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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교번 마을 덕진교에 얽힌 이야기. 주막을 운영하는 덕진이라는 여인이 죽어서 새로 부임한 원님의 꿈에 나타나 자신이 모은 돈으로 다리를 놓아 달라 부탁하는 이야기이다. 원님은 덕진의 부탁대로 다리를 놓고 다리에 덕진의 이름을 붙였다. 변남주가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 주민 서동열에게서 2012년 12월 11일 인터뷰 채록하였다. 덕진면 덕진리에 있는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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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도기와 분청사기, 백자 등을 구웠던 가마터. 가마는 점력을 가지고 있는 바탕흙으로 형태를 만든 후 이것을 높은 온도로 구워 내는 생산 시설을 말한다. 가마에서 구워 내는 그릇은 바탕흙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 굽는 온도, 유약 종류, 무늬와 장식 기법, 제작지, 용도 등에 의하여 다양하게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굽는 온도와 유약의 유무 등으로 토기(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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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바위. 한글 학회에서 발행한 『한국 지명 총람』에 보면 “월대 바위 동쪽에 있는 바위이며, 모양이 가새[가위]처럼 생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월출산 국립 공원 서쪽의 노적봉 능선 끝자락에 있는 바위이다. 중생대 백악기 말에 밑바탕을 이룬 화강암이 지표에 노출되면서 형성된 바위이다. 도갑리 죽정 마을에서 영암 죽정리 국장승[전라남도 민속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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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와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영암]에 “가학현(駕鶴峴)은 영암군의 서쪽 30리에 있으며", [해남]에 "가학산은 현의 북쪽 25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9첩 5면]에는 영암군 월출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전라남도 강진군을 거쳐 해남군 북서쪽에서 가학산을 이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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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자. 간죽정(間竹亭)은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18~1487]이 1479년(성종 10)에 관직에서 물러나 처의 고향인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구림 마을에 정착하면서 세운 정자이다. 박성건은 간죽정에서 인근의 선비들을 교육하였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죽정 서원 왼쪽에 위치한다. 간죽정은 창건된 뒤 1571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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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칡넝쿨과 같이 길게 형성되었다 하여 치릿실, 치릿 또는 갈촌동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갈곡리(葛谷里)라 했다. 갈곡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비음면은 1906년에 나주군에서 영암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종오리(終吾里)와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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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원갈곡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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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원갈곡 마을에 있는 여흥 민씨 문중의 재실. 경모재는 여흥 민씨(驪興閔氏) 문중 재실로, 증 좌통례(贈左通禮) 민우삼(閔友參), 참의 민성(閔誠), 참판 민광경(閔光鏡), 부종관 민창윤(閔昌胤)의 묘 아래 건립하여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원갈곡 마을 갈곡산 남쪽에 있다. 원갈곡 마을 입구에서 동쪽으로 난 앞길을 따라 400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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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학송리 청룡동에 있는 문화 유씨 문중의 재실. 경모재(敬慕齋)는 영암읍 학송리 청룡동 마을 북쪽 산자락에 위치하는 문화 유씨(文化柳氏)사교당(四矯堂)유준(柳浚)[1584~1661]의 재실로 1925년에 건립되었다. 유준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상의원 판관을 지냈다. 경모재는 영암읍 학송리 청룡동 마을 북쪽의 산자락 평지에 있다. 국도 13호선 곁에 있는 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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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는 마한의 소국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3세기 후반에서 5세기 무렵에는 대형 옹관을 매장 시설로 활용한 세력이 시종면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초기의 대형 옹관묘는 시종면을 비롯하여 학산면, 금정면 등에서 발견되고, 후기의 대형 옹관 고분은 시종면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삼국 시대에 들어와 영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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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던 영암 고미현 서원에서 종을 주조하였던 사실을 알려 주는 고려 전기의 주종 명문. 고미현 서원 종명(古彌縣 西院 鐘銘)은 영암 고미현의 사찰인 서원에서 주조되었던 서원종(西院鐘)의 종신(鐘身)에 주조 사실을 기록한 명문(銘文)이다. 서원종은 원래 고미현의 서원에서 963년(고려 광종 14)에 주조하여 전해 왔는데 일본으로 흘러가 2013년 현재 히로시마 현[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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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 고인돌은 땅 위와 아래에 받침돌[支石]이나 무덤방[石室]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선사 시대의 대표적인 거석 기념물이다. 고인돌의 명칭은 고인[支, 撑]과 돌[石]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로 지석묘(支石墓)라 하며, 영어로 ‘Dolmen[탁자 모양의 돌]’ 또는 거석 기념물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탁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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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군시면(郡始面) 지역 교리(校里), 동리(洞里), 서문밖(西門밖), 동외리(東外里)를 통합할 때 교리에서 교(校) 자와 동리에서 동(洞) 자를 합하여 교동리(校洞里)라고 하였다. 교동리는 조선 후기에 군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에 시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인해 군시면에 속했던 교리, 동리, 서문밖, 동외리를 통합하여 영암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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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김완 장군의 사당과 부조묘. 김완(金完)[1577~1635]은 영암 출신의 조선 후기 무신으로 정유재란과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운 인물이다. 구고사(九皐祠)는 김완 장군의 위훈을 기리는 사당으로 김완 장군의 신위가 모셔져 있고, 부조묘(不祧廟)에는 보물 제1305호로 지정된 「김완 초상」이 봉안되어 있다. 구고사 및 김완 장군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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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서 발원하여 서구림리에서 학산천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구림천(鳩林川)은 하천이 지나는 군서면 구림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구림은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 국사 바위에 깃든 도선 국사(道詵國師)[827~898] 탄생 설화에서 기원한다. 처녀가 오이를 먹고 아이를 낳아 국사암에 버렸더니 비둘기가 품어 보호했는데, 그 아이가 훗날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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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산리(龜山里)는 마을 뒷산이 거북이처럼 생겨서 거북 구(龜) 자에 뫼 산(山) 자를 써서 구산(龜山)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아홉 구(九) 자를 쓰는 구산(九山)으로 바뀌었다. 거북 구의 획수가 많고 쓰기가 어려워 쓰기 쉬운 아홉 구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구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이시면(北二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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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 태봉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구산리 태봉 유물 산포지(九山里 胎封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구석기 때의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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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남평 문씨 문중 사우. 구암사(龜巖祠)는 1668년에 향사우(鄕祠宇)로 건립되었지만, 지금은 남평 문씨 문중의 사우이다. 2013년 현재 5위를 제향하고 있고, 배향 인물은 문극겸(文克謙)[1122~1189], 문익주(文益周)[1535~?], 서명백(徐命伯)[1678~?], 문맹화(文孟和)[1433~?], 곽추(郭樞)[1338~?]이다.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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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구암사의 소장 자료. 구암사(龜岩祠)는 1668년(현종 9) 영암의 향사우(鄕祠宇)로 창건되어 이후백(李後白)과 문익주(文益周)를 제향하다가 서명백(徐命伯)을 추배하여 삼현사(三賢祠)로 불렸다. 이후 1920년대에 문극겸(文克謙), 문맹화(文孟和), 곽추(郭樞)를 추배하였으나 1945년 이후백의 후손들이 위패를 청련사로 옮겨 현재는 모두 5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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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구정봉 정상에 있는 풍화혈(風化穴).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월출산에 구정봉(九井峯)이 있다.”라고 처음으로 등장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 월출산에 “가장 높은 봉우리 곁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따라 올라가면 20명이 앉을 만한 꼭대기가 있으며, 꼭대기 평평한 곳에 오목하게 패여 물이 담기기를 동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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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학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구정(九亭)의 구(九) 자와 학송(鶴松)의 학(鶴) 자를 따서 구학리(九鶴里)라는 이름을 붙였다. 구정 마을은 마을 지형이 거북과 같이 생겼고, 거북 머리가 있고 그 옆에 우물이 있어서 거북 구(龜) 자와 우물 정(井) 자를 써서 구정(龜井)이라고도 불렀다. 현재는 거북 머리도 도로 확장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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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연소리와 장흥군 유치면 반월리의 경계에 있는 산. 국사봉(國師峰)[615m]의 북서쪽 골짜기는 쌍계사 중창과 관련된 아국사에서 유래된 듯하다. 쌍계사라는 이름은 국사봉과 덕룡산 사이 두 시냇가의 중간에 세웠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쌍계사는 신라 헌강왕 때 백운(白雲)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065년(고려 문종 18) 호연(浩然) 대사가 중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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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영암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이다. 1939년 진행된 간척 사업으로 인해 넓은 해수면이 농토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의 서쪽 첫머리여서 서시면(西始面)이라고 하였다. 성지천(省之川) 등 34개 마을을 관할하였는데, 1898년(광무 2) 지방 행정 개편에 따라 서종면(西終面)의 서호정(西湖亭) 등 19개 마을을 병합하고, 영암군의 서쪽이므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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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서 발원하여 서구림리에서 학산천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군서천(郡西川)은 하천이 소재한 군서면(郡西面)에서 이름이 유래하였고, 도갑사(道岬寺)에서 흘러내리므로 ‘도갑천(道岬川)’이라고도 부른다. 1914년 영암군 서시면(西始面)과 서종면(西終面)을 합하면서 영암군의 군(郡) 자와 서시와 서종의 서(西) 자를 합하여 군서면으로 개칭하였다.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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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에 있는 산. 궁성산(弓城山)[484m]은 산에 산성이 있어 생긴 명칭인 것으로 보인다. 이름대로 정상부에 산성이 있었다고는 하나 현재는 대부분 파괴된 상태이며, 돌로 축조된 성터 흔적이 200m 정도 남아 있다. 그러나 궁성산과 관련된 산성(山城)에 대한 기록이 없어 축성 연대와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말을 훈련시키고,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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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궁성산에 있는 산성 터. 궁성산성(弓城山城)에 대한 문헌 기록과 일제 강점기까지의 조사 기록은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궁성산성이 있었던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 때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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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성풍사지에 있는 바위. 다리에 길게 놓은 돌인 귀틀돌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불상의 아랫부분에 해당하는 귀틀 바위가 귀뜰 바위로 변하였을 개연성도 높다. 귀틀 바위라는 이름은 불상의 대석(臺石)이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 마루를 놓기 위해 나무를 가로세로로 짜 놓은 틀인 귀틀과 비슷하여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 지명 총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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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에 있는 저수지. 금강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 인근의 서호면 금강리에서 기원하였다. 금강리는 1789년에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곤이종면(昆二終面) 금강리(錦崗里)로, 1912년의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 地方行政區域 名稱一覽)』에 금강리(錦江里)로 기록되어 있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제갱이골에 건립하였다. 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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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강리(錦江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산리(錦山里)의 금(錦) 자와 강정리(江亭里)의 강(江) 자를 따서 개설되었다. 금산 마을은 마을 뒤쪽에 금성산이 있어 마을 이름을 금산이라 하였다. 강정 마을은 영암천과 금강천에 둘러싸여 있어 강 강(江) 자와 정자 정(亭) 자를 붙여서 강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금강리는 1914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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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금계(金鷄)라는 새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 형국의 등성이와 뒤편으로는 영산강이 흐르고 있어 금강(錦江) 마을이라 칭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영산강 물이 비단처럼 맑고 깨끗해 금강(錦江)이라 칭했다는 설이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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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와 용소리에 걸쳐 있는 평야. 금계들은 학산면 금계리의 동쪽에 있다. 규모는 남북 폭이 최장 약 4㎞, 동서 폭은 최장 약 1.5㎞이다. 금계들은 금계리 금계 마을의 동쪽에 있는 들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 원래 금계들은 학산천을 중심으로 서쪽에 있는 들판만을 말하며, 학산천의 동쪽은 별도로 뒷등들이라 한다. 금계들의 동쪽에는 월출산이 있고 남동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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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 중 윤금(潤金)의 금(金) 자와 계천(溪川)의 계(溪) 자를 따서 금계리(金溪里)라 했다. 금계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초안(草岸), 초동(草棟), 윤금, 신풍(新風), 계천 지역이 병합되어 곤이시면 금계리로 개설되었다.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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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 계천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금계리 계천 고분군(金溪里 溪川 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금계리 계천 마을 북동쪽의 구릉 상에 자리하고 있다. 계천 마을 중 작은 마을이 윗계천 마을이다. 금계리 계천 고분군은 금계리 계천 마을의 59-8번지 동편 일원에 소재하고 있다. 윗계천의 남동쪽 구릉 상에는 무안 박씨 선산이 위치하는데 이곳에 7~8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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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 계천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금계리(金溪里) 계천(溪川) 고인돌 떼는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 계천 마을 세 곳에 분포하고 있다. 독천에서 성전 간 옛 국도와 독천-영암 간 지방 도로가 나누어지는 사거리가 있는데, 가군은 사거리에서 영암 쪽으로 약 300m 가면 도로 우측으로 약 30m 떨어진 야산에 8기가 있다. 나군은 사거리에 있는 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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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 계천 마을에 있는 선사 시대 유물 산포지. 금계리 계천 유물 산포지(金溪里 溪川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선사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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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 봉초동 마을에 있는 철기 시대 유물 산포지. 금계리 봉초동 유물 산포지(金溪里 逢草洞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철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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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소재하고 있거나 이전에 소재하였던 돌이나 금속에 새겨진 글씨. 금석문(金石文)은 글자 그대로 쇠붙이와 돌에 새겨진 글씨를 의미하는데, 근래에는 포괄적으로 금속이나 돌뿐 아니라 나무와 그릇 또는 기와 등에 새겨진 글씨와 그림 등도 아울러 일컫는다. 금석문은 긴 세월 보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록자의 신원과 연대가 표기된 경우가 많고 중앙 중심의 문헌 자료를 보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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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을 흐르는 지방 2급 하천. 금성천(錦星川)은 소재지인 금산(錦山) 마을에서 나온 이름으로, 금산 마을의 ‘금’자와 남성촌(南星村)의 ‘성’자를 합하여 명명되었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북일시면(北一始面) 금산리(錦山里)가 기록되어 있고, 1912년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 남성촌이 보인다. 두 동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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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생금(生金)[캐낸 그대로의 금], 생수(生水)가 많이 나와 쇠 금(金)과 물 수(水)를 따서 금수리(金水里)라 했다. 금수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으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평류동(坪柳洞), 화정리(花亭里), 만년리(萬年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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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금정면(金井面)은 조선 시대 나주군의 금마면(金磨面)과 원정면(元井面) 지역이었다. 1895년 영암군으로 편입되고, 그 후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마면의 금(金) 자와 원정면의 정(井) 자를 따서 금정면이라 했다. 금마면은 사금(砂金)이 많이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남송(南松)을 포함하여 57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었다. 원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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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금지리에 있는 저수지. 금지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있는 금지리(錦池里)에서 따왔다. 금지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금내리(錦內里)와 달지리(達池里)에서 금(錦) 자와 지(池) 자를 따 지은 이름이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쇠머리[牛頭]와 신촌 마을을 잇는 곳에 1944년 1월 1일에 착공하여, 1945년 12월 31일에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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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내리(錦內里)의 금 자와 달지리(達池里)의 지 자를 따서 금지리(錦池里)라고 하였다. 금내리는 원래 나주군 종남면(終南面)의 소재지로 종남(終男), 본촌(本村), 금내, 금지라고도 불렸다. 금지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군 종남면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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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금지리 송내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시종면 금지리 송내 마을 주변에 발달한 구릉 전반에 걸쳐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네 곳이 확인되었다. 이곳 유물 산포지들은 분포 범위가 매우 넓어 기존의 가·나·다·라의 유물 산포지 범위를 유물 산포지군으로 통합하였다. 금지리 송내 유물 산포지군(錦池里 松內 遺物 散布地群)은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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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에서 만봉천과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금천(錦川)이란 이름은 만봉천과 함께 쓰인다. 영산강의 샛강[支流]이라는 뜻의 쇠기내·쇠내를 한자로 표기하여 금천으로 쓴 듯하다. 또는 금천 강변에서 사금(砂金)과 만봉천 덕룡산 기슭의 철광산(鐵鑛山)과 관련지어 쇠지내 또는 금천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금천은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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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중촌 마을에 있는, 1921년 김남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치암(痴庵) 김남현은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시기 삼호 지역에서 한학(漢學)을 가르쳤다. 1921년에 김남현이 죽자 제자들을 중심으로 김남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치암 김 선생 유적비(痴庵金先生遺蹟碑)를 세웠다. 김남현 유적비는 삼호읍 산호리 중촌 마을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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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우산정 마을에 있는, 1927년 면장 김동훈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예전에는 우산정 마을 앞에 저수지가 없어서 농사철에는 물이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고 한다. 김동훈 시혜비(金東勳 施惠碑)는 면장 김동훈(金東勳)이 마을에 저수지를 쌓아 주었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그 은혜를 기리기 위해 1927년에 세운 것이다. 김동훈 시혜비는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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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모정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 김병교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병교(金炳喬)[1801~1876]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공기(公器)이다. 김이장(金履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태순(泰淳)이고, 아버지는 이조 판서 김교근(金敎根)이며, 어머니는 오재선(吳載選)의 딸이다. 김병교는 1851년(철종 2)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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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효자비. 김상순(金商順)은 경주 김씨(慶州金氏) 김병희(金秉喜)의 아들이고 백촌 김문기의 후손으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김상순의 효성은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고 칭찬하며 지역 유림들이 효자비를 세웠다. 김상순 효자비(金商順 孝子碑)는 1925년에 건립되었다.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 천해 마을에 있다. 김상순 효자비는 갓석과 지대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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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이헌(而獻), 호는 시서 거사(市西居士) 또는 지서자(之西子)이다. 아버지는 상호군(上護軍) 김부성(金富成)이며, 아들은 김시길(金時길[日+吉]), 김시간(金時暕)이다. 김선(金璇)[1568~1642]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정계에 나아갔으나, 광해군의 정치에 실망하여 낙향한 뒤 지금의 영암군 덕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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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시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김시혁(金時爀)은 순조 대 사람으로 호는 송은(松隱)이며, 김덕양(金德陽)의 후손이다. 김시혁 정효문(旌孝門)은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신송 마을에 있다. 구송 마을에서 신송 마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2013년 현재 김시혁 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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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 있는, 1868년 김시혁이 백성을 구제한 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김시혁(金時爀)은 본관이 김해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며 진사(進士)이다. 김시혁은 유순한 성격을 가졌고 부모를 잘 섬겼으며, 백성을 구제하고 폐단을 개혁하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김시혁 제민 불망비(金時爀 濟民 不忘碑)가 있는 신송 마을은 윗마을인 구송 마을과 함께 송간(松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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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구고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완의 초상화. 「김완 초상(金完 肖像)」은 조선 시대 무관인 김완(金完)[1577~1635]의 초상으로 좌안 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상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김완 초상」은 진무공신 책록 시 공신도상으로 1634년(인조 12) 도화서(圖畵署)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완 장군의 사당인 구고사의 영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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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동도포 마을에 있는 김윤창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윤창 영세 송덕비(金潤昌 永世 頌德碑)는 윤대열 영세 송덕비(尹碓烈 永世 頌德碑)와 비슷한 시기에 전주영장(全州營將) 김윤창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선주들이 세운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동도포 마을 앞 지방도 821호선 오른편에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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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 우정 마을에 있는, 1886년 김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정(金正)의 본관은 광산(光山), 휘(諱)는 자진(子進), 호(號)는 수산정(首山亭)이다. 고려 시대 문신인 문숙공(文肅公) 김주정(金周鼎)[?~1290]의 6세손이다. 김정 유허비(金正 遺墟碑)는 1866년에 수산정 김정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김정 유허비는 신북면 갈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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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6·25 전쟁 때 전사한 김준병의 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11월 4일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학산 지서에 보안 주임 경위 김준병 등의 주력 부대와 완도·진도에서 진주한 경찰 약 30명, 의경, 청년 단체 등 6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각 시군에서 집합된 북한군 100여 명이 지서를 습격할 목적으로 기습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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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덕화리에 있는, 1933년 김준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김준형 청덕 불망비(金俊炯 淸德 不忘碑)는 1933년 김준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영암군 소작인들이 건립하였다. 김준형 청덕 불망비는 영암군 도포면 덕화리에 있는 면소재지에서 도포 초등학교 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길가에 세워져 있다. 크기는 높이 143㎝, 너비 40㎝, 두께 20㎝이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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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우산정 마을에 있는, 1932년 참봉 김태빈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참봉(參奉) 김태빈(金台彬)은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밭을 나누어 주어 농사를 짓게 하고, 세를 감해 줌은 물론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휼하였다. 김태빈 자혜 기념비(金台彬 慈惠 記念碑)는 소작인 일동이 김태빈을 기리기 위해 1932년에 세운 기념비이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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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에 있는 김명화·김정의·김희석 세 효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김해 김씨 삼효문[월악리]은 김명환(金鳴環), 김정의(金正儀), 김희석(金喜錫) 세 효자를 기리는 정려문이자 효자각으로, 3기의 비가 비각 안에 있다. 월악리 삼효문이라고도 한다. 영암군 시종면 월야리 중계 마을 주변 월악 저수지 길을 따라 중계 마을 회관으로 찾아 들어가다 보면 김해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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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김성린·김정묵·김상윤 세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과 비각. 김해 김씨 삼효문(金海 金氏 三孝門)은 김해 김씨 문중의 김성린(金成鱗)과 그의 아들 김정묵(金正默), 김상윤(金相奫)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87년(고종 24)에 건립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죽정 마을에 있다. 영암에서 구 도로로 군서로 향하다 보면 회전 차로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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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용추 폭포 하류에 있는 바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천황봉 북쪽 산성치골 망호천 골짜기 용추 폭포 하류에 있으며, 영암군에서 2008년 조성한 월출산 기찬 랜드에서 남쪽으로 오르면 볼 수 있다. 『한국 지명 총람』에 보면 “광대 바위 동북쪽에 있는 바위”로 소개하며, 별칭으로 ‘가금 바위’라고 기록하고 있다. 주민들은 악성(樂聖) 김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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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영산강 하굿둑 공사 전까지 나불리(羅佛里)는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나불도(羅佛島), 외도(外島), 문도(文島, 門島), 계도(鷄島), 오가리섬[吾可里島] 중에서 제일 크고 중심인 섬이 나불도인데, 1914년 중심이 되는 이 섬의 명칭을 따서 나불리(羅佛里)라 했다. 나불도라는 명칭은 섬의 모양이 나발같이 생겨서 나불도라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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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저두리(猪頭里), 매산리(梅山里), 난대리(蘭臺里), 도음전(道音田), 윤덕리(允德里), 검길리(檢吉里), 당두리(堂頭里)를 병합하면서 난대리의 난(蘭) 자와 도음전의 전(田) 자를 따서 난전리(蘭田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이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곤일종면 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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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곤미현(昆湄懸)의 남쪽 산 밑에 터를 잡은 마을이라 하여 남산(南山)이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남산리(南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남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는데,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쳐서 곤일시면(昆一始面)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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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을 흐르는 지방 2급 하천. 남산천(南山川)은 남산리(南山里)에서 유래되었다. 남산(南山)은 남쪽에 두억봉을 비롯한 산등성이가 있어 유래되었고,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곤일시면(昆一始面) 남산리로 기록되었는데, 1928년 곤일시면이 미암면(美巖面)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미암면 남산리가 되었다. 