력으로, 이후 여러 대에 걸쳐 해주에서 세거하였으므로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최온의 아들은 고려 전기 문신인 최충(崔冲)[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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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때부터 영암의 해로 입구로 조세를 수집·보관하던 창고가 있어 해창(海倉)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 영암군조를 보면 영암에는 총 네 곳에 해창이 있었으며, 지금의 해창 마을은 군에서 15리에 위치한 곳으로, 목포로 가는 중요한 길목 중 하나였다. 영암군 서시면(西始面)의 지역이었으며, 조세 창고가 있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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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은행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은행정 또는 행정이라 불리었다. 행정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옥봉리(玉峰里), 송암리(松岩里), 조동(早洞), 화산리(花山里), 광산리(光山里), 광암리(光岩里), 유호정(柳好亭)을 병합하여 신북면에 편입하고 행정리(杏亭里)라 했다. 동쪽에 호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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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영암군 에 예속된 특수 지방 행정구역. 군현의 하부 조직으로 존재한 특수 지방 행정 구획인 향(鄕)·소(所)·부곡(部曲)은 종래에 천민 집단 거주지로 알려졌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수공업이나 광업 등 특수한 기능을 담당한 전문 기능 집단의 역할을 하였을 뿐 주민들의 신분적 지위는 일반 군현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향·소·부곡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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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오는 토속 음식. 향토 음식이란 지역의 독특한 지역성에 맞게 전승되어 온 지역 음식을 말한다. 따라서 향토 음식은 그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하여 만들거나 그 지역에서 고유하게 전승되어 온 비법으로 조리하는 것들이 많다. 영암군은 전라남도 서해안에 위치하여 동쪽은 노령 산맥의 줄기가 이어져 내려 산지를 이루고, 서쪽은 하천 하구에 평야가 전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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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지리, 유래, 전설, 풍속, 산업 등을 조사·연구하여 기록한 책. 향토지는 중앙의 자료집과 달리 해당 지역사[지방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서 그 중요도가 매우 높다. 향토애(鄕土愛)를 근간으로 지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저술한 책이 바로 향토지(鄕土誌)이다. 향토지 발간의 초기 단계에서는 단순히 지역의 출신인물이나 유적 소개에 머물던 것이 점차 그 영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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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라남도 영암군의 역사. 해방과 남북한의 분단, 6·25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 역사 시대를 말한다. 영암은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의 상처를 크게 입었으며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의 쇠퇴와 농촌 인구의 감소, 노령화 등 위기를 겪었으나 새로운 산업의 개발과 풍부한 역사적 전통, 수려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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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친일 금융인이자 기업인. 현준호(玄俊鎬)[1889~1950]는 영암군 학산면 침계리 출신으로,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호남 은행을 설립한 금융인이자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에 협력한 기업인이다. 본관은 연주(延州), 호는 무송(撫松)이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에 중추원 참의를 지낸 영암의 부호 현기봉(玄基奉)이다. 현준호는 17세 때 담양 창평(昌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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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을 시조로 하고 곽호인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현풍 곽씨는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 하나로 입향조는 곽호인이다. 1555년(명종 10)에 을묘왜변이 일어나자 원래 있던 해남을 떠나 영암군 도포면 원항리에 정착하였다. 현풍 곽씨는 곽경(郭鏡)[1117~1179]을 시조로 한다. 곽경은 원래 중국 송(宋)나라 사람이지만 1133년(고려 인종 11)에 귀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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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정자. 호은정(湖隱亭)은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는 정자로 건립 연대와 건립 주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위치하며, 영암 도기 박물관에서 약 300m 떨어져 있다. 「호은정기(湖隱亭記)」에 의하면 호은정은 낭주 최씨(朗州崔氏) 호은(湖隱) 최동식(崔東植)의 은거지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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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호음곡(好音谷)의 호(好) 자와 문수포(汶水浦)의 포(浦) 자를 따서 호포리(好浦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호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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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다듬잇방망이로 박자를 맞추어 치는 장단. 