남산천은 영암군 미암면 남산리 흑석산에서 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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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송리(南松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이 지역의 옛 이름이었던 남송(南松)에서 이름을 따 왔다.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으로 남송이라고 불렸으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입석리(立石里), 지초리(芝草里), 용반리(龍盤里), 요동(堯洞), 반계리(盤溪里), 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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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었던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남송리(南宋里) 반계(盤溪) 선돌은 ‘선독거리’로 불리기도 하며,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해 세워졌다. 마을 입구에 위치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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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인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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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남송리에 있는 쌍계사 터. 쌍계사는 854년(신라 문성왕 16)에 백운 대사(白雲大師)가 창건하고 그 뒤 1065년(고려 문종 19)에 호연 대사가 중창했다고 하나 쌍계사가 어느 시기에 폐사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남송리 쌍계사 터는 ‘남송리 쌍계사지’라고도 불린다. 남송리 쌍계사 터는 금정면(金井面) 남송리(南松里) 인곡 마을 뒤편 국사봉(國師峰)과 덕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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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용반 마을은 50호(戶), 반계 마을은 15호, 인곡 마을은 20호 정도였지만, 2013년 현재는 용반 마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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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의 재실. 남은재(南隱齋)는 창녕 조씨(昌寧曺氏)의영암 입향조인 남은처사 조세풍의 재실이다. 조세풍은 부제학 조상치(曺尙治)의 6세손이다. 조세풍은 경상도에서 살다가 1580년(선조 13)경에 지금의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평리 마을로 들어와 강당을 짓고 학문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고, 임진왜란과 정유왜란 때 물자를 모으고 의병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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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영암군 군시면(郡始面) 지역으로 영암읍성의 남문(南門) 밖에 위치하고 있어 남문밖, 남바께, 남외리(南外里)라 불렸다. 1914년 남외리, 옥정리를 통합하면서 남문을 남풍문(南豊門)이라 하였고 법정리 명칭을 남풍리(南豊里)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 영암군 군시면 지역으로 1914년에 시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영암면 남풍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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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흔을 시조로 하고 최진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영암군에 기반을 둔 낭주 최씨(朗州 崔氏)는 신라 말 인물인 최흔(崔昕)을 시조로 하였다. 최흔의 아들 최지몽(崔知夢)[907~987]은 구림[현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서 태어나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서 고려 개국에 힘썼다. 최지몽이 죽은 뒤 신라계가 고려 왕실의 주도권을 가진 후부터 동족 기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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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리는 낮은 산의 안쪽이라 하여 안굴[내동]이라 하였다. 내동리 쌍무동 마을은 내동리의 으뜸 마을로서 주변에 고분인 쌍무덤이 있어 마을 이름이 붙었다. 내동리는 본래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이었다. 조선 고종 32년(1895)에 영암군에 편입되어 시종면 내동리라 명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도군의 화산리(花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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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내동리(內洞里) 고분군은 내동리 쌍무덤과 함께 영암 지역 고대 문화를 대변하는 중요한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개의 봉분을 이룬 무덤들이 발굴 조사되었으며 무덤 내부에서 옹관을 주 묘제(墓制)로 한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되었다. 영산강을 포함한 영암 지역은 이러한 봉분의 형태를 가진 무덤들이 산재하고 있는데 대부분 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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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고대 고분군. 내동리(內洞里) 고분군(2)는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다. 구산리 회정 마을 6거리에서 동쪽에 위치한 야산의 서쪽 구릉과 밭 일대에 3기 정도의 고분이 있다. 옹관 조각 및 토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내동리 고분군(2)은 ‘내동리 고분군 나’로도 불린다. 내동리 고분군은 구산리와 내동리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 있는데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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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원내동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내동리 원내동 유물 산포지(內洞里 元內洞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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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초분골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내동리(內洞里) 초분골 고분군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초분골 마을에 있다. 내동리와 와우리 여천 마을의 경계가 되는 마을 입구에서 약 30m 떨어진 내동리 산6-3에 위치한다. 내동리 고분군의 분포권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며 평지성의 낮은 구릉 말단부에 조성되어 있다. 내동리 초분골 고분군은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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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에 있는 저수지. 냉천 저수지는 저수지를 만들기 전에 이곳에서 샘물이 솟아 냉천(冷泉)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백룡산의 북서쪽 기슭이므로 찬 샘이 분포한 듯하다. 이천리에는 천동(泉洞) 마을과 냉각동(冷角洞) 마을도 있다. 또한 명동리 옥정제 마을 명동제(明洞堤)에서 기원했다는 설도 있다. 이목동지라고도 한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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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었던 저수지. 냉천제라는 명칭은 저수지가 있었던 영보리 냉천동(冷泉洞) 마을에서 기원한다. 1789년에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북일시면(北一始面) 냉천동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병합하여 개설한 영보리에 편입되었다. 동네 중앙인 영보리 365번지에 찬 샘이 있고, 남서쪽으로 200m 지점에 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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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노동 마을에 있는 밀양 김씨 유남공파의 사우. 1936년에 밀양 김씨(密陽金氏) 김병규(金炳圭)가 선조를 배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祠宇)로 김견을 중심으로 김경발, 김종환을 배향한다. 김견(金堅)[1565~1608]의 자는 중실(仲實), 호는 신제(愼齊)로, 1585년에 무과에 올랐고, 임진왜란 때 의거(義擧)하여 이순신의 휘하에서 당항포 대첩과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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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에 있는 저수지. 노송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있는 선황리의 노송(老松) 마을에서 기원하였다. 노송 마을은 1789년에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곤일시면(昆一始面) 노송정(老松亭)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당시 선황산에서 딴 선황리(仙皇里)에 편입되었으며, 1928년 면의 이름이 바뀌면서 미암면 선황리 노송 마을로 개편되었다. 농업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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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송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류천리(柳泉里), 송외리(松外里), 송내리(松內里), 노노리(老老里), 홍암리(紅岩里), 부항리(夫項里), 신동리(新東里), 옥동리(玉洞里)를 병합하면서 노노리의 노(老) 자와 송내리의 송(松) 자를 따서 노송리(老松里)라 하였다. 송내리는 1438년 연촌 최덕지가 남원 부사를 사직하고 귀향하여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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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노노동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노송리(老松里) 노노동(老老洞) 고인돌은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영암-금정 간 819번 지방도에서 노노동 마을로 진입하여 약 100m 가면 노송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에서 동쪽 야산으로 약 200m 올라가면 산 중턱의 평탄지에 노노동 고인돌 가군 10여 기가 있다. 나군은 노노동 마을의 남서쪽 말단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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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송내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송내 마을에서 매년 정월 초사흘에 마을의 평안을 비는 뜻에서 지내던 공동 제사이다.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모실 대표자를 선정하고 비용을 걷어 제물을 장만해서 당산제를 지냈는데, 지금은 더 이상 지내지 않는다. 1986년부터 당산제를 더 이상 지내지 않고 있어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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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사액 서원. 녹동 서원(鹿洞書院)은 원래 존양사(存養祠)라는 이름으로 1630년(인조 8)에 건립되어 1713년(숙종 39)에 ‘녹동(鹿洞)’이라는 사액을 받은 영암 유일의 사액 서원이다. 창건 당시에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를 배향하다가, 1665년(현종 6)에 최덕지의 손자인 산당(山堂) 최충성(崔忠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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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 있었던 저수지. 녹암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위치한 회문리 녹암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1789년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군시면(郡始面) 녹암(鹿巖)이 기록되어 있으며, 1912년의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 地方行政區域 名稱一覽)』에는 녹문리(鹿門里)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영암면 회문리(會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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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영암군 군종면(郡終面) 지역이었던 농은정(農隱亭), 백운정(白云亭), 둔덕정(屯德亭), 농내리(農內里), 월정리(月亭里)를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하면서 농은정의 농(農) 자와 둔덕정의 덕(德) 자를 합하여 농덕리(農德里)라고 하였다. 농덕리는 조선 후기에는 영암군 군종면 지역이었던 곳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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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 둔덕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농덕리(農德里) 둔덕(屯德) 고인돌 떼는 둔덕 마을 주변 6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둔덕 마을에서 농덕 저수지를 지나 둔덕 마을 북쪽의 산길을 따라 약 400m 떨어진 야산의 중턱에 해당하는 길 우측 논둑에 4기가 있다. 나군은 둔덕 마을 남동쪽 끝에 둔덕재 쪽으로 올라가는 소로(小路)를 따라 약 2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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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는 김해 김씨 도사공파의 사우. 농암사(農巖祠)는 김연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우(祠宇)이다. 김연은 고려 후기 충신으로,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입향하였다. 김해 김씨(金海金氏) 도사공파(都事公派)의 시조이다.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다. 영암읍 춘양 교차로에서 영암로를 타고 약 300m를 이동한 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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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있는 누각(樓閣)과 정자(亭子).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를 포괄하는 용어로, 조선 시대 유교 문화가 낳은 사대부들의 지적 교류의 공간이다. 대개 덕망이 있는 향촌 인물이나 또는 정계에서 물러난 후 향리에 내려온 인사들이 소요, 은둔, 교류, 강학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풍광이 좋은 곳에 누정을 지었다. 이러한 누정은 특히 전라남도와 영남 지방에 많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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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전주 이씨 문중의 재실. 영암군 군서면 소재지에서 옛 지방도 819호선을 따라 남서쪽으로 800m를 지나고, 왕인로를 따라 구림천을 거슬러 오르다가 300m 가면 보이는 남쪽 들 가운데에 담숙재가 있다. 담숙재(湛肅齋)는 전주 이씨 문중 재실로 1858년에 건립되었다. 담장과 삼문은 1976년에 세워졌고, 현재의 건물은 1987년에 보수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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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족자동(簇子洞), 신복촌(新卜村), 대야천(大野川), 월등(月登), 괴동(槐洞) 등을 통합하면서 대야천의 대(大) 자와 신복의 신(新) 자를 합쳐서 대신리(大新里)라고 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영암군 군종면(郡終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시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영암면 대신리가 되었다.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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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와 삼포리의 경계에 있는 산. 산봉우리 2개가 도로를 두고 마주보고 있어 북쪽의 산을 대아산(大牙山)[183m], 남쪽의 산을 소아산(小牙山)[171m]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 사료에는 대아산과 소아산을 구분하지 않고 아산(芽山, 牙山) 혹은 다른 이름인 엄산(奄山)으로 기록하였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영암 영역의 맨 서쪽 반도 끝에 엄산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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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는 낭주 최씨 문중의 재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으며 국암사 옆에 위치한다. 덕성당(德星堂)은 낭주 최씨(朗州崔氏) 문중의 재실로 창건 연대나 창건 주체자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1940년에 중건되었다. 1972년에 낭주 최씨 선조이자 고려 개국 공신인 최지몽(崔知夢)[907~987], 최안우(崔安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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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리 덕진교에 있는, 1813년 덕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813년(순조 13)에 마을 사람들이 덕진의 업을 기리기 위하여 덕진교 북쪽에 덕진교비(德津橋碑)를 건립하였다. 또한 덕진교비는 ‘대석교 창주 덕진지비(大石橋創主德津之碑)’로도 불린다. 덕진교에 대한 설화에 따르면, 덕진교 주변 마을에서 주막을 경영하던 ‘덕진’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강에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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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안모실을 내촌(內村)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정(新亭), 교변(橋邊) 마을과 통합하면서, 덕진 다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덕진리(德津里)라고 하였다. 예전에 주막을 경영하던 덕진이라는 과부가 이 지역에 다리가 없어 많은 행인들이 불편한 것을 보고 푼푼이 모아 둔 돈을 모두 털어 큰 돌로 다리를 놓았고, 여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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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내촌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내촌 마을에서 매년 유두(流頭)인 음력 6월 15일에 마을의 평안을 비는 뜻에서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모실 대표자를 선정하고, 비용을 걷어 제물을 장만한다. 마을에 있는 수령 600여 년의 소나무가 당산나무이며, 당산할머니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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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행정면. 덕진 다리[德津橋] 전설과 전해지는 덕진리가 면소재지가 되면서 덕진면(德津面)이라 부르게 되었다. 예전에 주막을 경영하던 덕진이라는 과부가 이 지역에 다리가 없어 많은 행인들이 불편한 것을 보고 푼푼이 모아 둔 돈을 모두 털어 큰 돌로 다리를 놓았고, 여인의 이름을 따서 다리에 덕진교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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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인덕리(仁德里)의 덕 자와 완화리(完化里)의 화 자를 따서 덕화리(德化里)라 부르게 되었다. 인덕 마을은 마을 앞에 개울이 있었으며 어질고 덕이 많은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해서 인덕(仁德) 마을이라고 하였다. 완화 마을은 구러리, 구래울, 구유월, 완화, 완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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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저수지. 도갑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있는 도갑리(道岬里)에서 기원이다. 도갑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병합하여 개설하였으며, 도갑사(道岬寺)에서 이름을 따 왔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한국 농어촌 공사의 기록에 따르면 도갑 저수지는 1971년 12월 1일에 착공하여, 1973년 12월 30일에 준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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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에 있었던 석장생. 도갑리(道岬里) 석장생(石長生)은 주민들에게 ‘석장승’이라 불리기도 하며, 글씨의 흔적이 보인다. 1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잡귀 방지 및 사찰 수호의 역할을 하였다 월출산 안내도에 따르면 도갑리 석장생은 원래 도갑리 해탈문 앞에 흐르는 계곡 건너편 주차장 앞에 있었다. 그러다가 해탈문 입구의 100m 앞 밭 가운데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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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선인동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도갑리(道岬里) 선인동 고인돌 떼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선인동[신등]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선인동 마을의 가장 남서쪽에 지방 도로와 접한 영모각 우측의 좁은 길을 따라 15m 가면, 우측 박상술의 집 마당과 양용철의 축사 안에 도갑리 선인동 고인돌 떼 가군이 있다. 그리고 영암-구림 간 지방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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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 주지봉 중턱에 있는 석조 입상. 도갑리 왕인 석상(道岬里 王人 石像)이 세워진 곳은 신라 말 도선 국사(道詵國師)의 행적이 전해지는 곳이며 백제 왕인 박사가 공부한 곳으로 알려져 왔다. 도갑사에서 주지봉을 향해 올라가는 문산재(文山齋) 위쪽 약 20m 거리에 있다. 왕인 석상은 마을에서 각각 ‘문수암’과 ‘문수상’으로 구전되어 왔다. 도선 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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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죽정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도갑리(道岬里) 죽정(竹亭) 고인돌 떼는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죽정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군서면 소재지에서 도갑사로 가는 도로를 따라 가면 도갑 저수지 못 미쳐 삼거리에 죽정 고인돌 가군이 있다. 그리고 영암-구림 간 지방 도로에서 평리 마을 입구를 지나 구림교(鳩林橋) 약 30m 못 미쳐 지방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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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평리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도갑리(道岬里) 평리(坪里) 고인돌 떼는 영암군 도갑리 평리 마을에 있다. 평리 마을의 가장 동북쪽에 위치한 김용주의 집 뒤편 밭과 월악동에서 평리로 가는 좁은 길의 경계 지점에 고인돌이 있다. 모정 마을 100m 못 미친 곳의 구릉 과수원 부근에도 이동된 고인돌 덮개돌이 있다. 확인된 1기의 덮개돌의 규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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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사찰. 도갑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신라 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머물렀다고 하는 연기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11세기 후반에 사세가 확대되기 시작하여 조선 세조 대에 수미 왕사(守眉王師)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1977년에 화재로 대웅보전이 소실된 것을 계기로 전반적인 발굴·보수 작업이 2013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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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대형 석조. 석조(石槽)는 돌그릇을 말한다. 도갑사 석조(道岬寺 石槽)는 큰 돌의 내부를 파내어 물을 담아 식수로 쓰거나 연꽃을 심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 내 마당에 있다. 화강암을 통나무배와 같은 모양으로 깎아 안쪽 밑바닥에 물을 뺄 수 있도록 배수구를 갖추었다. 높이 85㎝, 길이가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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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 세워진 수미 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기록한 비. 도갑사 수미 왕사비(道岬寺 守眉 王師碑)는 1633년에 영암군의 도갑사에 세워진 비석으로 조선 세조 대 왕사(王師)를 지낸 묘각 화상(妙覺和尙) 수미(守眉)의 행적과 도갑사 중창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세조 대 흥불 정책의 상징적 인물인 수미와 왕실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평가되고 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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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월출산에 있는 산성 터.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옛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군서면(郡西面)에는 성묘산 정상부에 위치한 성묘산성(城妙山城)과 월출산 죽순봉의 가지 능선 상에 위치한 도갑산성(道岬山城) 등 2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도갑산성이 있는 군서면은 영암읍 및 덕진면(德津面) 지역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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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영암 출신의 승려. 법휘는 도선(道詵), 시호는 요공(了空), 선각(先覺). 속성은 김씨(金氏)이며 영암에서 출생하였다. 신라 흥덕왕 원년인 826년에 출생하였고, 15세에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다가 20세에 선종으로 개종하고 동리산파 개조인 혜철(惠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863년(헌안왕 4)부터 35년간 백계산(白谿山) 옥룡사(玉龍寺)에 주석하며 제자들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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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장리 장사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도장리 장사 유물 산포지(道長里 長沙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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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포리는 도싯개, 도삿개, 또는 도시포, 도포라고 하였다. 도포리의 동쪽에 있는 동도포 마을 뒷산인 저산(猪山)[37m]의 한글 이름이 돛뫼이다. 이 돛뫼 밑 개[浦]를 돛개라 하였으며, 한자로 옮기면서 도포(都浦)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도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나포리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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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도포리 도포제는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에서 매년 마을의 평안을 비는 뜻에서 천신당에서 지내는 산신제이다. 도포제는 음력 1월 14일 저녁과 음력 7월 14일 저녁에 지낸다.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모실 대표자를 선정하고, 비용을 걷어 제물을 장만한다. 예로부터 도포리는 포구(浦口)로 크게 번창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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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남도 영암군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도포만 연안의 넓은 간석지를 방조제로 막아서 간척지를 형성하고 있다. 도포면(都浦面)은 도포리(都浦里)가 있어 유래한 이름인 듯하다. 도포리는 도싯개, 도삿개, 도시포, 도포라고 했다. 도포리의 동쪽 동도포 마을에는 저산(猪山)[37m]이 있는데, 한글로는 돛뫼이다. 돛뫼 밑 개[浦]를 돛개라 하였으며,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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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서 발원하여 도포면을 흘러 영암천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도포천(都浦川)은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북일종면(北一終面) 도시포(都市浦)에서 유래한다. 도시포는 1912년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 地方行政區域 名稱一覽)』에 도포리(都浦里)로 기록되어 있으며, 1932년 나포리를 병합하여 도포면 도포리가 되었다. 도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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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마을의 하천변에 소시장에 크게 열려 송아지 독(犢) 자와 내 천(川) 자를 써서 독천리(犢川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독천리는 조선 시대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산직촌(山直村), 덕수정(德水亭), 벽계동(碧溪洞), 구흥동(九興洞), 영복리(永福里), 광산리(光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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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독천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독천리(犢川里) 독천(犢川) 고인돌 떼는 영암군 독천리 독천 마을에 있다. 학산면 소재지 내의 독천 파출소 왼쪽 민묘(民墓) 주변에 6기가 있다. 독천리 독천 고인돌 떼는 6기로 장축 방향을 동서로 두고 2열을 이루고 있다. 고인돌의 크기는 대개 길이 3.1~2.0m, 폭 1.0~2.4m, 두께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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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바위. 명칭 유래가 전하지 않지만, 바위가 우뚝 솟아난 모양을 표현한 명칭인 듯하다.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산 60번지와 학산면 용산리 산 75번지 경계에 위치한다. 주지봉[491m]에서 서쪽으로 내려선 끝자락 산등성이로 해발 150m 위며, 벼랑이다. 중생대 백악기 말에 형성된 화강암반이 지표에 노출된 것이다. 군서면과 학산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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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군서면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남쪽은 학산면 용산리, 서쪽은 군서면 서구림리, 북쪽은 성양리, 동쪽은 도갑리와 인접해 있다. 자연 마을은 구림 마을, 동계 마을, 법석골 마을, 신근정리 마을, 쌍와촌 마을, 학암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구림(鳩林)이라는 지명은 도선 국사의 탄생과 관련 있다. 신라 때 성기동 최씨원(崔氏園)에 사는 최씨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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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동무리(東武里)를 처음 개설할 때 당시 영암군 군시면 내에 동문내리에서 동 자와 무학리에서 무 자를 따서 동무리로 하였다. 동무리는 조선 후기에 영암군 군시면 지역으로, 1914년에 시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인하여 영암면 동무리로 처음 개설되었다. 이후 1979년 4월 7일에 영암면이 영암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영암면 동무리에서 영암읍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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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서호리(西湖里) 동쪽에 위치하여 동호리(東湖里)라 하였다. 동호리는 조선 시대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동역리(東驛里), 동변리(東邊里), 감치리(甘峙里), 백야리(白也里)를 병합하여 동호리로 개설되었다. 1917년 곤일종면이 삼호면(三湖面)로 이름을 바꾸면서 삼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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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에 있는 바위. 덕진면 운암리 송석정 마을은 월출산(月出山) 기슭의 영암읍에서 북동쪽인 백룡산(白龍山)[418m]의 남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대천동, 서쪽에는 운곡[선암], 남쪽에는 백계리 청계[신촌]가 있다. 송석정 마을은 영산 신씨(靈山辛氏)가 자가 일촌(自家一村)한 동네로 북동쪽 용바우와 용샘이 있는 용묵골에서 내려온 물로 농사짓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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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두억봉[도산천] 밑이어서 두억리(斗億里)라 하였다. 두억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월정리(月亭里), 수산리(水山里), 학평리(鶴坪里), 청현리(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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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두억리 수산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수산 마을에서는 두억리(斗億里) 수산(水山) 선돌을 ‘선독’이라고도 부른다. 두억리 수산 선돌은 질병이 돌던 해에 주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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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두억리 장수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장수 마을에서는 선돌을 ‘선바우’ 또는 ‘선독’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에 나쁜 일이 없고 질병을 막기 위해 두억리(斗億里)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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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청용리 동산 마을에 있는 산성 터. 금정면(金井面)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이다. 백제 때 아로곡현(阿老谷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야로현(野老縣)으로 이름을 바뀌면서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나주목(羅州牧)에 편입된 이래 조선 시대까지 계속 나주목 소속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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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저수지. 마산 저수지의 명칭은 압곡(鴨谷) 마을 서편에 있는 마산(馬山)[37m]에서 기원한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마산 북쪽에 건립되었다. 1944년 1월 1일 착공, 1945년 12월 31일 준공하였다. 하지만 1915년에 발간된 『지적 원도』에는 노송리 766번지의 지목이 지소(池沼)로 분류되어 있어 조선 시대부터 있던 방죽을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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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오산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오산 마을에서 마산리(馬山里) 선돌을 세운 이유는 비보(裨補)로 풍수지리설에 따른 것이다. 오산 마을 뒤 봉화가 있었던 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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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오산 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당산신(堂山神)에게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오산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에서 당산 할머니에게 당산제를 지내는데, 마을의 평안과 무사안녕을 비는 뜻에서 제사에 드는 비용을 마을 사람들에게서 걷어서 제물을 장만하고 대표자를 선정하여 모셔 오고 있다. 마을 앞에 조성되어 있는 마을 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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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만수리는 만석굴이라고도 하는데,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만수리는 조선 시대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천리(錦川里), 회동(回洞), 구송리(九松里) 일부와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신기리(新基里)를 병합하여 만수리라 하고, 시종면에 편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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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시종면 만수리 만수 마을 내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만수리(萬樹里) 만수(萬樹) 고분군(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만수 마을에 있다. 내동리에서 반남으로 향하는 지방도 821호선을 따라 시종교를 지나면 시종 치안 센터가 도로 좌측에 있으며, 치안 센터 북쪽에 형성된 구릉에 4기의 고분이 있다. 국립 광주 박물관에서 1981년과 1982년도에 2호분과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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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화동리(化洞里), 오복리(烏伏里), 망우정리(望牛亭里), 장산리(長山里), 목우촌리(牧牛村里) 일부를 병합하면서 망우정리의 망(望) 자와 장산리의 산(山) 자를 따서 망산리(望山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망산리로 개설되었다.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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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망산리 망산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망산리(望山里) 고인돌 떼는 영암군 삼호읍 망산리 망산 마을 산8-4 구릉 상에 6기가 분포하고 있었다. 이곳은 국도 2호선 국도변에 있는 망산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건너편에 해당한다. 망산리 고인돌 떼는 국도 2호선 확장 및 포장 공사로 1994년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무덤방 5기가 조사되었다.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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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찰. 망월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영암읍에서 국도 13호선을 따라가면 신북면 소재지에 이르기 전에 왼편으로 ‘망월산’ 또는 ‘호산(虎山)’이라 부르는 야트막한 산이 나온다. 이 망원산 중턱에 망월사가 위치하고 있다. 망월사는 1777년(정조 원년) 백운 선사(柏雲禪師)가 창건하고,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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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서 발원하여 삼호읍에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망월천(望月川)이라는 이름은 미암면 채지리 망월정(望月亭)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망월정은 1912년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 地方行政區域 名稱一覽)』에 따르면 곤일시면 월창리(月昌里)에 속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망월정(望月亭), 비래산(飛來山), 화암리(華巖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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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는 영암군 군종면(郡終面) 지역이었던 곳으로 망호정(望湖亭) 정자가 있어서 망호정리(望湖亭里) 또는 망호리(望湖里)라고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호음정리(湖陰亭里), 후정리(后亭里), 해정리(海亭里), 덕촌리(德村里)를 병합하여 망호리라 하고 영암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7월 4일 영암면이 영암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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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서 발원하여 교동리를 거쳐 망호리에서 영산강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망호천(望湖川)은 영암읍 망호리에서 유래되었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망호리는 영암군 군종면(郡終面) 소속으로 망호정이 기록되어 있다. 망호리는 1914년에 후정, 호은정, 덕촌리, 해정과 함께 영암군 영암면(靈巖面) 소속이 되었다. 2006년 간행된 『영암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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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병합한 마을 중 매곡리(梅谷里)의 매(梅) 자와 대월리(待月里)의 월(月) 자를 따서 매월리(梅月里)라 했다.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책인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서 주룡(注龍), 매곡(梅谷), 미교(美橋) 등의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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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 미교 마을에 있는 철기 시대의 조개더미 유적. 매월리(梅月里) 미교(美橋) 조개더미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철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조개더미는 고고학적으로 자연 유물 산포지라 하며, 이는 지표 또는 퇴적된 단면상에 노출된 패각층과 유물들을 통해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영암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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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동리(明洞里)에는 옥정 마을, 와우동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옥정 마을은 마을의 바위틈에서 샘물이 솟아 구슬 같은 샘물이라 하여 구슬 옥(玉)과 우물 정(井)자를 합하여 옥정(玉井)이라 했다. 와우동 마을은 서룽골이라 부르기도 하며, 큰 암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 하여 업드릴 와(臥) 자와 소 우(牛) 자를 합쳐서 와우동(臥牛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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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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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에 있었던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명동리(明洞里) 선돌 주위에는 여섯 그루의 당나무(堂나무)가 함께 있었다. 명동리 선돌은 마을 입구에 있는 선인정(仙人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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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선인정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자기 유물 산포지. 명동리 선인정 유물 산포지(明洞里 仙人亭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조선 시대 백자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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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모산리(茅山里)에 관한 명칭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첫 번째로 예로부터 마을 안에 못이 있어 못안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못산으로 변하고 다시 모산으로 변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마을의 주변에 띠[茅(모)]가 무성하여 바람이 불어오면 띠 잎이 난무하여 금물결을 이루었다.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수림이 아름다워 띠 모(茅)와 뫼 산(山)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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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구암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모산리 구암 고분(茅山里 龜巖 古墳)은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구암 마을에 있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표상에 드러난 봉분 및 고분 구조물[판석재] 등을 통해 고분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지점으로 확인되었다. 이장하는 과정에서 청동 제품이 출토되었고 판석재들이 유출되어 논의 축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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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하동 정씨 장령공파의 문중 사우. 모산사(茅山祠)는 1822년(순조 22)에 영암 지역 유림들의 발의로 창건한 하동 정씨(河東鄭氏) 문중 사우(祠宇)이다. 모산사에서 배향하는 인물은 기묘사화[1519] 때 200여 명의 진사와 함께 상소를 올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모효(慕孝) 정문손(鄭文孫)[1473~1554], 기대승(奇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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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에 있는 저수지. 모정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소재한 모정리의 모정 마을에서 기원한다. 모정 마을은 1789년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영암군 서종면(西終面) 모정(茅亭), 1911년의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모정지(茅亭池)로 기록되어 있다. 모정 마을은 원래 등성이에 바위와 소나무가 있어 ‘송암(松岩)’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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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모정리 고분군(茅亭里 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에 있다. 서구림리 신흥동의 비석 거리에서 모정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약 300m 가면 좌측에 조상현의 집이 있다. 유적은 바로 조상현의 집 위쪽 저평한 구릉과 도로 우측의 구릉에 있다. 모정리 고분군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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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 신흥 마을에 있는 하동 정씨 문중의 재실. 모효재(慕孝齋)는 처음 하동 정씨 정문손(鄭文孫)[1473~1554]의 사친(事親)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그가 초막을 짓고 시묘하던 곳에 향화각(香火閣)을 짓고 모효재라 불렀다. 1787년(정조 11)에 묘역 내에서 신흥 마을로 이건하였다. 정문손은 1507년(중종 2) 식년시[생원]에 입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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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몽해리(夢海里)라는 이름은 김완(金完) 장군과 관련이 있다. 김해 김씨 김극조(金克祧)가 풍수에게 아천 포구 앞이 명지라는 권유를 받고 이거하였다. 김극조는 엄길리에 사는 천안 전씨와 결혼하였고 김완 장군을 낳았다. 김완 장군을 임신할 당시, 마을 앞 영암만 바닷물이 부인의 치마폭으로 몰려드는 꿈을 꾸었다 하여 마을 이름을 몽해라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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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몽해 마을에 있는 선사 시대 유물 산포지. 몽해리 몽해 유물 산포지(夢海里 夢海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선사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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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복다회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몽해리(夢海里) 복다회(福多回) 고인돌 떼는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복다회 마을 네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복다회 마을의 서남쪽 끝에 위치한 젖소 목장 앞에 있는 미륵등이라 불리는 야산에 7기가 있다. 나군은 복다회 마을 뒤 야산에서 동북쪽 구릉 지점, 즉 몽해 마을로 넘어가는 구릉 정상 부근 민묘(民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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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복다회 마을에 있는 선사 시대 유물 산포지. 몽해리 복다회 유물 산포지(夢海里 福多回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선사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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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복다회 마을에 있는 석불 입상. 몽해리 석불 입상(夢海里 石佛 立像)은 복다회 마을의 남서쪽인 미륵동으로 불리는 들 가까이 나지막한 산에 있다. 주변에는 고인돌 7기가 있다. 몽해리 석불 입상은 조성 시기를 알 수 없으며, 오랜 세월 긁히고 깎이고 떨어져서 그 형상을 정확히 알아보기 어렵다. 본디 입자가 거친 판석의 한 면에 선각으로 간략하게 새겨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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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묵동리(墨洞里)는 옛부터 먹을 만드는 곳이라 하여 묵동 혹은 먹뱅이라고 하였다. 혹은 마을 북쪽에 병풍처럼 산이 펼쳐져 있어 옥녀가 글을 쓰려는데 붓과 벼루는 있는데 먹이 없어서 마을 이름을 먹뱅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1940년경에 먹뱅이라는 명칭의 어감이 좋지 않아 명동(明洞)이라 개칭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때 마을이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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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 호동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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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함양 박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함양 박씨(咸陽 朴氏)는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후손으로 문규원(文奎源)의 처가 되어 정성껏 시부모를 봉양하고 종인(宗人)들의 모범이 되었다. 1854년에 나주의 친가에 가 있을 때 남편이 갑자기 죽었다. 박씨는 자결을 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슬픔을 참고 정성껏 3년간 초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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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 문수 마을에 있었던 포구. 문수포는 본래 조선 시대 영암군 곤일시면 지역 문수 마을에 있었던 포구로, 문숫개라고도 불렀다. 포구에 50여 척의 어선이 붐빌 정도로, 일대에서 가장 큰 어항이었다. 마을 이름인 미암면 문수포 마을 문숫개에서 유래한다. 18세기 중반에 발행된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책인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도 문수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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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과 관련된 문화적 활동의 결과물로 계승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지정·관리하는 유·무형의 문화유산. 문화재(文化財)는 인류 문화 활동의 소산 중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지정의 유무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 문화재는 학술적·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국가 지정 문화재와 시·도 문화재 보호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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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에 있는 저수지. 미암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있는 미암리(美巖里)에서 기원한다. 미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병합하면서 미촌리(美村里)와 흑암리(黑巖里)에서 이름 따, 곤일시면(昆一始面) 미암리로 개설되었고, 1928년 면의 이름이 바뀌면서 미암면 미암리로 개편되어다. 1789년에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곤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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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진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미촌리(美村里)의 미(美)자와 흑암리(黑岩里)의 암(岩)자를 따라 미암리(美岩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미암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쳐서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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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 미촌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당산신(堂山神)에게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공동 제사. 미촌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에서 당산 할머니에게 당산제를 지내는데, 마을의 평안과 무사안녕을 비는 뜻에서 제사에 드는 비용을 마을 사람들에게서 걷어서 제물을 장만하고 대표자를 선정하여 모셨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개인별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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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1928년 면의 중심인 미암리의 이름을 따서 미암면(美岩面)이라 하였다. 미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미촌리(美村里)의 미(美)자와 흑암리(黑岩里)의 암(岩)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미암면은 백제 때 고미현(古彌懸)의 중심지였다. 신라 경덕왕 대에 이르러 이름을 곤미현(昆湄懸)으로 바꾸었다. 곤미현은 다시 두 개의 방으로 나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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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에 있는, 1892년 민영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민영준 영세불망비(閔泳駿 永世不忘碑)는 1892년 7월에 경리사 민영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로 들어가는 고갯길에 민치린 영세불망비(閔致麟 永世不忘碑), 민정○ 청덕 활민비(閔正□ 淸德 活民碑)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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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1899년 민영철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민영철 불망비(閔永喆 不忘碑)는 1899년에 관찰사 민영철(閔永喆)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민영철 불망비는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 학산면사무소 입구 왼쪽 화단에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38㎝, 너비 43㎝, 두께 20㎝이다. 비석에는 ‘관찰사 민 공 영철 영세불망비(觀察使閔公永喆永世不忘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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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개항기 때 효자비. 민재식(閔宰植)은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흥 민씨(驪興閔氏) 종족들과 지역 유림들이 민재식을 기리기 위해 민재식 효자비(閔宰植 孝子碑)를 건립하였다. 민재식 효자비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무진년 3월 한자헌대부 장예원 경원 임 규장각 학사 종하 민경호 근찬(戊辰年 三月 澣資憲大夫 掌禮院 卿原 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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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 있는 개항기의 순찰사 민정○의 청덕 활민비. 민정○ 청덕 활민비(閔正○ 淸德 活民碑)는 1892년 7월에 순찰사(巡察使) 민정○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로 들어가는 고갯길에 민치린 영세불망비(閔致麟 永世不忘碑), 민영준 영세불망비(閔永駿 永世不忘碑)와 함께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52㎝, 너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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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민치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민치린(閔致麟)[1818~?]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사달(士達)로, 1844년(헌종 10)에 갑진(甲辰) 증광시(增廣試) 을과(乙科) 3위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민치린 영세불망비(閔致麟 永世不忘碑)는 ‘영암 아천리 민 후 치린 영세불망비’로도 불린다. 민치린 영세불망비는 1877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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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에 있는 손훈립·손응호·손응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밀양 손씨 삼충 정려(密陽孫氏 三忠 旌閭)는 임진왜란 때 출정하여 왜군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밀양 손씨 손훈립(孫塤立)·손응호(孫應虎)·손응록(孫應祿)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각이다. 특히 손훈립은 임진왜란 당시 최경회(崔慶會)·김천일(金千鎰)과 힘을 합하여 금산·무주·진주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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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인·학자. 박규정(朴奎精)[1493~1580]은 1528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평생 당대 명유(名儒)들과 함께 시와 문장을 논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특히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구림 대동계의 중창자이며, 영암 향약을 창설하고 향안을 마련하는 데서 주동적 역할을 하는 등 조선 전기 영암 지역의 사족을 이끈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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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조선 후기 문신 박동열(朴東說)[1564~1622]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열지(悅之), 호는 남곽(南郭)과 봉촌(鳳村)이다. 박조년(朴兆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간 박소(朴紹)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박응복(朴應福)이며, 어머니는 증 좌승지 임구령(林九齡)의 딸이다. 동생이 박동량(朴東亮)이다. 1608년(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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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금대 마을에 있는, 1934년 박복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복규 자선 기념비(朴栿圭 慈善 紀念碑)는 1934년 4월에 농은(農隱) 박복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금정면 일대 소작인들이 세웠다. 박복규 자선 기념비는 영암군 금정면 면소재지에서 나주시 세지면으로 가는 국도 23번 부근에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55㎝, 너비 52㎝이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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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 있는, 1937년 박봉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박봉규 자선 불망비(朴奉圭 慈善 不忘碑)는 1937년 6월에 박봉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영암군 금정면과 나주시 세지면의 경계에서 안노리 도로변 버스 정류장 옆으로 이동하여 박칠봉 시혜 불망비(朴七奉 施惠 不忘碑)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36㎝, 너비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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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 있는 목사 박중규의 선정비. 박중규 선정비(朴重圭 善政碑)는 목사(牧使) 박중규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건립 시기는 알 수 없다.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 입구에 박천보 청덕 불망비(朴天輔淸德不忘碑)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12㎝, 너비 37㎝이다.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목사 박 후 중규 선정비(牧使朴侯重圭善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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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면장 박천보의 불망비. 박천보(朴天輔)는 밀의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다. 금정면에서의 활동에 대해서는 면장으로 있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없다. 박천보 청덕 불망비(朴天輔 淸德 不忘碑)는 1909년 5월에 금정면 주민들이 면장 박천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 마을의 마을 회관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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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 있는 참봉 박칠봉의 시혜 불망비. 박칠봉 시혜 불망비(朴七奉 施惠 不忘碑)는 참봉(參奉) 박칠봉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박칠봉 시혜 불망비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과 나주시 세지면의 경계에 박봉규 자선 불망비(朴奉圭 慈善 不忘碑)와 함께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00㎝, 너비 45㎝이다. 비석에는 ‘박 참봉 칠봉 시혜 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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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동백정(冬栢亭)의 백(栢) 자와 청계리(淸溪里)의 계(溪) 자를 합하여 백계리(栢溪里)라 하였다. 동백정 마을의 마을 이름은 당초에는 동백나무라는 뜻인 백동(栢冬)이라 하였으나 언젠가부터 동백나무 숲 가운데 정자가 있어 동백정(冬栢亭)이라 바뀌었다고 전해온다. 청계 마을은 마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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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백계리 개양동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백계리(栢溪里) 개양동(開陽洞) 고인돌 떼는 영암군 덕진면 백계리 개양동 마을에 있다. 개양동 마을에 있는 신촌 교회에서 덕진면 소재지 방향으로 약 150m 간 뒤, 도로 우측으로 소나무 숲을 이룬 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백계리 개양동 고인돌 떼는 1986년 처음 조사할 때는 양동(陽洞) 고인돌군으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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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신북면 명동리, 금정면 아천리 경계에 있는 산. 조선 시대에 나주목(羅州牧) 금마면(金磨面) 터였던 지금의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백운(白雲) 마을 아래에 용지(龍池)가 있다. 백룡산(白龍山)[418m]이라는 이름은 이 산 정상에 흰 구름이 자욱하게 일고, 뇌성벽력이 치면서 용지에 살던 백룡(白龍)이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 붙여진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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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을 포함하여 한반도 중부와 서남부 지역에 있었던 고대 국가. 백제 건국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온조 설화에 따르면 기원전 18년에 부여 또는 고구려 계통의 유민과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이 결합하여 성립되었다. 최초의 백제의 이름은 마한 소국 십제(十濟)였다. 마한으로부터 100리의 땅을 할애받아 십제를 세웠다. 백제는 한강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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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에 있는 바위. 월곡리 호동(虎洞) 마을 범골 뒷산, 군서 농공 단지 동편 800m 지점에 있는 바위이다. 호랑이가 사는 곳이라는 의미로 범바위라고 칭하였다. 범바위는 중생대 백악기 말에 형성된 화강암의 절리와 풍화 작용으로 형성된 바위이다. 호동 계곡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사리봉이 있다. 월곡리 호동 마을에서 범바위 능선~영암 월곡리 마애 여래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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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금정면 안노리 법흥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관음보살 좌상. 법흥사(法興寺)는 안노리 모정 마을에서 동북쪽 300m 거리에 위치하며, 대웅전과 관음전을 주 전각으로 하는 크지 않은 규모의 절이다. 수십 년 전 법흥사의 화재로 송광사 말사로 추정되는 다른 폐사에서 법흥사 관음보살 좌상(法興寺 觀音菩薩 坐像)을 옮겨 왔다고 한다. 법흥사 관음보살 좌상에는 조선 후기 보살상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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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법흥사에 있는 동자 석상. 법흥사 동자 석상(法興寺 童子 石像)은 2013년 현재 대웅전 앞 석축에 마련된 작은 감실 안에 있다. 1985년 음력 4월경 마을 앞 경지 정리를 하던 중 논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법흥사 동자 석상은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기웃하였고, 좌우 대칭이 정확하지 않으면서 귀엽고 해학적인 인상이다. 움푹한 눈과 입에 뭉툭한 코를 표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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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에 있는 나주 나씨 문중의 재실. 보본당(報本堂)은 나주 나씨(羅州羅氏) 나두생(羅斗生)의 재실이다. 나두생의 자는 자현(子賢), 호는 제월당(霽月堂)이며 참판에 추증(追贈)되었다. 나두생은 조선 후기 영조 연간에 나주 반남에서 영암 적진방 나포촌[현 금농촌]으로 이거하여, 나포정을 짓고 강학 교류에 힘썼다. 뒤에 후손들이 나두생을 기리고자 묘소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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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입향조인 봉암(鳳巖) 강연(姜淵)과 관련하여 마을에 봉소정(鳳巢亭)이 있어 봉소리(鳳巢里)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봉소리 연동 마을은 부근에 연동지라는 못이 있었는데 연이 많이 자생하였으므로 거주민들이 연꽃 연(蓮)자와 마을 동(洞)자를 써서 연동(蓮洞)이라 불렀다고 하며, 괴목정 마을은 예전에 태산봉 남봉에 괴목으로 지은 정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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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 봉소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조개더미. 봉소 조개더미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조선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조개더미는 고고학적으로 자연 유물 산포지라 하며, 이는 지표 또는 퇴적된 단면상에 노출된 패각층과 유물들을 통해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영암 지역에서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조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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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봉소리(鳳巢里) 진등 석실 고분군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에 있다. 시종면 면소재지에서 몇 개의 구릉을 지나면서 봉소리로 들어가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이 도로를 따라 가면 구산 저수지가 도로 북서쪽에 있다. 구산 저수지 남동쪽 도로변에 있는 조등 마을과 송산 마을로 가는 좁은 길을 따라 약 100m 가면 동쪽 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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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 해안 지역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달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밤에는 횃불[烽]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燧]로써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전달하던 통신 수단으로 이를 봉화, 봉수대, 봉화대 등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봉수제는 기록상 12세기 중반의 1149년(의종 3) 서북면 병마사(西北面兵馬使) 조진약(曹晉若)이 임금에게 올린 글에 나타난다.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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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 철두 마을에 있는 진주 강씨 문중의 재실. 조선 시대에 영암 철두 마을로 입향 정착한 진주 강씨(晉州姜氏)강연(姜淵)[1554~?]의 재실이다. 강연(姜淵)은 문양공 강희맹(姜希孟)[1424~1483]의 5대손으로 자는 여정(汝靜)이며 1585년(선조 18) 식년시에 생원으로 입격하였다. 강연이 임진왜란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 철두 마을에 자리 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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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호리(鳳湖里)는 둠벙이 있어 둠벙개라고 부르다가, 이것이 변하여 봉개, 붕개 또는 봉호정, 봉호정리라 불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여러 마을을 병합하면서 봉호리가 되었다. 봉호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일종면(北一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죽정(松竹亭), 태산리(泰山里), 망교리(望橋里),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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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봉호리 가척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당산신(堂山神)에게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가척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당산 할머니에게 당산제를 올리는데, 마을의 평안과 무사안녕, 그리고 풍년을 비는 뜻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당산제 비용을 걷어서 제물을 장만하고 대표자를 선정하여 모신다. 마을 회관 아래쪽 골목길에 향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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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강학소. 국도 13호선 부근에 있는 영암군 신북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1㎞ 거리의 모산리 산정 마을 입구에 있다. 분비재(憤悱齋)는 1643년(인조 21)에 송계(松溪) 유신(柳信)이 세웠고 사교당(四矯堂) 유준(柳浚)[1584~1661]이 향중 자제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그동안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쳤는데, 현재의 건물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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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에 있는 광산 김씨 원정공파의 사우. 사권당(思勸堂)은 광산 김씨(光山金氏) 원정공파의 후예인 김용채(金容彩)가 부친 김현수(金顯洙)의 뜻을 이어받아 1930년에 건립하였다. 