전라남도 영산호 관광 농업 박물관에는 다양한 농기구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홍두깨는 옷감을 다듬이질할 때나 밀반죽을 밀 때 사용하던 방망이를 말한다. 홍두깨로 다듬이질을 할 때에는 보통 혼자 하거나 둘이 마주보고 앉아 장단을 맞추는데, 때로는 「흥그레 타령」 등의 노래를 부르며 역동적인 장단을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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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화소리(華所里)의 화(華) 자와 송정리(松亭里)의 송(松)자를 따서 화송리(華松里)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의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화소리, 회현리(會峴里), 송정리, 양동리(良洞里), 복다회(福多會) 일부를 병합하여 곤이종면 화송리를 개설하였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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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에 있는 김해 김씨 집성 마을. 조선 중기에 입향조 김한성(金漢城)이 강진에서 영암 서호 구음평[현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으로 이주하였고, 김한성의 아들인 김사종(金嗣宗)이 풍수지리에 의해서 산세가 좋고 기름진 땅이 있는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에 터를 잡아, 김해 김씨의 집성 마을이 이루어졌다. 화소(華所)는 늙은 학이 집을 찾아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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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화송리(華松里) 선돌 2기(基)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민들은 선돌 2기를 부부로 여긴다. 화송리 선돌은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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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삼월 삼짇날을 맞아 산으로 들로 야유회를 나가 놀던 풍습. 삼월 삼짇날의 화전놀이는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특히 화전놀이에는 진달래꽃잎을 넣어 지진 찹쌀 지짐이가 빠지지 않는다. 예로부터 월출산에 풍류객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김창조라고 하는 걸출한 산조의 창시자가 태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암군의 삼짇날 화전놀이 풍류가 어느 지역 못지않게 왕성했을 것으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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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와 한대리, 금정면 연소리의 경계인 활성산에 있는 산성 터. 활성산성(活城山城)이 입지하고 있는 영암읍 일대는 삼국 시대 때부터 군현(郡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내군(月奈郡)[월나군]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靈巖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성종(成宗)[960~997] 때는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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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에 있는 효자비. 황정주(黃正周)는 철종 때 사헌부 감찰을 역임한 인물로 본관은 장수이다. 효성이 깊은 인물로 할머니가 병석에 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나온 피로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황정주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장수 황씨(長水黃氏) 종중과 지역 유림들이 황정주 효자비(黃正周 孝子碑)를 건립하였다. 장수 황씨 종중과 지역 유림들이 황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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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사람이 태어나 61세 되는 해에 맞는 생일. 영암군에서는 해마다 돌아오는 출생일을 생일이라 하고 농가에는 귀빠진 날이라고 하여 떡과 미역국을 준비하고 가족들이 한곳에 모여 축하하였다. 하물며 회갑은 태어난 간지(干支)의 해가 다시 돌아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욱 경사스러운 생일이라 할 수 있다. 회갑을 화갑(華甲)·화갑(花甲)·환갑(還甲)·주갑(周甲)이라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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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녹암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녹암 마을에서는 회문리(會門里) 선돌을 ‘짐돌’이라고도 부른다. 3기(基)의 선돌의 명칭은 ‘수놈[정문]’, ‘정문’,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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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회사정(會社亭)은 구림 대동계의 모임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세워진 정자이다. 구림 대동계는 1565년경 조행립(曺行立), 현건(玄健), 박성오(朴省吾), 임호(林浩), 박규정(朴奎精) 등에 의해 창설된 이래 2013년 현재까지도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다. 지방도 819번 도로 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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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효성으로 부모를 잘 섬긴 사람. 조선 시대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국가는 이들 덕목의 실천자들인 충신·효자·열녀들에게 관작을 제수하거나 정려(旌閭)로서 칭송토록 배려하였다. 영암 지역에는 많은 효자들이 기록과 정려를 통하여 전하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충·효·열의 기념비적 유적들이 남아 있은데,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