군서면사무소 앞 성양 교차로에서 영산로를 따라 3.5㎞ 가면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모정 마을 입구 주차장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모정 1길을 따라 모정 보건 진료소를 간 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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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있는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 사당은 조상의 신주를 모셔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묘(祠廟)·사우(祠宇)·사(祠) 등으로도 사용한다. 위패 대신 조상의 영정을 봉안한 곳은 영당(影堂)이라고도 한다. 민간의 사당을 가묘(家廟)라고도 하는데 왕실의 것은 특별히 종묘(宗廟)라 한다. 고려 말에 전래된 주자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근원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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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영암군은 백두 대간 호남 정맥의 서사면에 위치한다. 무등산[1187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는 영산강 수계의 지석강과 섬진강 수계의 보성강의 분수계를 이루는 등성이로서, 서쪽으로 향하다가 월출산 기맥으로 나뉜다. 궁성산[484m]·국사봉[615m]·활성산[465m]으로 접어든 등성이는 남서쪽으로 월출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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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에 있는 저수지. 산정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소재한 미암리의 산정(山亭) 마을에서 기원한다. 산정 마을은 1789년의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곤일시면(昆一始面) 산정동(山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개설된 곤일시면 미암리(美巖里)에 병합되었다. 1928년 면의 이름 변경에 따라 미암면 미암리 산정 마을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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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 당시 산호정(山湖亭)이라는 정자 이름을 따서 산호리(山湖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동암리(銅岩里), 경재리(京才里), 신호정리(新湖亭里), 장도리(獐島里), 금곡리(金谷里), 산호정리(山湖亭里)를 병합하여 산호리로 개설되었다. 1917년 곤일종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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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동암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산호리(山湖里) 동암(銅巖) 고인돌 떼는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 동암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었다. 가군은 산호리 산68번지와 산69번지에 있으며, 삼호 검문소에서 독천 쪽으로 약 700m 떨어진 야산에 민묘(民墓)와 함께 13기가 분포하고 있었다. 이곳은 대불 대학교 동쪽으로 수로 건너편이다. 나군은 가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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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동계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재. 삼락재(三樂齋)는 조선 시대 문관이자 학자인 해주 최씨고죽(孤竹)최경창(崔慶昌)[1539~1583]의 재실 겸 서재이다. 최경창(崔慶昌)은 1553년(명종 8)경 나주 목사를 지낸 임구령(林九齡) [1501~1562]의 딸과 혼인하고 처향인 구림에서 생활하면서 청련(靑蓮)이후백(李後白)[1520~1578]에게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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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삼충각 소장 자료. 삼충각(三忠閣)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박형준(朴亨俊)과 아들인 박효남(朴孝男), 박호남(朴好男) 삼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46년(헌종 12) 지역 유림이 발의, 상소해 나라에서 1860년(철종 11)에 삼부자를 정려하였다. 1901년과 1932년에 개수한 뒤 1946년에 중창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2년에 중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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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삼봉리(三峯里), 엄포리(奄浦里), 간내항(艮乃項), 영호정(永湖亭)을 병합하면서 삼봉리와 엄포리의 이름을 따서 삼포리(三浦里)라고 했다. 혹은 엄포리와 간내항, 영호정의 세 개의 포구(浦口)를 상징하여 삼포리(三浦里)라 했다고도 전한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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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 삼봉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삼포리(三浦里) 삼봉(三峰) 고인돌 떼는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 삼봉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지방 도로 810호선 변에 있는 장전 초등학교와 삼봉 마을 중간 지점의 남원 윤씨 세장천비(南原尹氏世葬阡碑)가 있는 구릉 상에 민묘(民墓)와 함께 3기가 분포하고 있다. 나군은 지방 도로에서 삼봉 마을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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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서 발원하여 시종면에서 영산강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삼포천(三浦川)은 하류 지역인 영암군 시종면과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의 경계 지역에서 심하게 곡류(曲流)하므로 돌은내라고 하였다. 돌은내는 돌개로 바뀌었고, 돌개가 한자화하면서 돌 석(石) 자와 개 포(浦) 자를 취하여 ‘석개〉삼개〉삼포천(三浦川)’이 되었다. 삼포천에 주요 포구로 남해포, 수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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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읍. 조선 시대에 곤미현(昆湄縣)의 끝 지역이므로 곤일종면(昆一終面)이라 하다가, 1914년 명칭이 삼호면(三湖面)으로 변경되었다. 삼호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현재는 명칭대로 영산호(營山湖), 영암호(靈岩湖), 목포 내해(內海)로 둘러싸여 지명과 같이 삼호(三湖)가 되었다. 삼호읍은 조선 시대의 1789년 『호구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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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상사동(上舍洞)의 상(上) 자와 월하촌(月下村)의 월(月) 자를 따서 상월리(上月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상월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부곡리(富谷里), 월하촌, 유천동(柳泉洞), 쌍암리(雙岩里), 상리(上里), 상사동을 병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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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 상사 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는 퇴화된 상감 청자가 전국에서 생산되었는데 이것이 점차 변모하여 실용적 형태로 바뀌고, 무늬가 그릇 전체로 확대되며, 유약의 투명도가 높아졌다. 이렇게 변모한 상감 청자를 분청사기라고 한다. 분청사기는 여말 선초의 사대부들이 추구하였던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과 맞아 떨어져 대량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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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를 흘러 학산천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상월천(上月川)이라는 이름은 하천이 흐르는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에서 유래하였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곤이시면(昆二始面)에 속하는 상사동(上沙洞)과 함께 상리(上里), 쌍암(雙岩), 유천(柳天), 부곡(富谷)의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1912년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 地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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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와 학산면 신덕리의 경계에 있는 산. 『대동지지(大東地志)』[영암]에 “은적산(銀積山)은 서쪽 2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고(輿地考)」[영암]에 “서호(西湖)는 서쪽 20리 지점에 있으니, 바로 주룡포 상류가 은적산(銀積山) 아래에 이르러 모여서 호수가 되었다.”라는 대목도 있다. 또한 김정호(金正浩)의 『동여도(東輿圖)』[20첩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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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암군 군서면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서쪽은 서호면 엄길리, 남쪽은 서호면 몽해리, 동쪽은 군서면 동구림리, 북쪽은 군서면 모정리와 인접하고 있다. 서호정 마을, 남송정 마을, 백암동 마을, 상대포 마을, 신흥동 마을 등이 있다. 구림(鳩林)이라는 지명은 도선 국사의 탄생과 관련 있다. 신라 때 성기동 최씨원(崔氏園)에 사는 최씨 처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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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서구림리(西鳩林里) 남송정(南松亭) 고인돌 떼는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 있다. 영암-독천 간 지방도를 따라 4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가군은 구림 공업 고등학교에서 독천 쪽으로 지방 도로를 따라 약 300m 가면 도로 우측의 밭에 11기가 있다. 나군은 가군에서 독천 쪽으로 약 300m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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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남송정 마을에서는 매년 대보름을 맞아 오곡 풍년·육축 번성·마을 안녕 등을 위해 당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를 당산제라고 부르며 별칭으로는 별신제라고도 한다. 당산제는 미리 제관을 정하고 제물을 장만해 음력 1월 14일 밤 12시에 지낸다. 한때 서구림리 남송정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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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서 매년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서는 매년 대보름을 맞아 오곡 풍년, 육축 번성, 마을 안녕 등을 위해 마을의 당산신에게 제사를 모셔오고 있다. 이를 당산제라고 부르며, 별칭으로는 별신제 또는 큰제라고도 한다. 당산제는 제관을 미리 선정하고 제물을 장만하고 마을민의 뜻을 모아 정성껏 제사를 모셔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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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영암읍성의 서문(西門) 내에 있었던 서문내리(西門內里)와 남문(南門) 내에 있는 남문내리(南門內里)를 합병하여 서남리(西南里)라 하였다. 조선 후기에 군시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에 시행된 행정 구역 개편 때 영암면 서남리가 되었다. 1979년 4월 7일 영암면이 영암읍이 되면서 영암읍 서남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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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와 망산리에 있는 저수지. 서창 저수지의 명칭은 1789년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서창(西倉)에서 기원한다. 조선 시대에 영암 서창이 서창리 414번지에 포구와 함께 있었다. 서창 포구에는 1930년대 초까지만 해도 2톤급 발동선이 10여 척 머물렀고, 전라남도 목포시까지는 3시간 정도 거리였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콩섬이라 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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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는 마을의 모양이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국이고, 주변에 울창한 소나무가 많다 하여 학 학(鶴) 자와 소나무 송(松) 자를 따서 학송(鶴松)이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는 미곡의 집산지이자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영암군의 서쪽에 있는 창고라는 뜻으로 서쪽 서(西) 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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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원서창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서창리(西倉里) 원서창(元西倉) 고인돌 떼는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원서창 마을의 남동쪽 야산 구릉 정상부에 13기가 분포하고 있다. 서창리 원서창 고인돌 떼는 마을 뒤편 야산 경사면에 동서 방향으로 길게 2열을 이루고 있다. 가장 큰 고인돌을 중심으로 에워싸고 있는 상태로 배치되어 있다. 고인돌의 크기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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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합 당시 동호리(東湖里)의 서쪽이 되므로 서편(西便), 세편이라 부르다 서호리(西湖里)라 하였다. 서호리는 조선 시대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동리(新洞里), 응치리(鷹峙里), 토동리(兎洞里), 변두리(邊頭里), 송죽정(松竹亭), 냉천리(冷泉里), 목우촌(牧牛村)의 일부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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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소서호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서호리(西湖里) 소서호(小西湖) 고인돌 떼는 영암군 삼호읍 서호리 소서호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소서호 마을 입구에서 북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민묘(民墓) 뒤편 구릉 상에 10여 기가 분포하며, 아래쪽에는 김해 김씨의 재각이 있다. 나군은 소서호 마을 입구에서 구(舊) 도로를 따라 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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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영암군의 서쪽인 영산강에 접해 있어 서호면(西湖面)이라고 불린다. 백제의 곤미현(昆湄懸)에 속하였지만, 신라 때 영암에 편입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곤미현에 속하였던 지역의 끝자락에 있다 하여 곤이종면(昆二終面)이라 불렸으며 아천(牙川) 등 32개의 마을을 관리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곤이시면(昆二始面)의 신소정(新沼亭) 일부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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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영모정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서호면(西湖面) 청용리(靑龍里) 선돌에 관한 정보가 매우 미약하다. 공사로 인해 선돌이 묻혀 온전한 모습을 파악하기 힘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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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 사우. 서호사(西湖祠)는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을 배향하고 있는 사우(祠宇)이다. 조행립은 임진왜란 때 외가인 구림으로 피난하면서 영암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당시 구림의 선산 임씨(善山林氏), 함양 박씨(咸陽朴氏), 낭주 최씨(朗州崔氏)와 함께 구림 대동계를 창설하는 등 향론을 이끌어갔던 인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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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서호사의 소장 자료. 서호사(西湖祠)는 원래 태호사(兌湖祠)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가 1677년(숙종3)에 서호사란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서호사는 구림 대동계에서 조두 제물(俎豆祭物)을 보냈던 사우이며,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을 제향하고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서호사 소장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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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칼, 도끼 따위의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영암 지역의 석기 시대는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로 구분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 문화와 관련된 유물 유적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다만 신석기 시대 석기 문화와 관련된 유물 유적이 현재까지 영암 지역에서 확인된 바가 없어 설명하기가 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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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시대. 일반적으로 문자 기록이 없는 시대를 선사 시대라 하며, 문자의 발명과 그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역사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의 사이에 대해 원사 시대(原史時代)[protohistor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즉 문자 기록이 없지만 그에 대한 기록이 주변 지역에 남아 있는 시기로, 우리나라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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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선황산(仙皇山)에 서낭당이 있어서 서낭당, 선황당, 화산 또는 당리(堂里)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선황리(仙皇里)라고 하였다. 선황리는 조선 시대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계양리(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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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계양 마을에 있는 고대의 독무덤. 선황리(仙皇里) 계양(桂陽) 독무덤은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계양 마을에 있다. 국립 광주 박물관이 옹관 유구 2기, 목포 대학교 박물관이 1기의 옹관(甕棺)을 수습 조사하였다. 영암군 고분 분포 현황을 조사하기 위한 지표 조사 중에 확인된 옹관을 수습 조사한 것이다.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수습한 1기는 전체 길이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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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노송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선황리(仙皇里) 노송(老松) 고인돌 떼는 영암군 미암면 노송 마을에 있다. 노송 마을 뒤편으로는 당리 마을 쪽으로 넘어가는 농로가 있는데 노송 마을 가장 동쪽에 위치한 농로를 따라 약 100m 가면 구릉 정상부 농로의 좌측과 우측으로 3기가 분포한다. 가장 큰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310㎝, 폭 270㎝,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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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당리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선황리(仙皇里) 당리 고분은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당리 마을에 있다. 당리 마을에서 미암 초등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 약 300m 가면 길 우측에 야산으로 들어가는 농로가 있다. 농로를 따라 약 100m 가면 농로 우측에 당리 고인돌 다군이 있다. 당리 고인돌 다군에서 동쪽으로 약 250m 떨어진 곳에 야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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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당리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선황리(仙皇理) 당리(堂里) 고인돌 떼는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당리 마을 세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선황리 율리 마을과 당리 마을의 중간쯤에 있는 도로 좌측 야산 숲속에 10기가 분포하고 있다. 나군은 당리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따라 15m 정도 가면 좌측의 민묘(民墓) 옆에 2기가 있고,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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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대초 마을에 있는 철기 시대 유물 산포지. 선황리 대초 유물 산포지(仙皇里 大草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철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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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율리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율리 마을은 선황리(仙皇里) 선돌을 마을의 평안을 위해 세웠으며, 주민들은 선돌이 쓰러지면 마을도 쓰러진다고 믿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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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와 채지리의 경계에 있는 산. 선황산(仙皇山)[182m]은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곤일시면(昆一始面) 당리(堂里)에서 기원한다. 당리 마을 뒷산에 서낭당이 선황당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마을 이름도 1914년 선황리(仙皇里)로 변하였다. 『한국 지명 총람』에는 화산, 화봉산, 고봉산, 화암산이라는 별칭과 함께 코처럼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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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선황산에 있는 산성 터. 영암군(靈巖郡) 미암면(美岩面)을 비롯하여 학산면·서호면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 고미현(古彌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곤미현(昆湄縣)으로 이름이 바뀌고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1080년(문종 34)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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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 시설. 성곽은 국가가 군사적인 목적을 갖고 국방이나 교통의 요지에 설치했던 군사 시설물이다. 본래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로서 성은 내성(內城)을 말하고, 곽은 성 주위를 에워싼 외성(外城)[羅城]을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겹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성곽 또는 성이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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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왕인 박사가 태어난 집터. 성기동(聖基洞)은 왕인(王仁) 박사(博士)의 탄생지로 추정되는 곳으로, 왕인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 오는 성천이 성기동의 동쪽 냇가에 있다. 이러한 성기동 유적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왕인 박사 유적지는 구림 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왕인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 자취를 복원해 놓았다. 영암읍에서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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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마산리 성묘산에 있는 산성 터.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옛 영암군(靈巖郡)에 속하였던 군서면(郡西面)에는 성묘산(城妙山) 정상부에 위치한 성묘산성(城妙山城)과 월출산 구순봉의 가지 능선에 위치한 도갑산성(道岬山城) 등 2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성묘산성이 입지하고 있는 군서면은 영암읍 및 덕진면 지역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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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성산리에 있는 저수지. 성산 저수지는 1종 저수지로, 이름은 소재지인 성산리(聖山里)에서 따왔다. 성산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인 성덕리(聖德里)과 우산정(牛山亭)에서 성(聖) 자와 산(山) 자를 따 지은 것이다. 도포천 상류 성덕 마을 서쪽과 신북면 호산[153m] 남쪽에 위치하며, 저수지 서편에는 1872년 세운 비서승(秘書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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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성덕리(聖德里)의 성(聖) 자와 우산정(牛山亭)의 산(山) 자를 따서 성산리(聖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성덕 마을은 배산임수의 평화롭고 어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성덕(聖德)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산정 마을은 용동 마을 남쪽에 있던 마을로 1920년경에 폐동되었다. 성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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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성산에 있는 산성 터. 영암군(靈巖郡) 미암면(美岩面)을 비롯하여 학산면·서호면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때까지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 고미현(古彌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곤미현(昆湄縣)으로 이름이 바뀌고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으며, 1080년(고려 문종 34) 이래 계속 영암군에 속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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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성양리에 있는 저수지. 성양 저수지의 명칭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성지천(省之川)과 양지촌(陽地村)에서 이름을 따 개설한 군서면 성양리(省陽里)에서 기원한다. 1789년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성지천, 1912년에 발행된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 地方行政區域 名稱一覽)』에 양지촌이 기록되어 있다. 성지천의 옛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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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성틀봉에 있는 토성 터. 성틀봉(성틀峰) 토성(土城) 터가 자리 잡고 있는 시종면(始終面)은 신북면과 함께 백제 때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에 속해 있었다. 통일 신라 때인 758년(경덕왕 17)에 반나부리현이 반남군(潘南郡)으로 이름과 격이 달라지면서 큰 고을을 이루었다. 금정면 지역에 있던 아로곡현(阿老谷縣)이 야로현(野老縣)으로, 미암면·학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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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야가 좁고 계곡이 많아, 그 형세가 실버들나무 같아서 가늘 세(細) 자에 버들 류(柳) 자를 써서 세류리(細柳里)라 했다. 세류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봉황리(鳳凰里), 세류정(細柳亭), 열사리(列沙里), 칠성리(七星里), 내동(內洞)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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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세류리 세류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세류리(細柳里) 선돌이 세워진 시기는 대략 1780년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영암군의 문화 유적』을 비롯한 기존 연구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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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성재리 성재 마을에 있는 전주 이씨 문중의 재실 겸 집회소. 영암군 서호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6㎞ 거리에 있는 성재리 성재 마을 앞의 낮은 산[해발 54m] 동쪽 산자락에 있다. 세취재(世翠齋)는 1919년 전주 이씨(全州李氏) 문중의 재실 겸 집회소로 쓰이기 위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1992년에 삼문, 1994년에 세취재를 중수하였다. 경역은 솟을 삼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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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에 있는 김예성·김기양·김재민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문. 광산 김씨 문중의 효자 송암(松巖) 김예성(金禮聖), 백헌(栢軒) 김기양(金箕陽), 죽곡(竹谷) 김재민(金在敏)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문이다. 이들은 생전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시묘살이를 하였다. 이들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광산 김씨 문중에서 효자문을 세우고 ‘세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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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소산리 소흘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소산리(蘇山里) 소흘 고인돌 떼는 3개 지역에 17기가 분포하고 있지만 나군은 현재 유실되어 없다. 가군 고인돌은 장천-태백 간 도로에서 소흘 마을로 약 300m 못 미쳐 도로 좌측으로 25m 지점의 독립된 숲속에 민묘(民墓)와 함께 4기가 있다. 나군은 장천-태백 간의 도로에서 우측으로 100m 떨어진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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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쌍풍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소호정(蘇湖亭)은 이천 서씨(利川徐氏) 문중의 정자이다. 이천 서씨의 신풍 마을 조성은 조선 후기로만 알려져 있고 자세한 내력은 전해 오지 않는다. 영암군 서호면 쌍풍리 신풍 마을 입구에 있다. 오른쪽에는 최근에 벽돌로 지은 마을 회관이 있고 바로 앞에는 차도가 있다. 소호정은 조선 선조 대부터 광해군 대에 활동했던 찰방(察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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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재철의 사우. 송암 정사(松菴 精舍)는 송암(松庵) 신재철(愼在哲)[1803~1873]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사우(祠宇)이다. 신재철은 강원 감사를 지낸 신희남(愼喜男)의 9세손으로 금곡(金谷) 송래희(宋來熙)에게서 수학하였으며, 설락재(說樂齋)라는 서당을 만들어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영암군 차원에서 송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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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거창 신씨 문중 사우. 송양사(松陽祠)는 1796년(정조 20)에 영암 지역 유림의 발의로 건립된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 사우(祠宇)이다. 송양사에는 2013년 현재 5위를 배향하고 있다. 거창 신씨 영암 입향조 신후경(愼後庚)의 아버지인 경제(景齊) 신기(愼幾)[?~1493]를 주벽(主壁)으로 하고, 신후경의 아들 산정(山亭) 신영수(愼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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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송양사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 송양사(松陽祠)는 덕진면 노송리에 있으며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 사우이다. 1796년(정조 20)에 신희남(愼喜男), 신천익(愼天翊), 신해익(愼海翊)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1826년(순조 26) 신기(愼幾)를 주벽으로 하고 신영수(愼榮壽)도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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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후기에 영암군 서시면(西始面) 지역이었던 송계리(松溪里), 여운천(如云川) 평장리(平章里), 보화동 남천동(南川洞), 이화정(梨花亭)과 서종면(西終面)의 신기(新基)를 통합할 때, 송계리의 송(松) 자와 평장리의 평(平) 자를 가져와 송평리(松平里)라 하였다. 조선 후기에 영암군 서시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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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송평리 평장 마을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송평리 평장 유물 산포지(松平里 平場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청동기 시대 유물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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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수래정(修來亭)은 천안 전씨(天安全氏) 문중의 정자이다. 천안 전씨는 전사민의 강진 유배로 처음 영암 지역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이후 그의 5세손인 전승문(全承文)이 1504년(연산군 10)에 이곳 영암으로 이주하면서 주로 엄길 마을을 중심으로 천안 전씨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후손 중에는 전광택[?~1819], 전광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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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승려. 법명은 수미(守眉), 법호는 묘각(妙覺)이다. 영암 출신으로 속성은 최씨(崔氏)이다. 가계와 정확한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13세에 월출산(月出山) 도갑사(道岬寺)에서 출가한 후 교학에 뜻을 두고 수학하다가 선종으로 전향하였으며, 세조(世祖) 대에 판선종사(判禪宗事)로서 불교계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였고, 왕사에 책봉되었다. 태조(太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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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산리(水山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유수동(流水洞)의 수(水) 자와 당산리(堂山里)의 산(山) 자에서 이름을 따 왔다. 유수동 마을은 마을 수원이 좋아서 어느 곳을 파도 물이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당산리는 마을 뒤에 있는 산의 당산나무에서 당산제를 지냈는데 매우 영검해 마을 이름을 당산(堂山)이라 하였다. 수산리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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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수산리 조감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수산리 조감 유물 산포지(水山里 早甘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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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는 조선 시대 누정. 수성사(壽星社)는 원래 60세 이상의 전직 관리와 학자들의 수양처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구현을 목적으로 하는 청유(淸遊)의 장소이었다. 수성사라는 액호(額號)는 1655년(효종 6) 향토 주민의 귀감이 되는 장소라 하여 조정으로부터 하사 받은 것이라 전해지나, 확실하지는 않다.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다. 영암 버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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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 율산 마을에 있는 남평 문씨 문중의 재실. 승유재(承裕齋)는 영암읍 농덕리 율산 마을에 있다. 영암 읍내에서 국도 13호선 춘양 교차로에서 예향로를 따라 1.7㎞ 가다가 우측 개신리[쌍정] 방향으로 간 뒤, 북쪽으로 600m 거리에 있는 율산 마을 앞길 동쪽에 있다. 승유재는 남평 문씨 분암(墳庵, 묘지 가까이 지은 재실)으로 1913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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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김선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시서 영당(市西 影堂)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시서(市西) 김선(金璇)[1568~1642]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김선은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한탄하며 통문을 돌리고 이이첨을 탄핵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관료로 진출하지 않은 채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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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시서 영당에 있는 조선 후기 시서 김선의 초상화. 「시서 영정(市西 影幀)」은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강정 마을 시서 영당에 있는 시서(市西) 김선(金璇)[1568~1642]의 초상화로 1626년(인조 4) 이응하(李應河)가 영암을 방문하였을 때 아들 김시호(金時晧)의 주문에 의해 제작되었다. 「시서 영정」은 원화를 그대로 모사해 놓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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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전라남도 영암군 북쪽에 위치한 면으로, 저지대에 간척지를 형성하고 있다. 시종면은 조선 시대에는 영암군의 북쪽 첫머리가 된다고 하여 북이시면(北二始面)이라 하였다. 1914년 나주군 종남면(終南面)의 25개 마을과 진도군 명산면(命山面)의 14개 마을을 합할 때, 북이시면의 시(始) 자와 종남면의 종(終) 자를 따서 시종면(始終面)이라 하였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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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서 발원하여 시종면에서 삼포강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시종천(始終川)은 하천이 소재한 영암군 시종면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시종면은 1914년 영암군 북이시면(北二始面), 종남면(終南面), 지도군 명산면(命山面)을 합하여 바뀐 이름이다. 시종천은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와 행정리 경계에 위치한 삼봉산[69m] 서쪽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1957년 축조한 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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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마을 중 신흥(新興)의 신(新) 자와 덕흥(德興)의 덕(德) 자를 따서 신덕리(新德里)라고 이름 붙였다. 용산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흥, 덕흥, 부귀동(富貴洞), 화암리(禾岩里)를 병합하여 곤이시면 신덕리로 개설되었다. 1932년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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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신북면은 조선 시대 말까지 영암군의 북쪽 끝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북이종면(北二終面)이라 하였으며, 수현(水峴) 등 65개의 마을을 관할하였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를 보면 영암군 북이종면에 159호, 656명(남자 327명, 여자 329명)의 주민이 살았다는 기록을 확인 할 수 있다. 나주군 비음면에는 275호 862명(남자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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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연리(新嚥里)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신사리(新沙里)의 신(新)자와 연소리(燕巢里)의 연(燕)자를 따서 신연리가 되었다. 신연리의 연소(燕巢) 마을은 본래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인데 마을 모양이 제비집 같다 하여 제비 연(燕), 집 소(巢)를 따서 연소라 하였다. 신연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군 종남면 지역이며, 1895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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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꼬막동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신연리(新燕里) 꼬막동 유물(遺物) 산포지(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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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신재철의 유허비. 송암(松菴) 신재철(愼在哲)[1803~1872]은 강원 감사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9세손으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문하에 종유(從遊)하였고, 만년에는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熙)[1791~1867]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장헌주(張憲周)·기우만(奇宇萬) 등과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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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는 저수지. 신촌 저수지의 명칭은 모밀항 남서쪽 500m 지점에 새로 형성된 동네인 신촌(新村) 마을에서 기원한다. 5천 분의 1 지형도에는 신촌 1호 저수지, 「영암군 새 주소 생활 안내도」에는 신림 저수지로 기록되어 있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삼호읍 용당리 1557번지에 건립하였다. 1967년 1월 1일에 착공하여, 1968년 12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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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에 있는, 1938년 신치운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신치운 불망비(申致雲 不忘碑)는 영암의 천도교 교구장을 역임하였던 신치운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38년에 신도들이 세운 것이다. 비문은 조상현(趙庠鉉)이 지었다. 신치운 불망비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 둔덕 마을 새마을 창고 옆에 있다. 신치운 불망비의 규모는 높이 127㎝, 너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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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신포리와 채지리에 걸쳐 있는 저수지. 신포 저수지의 저수지가 자리 잡은 신포리에서 기원한다. 신포리는 조선 시대에 곤일시면(昆一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병합하여 신포리를 개설하였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배들이 마을 북동쪽 500m 지점에 건립하였다. 1944년 1월 1일에 착공하여, 1945년 12월 31일에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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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포리는 과거 기동 마을 북쪽에 있는 배들이 마을까지 배가 드나들었던 작은 포구(浦口)가 있었다. 포구 주변에 새로운 마을이 생겨 신포리(新浦里)라 불렸다. 신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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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신포리 기동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해서 지내는 공동 제사. 신포리 당산제는 미암면 신포리 기동 마을에서 매년 마을 뒤편에 큰 당산나무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나무를 당씨 할매라고 부르고, 당산제를 당제라고 부른다.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날 당제를 모셨는데, 지금은 칠석(七夕)인 음력 7월 7일에 모신다. 신포리 당산제가 언제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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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학리(新鶴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당시 자연 마을 중 신항(新項)의 신(新) 자와 학림(鶴林)의 학(鶴) 자를 따서 신학리(新鶴里)라고 이름을 지었다. 신항 마을은 도포면 원항리 마을에 식수가 모자라 잔등 너머에 새 터를 잡아 마을을 만들었기 때문에 신항(新項)이라 하였다는 지명 유래가 내려오고 있다. 학림 마을은 마을 야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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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학리 우암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신학리 우암 유물 산포지(新鶴里 牛岩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구석기 때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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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학리 정동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공동 제사. 신학리 정동 정호제는 시종면 신학리 정동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작과 풍어를 비는 뜻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정호제는 매년 음력 1월 15일 새벽에 지낸다. 마을의 이름인 정동(井洞)은 우리말로는 샘골이라고 불렀고, 정호제는 우물제라고도 한다. 이런 이름과 관련해서 정동 마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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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된 마을 중 한정리(漢亭里)의 한(漢) 자와 신정리(新亭里)의 신(新) 자를 따서 신한리(新漢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신한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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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산호리에 있는 저수지. 신호정 저수지의 산호리 신호정(新湖亭) 마을에서 기원한다. 신호정 마을은 소등산 뒤에 있는 마을로 일제 강점기 때 간척 공사로 넓은 호수가 새로 생겨 신호정이라고 하였으나, 영산강 하구언 건설로 옥답으로 변하였다. 1580년 장흥 고씨가 서호면 성재리에서 처음 입향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산호리에 병합되었다. 한해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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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두억리 장수 마을에 있는, 군수 신홍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문화 유적 분포 지도』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이전 신홍균(申洪均)이 영암 군수(郡守)로 재임해 있을 때 장수 마을에 빈집이 많이 있는데도 세금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빈집에 부과된 세금이 마을 주민에게까지 연대 부담을 지우자 마을 주민들이 세금을 면해 줄 것을 청하는 편지를 군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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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흥리(新興里)는 새로 마든 마을이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신흥리의 신원 마을은 세원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 마을은 새로 생겼다 하여 새로울 신(新) 자와 으뜸 원(元) 자를 따서 신원(新元)이라 부른다. 화수 마을은 마을에 꽃피는 나무가 많아서 꽃 화(花) 자와 나무 수(樹) 자를 따서 화수(花樹)라 하였다. 신흥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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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있는, 1899년 영암 군수 심상호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심상호(沈相瑚)는 1898년(고종 35) 4월 영암 군수로 부임하였으며, 2년 뒤인 1900년에 면직되었다. 부임하던 동안 심상호는 부세(賦稅)와 방물(方物)을 지연시킨다는 이유로 중앙으로부터 계속적인 압박을 받았다. 그 결과 1900년에는 감봉 조처를 받기도 하였으며, 끝내 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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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 인곡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쌍계사(雙溪寺)는 영암군과 장흥군이 경계를 이루는 보림사 가지산(迦智山) 동북 면에 있었던 절이다. 쌍계사 터 입구에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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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에 있는 저수지. 쌍정 저수지의 명칭은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쌍정(雙井)에서 기원한다. 개신리 월비 북동쪽에 샘이 나란히 있어 쌍새암으로 칭한 동네가 위치한다. 쌍정은 밀양 박씨 종중 제각 아래에 있다. 오른쪽 샘은 식수로, 왼쪽 샘은 빨래 등 허드렛물로 사용한다. 쌍정 샘물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극심한 가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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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쌍풍리 신풍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쌍풍리(雙豊里) 신풍(新豊) 고인돌 떼는 영암군 서호면 쌍풍리 신풍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신풍 마을 입구 도로 좌측의 민가 옆 ‘산골정(産骨亭)’이라 새겨진 비문 바로 뒤에 1기가 있다. 나군은 영풍 마을에서 신풍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 우측으로 약 50m 떨어진 야산에 2기가 있다. 가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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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쌍풍리 영풍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쌍풍리(雙豊里) 영풍(永豊) 고인돌 떼는 영암군 서호면 쌍풍리 영풍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약 400m 거리를 두고 2기가 있다. 1호는 장천 초등학교에서 태백 간 도로를 따라 약 100m 가면 도로 우측의 논 가운데에 있다. 2호는 1호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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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효자 형제가 살았다 하여 쌍효리(雙孝里)라 하였다. 쌍효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모효리(慕孝里), 석교리(石橋里)를 병합하여 쌍효리라 하고 금정면에 편입하였다. 석교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간 마을이다. 계곡 사이에 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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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은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경리의 사당. 아산사(雅山祠)는 공조 참판을 지낸 오경리(吳慶履)[1813~1893]를 배향하는 사당으로 영정과 신위를 모시고 있다. 오경리는 자는 중화(仲和), 호는 소포(素圃), 본향은 해주(海州)이다. 1849년(헌종 1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承政院假注書)가 되었고, 정자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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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아천리(鴉川里)라는 명칭은 아천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아천 마을은 백룡산(白龍山) 동남쪽 아래 제일 큰 마을로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었다. 마을을 관통하는 하천이 운치 있고 아름다워서 조선 시대에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후손이 살면서 하천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아천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아천 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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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판석 부조 약사불 좌상. 아천리 석조 여래 좌상(鴉川里 石造 如來 坐像)은 불좌상과 대좌 등이 한데 새겨져 판석 형태로 남아 있는 상이다. 불상의 형식과 대좌(臺座)의 형태로 보아 고려 중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아천리 석조 여래 좌상은 작은 판석에 새겨진 불좌상이다. 육계(肉髻)[부처의 정수리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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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정자. 아천정은 함양 박씨 아천공(鵝川公) 박응원(朴應元)[1552~?]의 정자이다. 박응원은 성균관 생원을 지냈으며 특히 효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주암 마을 안길 한쪽 편에 이좌건향(離坐乾向)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을 초입에 있어 찾기 쉽다. 아천정이 세워진 시기는 아천공이 생존하던 16세기 후반이었으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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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노리(安老里)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없다. 다만 백제 때 아실 또는 안로, 안로촌이라 하였으며, 고려 시대에 안로현(安老縣)으로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주변의 마을을 병합하면서 안노리라 했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의 마을 명칭 중에서 안노(安老)를 확인할 수 있다. 안노리는 백제 때 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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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감산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감산 마을은 마을의 재앙을 막는 한편, 자손 발복(子孫發福)을 위해 안노리(安老里) 감산 선돌을 세웠다. 안노리 감산 선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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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모정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안노리(安老里) 모정 선돌에는 선돌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도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안노리 모정 선돌은 마을 입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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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남평 문씨 문중의 재실. 애송재(愛松齋)는 영암읍 장암리 무덕정 마을에 있는 남평 문씨(南平文氏) 문중의 재실로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가 1962년에 중건되었다. 영암군 소재지에서 지방도 819호선 여운재로를 따라 2.5㎞ 가다가 대신리에서 장암리 방향으로 1.2㎞ 가면 만나는 영암읍 장암정 마을 가운데에 자리한다. 애송재의 건립 년대는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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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쪽의 시내가 합하여진 마을이라 하여 양계(兩溪)라 불리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양계리(兩溪里)라 하였다. 양계리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백우리(白羽里), 금계리(金溪里), 서동(西洞)와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의 남산점(南山店), 대갑리(大甲里), 나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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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양계리 금동 마을에 있는 고대 고분군. 양계리 금동 고분군(兩溪里 金洞 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양계리 금동 마을에 있다. 금동 마을 북쪽에 있는 황씨 문중 산에 5기의 고분이 있다. 1호분은 1985년 국립 광주 박물관에서 수습 조사하였는데, 황씨 문중의 묘역 공사를 하면서 파괴된 고분으로 분구(墳丘)[봉분] 내에서 옹관 유구 3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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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을묘왜란 때 의병장 양달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양달사(梁達泗)[1518~1555]의 자는 도원(道源)이고 호는 남암(南岩)이며,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감역(監役) 양흥효(梁興孝)의 증손이며, 주부(主簿) 양승조(梁承祖)의 아들이다. 삼종숙(三從叔)인 양팽손(梁彭孫)의 문인이다. 제주 주부(濟州主簿)를 지낸 양승조와 청주 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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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속하는 법정리. 마을 지명은 입향조와 관련이 있다. 강진군 태동에서 전승무(全丞武), 전승문(全丞文) 형제가 엄길에 기거한 이후, 후손들이 문과와 무과에 다수 급제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입향조를 존경한다는 의미에서 존경할 엄(嚴)과 전승무·전승문 형제의 아호인 길촌(吉村)·길림(吉林)의 길(吉)를 따서 엄길(嚴吉)이라 하였다. 하지만 ‘엄길’에서 존경할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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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에 있는 야산. 여석산[61m]은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쟁패의 현장으로 왕건 군사들이 칼을 가는 숫돌을 캐냈기 때문에 ‘숫돌산’ 또는 ‘싯돌메’, ‘쉿돌메’라 불렀으며, 한자 표기로 여석산(礪石山)이 되었다고 한다. 정상 부근에 있는 지소(池沼)는 돌을 파낸 자리에 물이 고여 생긴 것이라 하며, 실제 못 주변 바위 표면에 당시 군사들이 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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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미타종 소속의 사찰. 여운사는 영암군 덕진면에서 금정면으로 넘어가는 해발 150m의 여운재에 위치해 있다. 국도 819호선을 따라 가다가 금정면으로 넘어가기 직전 도로 좌측에 여운사가 보인다. 여운사는 1930년에 창건된 동화사(東華寺)에서 시작되었다고 구전되지만, 확인할 만한 문헌 자료는 없다. 그 후 1960년 한석동이 영불사(永佛寺)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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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여운사에 있는 석조 미륵불. 여운사(如雲寺)는 극락전을 주 전각으로 하는 미타종 소속의 작은 사찰이다. 미륵당(彌勒堂) 안에 ‘할아버지 상’으로 불리는 미륵불이 있고, 미륵당 밖에 ‘할머니 상’으로 불리는 작은 규모의 석상이 하나 더 있다. 미륵당 안에 있는 미륵불[할아버지 상]은 두상(頭像)만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뿐 마모가 심한 편이며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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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에 있는 하동 정씨 문중의 재실. 여재각(如在閣)은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 산소 마을에 있다. 시종 터미널에서 시종로를 따라 약 500m 가면 시종면 만수리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마한 문화로를 따라 약 3.2㎞를 따라 가면 영호 교회 앞에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다시 왼쪽으로 산소마향동길을 따라 가다 보면 산소 마을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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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 본래 영암군 군종면[현 덕진면]에 있던 영보역을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역몰, 역촌, 영보역이라고 부르다가, 1914년 시행된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역리라 하였다. 조선 후기에 영암군 군시면 지역으로, 1914년 시행된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영암면 역리가 되었다. 1979년 4월 7일에 영암면이 영암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영암면 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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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차내리(次乃里), 보촌리(寶村里), 연산리(連山里), 양계리(兩溪里), 다련리(多蓮里), 다보리(多寶里)를 병합하였고, 연산리의 연(連) 자와 다보리의 보(寶) 자를 따서 연보리(連寶里)라 했다. 연보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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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연보리 다보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영암군 금정면 연보리 다보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평안을 위해 당산나무에 올리는 제사이다. 매년 음력 2월 1일과 백중(百中)인 음력 7월 15일에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신은 마을 입구에 무성한 대나무 숲 사이에 동각과 함께 있는 당산나무이다. 당산나무는 영암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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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연소리에 있는 저수지. 연소 저수지의 명칭은 금정면 연소리(燕巢里)에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정면 연소리를 개설하면서, 지형이 제비집 형국이라고 하여 제비 연(燕) 자와 집 소(巢) 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연소 마을 북서쪽 500m 지점인 뱅뱅이골과 큰노실골 물이 합하는 곳에 건립하였다.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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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연소(燕巢) 마을의 이름을 따서 연소리라 했다. 연소 마을은 지형이 제비집 형국을 하고 있어 제비 연(燕) 자에 집 소(巢) 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다. 연소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금오동(金烏洞), 연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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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최덕지의 영정을 모셔놓은 영당. 연촌 영당(煙村 影堂)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영정 1본(本)과 유지 초본(油紙草本)을 모셔놓은 건물이다. 최덕지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한 후 남원 부사(南原府使) 등 전라도 여러 곳의 수령을 지냈고, 문종이 즉위한 14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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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열녀와 열부. 조선 시대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국가는 이들 덕목의 실천자들인 충신·효자·열녀들에게 관작을 제수하거나 정려(旌閭)로서 칭송토록 배려하였다. 영암 지역에는 많은 열녀와 열부들이 기록과 정려를 통하여 전하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충·효·열의 기념비적 유적들이 남아 있은데, 정려 외에도 효열비나 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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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망동리(望洞里), 영흥리(永興里), 장등리(長嶝里)를 병합하면서 영흥의 영(永) 자와 장등의 등(嶝) 자를 따서 영등리(永嶝里)가 되었다. 영흥리는 마을 근처에 운중반월형(雲中半月形)의 명당이 있어 이곳에 살면 영원히 흥할 것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장등리는 덕진면 영보리에서 영정(永亭)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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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등리 장등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영등리(永嶝里) 장등(長嶝) 고인돌 떼는 영암군 덕진면 영등리 장등 마을 3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장등 마을 최북단에 거주하는 허연의 축사 동쪽 야산에 6기가 있다. 나군은 장등 마을 북쪽의 좁은 길을 따라 송내 마을 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길 좌측의 밭 가운데에 1기가 있다. 다군은 가군 가까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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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있는 여산 송씨 문중의 재각. 영모재(永慕齋)는 여산 송씨(礪山宋氏) 문중에서 세운 재각이다. 여산 송씨는 고려 시대에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郡)에 봉해진 송유익(宋惟翊)이 시조이다. 본래 여산 송씨는 경기도 파주에서 세거하다가 전라북도 옥구로 이거하였으며, 그 뒤 송문형(宋文亨)이 영암으로 이사하였다. 여산 송씨의 영암 입향조인 송문형은 시조인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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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장선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의 재각 영모재(永慕齋)는 전라남도 영암군 장선리에 있다. 덕진면사무소에서 예향로[13번 국도]를 타고 나주 방면으로 약 2㎞ 가면 청림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의 서리동로를 따라 약 2㎞ 가면 정족 마을이 나온다. 영모재는 정족 마을의 입구에 있으며, 뒤로는 창녕 조씨 문중의 선산이 있다. 1921년 창녕 조씨(昌寧曺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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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보리(永保里)는 청암도(靑巖道)[조선 시대에 전라도 나주의 청암역(靑巖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 찰방이 딸린 영보역(永保驛)이 있어서 영보역, 역촌(驛村), 역몰, 영보촌이라고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냉천(冷泉), 관곡(寬谷), 내동(內洞), 서당(書堂), 은행정(銀杏亭)을 병합하면서 영보리라 하였다. 영보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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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추봉에서 발원하여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나주시·함평군·무안군을 거쳐 영암군과 목포시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강. 영산강은 담양군 용면 용추봉(龍湫峯)[560m] 가마골에서 영암군 삼호읍 나불리와 목포시 옥암동을 잇는 하굿둑까지 흐르는 국가 하천이다. 하천 연장은 111.68㎞, 유로 연장은 129.50㎞이며, 유역 면적은 3,467.83㎢이다. 한편 영산강 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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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목포시·무안군에 둘러싸여 있는 인공 담수호. 영산호는 영산강 종합 개발 계획 제2단계 사업으로 전라남도 목포시 삼향동과 영암군 삼호면 나불리 사이에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담수호이다. 본래 영산강 유역은 홍수 위험이 높고, 밀물 때는 바닷물이 나주시까지 올라가서 염해의 피해를 겪었던 지역이었다. 영산호 건설로 자연 재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영산강 하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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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별암리 사이에 있는 방조제. 영암 금호 방조제가 지나는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리 금호도(錦湖島)에서 이름을 따 왔다.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 산17번지, 민가도에 영암·금호 방조제 준공 기념탑이 조성되어 있다. 금호도는 목화를 생산하여 돈을 묶는다는 뜻으로 속금도라 칭했다는 설이 있으나, ‘만 사이에 있는 섬’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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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에 있는 승려 도선과 수미의 행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의 비. 영암 도갑사 도선 국사·수미 선사비(靈巖 道岬寺 道詵 國師·守眉 禪師碑)는 1653년에 전라남도 도갑사에 세워졌다. 통일 신라 때 승려인 도선 국사와 조선 시대 승려 수미 왕사의 행적과 더불어 비의 건립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귀부의 사선문(斜線紋)과 비신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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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에 있는 조선 전기 동자형 문수상과 보현상. 도갑사(道岬寺) 해탈문의 좌우 칸 뒤쪽에 영암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 동자상(靈巖 道岬寺 木造文殊·普賢童子像)이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 해탈문은 1473년(성종 4)에 건립되었으며 영암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 동자상 역시 그때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동자상의 전체 높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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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 미륵전에 있는 고려 전기 석조 여래 좌상. 영암 도갑사 석조 여래 좌상(靈巖 道岬寺 石造如來坐像)이 있는 도갑사(道岬寺) 미륵전(彌勒殿)은 주 법당에서 숲 쪽으로 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용화문(龍華門)을 거쳐 들어가며 용수 폭포(龍水瀑布)가 돌아 흐르고 있는 곳이다. 영암 도갑사 석조 여래 좌상은 신체가 사실적인 표현보다 추상적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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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도갑사 오층 석탑(道岬寺 五層 石塔)은 도갑사 대웅보전 앞에 위치한 석탑으로 이중 기단 위에 5층의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석탑이나 석등의 지붕돌], 노반(露盤)[탑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과 보주(寶珠)[탑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를 올렸으며, 안정된 조형미가 돋보이는 고려 초기 석탑의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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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부농 가옥. 영암 삼성당 고택이 처음 터를 잡은 시기는 15세기로 상당히 오래되었으나 현재의 모습으로 조성된 시기는 19세기다. 건물 배치나 구조[초가] 등이 당시에 건립된 영암 지역의 다른 가옥과 다른 점이 많아 주거사적 측면에서 주목이 된다.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다. 영보 마을 후면의 약간 경사가 진 곳에 자리하며 인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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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성풍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 영암 성풍사지 오층 석탑(靈巖 聖風寺址 五層石塔)은 고려 시대 석탑으로 영암읍 용흥리 성풍사 터에 남아 있다. 오랫동안 무너져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6년에 복원하면서 ‘통화 27년 기유(統和二十七年己酉)’에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탑지(塔誌)와 청자 사리합을 발견하였다. 탑지의 내용을 통해 1009년(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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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철암산 바위에 새겨져 있는 고려 후기 매향 명문.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靈巖 奄吉里 岩刻 埋香銘)은 엄길리 철암산(鐵岩山)[120m] 7부 능선에 있는 속칭 글자 바위의 한쪽 작은 틈새 안쪽에 새겨져 있다. 주변 서호면 청용리, 장천리 일대의 지석묘를 발굴 조사하던 중 현지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총 18행 129자가 음각(陰刻)되어 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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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용암사 터에 있는 고려 초기의 삼층 석탑. 영암 월출산 용암사지 삼층 석탑(靈巖 月出山 龍巖寺址 三層 石塔)은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흩어져 있던 부재들이 수습되어 1996년에 복원되었다. 내부 감실에서 사리기와 금동 보살 좌상 등이 출토되었으며, 백제계 석탑의 요소를 잘 보여 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98년에 보물 제1283호로 지정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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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영암 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의 역대 영암 군수 공적비. 조선 시대 지방관은 이임(移任)하면 선정비를 세우는 게 관례로 되어 있었다. 선정비, 불망비, 영세불망비 등의 이름으로 세워졌는데, 재료는 철비나 석비, 형태는 호패형이거나 비갓을 갖추는 경우도 있었다. 영암 향교 공적비군(靈巖 鄕校 功績碑群)은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에 이르기까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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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영암 향교에 있는 조선 시대의 하마비. 하마비(下馬碑)는 궁궐이나 능원, 성균관, 향교 등 국가의 존엄을 상징하는 곳에서 예를 갖추기 위해 말에서 내려서 지나가도록 하는 규정에 따라 건립되었다. 향교(鄕校)는 공자와 동국 18현 등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므로 하마비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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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조선 시대 재실과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고반재(考槃齋)는 밀양 김씨(密陽金氏)의 재실로서 해명재(海明齋) 또는 강명재(講明齋)라고도 한다. 1628년에 김홍발(金弘發)[1582~1643]이 노동 마을에 정착한 후 155년이 지난 1783년에 김치상(金致商)[1738~1797]이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3년에 중수된 건물이다. 고반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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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금산 마을에 위치한 삼국 시대 고분군. 영암 금강리 금산 고분군(靈巖 錦江里 錦山 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금산 마을에 있다. 금산 마을 뒤쪽의 농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금성산의 중봉(中峰)에 속하는 독립 구릉의 정상부에 2기의 고분이 있다. 독립 구릉은 북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남쪽은 완만하게 내려오는데, 1호분은 구릉의 정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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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영암·나주·함평·무안·해남 일대의 영산강 하류 지역에는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묘제(墓制)인 대형 독무덤[대형 옹관 고분(大形甕棺古墳)] 330여 기가 집중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서 영암에는 시종을 중심으로 한 도포면·신북면·영암읍 등지에 140여 기, 학산면·미암면·서호면 등지에 30여 기 등, 16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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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금지리 본촌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영암 금지리 본촌 고분군(靈巖 錦池里 本村 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금지리 본촌 마을에 있다. 1호분은 마을의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도로변 서쪽에 있으며 봉분의 남쪽과 서쪽에는 민묘(民墓)가 있다. 2호분은 1호분에서 남쪽으로 150m 떨어져 도로변 동쪽에 인접해 있다. 3호분은 2호분의 서남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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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남산리 마봉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영암 남산리 마봉 고분(靈巖 南山里 馬峰 古墳)은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남산리 마봉 마을 181번지에 있다. 미암면의 남쪽에 있는 월출산 산줄기의 북쪽에 위치한다. 산줄기는 해발 50m 내외까지는 급경사를 이루며 내려오다가 그 이하로는 완만하게 구릉을 이루며 내려오고 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내려오는 구릉 말단의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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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영암(靈巖) 내동리(內洞里) 쌍무덤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산579-1에 위치한다. 유적은 영산강 하류에 있는 내동리 서쪽의 구릉 중간부에 있다. 쌍무덤은 성틀봉에서 동북 방향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며 시종면 소재지에서 와우리로 가는 삼거리 좌측에 있다. 영암 내동리 쌍무덤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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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있는 녹동 서원과 관련된 목판과 고문서. 녹동 서원(鹿洞書院) 소장 목판 및 고문서류는 녹동 서원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1868년 서원 훼철 이후 목판각(木板閣)과 합경재(合敬齋)로 이관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녹동 서원은 영압읍 교동리에 위치해 있고, 목판각과 합경재는 덕진면 영보리에 위치하고 있다. 녹동 서원은 1630년(인조 8)에 존양사(存養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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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 망월사 약사전에 있는 고려 후기 추정의 약사불. 망월사(望月寺)는 영암군 영암읍과 영암군 신북면 사이의 망월산 혹은 호산(虎山)으로 불리는 야산에 있다. 약사전(藥師殿)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영암 망월사 석불 좌상(靈巖 望月寺 石佛坐像)은 왼손에 약함(藥函)을 들고 있는데, 1920년대에 근처 망월산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한다. 하나의 돌로서 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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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상류 가옥. 영암 문창집 가옥(靈巖 文昶集 家屋)은 1613년(광해군 5)에 애송당(愛松堂) 문익현이 건립하여 전해 내려오는 고가(古家)로 2013년 현재 14대째 대물림되고 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영암 지방의 전통 가옥이다. 영암 문창집 가옥은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149호로 지정되었다. 영암군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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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사. 영암 부춘정(靈巖 富春亭)은 청암 강한종(姜漢宗)[1549~1622]이 교류 및 학문 연마를 위해 지은 정사(精舍)이다. 강한종은 무과에 급제한 후 평양 판관 겸 병마절제사를 지내고 임진왜란에도 참전하였다. 광해군 때에 난정에 상소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귀향하여 지금의 위치에 부춘정을 마련하고 학문의 장으로 삼았다.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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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박형준·박효남·박호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 영암 삼충각(靈巖 三忠閣)은 임진왜란 때 전사한 박형준(朴亨俊)[1548~1592]과 그의 두 아들인 박효남(朴孝男)[1568~1592], 박호남(朴好南)[?~1592] 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박형준은 예안 현감으로 재임 시 향곡(餉穀)을 거두지 못해 영암으로 유배되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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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뒷모실 마을에 있는 고대 고분군. 영암군에는 40개 군 150기에 달하는 독무덤[甕棺墓]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시종면을 중심으로 25개 군 100여 기가 모여 있다. 특히 내동리, 신연리, 옥야리에 가장 밀집해 있으며 영암 신연리 고분군(靈巖 新燕里 古墳群)은 15기로 추정하여 각 고분마다 고유 번호를 붙였다.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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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서엄길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靈巖 奄吉里 支石墓群)은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321번지 일원에 있다. 서호면 소재지인 장천리에서 영암으로 가는 도로에서 서엄길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좌측 밭 가운데에 덮개돌 17기가 군집되어 있다.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은 2007년 2월 2일부터 동년 3월 2일까지,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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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위치한 삼국 시대 고분군. 영암 옥야리 고분군(靈巖 沃野里 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있다. 시종면 소재지인 내동리에서 서북쪽으로 약 2.9㎞쯤 가면 옥야리 상촌 마을이 나오는데, 상촌 마을 북편에 동-서로 뻗어 있는 구릉이 마을을 감싸 돌고 있다. 영암 옥야리 고분군은 남해포(南海浦)로 가는 구(舊) 도로 양편에 28기가 분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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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노적봉에 있는 고려 시대 마애 여래 좌상. 영암 월곡리 마애 여래 좌상(靈巖 月谷里 磨崖如來坐像)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호동 마을 뒤 노적봉의 높이 30m 바위에 새겨져 있다. 호동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약 3㎞ 정도 올라간 곳이다. 영암 월곡리 마애 여래 좌상은 평면적이지만 영암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靈巖 月出山 磨崖如來坐像)의 영향을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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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상류 가옥. 영암 월곡리 전씨 고택(靈巖 月谷里 全氏 古宅)은 충청남도 당진 현감을 지낸 박정택이 지은 집으로 2013년 현재 안채만 남아 있다. 안채는 ‘ㅡ자’ 형으로 조선 후기 영암 지역 상류 주택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영암 월곡리 전씨 고택은 1978년 9월 22일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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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중부에 있는 읍. 영암군의 2읍 9개면에 속한 읍으로 영암군청과 주요 행정 기관이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월출산 국립 공원이 자리하고 있고 전라남도 강진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인구는 삼호읍 다음으로 많다. 영암(靈巖)은 월출산에 있는 바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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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남풍리·동무리·역리에 걸쳐 있는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읍성 터. 영암읍성이 있는 영암읍 일대는 삼국 시대부터 군현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나군[月奈郡]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靈巖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성종 때는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하였으며, 1018년(현종 9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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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사. 영암 이우당(靈巖 二友堂)은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의 화합과 학문 연마를 위해 지어진 정사(精舍)이다. ‘이우당’이란 당호는 충절의 상징인 대나무와 청렴결백을 뜻하는 연꽃 즉, 죽(竹)과 연(蓮)’의 이우(二友)를 뜻한다. 명종 시대에 명신이며 문필가인 신희남(愼喜男)[1517~1591]은 이곳에서 이율곡, 김인후 등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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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장동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방대형 고분. 영암군에는 40개 군, 150기에 달하는 독무덤[甕棺墓]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시종면을 중심으로 25개 군, 100여 기가 모여 있다. 특히 내동리·신연리·옥야리에 가장 밀집해 있다. 영암 옥야리 방대형 고분(靈巖 沃野里 方臺形 古墳)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장동 마을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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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천안 전씨 문중 사우. 영암 장동사(靈巖 長洞祠)는 천안 전씨(天安全氏)의 문중 사우(祠宇)로, 전몽성(全夢星)[1561~1597]과 아우인 전몽진(全夢辰)[1565~1597], 전몽태(全夢台)[1571~?]를 배향하고 있다. 영암 장동사는 1987년 6월 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전몽성은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 참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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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영암 장천리 선사 주거지(靈巖 長川里 先史 住居址)는 1984년 고인돌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제보로 확인되어,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주거지 11기와 고상(高床) 주거지[땅 위로 세운 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다.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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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당. 영암 집영재(靈岩 集英齋)는 조선 후기 인근의 세 성씨 문중이 연합하여 세운 서당이다. 당시 참여한 문중은 해주 오씨(海州吳氏), 제주 양씨(濟州梁氏), 순천 김씨(順天金氏)이었다. 영암 지역에서는 단독으로 서당을 세운 사례로는 장흥의 위씨 문중이 세운 장천재(長川齋), 화순의 양씨 문중이 세운 삼지재(三芝齋)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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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에 있는 조선 전기 매향비. 영암 채지리 매향비(靈巖 採芝里 埋香碑)는 자연석에 음각된 금석문 자료로서 1992년에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거주하는 최금섭의 제보로 알려졌다. 자연석을 다듬지 않은 채 글자를 새겨 넣어서 글자 형태가 일정하지 않고 내용을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이다. 매향 기록은 비의 전면에만 새겨져 있는데 비문의 내용은 대체로 매향 의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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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서 발원하여 시종면을 거쳐 서호면에서 영산강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영암천(靈巖川)은 군명인 영암(靈岩)에서 비롯되었으며, 옛날에는 덕진천(德津川)이라 하였다. 『여지고(輿地考)』[영암]에 “덕진포(德津浦)는 북쪽 5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해동여지도(海東輿地圖)』 군현 지도 중 「영암군 지도」에 덕진교(德津橋)가 보이며, 『대동여지도(大東輿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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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면 용당리 축성암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나반존자상. 축성암(祝聖庵)은 1927년경 목포항을 바라보는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고 1990년대 초 삼호 조선소 조성 단지로 편입되면서 1994년에 남쪽으로 1.5㎞ 떨어진 현재의 장소로 이전되었다. 영암 축성암 나반존자상(靈巖 祝聖庵 木造 那畔尊者像)은 한지에 묵서한 발원문[가로 118㎝×세로 26㎝]에 따라 17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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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입석 마을에 있는 고대 고분. 영암(靈巖) 태간리(泰澗里) 자라봉 고분은 호남 지방에 분포하는 전형적인 왜식(倭式) 고분 양식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쪽 반은 거의 사각형을 이루고 뒤쪽 반은 둥근 모양을 이룬 무덤] 중에서도 만든 시기가 가장 빠르다고 보고된 고분이다. 최근의 발굴 조사 결과 6세기 초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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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불상. 영암 학계리 석불 입상(靈巖 鶴溪里 石佛立像)은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로 들어오는 광암 마을 입구에 있다. 마을의 안녕과 기자 신앙(祈子信仰)[아들이 없는 집에서 아들 낳기를 비는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는 상으로 조선 시대의 불상에 대한 세속적 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영암 학계리 석불 입상은 머리 정상부를 솟아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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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는 유교 성현의 봉사와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설치한 조선 시대의 교육 기관. 영암 향교(靈巖 鄕校)는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에 있다. 영암 문화원에서 영암군청 방향으로 20m 정도 가면 영암 향교가 보인다. 영암 향교는 조선 시대 현유(賢儒)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고, 영암 지역 사람들의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설치한 지방 교육 기관이다.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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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상류 가옥. 영암 현종식 가옥(靈巖 玄宗植 家屋)은 근대기 호남 지역의 최대 부호였던 현준호[1889~1950]의 부친 현기봉(玄基奉)이 지었다. 현준호는 몇몇 지역 유지와 함께 1920년에 순수 민족 자본으로 호남 은행을 설립하였고, 그의 부친도 목포 창고 금융 회사를 설립한 전라남도의 대표적 기업가였다.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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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미암면,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마산면·산이면 일대에 조성된 인공 호수. 영암호(靈巖湖)는 영산강 유역 종합 개발 제3 단계 사업의 목적인 대규모 농경지와 수자원 확보를 위해 건립하였다. 영암호는 1985년에 착공하여 1993년 준공된 담수호(淡水湖)이다.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 옛 황도(黃島)에서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 민가도(閔哥島)까지 축조한 영암호 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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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호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영평리(永平里)의 영(永) 자와 회호정(回湖亭)의 호(湖) 자를 따서 영호리(永湖里)라고 했다. 영평 마을은 운월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영원히 풍요롭고 평안하라는 뜻으로 길 영(永) 자와 평안할 평(平) 자를 써서 영평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호정 마을은 어느 도사의 말을 믿고 바다에 둑을 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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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 이제현과 조선 전기의 무신 이인걸을 모신 사우. 영호사(靈湖祠)는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과 이제현의 11세손인 월재(月齋) 이인걸(李仁傑)[1566~1593]을 배향한 사우(祠宇)이다. 이제현은 고려 말에 성리학을 들여와 발전시켰으며 예문 춘추관 등의 관직을 지냈다. 이인걸은 임진왜란 때 권율의 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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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삼포리에 있는 저수지. 영호정 저수지의 명칭은 1789년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곤일종면(昆一終面) 영호정(永湖亭)에서 기원하였다. 영호정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삼포리(三浦里)에 병합되었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삼포리 영호정 마을 남쪽에 건립하였다. 1943년 1월 1일에 착공하여, 1945년 12월 31일에 준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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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은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경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오경리(吳慶履)[1813~1893]의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중화(仲和), 호는 소포(素圃)이다. 아버지는 이조 참판 오재익(吳在翼)이며,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로 박정채(朴挺采)의 딸이다. 오경리는 1849년(헌종 15)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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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야리(沃野里)는 마을에서 기와를 구웠기 때문에 왯골, 외얏골, 오야촌, 오야, 옥야, 효동이라고 불렸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옥야리라고 명명하였다. 옥야리는 조선 시대에 나주군 종남면(終南面)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종남면 신산리(新山里), 서촌리(西村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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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옥야리(沃野里) 남해포(南海浦) 고인돌 떼는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1005번지 일대로, 마을 남쪽에 형성된 세장한 구릉 정상에 분포하고 있었다. 지금의 남해신사(南海神祠) 북쪽 담장 밖의 구릉 정상부에 해당한다. 옥야리 남해포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지방 기념물 제97호인 남해신사 터 발굴 과정에서 발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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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군. 옥야리 남해포 유물 산포지군(沃野里 南海浦 遺物 散布地群)은 두 곳의 유물 산포지군을 포함하고 있다. 남해포 유물 산포지군은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라 함은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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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신산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옥야리 신산 고분군(沃野里 新山 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신산 마을에 위치한다. 신산 마을 남서쪽의 신산 저수지 남쪽으로 낮은 구릉이 남해포 방향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S자 형태로 뻗어 있다. 고분군은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 동서로 길게 5기가 분포한다. 옥야리 신산 고분군은 1985년 9월 국립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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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와우리(臥牛里)는 지형이 누운 소 모양이라 하여 누리 또는 와우(臥牛)라고 불렀다. 와우리 와우 마을은 앞산의 생김새가 마치 소가 누워 되새김을 하고 있는 모양이라 와우리(臥牛里)라 부르고 있다. 와우 마을에서 안산 잔등을 넘어가면 소의 아래라 하여 소아래 마을이라고도 부르는 우정(牛井) 마을이 있다. 와우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북이시면(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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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와우리 우정 마을에 있는 고대 고분군. 와우리 우정 고분군(臥牛里 牛井 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와우리 우정 마을 산32 일대에 있다. 우정 마을의 남쪽과 남동쪽에 있는 구릉 상에 두 개 군(群)을 이루고 있다. 1986년 국립 광주 박물관에 의해 일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고분군은 가군에 6기, 나군에 5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이 중 가군의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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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와우리 화정동 마을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산포지. 와우리(臥牛里) 화정동 유물(遺物) 산포지(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는 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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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화산리(花山里), 분수리(汾水里), 신기리(新基里), 양와리(羊臥里), 강변리(姜邊里), 운동리(雲洞里), 기동(基洞)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양와리의 와(臥) 자와 운동리의 운(雲) 자를 따서 와운리(臥雲里)라 했다.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의 원정면에서 양와, 기동 등의 마을 기록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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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구림 마을에 있는 왕인 박사를 기념하는 현대 유적지 왕인 박사 유적지(王仁 博士 遺蹟址)는 구림 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왕인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설화에 바탕을 두고 성기동 유적지 내외에 여러 가지 시설물을 새롭게 만들었다. 왕인 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과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 오는 성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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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원용당(元龍塘) 마을의 이름을 따서 용당리(龍塘里)라 했다. 원용당 마을 동쪽에 구태 못[池]이 있어 사철 마르지 않아 주변 농토의 농업용수로 이용되었다. 이 못에 용(龍)이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용당(龍塘)이라 부르고, 주변 마을 중 중심이 되는 마을이라 하여 원용당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에 곤일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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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에 있는 저수지. 용산 저수지의 명칭은 장산리에 있는 용계동(龍鷄洞) 마을과 산장산(山長山) 마을에 딴 것이다. 용계동 마을은 용산 저수지 남동쪽, 무네미 동남쪽으로 백룡산 밑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산장산 마을은 용산 저수지 남서쪽에 있다.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1996년에 준공되었다. 제당 형식은 흙댐이며, 홍수 조절 구조는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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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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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용산리 용산 고분군(龍山里 龍山 古墳群)은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용산 마을 당산나무 주변에 있다. 용산 마을 읍과 면의 나무로 지정된 당산나무 바로 앞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구체적인 유적의 성격, 즉 고분의 시대 및 구조는 확인되지 않는다. 타날문(打捺文)이 시문된 회청색 경질 토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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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용산리 원용산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조개더미. 용산리(龍山里) 원용산(元龍山) 조개더미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퇴적 단면상에 드러난 패각(貝殼)[조개껍데기]들과 삼국 시대 토기 조각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조개더미는 고고학적으로 자연 유물 산포지라 하며, 이는 지표 또는 퇴적된 단면상에 노출된 패각층과 유물들을 통해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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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산리(龍山里)는 용처럼 생긴 산이 있어 이름이 유래하였다. 용산리 원용산 마을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여 원용산(元龍山)이라 하였다. 용의 머리를 ‘암태고랑’이라 하여 암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용산리는 본래 북일시면(北一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우, 용동, 기동, 당산, 치등, 신기촌 일부를 병합하여 용산리를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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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주변의 백용산, 오봉산이 용의 형국과 비슷하다 하여 용산(龍山)이라 하였다. 용산리는 본래 영암군 원정면(元井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4월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흥리(新興里), 서당리(書堂里), 용계리(龍溪里), 기동(基洞) 마을 일부와 나주군 금마면(金磨面)의 서천리(西川里)를 병합하여 용산리(龍山里)라 하여, 금정면에 편입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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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용지리(龍池里)의 용(龍) 자와 복산리(福山里)의 산(山) 자를 따서 용산리(龍山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용산리는 조선 시대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용지리, 복산리, 구산리(龜山里), 신소정리(新沼亭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곤이시면 용산리로 개설되었다. 1932년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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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를 흘러 학산천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용산천(龍山川)은 하천이 흐르는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곤이시면(昆二始面) 오소(吾沼里), 용지(龍池里), 복산(福山里), 구산(龜山里), 신소정리(新沼亭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용지리의 용과 복산리의 산을 따서 용산리(龍山里)라 했다. 용산천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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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되었던 천해(泉海) 마을 남쪽에 있던 깊은 소(沼)에서 용(龍)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소리(龍沼里)라 하였다. 용소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지소(紙所), 용계(龍溪), 신안정(新安亭), 천해(泉海), 도림정(桃林亭)을 병합하여 용소리로 개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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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 지소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용소리(龍沼里) 지소(芝所)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용소리 지소 마을에 있다. 마을 최남단에 위치한 차명철의 집 안과 주변에 4기가 있다. 용소리 지소 고인돌 떼는 집 안에 2기, 대문 앞에 1기, 담벽에 1기 등 총 4기가 있으며, 동서 방향으로 1열을 이루고 있다. 가장 큰 고인돌 규모는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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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 떼. 월출산 용암사지 입구에 있는 용암사(龍岩寺) 터 부도(浮屠) 떼는 135㎝, 156㎝ 크기의 석종형(石鐘形) 부도로서 왼편의 승탑에만 ‘죽암당(竹菴堂)’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으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건립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나, 그 형태로 미루어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용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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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용암사 터의 서쪽에 위치한 고려 전기의 삼층 석탑. 용암사(龍岩寺) 터 서(西) 삼층 석탑(三層石塔)은 용암사 터의 서쪽에 있는 석탑으로,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고 그 위에 1층 탑신과 3층의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월출산 마애 여래 좌상이 정면으로 보이는 좋은 위치에 세워져 있다. 고려 전기의 탑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제작 시기 등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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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용암사 터에 있는 돌로 만든 그릇. 용암사(龍岩寺) 터 석조(石槽)는 용암사 터에 있는 돌로 만들어진 둥근 모양의 통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암사 터 석조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용암사 터에 있다. 용암사 터는 해발 800m의 험준한 월출산 구정봉 정상 가까운 600m 고지에 있다. 속이 우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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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용두리(龍頭里), 궁항리(弓項里), 모가두(毛可頭), 상앙리(上仰里), 하앙리(下仰里), 앙감(仰甘), 호동(虎洞)을 병합하고, 용두리의 용(龍)과 앙감의 앙(仰)을 합하여 용앙리(龍仰里)라 했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종면(昆一終面)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곤일종면 용앙리가 개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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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용흥리 옥포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용흥리(龍興里) 옥포(玉浦)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용흥리 옥포 마을에 있다. 금정면 소재지에서 나주-장흥 간 국도를 따라 가다가 좌측의 옥포 저수지 쪽으로 약 120m 떨어진 구릉 상에 있다. 용흥리 옥포 고인돌 떼는 총 26기의 고인돌 중 덮개돌이 3m 이상인 것이 3기에 불과하고, 대부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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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용흥리 용천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금정면 용흥리 용천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에 날을 받아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은 당산 하나씨[당산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마을 앞에 조성되어 있는 마을 숲에 위치한다. 당산제 날짜가 정해지면 제관을 선정하고 제물을 준비해 당산제를 모신다. 용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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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봉덕리(鳳德里), 용두리(龍頭里), 용강리(龍江里), 용현(龍峴), 안기리(安基里), 우적리(牛跡里), 세흥리(世興里), 안적리(安適里), 학동(鶴洞), 용천리(龍泉里), 흥리(興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용두리의 용 자와 세흥리의 흥 자를 따서 용흥리(龍興里)라 하였다. 용흥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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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들이 있어 예전부터 용흥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 영암면 군시면(郡始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군시면 지역이었던 조곡(鳥谷), 탑동(塔洞)과 군종면(郡終面)의 만벽동(晩碧洞), 반학동(伴鶴洞)을 병합해서 영암면에 편입시켰다. 이후 1979년 4월 7일에 영암면이 영암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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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암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운곡(雲谷) 마을의 운(雲) 자와 선암(船岩) 마을의 암(岩) 자를 따서 운암리(雲岩里)라 하였다. 또한 덕진면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고, 오봉산(五峰山) 기슭이라 항시 구름이 끼고 암석이 많아서 운암리라고 했다고도 전해진다. 운암리의 운곡 마을은 선암 위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구름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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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대천동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운암리(雲巖里) 대천동(大川洞)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대천동 마을에 있다. 영보리에서 운암리로 가는 도로 변에서 대천동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라 약 150m 가면 좁은 길 바로 우측에 있다. 운암리 대천동 고인돌 떼는 20기의 고인돌 중 받침돌이 확인된 기반식 고인돌은 2기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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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송석정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운암리 선돌은 ‘선독골’ 또는 ‘비석거리’라고 불리는 마을 중앙 하천 옆에 위치한다. 운암리 선돌은 남근형으로 남성의 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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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운호사(雲湖祠)는 김극희(金克禧), 김함(金涵), 김완(金完), 김여준(金汝俊), 김여옥(金汝沃) 등 5위의 위패를 모시는 서원이다. 운호사는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에 있다. 학산 교차로에서 영암로를 타고 4㎞ 달리면 용산 교차로가 나온다. 다시 서호로를 타고 1㎞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편에 몽해 마을이 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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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에 있는 운호사 소장 자료. 운호사(雲湖祠)는 서호면 몽해리에 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문중 사우이다. 1817년(순조 17)에 김극희(金克禧), 김함(金涵), 김완(金完), 김여준(金汝俊), 김여옥(金汝沃)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61년에 복원되었다. 운호사 소장 자료는 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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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합하면서 원목(元木)의 원(元) 자와 항동(項洞)의 항(項) 자를 따서 원항리(元項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목 마을은 마을 길가에 원목점이라는 주막이 있다 하여 원목점이라고 부르다가 행정 개편 이후 원목 마을이라고 개명하여 부르고 있다. 항동 마을은 마을 남쪽에 있는 개[浦]의 지형이 구부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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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암군 군서면사무소가 위치한 곳이다. 남쪽은 월출산을 경계로 군서면 도갑리, 서쪽은 군서면 성양리, 동쪽은 영암읍 회문리, 북쪽은 군서면 마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월산(月山)의 월(月) 자와 호곡(虎谷)의 곡(谷) 자를 따서 월곡리라 하였다. 본래 영암군 서시면(西始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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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월출산 아래에 있는 절터. 월곡리(月谷里) 월암사(月岩寺)는 신라 말 승려 도선 국사(道詵國師)의 출가지로 전해지고 있지만, 출토 유물로 보면 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 사이에 존재하였던 사찰로 추정된다. 1986년에 절터 근처에서 ‘월산군(月山君)’이라는 명문(銘文)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고, 주변에 기단 석축(石築)과 깨어진 기와 조각이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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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주암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월곡리(月谷里) 주암(舟巖)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주암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영암-구림 간 지방 도로와 접해 있는 주암 마을 입구를 약 30m 지나서, 좌측으로 주암 마을에서 호동 마을로 넘어가는 농로를 따라 약 250m를 가면 우측 야산에 18기가 있다. 나군은 주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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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호동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월곡리(月谷里) 호동(虎洞)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호동 마을 세 곳에 분포한다. 가군은 호동 마을 전동일의 집 뒤뜰에 2기가 있다. 나군은 영암-구림 간 지방 도로에서 호동 주유소 약 50m 못 가서 호동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따라 약 20m 떨어진 좌측 논에 6기가 있다. 다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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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임구령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우. 월당 영당(月堂 影堂)은 임구령(林九齡)[1501~1562]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우(祠宇)이다. 임구령의 자는 대년(大年), 호는 월당(月堂)으로서 조선 중종 대에 광주 및 홍주 목사를 지냈다. 월당 영당은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영모정 마을의 깊숙한 곳에 있다. 월당 영당은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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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롱리(月弄里) 원월롱(元月弄) 마을 앞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을에 거주하는 한 노인이 깊은 달밤에 연못가에 나와 달을 구경하다가, 출렁이는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달그림자가 사람을 희롱한다고 하여 달 월(月) 자와 희롱할 롱(弄) 자를 따서 월롱(月弄)이라 하였다는 구전이 있다. 한편 원월롱 마을에서 남으로 야트막한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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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롱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미륵불. 월롱리 미륵불(月弄里 彌勒佛)은 시종면 소재지로 가는 지방도 821호선 왼편 미륵동 마을 입구에 있다. 월롱리 미륵불은 미륵불, 미륵 바우로도 불린다. 이 마을이 미륵골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미륵불, 미륵 바우는 주위를 돋워 봉분과 같이 쌓은 토단 위에 있다. 그 형태로 보아 원래는 불상을 새겼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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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남풍리에 있는 김해 김씨 문중공파의 문각. 월림재(月臨齋)는 영암읍 남풍리 247번지에 위치한다. 영암 읍내 경찰서 삼거리에서 공용 정류장으로 가는 길 쪽으로 400m 떨어진 남풍 마을에 있다. 월림재는 조선 후기에 초가로 처음 지어졌다. 이후 1960년경에 문중 사우(祠宇)인 농암사(農巖祠)가 건립되면서 월림재는 농암사의 강당 구실을 하게 되었다.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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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여러 마을이 합해지면서 망월리(望月里)에서 월(月)자와 송산(松山)의 송(松)자를 따서 월송리(月松里)가 되었다. 월송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북이시면(北二始面)의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명목리, 치리(峙里), 신당(神堂), 송산, 회덕리(回德里) 일부와 진도군 명산면(命山面)의 망월리를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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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 송산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월송리(月松里) 송산(松山)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 송산 마을 뒤로 난 길가의 구릉에 8기가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마을 끝의 민가 앞과 농로 사이에 위치한다. 월송리 송산 고인돌 떼는 원래 받침돌이 있는 덮개돌 3기가 열 지어 있었으나 주변에서 하부가 매몰된 5기가 확인되어 총 8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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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 신소정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월송리(月松里) 신소정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 신소정 마을에 있다. 태산봉(泰山峰)에서 북동쪽으로 내려오는 구릉 끝자락의 반남 박씨 선산 주변에 21기가 있다. 이곳은 송산 마을의 동쪽에 위치하며 시종 저수지의 남서쪽 구릉에 해당된다. 월송리 신소정 고인돌 떼는 고인돌 21기와 무덤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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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에 있는 저수지. 월악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있는 월악리에서 기원한다. 월악리는 지형이 반달처럼 생겨 다라기라고도 부르는데, 이로 인해 월악 저수지 역시 다라기방죽이라고도 부른다. 달〉다라〉다라기로 변한 듯하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배월등 북쪽에 건립하였다. 1953년 1월 1일에 착공하여, 1954년 12월 30일에 준공하였다. 하지만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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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악리(月岳里)는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으므로 다라기 또는 월동, 월악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월악리라 명명하고, 시종면에 편입하였다. 월악리의 중계 마을은 예로부터 달악리, 다라기, 달애기, 다래기 등으로 불리다가 중월(中月)과 하월(下月) 마을로 이름을 바꿔, 1955년까지 이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하월이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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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송월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월악리(月岳里) 송월(松月) 고인돌 떼는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송월 마을에 있다. 송월 마을 남쪽에 있는 시종 단위 조합의 금월 분소 우측으로 앞배월과 뒷배월 가는 삼거리가 있는데, 앞배월로 가는 좁은 길 입구의 양쪽 잡목 속에 3기가 위치한다. 입구에는 ‘이 공 정규 청덕 불망비(李公正奎淸德不忘碑)’가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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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에 있는 근대의 문인 김형식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제단. 김형식은 좌참찬을 역임한 영광 김씨 김찬(金瓚)의 후손으로 자는 경화(敬華), 호는 난은(蘭隱)이다. 과거에는 출사하지 않았지만 학문이 뛰어나 많은 문인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김형식이 사망한 뒤 1935년에 문인들이 월암단을 세워 배향하였다. 또한 월암단은 월암사(月巖祠)로도 불린다. 월암단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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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달못[군산천]이 있으므로 달못 또는 월지(月池)라 불렀다. 월지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달신기(達新基), 중촌리(中村里), 백옥동(白玉洞), 호동(虎洞), 칠거리(七距里), 덕림정(德林亭) 일부와 나주군 종남면(終南面)의 복룡동(伏龍洞) 일부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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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에 있는 산. 월출산(月出山)은 백두 대간(白頭大幹) 호남 정맥(湖南正脈)의 무등산(無等山) 산줄기가 남서로 뻗어 우뚝 솟은 산으로, 1988년 스무 번째로 지정된 국립 공원[면적 41.88㎢]이다.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와 교동리,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사이에 주봉인 천황봉(天皇峯)[809m]이 위치한다. 월출산 북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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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에 있는 독특한 형태의 바위들. 무등산[1,187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는 궁성산[482m]·국사봉[615m]·활성산[498m]으로 접어들어 남서쪽 월출산[809m]을 형성하면서, 남쪽으로는 전라남도 강진군의 탐진강으로 흘러드는 금강천[경포대]과 북쪽으로는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영암천·군서천·학산천을 가름한다. 1988년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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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의 월출산에 있는 열두 가지 아름다운 경치. 전라남도 영암군은 1988년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월출산에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열두 곳을 골라 2008년 월출산 12경으로 정하였다. 월출산은 주요 암석이 화강암이고, 풍화 과정을 통하여 그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경관에 붙여진 명칭도 다양하다. 2008년 영암군은 월출산 12경을 지정하고 이를 『아름다운 영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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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는 용암사의 폐사지. 월출산(月出山) 용암사(龍巖寺) 터는 영암 월출산 구정봉 아래에 있는 폐사지(廢寺址)로서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 여래 좌상과 삼층 석탑 2기(基), 조선 시대 후반의 부도 2기가 현존하고 있으며, 문헌 기록과 출토된 기와의 명문을 통해 용암사 터임이 확인되었다. 월출산 용암사 터는 ‘용암사지(龍嵒寺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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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월출산 천황봉에 있는 제사 유적 터. 월출산은 영암의 진산(鎭山)으로 통일 신라 때부터 사용된 영암군이란 고을 이름도 월출산 구정봉 아래의 동석(動石)에서 유래하였다. 신라 때는 월내산[月奈岳]이라 불렸는데, 영암의 백제 때 고을 이름이 월내군(月奈郡)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로부터 유래한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고려 시대 때는 월생산(月生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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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평리(月坪里)라는 명칭은 월평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마을 앞으로 금천(金川)이 흐르는데 금천 건너 삼망산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넓고 비옥한 논이 무리지어 있는 때논들[群畓坪]이 금천과 어울려 월형(月形)을 이뤄 월평이라 했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통합한 마을의 중심인 월평 마을의 이름을 따서 월평리라 했다. 아천리는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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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들에 달풀이 많아 달들 또는 월평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월평리(月坪里)라 했다. 월평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간은리(干隱里), 병정리(並亭里), 안정리(安亭里), 호산점(虎山店), 여동(汝洞), 수양리(水良里) 일부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의 모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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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호동 마을에 있는 김씨 문중의 재실. 영암군 군서면의 지방도 819호선 왕인로 월곡리 입구에서 남동쪽으로 호동길을 따라 500m 정도 가면, 호동 마을 가운데 있는 마을 회관 옆에 있다. 위인재(爲仁齋)는 조선 후기 때 김명보(金命普)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로 전해진다. 건립된 이후로 선조를 추모하고 후손을 강학하는 장소로 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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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地形)이 닭 벼슬 형국(形局)이라 하여 닭실, 또는 닭 유(酉) 자와 골 곡(谷) 자를 써서 유곡(酉谷)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유곡리(酉谷里)라 했다. 유곡리(酉谷里)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유곡(酉谷), 옥정리(玉井里), 용덕리(龍德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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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현대 효자비. 유공신(柳公信)[1579~1655]은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호는 송계(松溪)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사친곡(思親曲)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유공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96년에 모산리에 효열각을 세우고 분수동[현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와운리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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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이루어진 유학과 관련된 제반 활동.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예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유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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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서 발원하여 영암읍 한대리를 거쳐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에서 장흥 다목적 댐으로 흘러드는 지방 2급 하천. 유치천(有治川)은 장흥근 유치면에서 유래하였다. 유치면은 본래 장흥부에 딸린 유치향(有治鄕)인데, 조선 때에 유치방(有治坊) 또는 유치면(有治面)이 되었다. 『해동지도(海東地圖)』, 『지승』, 『여지도(輿地圖)』, 『광여도(廣輿圖)』 등에는 유치면(有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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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 미촌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상서의 사우. 유허각(遺墟閣)은 이상서(李商緖)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894년에 미암 마을이 동학 마을로 오해를 사 관군이 마을을 초토화시키려고 파견되었을 때 함평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퇴역한 이상서(李商緖)가 관군을 저지하여 마을이 무사하였다. 마을을 지켜준 은덕을 기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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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육우당(六友堂)은 박흡(朴洽) 장군이 지은 정자이다. 박흡 장군의 자는 여윤(汝潤), 호는 육우당(六友堂)으로,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증손이다. 구림에서 출생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김천익 장군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전투 등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운 충절의 장군이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23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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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동도포 마을에 있는 개항기 관찰사 윤대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윤대열 영세 송덕비(尹碓烈 永世 頌德碑)는 도포 지역에 거주하던 선주들이 관찰사(觀察使) 윤대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01년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 동도포 마을 앞 지방도 821호선 오른편에 서 있다. 크기는 높이 127㎝, 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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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상월리에 있는 저수지. 율치 저수지는 인근의 월각산과 별뫼산 사이를 연결하는 ‘밤재’의 한자의 표기인 율치(栗峙)를 따 이름을 지었으며, 밤재 방죽이라고도 불린다. 2012년 목포~광양 고속 국도가 준공되고, 영암 휴게소가 저수지 바로 북쪽에 건립되었다. 국도 2호선을 따라 저수지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1977년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된 영암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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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은적산(隱蹟山) 아래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은곡리(隱谷里)라 했다. 1789년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서 은곡(隱谷)이라는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은곡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양지리(陽地里), 음지리(陰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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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갈곡리에 있는 개항기 때 효열부 나주 나씨의 행적비. 나주 나씨(羅州 羅氏)는 통정대부 나도현(羅燾炫)의 딸이자 경주 이씨 이경우(李絅雨)의 부인이다. 조선 고종 대의 인물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출가한 후에는 남편을 공경하고 시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였다. 또한 순한 말과 바른 행동으로 집안을 화목하게 하였다고 한다. 영암 지역 유림들이 나주 나씨의 행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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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개항기의 문신 이규대의 행적비. 이규대(李奎大)[1791~?]의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아버지는 이참희(李參熙)이다. 이규대는 1875년 7월 전라도 영암 군수, 1877년 6월 전라도 진도 군수, 1883년 10월 경상도 창원 부사, 1878년 6월 강원도 중군(江原道中軍) 등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이규대 행적비(李奎大 行績碑)는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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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에 있는, 1940년 이정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정규 정혜 불망비(李正奎 定慧 不忘碑)는 시종면의 지주였던 이정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40년 소작인들이 건립하였다. 이정규 정혜 불망비는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송월 마을에 있다. 시종면사무소에서 시종로를 따라 4.5㎞ 정도 가다가 반남면 흥덕리 사거리에서 월악 보건 진료소 방향으로 2㎞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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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 마을인 이목동(梨木洞)의 이(梨) 자와 천동(泉洞)의 천(泉) 자를 합하여 이천리(梨泉里)라 했다. 이천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남계리(南溪里), 이목동(梨木洞), 신덕동(新德洞), 천동(泉洞), 월평리(月坪里) 일부, 북일종면(北一終面)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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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정 구역, 인구, 교통, 관광, 산업 등의 분포와 특성. 영암군은 전라남도 남서부의 영산강 하류와 탐진강 상류에 위치한다. 동쪽 끝은 금정면 청용리 산29번지[동경 126°52′, 북위 34°52′]로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서쪽 끝은 삼호읍 용당리 2172-5번지[동경 126°21′, 북위 34°44′]로 전라남도 목포시 충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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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 신흥 마을에 있는 순천 박씨 문중의 재실. 영암군 신북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2.5㎞ 거리에 있는 용산리 용산 마을에서 가는재골을 따라 북쪽으로 700m 떨어진 신흥골에 있다. 일모재(日慕齋)는 순천 박씨박숙선(朴叔善)의 재실이다. 건립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상량(上樑)에 쓰여 있는 ‘세재경오 이월 이십일 무인 묘시 정초 삼월 삼일 신사 사시 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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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에 있는 경주 이씨 문중의 재실. 일시정(一視亭)은 문충공 익재 이제현을 추모하기 위해 대아(大雅) 이강우(李綱雨)가 건립한 일종의 경주 이씨(慶州李氏) 문각이다. 매년 춘추 양 진일에 이곳에 모여 문중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 백운동 마을 안 길가에 자리하고 있다. 문간채가 길가에 바로 면하여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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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영모정 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임구령의 무덤. 임구령(林九齡)[1501~1562]의 본관은 선산, 자는 연수, 호는 월당(月堂)이다. 임우형(林遇亨)의 다섯째 아들로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동생이다. 정난위사(靖亂衛社) 공신 2등에 책록되고 남원 도호부사, 나주 목사를 지냈으며, 지남제 간척을 주도하였다. 관련 유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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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저수지. 입석 저수지의 명칭은 남송리 선돌에서 기원한다. 1789년 『호수 총수(戶口總數)』에 입석(立石), 1911년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에 입석장(立石場)과 입석점(立石店)도 기록되어 있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깟바위들 남동쪽 쌍계사골과 덤재골 사이에 건립하였다. 1964년 4월 23일에 착공하여, 1966년 6월 30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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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장독걸샘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1555년(명종 10) 5월에 남해 현감으로 재임하던 양달사(梁達泗)[1518~1555]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관직을 버리고 시묘를 위해 고향 영암에 돌아왔다. 이 무렵 왜구들이 1552년과 1553년 두 해에 걸쳐 제주를 노략질하고 1555년 5월에는 60여 척의 병선을 이끌고 달량진[현 해남군 달량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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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장동사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 장동사(長洞祠)는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천안 전씨(天安全氏) 문중 사우이며, 1677년(숙종 3) 임진왜란 때 순절한 전몽성(全夢星)을 추모하기 위해 서호면 장천리 장동 마을에 건립한 사우이다. 1706년(숙종 32)에 중수하였으며 1776년(영조 52)에 전몽진(全夢辰), 1836년(헌종 2)에 전몽태(全夢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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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장리에 있는 저수지. 장사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있는 도장리 장사리(長沙里)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장사리는 1789년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서종면(西終面) 장사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원래는 지형이 뱀처럼 길게 생긴 모양이라 ‘장사(長蛇)’로 불리다가 중간에 한자가 변하였다. 서쪽 가내말 포구가 장사리 마을의 머리 쪽인 사두(巳頭)이다.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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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긴 산에 둘려 쌓여 있다고 하여 산장산(山長山)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장산리(長山里)라 했다. 장산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수현리(水峴里), 신동(新洞), 대월촌(大月村), 산장산(山長山), 가막산(加幕山), 서당동(書堂洞), 기정(奇亭), 행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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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 양동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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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 주암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장산리(長山里) 주암(舟巖)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 주암 마을 2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주암 마을 앞의 정자에서 서쪽으로 약 50m 떨어진 논과 밭의 경계 지점에 50여 기가 있다. 나군은 주암 마을에서 남쪽으로 소로를 따라 약 200m 가면 좌측의 민묘(民墓)와 밭의 경계 지점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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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선리는 덕진면 소재지 서쪽에 있는 마을로 긴 산등성이 밑에 자리하여 장선 또는 장산(長山)이라 하였다. 또 마을의 지형이 긴 배[船]와 같다 하여 길 장(長), 배 선(船)을 써서 장선(長船)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장선리는 조선 시대에 북일시면(北一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옹점리, 자경리, 광길리, 당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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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두억리에 있는 저수지. 장수 저수지의 명칭은 두억리의 장수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장수 마을은 1789년 발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곤일시면(昆一始面) 월정리(月亭里)로 나오는데, 두억산에서 흐르는 개울이 마을 앞으로 길게 흘러내려 학산천에 이른다는 뜻에서 장수촌(長水村)이라고도 불렸다. 국토 지리원에서 발행한 5천 분의 1 지형도에는 아랫장수 서편 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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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마을의 삼태성(參台星)의 상징으로 알려진 구암동산(龜岩東山), 토등동산(兎嶝東山), 조산동산(造山東山)을 중심으로 해서 마당에 바위가 깔려 있다고 해서 마당 장(場) 자와 바위 암(岩) 자를 써 장암리(場岩里)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영암군 군종면(郡終面) 지역이었던 곳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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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회화정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장암리(場巖里) 회화정(會化亭)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회화정 마을에 있다. 장암리 입구를 지나 영암읍에서 금정면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2㎞ 정도 가면 장암교가 나온다. 장암교에서 약 50m 가면 도로변 우측 야산에 위치한다. 장암리 회화정 고인돌 떼는 대체로 동-서 방향으로 3열을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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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송월 마을에 있는, 1940년 마름 장재관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고자 세운 비. 장재관 시혜 기념비(張在寬 施惠 紀念碑)는 일본인 지주의 마름이었던 장재관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고자 1940년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소작인들이 건립하였다. 장재관 시혜 기념비는 영암군 시종면 월악리 송월 마을에 있다. 시종면사무소에서 시종로를 따라 4.5㎞ 정도 가다가 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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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와 학산면 독천리 경계에 있는 산.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육정(莊六亭)과 광산(廣山)이 기록되어 있다. 장육정은 ‘장정이〉장쟁이’가 되었고, 장쟁이산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장정산(莊丁山)이 되었다. 장정산[207m]은 월출산 산줄기의 월각산[460m]~밤재[栗峙]~벌매산[465m] 산등성이가 가학산을 거쳐 미암면 두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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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장동(長洞)의 장(長) 자와 상천리(上川里)의 천(川) 자를 따서 장천리(長川里)라고 하였다.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종면(昆二終面)에 속해 있는 지역이었다. 1914년 4월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천리, 괴음(槐陰), 도리정(桃李亭), 장동을 병합하여 곤이종면 장천리로 개설되었다. 이후 1930년 곤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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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괴음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장천리(長川里) 괴음(槐陰)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괴음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서호면 소재지-청룡리 간 도로에서 신흥 마을과 산소 마을로 넘어가는 농로를 따라 약 300m 가면 고개 정상부 좌측 밭에 6기가 있다. 나군은 서호면 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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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효성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장천리 효성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 효성 마을 3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서호면 소재지에 위치하는 서호 농협 맞은편에 7기가 있다. 나군은 서호 우체국 건물 뒤편의 감나무 과수원에 10기가 있다. 다군은 장천리에서 청룡리로 약 300m 가면 도로 좌측에 위치한 김용서의 집 뒤편 정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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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성산리에 있는 장택 고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 장택 고씨(長潭 高氏)는 조선 철종 대 사람으로 고선찬(高善贊)의 딸이며,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영민(金永敏)의 부인이다. 장택 고씨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정숙하였다. 혼인한 뒤 시부모를 공경하였고, 병에 걸린 시아버지와 남편을 정성껏 간호하였다. 이에 사림들이 천거하였고, 장택 고씨의 행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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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생활용수·농업용수를 확보할 목적으로 하천이나 골짜기의 물을 막아 모아 두고 관리하는 인공 시설. 영암 지역은 남동쪽은 월출산[809m] 자락으로 지대가 높으며, 북서쪽은 영산강이 흐르고 있다. 월출산에서 발원하는 영암천과 군서천은 북서쪽으로 흐르며, 구릉지에서 나온 샛강을 합류하여 충적 평야를 이룬다. 가학산[575m]과 흑석산[653m]에서 발원하는 망월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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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전몽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전몽성(全夢星)[1561~1597]의 본관은 천안(天安)이고,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 군기시 주부(軍器寺主簿) 등을 역임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고경명(高敬命)[1533~1592]과 함께 금산 전투에 참전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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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전몽태의 공적을 기리기 우해 세운 비. 전몽태(全夢台)[1571~?]는 영암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장 전몽성(全夢星)의 막내 동생으로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그 뒤 선전관에 제수됨과 아울러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의 표창을 받았다. 전몽태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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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서호면 장천리에 있는 전몽성·전몽진·전몽태 삼형제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전씨 충효문(全氏 忠孝門)은 천안 전씨(天安全氏) 문중의 전몽성(全夢星)[1561~1597]과 전몽진(全夢辰)[1565~1597]의 충절을 기리고, 전몽태(全夢台)[1571~?]의 효행을 기리고자 세워진 정문(旌門)이다. 전몽성은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 참여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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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백계리에 있는 전주 이씨 문중의 효부 현풍 곽씨와 열부 김해 김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와 비각. 전주 이씨 효열각(全州 李氏 孝烈閣)은 전주 이씨 문중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효열각에는 두 개의 비가 세워져 있는데, 하나는 ‘열부 현풍 곽씨 비(烈夫玄風郭氏碑)’로 전주 이씨 이한경(李漢鯨)에게 시집 온 현풍 곽씨의 열행을 기리는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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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금대 마을에 있는, 1932년 의관 정덕중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덕중 시혜 불망비(鄭德重 施惠 不忘碑)는 의관(議官)이었던 정덕중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금정면 일대 소작인들이 1923년에 세운 비석이다. 정덕중 시혜 불망비는 영암군 금정면 면소재지에서 나주시 세지면으로 가는 국도 23호선 가에 세워져 있다. 비석의 규모는 높이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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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강리 당산 마을에 있는 함풍 이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함풍 이씨(咸豊 李氏)는 사인(士人) 정몽열(丁夢說)의 처로 효심이 높아 시부모를 잘 섬겼다. 남편이 괴질에 걸려 4년간 지성으로 간호를 하였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죽자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렀다. 남편의 장례를 마친 이씨는 약을 먹고 자결을 하여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때 나이는 25세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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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문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정문손(鄭文孫)[1473~1554]의 본관은 하동(河東), 호는 모효재(慕孝齋)이다.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200여 명의 성균관생들과 함께 조광조의 신원을 구하기 위해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와 금강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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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비. 함양 박씨(咸陽 朴氏)는 오한 박성건의 후손으로 하동 정씨 정석렬(鄭錫烈)의 부인이다. 함양 박씨는 18세 때 정석렬과 혼인하여 시부모를 정성스럽게 모셨으며, 남편 정석렬이 병에 걸렸을 때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먹여 남편을 살리고 3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석렬 처 함양 박씨 열녀비(鄭錫烈 妻 咸陽 朴氏 烈女碑)는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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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용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홍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452-1번지에 있다. 정홍제 정려각(鄭弘濟 旌閭閣)은 하동 정씨 정홍제(鄭弘濟)[1725-1810]의 정려각이다. 정홍제가 1873년 효행으로 정려를 받아 건립되었다. 정홍제 정려각은 맞배지붕 형식이며 정면 1칸이다. 편액에는 ‘효자 하동 정홍제지려(孝子河東鄭弘濟之閭)’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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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당암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양직과 그의 처 장수 황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제주 양씨 쌍효문(濟州 梁氏 雙孝門)은 당암 마을 제주 양씨 문중의 효자 양직과 효부 장수 황씨를 표창하여 세운 문이다. ‘효자(孝子) 국음 처사(菊陰處士) 양직지려(梁稷之閭)’와 ‘효부(孝婦) 장수 황씨지려(長水黃氏之閭)’로 이루어졌다.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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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화촌 마을에 있는 지주 조계환의 처 능성 구씨의 시혜비. 능성 구씨(陵城 具氏)의 남편인 조계환(曺桂煥)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능성 구씨는 집안 살림을 관장하게 되었다. 능성 구씨는 소작인들에게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1920년에 영암군 시종면과 곤이종면[오늘날 서호면]의 소작인 일동이 능성 구씨를 추모하기 위해 조계환 처 능성 구씨 시혜비(曺桂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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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신기 마을에 있는, 1890년 조보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조보원 영세불망비(趙寶元 永世不忘碑)의 비문에 따르면, 도사(都事) 조보원이 토지와 소를 팔아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자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이에 보답하고자 1890년 조보원의 불망비를 세웠다고 한다. 조보원 영세불망비는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신기 마을에 있다. 영암군 학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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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죽정 서원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박성오의 영당. 조양재 영당(朝陽齋 影堂)은 박성오(朴省吾)[1589~1651]의 영당이다. 박성오의 본관은 함양, 자는 자안, 호는 조양재(朝陽齋)이다. 인품과 학식을 겸비하여 인조 때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냈고,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공주에서 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였으며, 병자호란에는 남한산성에서 호가(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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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존양루(存養樓)는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가 영보리에 정착한 후에 학문 연마를 위해 지은 건물이다. 연촌은 1405년(태종 5)에 문과에 급제한 후 남원 부사를 끝으로 영보 마을에 입향하였다. 그후 다시 1452년(문종 2)에 예문관 직제학이 되었으나 다음 해에 사직하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존양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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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와 산호리 경계에 있는 산. 주리봉(周리峯)[123m]은 둥그런 봉우리라는 뜻으로 명명하였다. 1917년 발행된 축척 25,000:1 지형도에 주봉(周峯)이 표기되어 있다. 주위가 잘 조망된 ‘둥글뫼’로 보인다. 『한국 지명 총람』에는 모양이 둥그렇게 생겼고, 용앙리의 앙감위가 되며, 두리봉·두루봉·두러봉·두렁봉과 ‘주봉산(周峰山)’ 또는 ‘앙감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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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동구림리와 학산면 용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 봉우리 모양이 붓 끝처럼 뾰쪽하여 주지봉(朱芝峰)이라 했으며, 왕인 박사와 도선 국사가 관련된 ‘문필봉(文筆峰)’이라는 별명이 있다. 풍수에서는 화산(火山)인 첨봉을 학자와 연결하면 붓[筆]으로 보고, 무인으로 풀면 칼[劍]로 본다. 『한국 지명 총람』에는 관봉, 필봉, 성제봉, 형제봉으로도 부른다고 기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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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있는 문화 유씨 문중 사우. 죽봉사(竹峯祠)는 1729년(영조 5)에 건립된 문화 유씨(文化柳氏) 문중의 사우(祠宇)이다. 배향하는 인물은 의금부도사를 역임하고 말년에 향촌에서 향촌민 교화에 힘쓴 사교당(四矯堂) 유준(柳浚)[1584~1661]과 영의정을 역임한 약재(約齋) 유상운(柳尙運)[1636~1707]이다. 죽봉사는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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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죽정 서원(竹亭 書院)은 함양 박씨의 문중의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18~1487], 고광(孤狂) 박권(朴權)[1465~1506], 수옹(壽翁) 박규정(朴奎精)[1498~1580], 귀락당(歸樂堂) 이만성(李晩成)[1659~1723], 설파(雪波) 박승원(朴承源)[1562~?] 등을 배향하고 있다. 박성건은 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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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성양리·동구림리에 걸쳐 있는 평야 지남 평야(指南 平野)는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와 성양리·동구림리 사이에 있다. 규모는 남북 폭이 최장 약 4.5㎞, 동서 폭은 최장 약 2㎞이다. 지남 평야는 성양리 지남 마을의 서북쪽에 있는 들이라 하여 지남들이라 하였다. 원래 지남 평야는 지남 마을 북서쪽에 있는 간척지를 말하고, 남쪽의 동구림리 인근의 육답(陸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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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정자. 지학정(止鶴亭)은 1942년 3월에 민병구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지역 사람들의 교학을 힘쓰기 위해 건립하였다. ‘지학정’은 아버지의 호를 딴 것이다.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 백학동 마을 입구 왼편에 있다. 1942년에 여흥 민씨 민병구가 건립하였다. 팔작지붕의 누정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전 1퇴, 후 1퇴의 특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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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에 있는 저수지. 채지 저수지의 명칭은 저수지가 위치한 채지리에서 기원하였다. 채지리는 1789년의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곤일시면(昆一始面)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여러 마을을 병합하면서 지초(芝草)를 캘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채지리(採芝里)라고 명명하였다. 현재 안지쟁이[內芝] 마을과 밧지쟁이[外芝]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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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지초를 많이 캔 곳이라 하여 캘 채(採) 자와 지초 지(芝) 자를 써서 채지리(採芝里)라 하였다. 채지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망월정(望月亭), 비래산(飛來山), 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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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채지리(採芝里)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신기 마을에 1기(基), 비래 마을에 11기, 화암 마을에 4개군(群) 18기가 있었다. 신기 고인돌은 채지리 28-2번지에 위치하며, 장정이산에서 뻗어 내린 완만한 경사면에 1기가 있다. 비래 고인돌은 마을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과수원 부지에 11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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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청용리(靑龍里)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영모정 마을에 있다. 마을 앞 도로 우측의 논 가운데에 7기와 그 하천 속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덮개돌들이 있다. 1983년 가을부터 실시된 농업 진흥 공사의 경지 정리 사업의 일환으로 훼손될 고인돌에 대해 1984년 5월 4일부터 6월 1일까지 목포 대학교 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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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시대에 덕령산[도산천]의 청룡날 밑이 되므로 청용(靑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청용리(靑龍里)라고 했다. 청용리는 본래 나주군 금마면(金磨面)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동산리(東山里), 월암리(月岩里), 성자리(聖子里), 기암리(機岩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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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 문중 사우인 서호사의 강당. 총취정(叢翠亭)은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 문중 사우 서호사(西湖祠)의 강당이다. 서호사는 구림 대동계 창설 인물 중 한 명이자 창녕 조씨 입향조인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을 배향한 사우(祠宇)이다. 1667년에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신흥동 마을에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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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최덕지의 초상화 진본과 초본. 「최덕지 초상(崔德之 肖像) 및 유지 초본(油紙 草本)」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초상화 진본과 초본으로 조선 시대 사대부 초상화로는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최덕지는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한 뒤 남원 부사 등 전라도 여러 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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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성기동에 있는 도선 국사의 탄생 유적지. 왕인 박사 유허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성기동 집터의 마당 바위에는 ‘고 최씨원 금 조가장(古崔氏園 今曺家莊)’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예전에는 최씨의 정원이었고 지금은 조씨 집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통일 신라 말의 고승인 도선 국사(道詵國師)[827~898]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이 있는데,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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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는 조계종 소속의 사찰. 축성암은 현재 삼호읍 용당리 한라 조선 사원 아파트 단지 옆에 있다. 원래는 용당리 서해 바닷가 암석 위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이곳이 한라 조선소 조성 단지로 편입되자 1985년 원래 위치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현 장소로 옮겨와 새롭게 중건하였다. 축성암은 전해진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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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 축성암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의 마애불 좌상. 영암 용당리 축성암은 1927년에 목포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처음 지어진 절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현대 중공업 삼호 조선소가 그 자리에 들어서면서 1994년경 현재의 자리로 옮겨 왔다. 절을 옮기면서 마애불을 떼어 왔고 탑과 그 조성 내력을 적은 비(碑)인 「미륵불 존상 출세기(彌勒佛尊像出世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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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와 호포리에 걸쳐 있는 저수지. 춘동 저수지의 명칭은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춘동(春洞)에서 기원한다. 현재 춘동 마을은 춘동 저수지 남동쪽 800m 지점에 위치한다. 뱃사람들이 용왕제를 지낸 유왕 바위가 저수지 안에 있었다. 1933년 현준호(玄俊鎬)가 춘동~호포 간 750m 방조제를 쌓아 조성한 간척 농지에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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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춘동 마을의 입항조인 밀양 박씨(密陽朴氏) 박광춘(朴光春), 박광년(朴光年) 형제가 선황산에 올라가 춘동 마을 지역을 내려다보니 황소가 쟁기를 찬 형상이라 크게 번창할 곳이라 믿고 정착하여,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뜻에서 춘(春) 자를 따 마을 이름을 춘동(春洞)이라고 붙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춘동에서 이름을 따 춘동리(春洞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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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 미중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 산포지. 춘동리 미중 유물 산포지(春洞里 美中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청동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라 함은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영암 지역에서 지표 조사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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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 미중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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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에서 발원하여 춘동리를 거쳐 호포리에서 영암호에 유입하는 지방 2급 하천. 춘동천(春洞川)은 강이 흐르는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춘동리(春洞里)는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조선 시대에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책]에 기록된 곤일시면(昆一始面) 삼춘동(三春洞)에서 유래하였고, 1912년 『구한국 지방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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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영암군 군시면(郡始面) 지역인 남춘동(南春洞), 수양리(垂楊里), 비석리(碑石里), 샛태, 오리정(五里亭), 잠곡리(蠶谷里)을 통합하면서, 남춘동에서 춘(春) 자와 수양리에서 양(楊) 자를 따 춘양리(春楊里)로 하였다. 조선 후기 군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이 이루어질 영암면 춘양리가 되었다. 1979년 4월 7일 영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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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에 있는 해미 곽씨 문중 사우. 충효사(忠孝祠)는 해미 곽씨(海美郭氏)의 문중 사우로, 한벽당(寒碧堂) 곽기수(郭期壽)[1549~1616], 현주(玄州) 곽성구(郭聖龜)[1606~1668], 남계(南溪) 곽제화(郭齊華)[1625~1675)를 배향하고 있다. 곽기수는 1579년(선조 12)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1583년(선조 16)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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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에서 발원하여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에서 장흥 다목적 댐으로 흘러드는 지방 하천. 탐진천(耽津川)은 강진군 대구면 일대에 있었던 탐진현(耽津縣)에서 유래되었다. 탐진현은 757년 신라 경덕왕 때 동음현(冬音縣)을 개칭하면서 처음 사용한 지명이다. ‘동음’은 도무, 두무로 원산(圓山)을 의미한다. 제주의 고지명인 탐라(耽羅)도 같은 뜻을 지니고 있고, 한라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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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 태간리(泰澗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태산리(泰山里)의 태(泰) 자와 송간리(松澗里)의 간(澗) 자를 따서 태간리가 되었다. 태간리 명산 마을은 조선 시대에 진도군 명산면(命山面) 지역으로, 그 지명을 따라 명산(命山)이라 한다. 송간 마을은 구송 마을과 신송 마을로 나뉜다. 구송 마을은 태간제 저수지의 북쪽에 있으며, 송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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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태간리(泰澗里) 일곱뫼 고분군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 있다. 마을 주변 저수지와 영암-시종 간 도로변 사이에 있으며 속칭 ‘일곱뫼’라고 부르는 곳에 있다. 시종면 면소재지 남서쪽에 시종 저수지가 있다. 태간리 일곱뫼 고분군은 시종 저수지 남쪽에 남아 있는 야산에 5기가 있다. 1985년 지표 조사 과정에서 노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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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에 있는 저수지. 태백 저수지의 명칭은 소재지인 태백리에서 기원하였다. 태백리(太白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태평정(太平亭)과 백운동(白雲洞)을 병합하여 개설하였다. 태평정과 백운동은 1789년에 발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곤이종면(昆二終面)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백운동 윗골에 건립하였다. 1944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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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태평정(太平亭)의 태(太) 자와 백운동(白雲洞) 백(白) 자를 따서 태백리라 칭하였다. 한편 태평정이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이 있다. 왕건이 나주목을 정벌하기 위해 영산강 지역에 내려갔지만, 거센 물살로 인해 승기를 잡을 수 없었다. 이때 책사인 태평의 계략에 따라 태평정 마을 앞으로 적을 유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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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와 도포면 봉호리의 경계에 있는 산. 태산봉(泰山峰)[83m]은 구릉지 위에 우뚝 솟은 뫼로 큰 산을 뜻하여 태뫼라고 하였다. 이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태산이 되었고, 봉우리가 첩어로 뒤에 붙으면서 태산봉이 되었다. 태산봉은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 산 19번지와 도포면 봉호리 산 110번지에 위치하며, 남동쪽 기슭에 태산 마을이 있다. 백룡산[418m]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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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개신리 월출산에 있는 바위 굴. 통천문(通天門)은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809m]을 올라서는 마지막 관문으로, 하늘로 통하는 높은 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월출산은 백악기 말 지하 3~5㎞의 비교적 얕은 곳에 관입(貫入)된 홍색 장석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표에 드러난 화강암은 하중의 압력에서 벗어나므로 절리(節理)[암석에서 볼 수 있는 나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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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에 있는 신대유·신직·신경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평산 신씨 삼효각(平山 申氏 三孝閣)은 평산 신씨(平山申氏) 문중의 신대유(申大有)[1780~1850]와 그의 아들인 신직(申(糸+式))[1791~1867], 신경(申經)[1795~1854]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이다. 신대유는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효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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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전라남도 영암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는 우주관이며, 공간 구조를 지배하는 정신적·물질적인 우리 문화유산으로 음양오행설, 태극 사상, 삼재[天·地·人]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풍(風)은 돛과 벌레의 움직임에서 기원하였으며, 수(水)는 물의 흐름을 나타낸다. 바람은 기압의 차로 불고, 물은 일정한 강수 현상이 있어야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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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1928년 하대두가 영암 군민을 구휼한 공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비. 하대두(河大斗)는 일제 강점기 영암의 대표적인 지주로 1882년 10월 7일 영암군 군시면(郡始面) 남내리(南內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 호참(戶參) 하서오(河書五)의 증손이고, 동중추(同中樞) 하개봉(河鎧鳳)의 손자이다. 하대두는 1911년 조선 총독부에서 목배(木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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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에 있는 정창현·정복현 형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문. 하동 정씨 쌍효문(河東 鄭氏 雙孝門)은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에 있다. 시종 터미널에서 시종로를 따라 약 500m 가면 시종면 만수리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마한 문화로를 따라 약 3.2㎞ 따라가면 영호 교회 앞에 삼거리가 나오는데, 다시 왼쪽으로 산소마향동길을 따라 가다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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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의 육지 표면에서 일정한 물길을 형성하고 흘러가는 물줄기. 영암군 남동쪽을 둘러싸고 있는 월출산 줄기는 영산강과 탐진강의 분수계를 이룬다. 월출산에서 뻗어 북쪽으로 연결되는 백룡산과 은적산 능선은 영산강 본류로 다가서며, 산록 완사면과 선상지, 고립 구릉과 구릉지를 형성한다. 그 사이의 계곡은 벽계수[시냇물], 감입 곡류천, 자유 곡류천의 형태로 곡간 평야와 충적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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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학계리는 본래 마을에 넓은 바위가 있어서 광암(廣岩)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가학산(駕鶴山) 아래 위치하고 앞으로 맑은 계천이 흐르고 있어서 가학산의 학(鶴) 자와 계천의 계(溪) 자를 따서 학계리(鶴溪里)라 하였다. 학계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학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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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중심이던 당시에는 성행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세종 대[1418~1449]에 왕실에서 사용할 만큼 발전하였고 중국 왕실에서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세조 대[1455~1468]에는 이전에 비해 널리 확산되었는데 금령(禁令)을 내려 왕실 이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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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광암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학계리 지석묘군(鶴溪里 支石墓群)은 광암 마을 진입로에서 첫 번째 집 주변 노거수 옆의 학계리 석불 입상(靈巖 鶴溪里 石佛立像)[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66호] 주변에 분포하고 있다. 학계리 지석묘군은 21기로 장축 방향의 열상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일부는 무리지어 있다. 덮개돌의 형태는 대부분 타원형이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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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의 지형이 황새처럼 생겼다 하여 한새울 또는 학동(鶴洞)이라 하였다. 학동리(鶴洞里)는 조선 시대 말까지 나주군 비음면(非音面)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신월리(新月里), 연곡리(連谷里), 연동(連洞)과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의 태산리(泰山里)를 병합하여 신북면에 편입하여 학동리라 했다. 마을 동쪽의 태산[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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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에 속하는 법정면. 학산면(鶴山面)은 1932년 개설될 당시 관내 학계리(鶴溪里)의 학(鶴) 자와 용산리(龍山里)의 산(山) 자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학산면은 본래 고미현(古彌懸)의 중심지였으며, 신라 경덕왕 대에 이르러 명칭을 곤미현(昆湄懸)으로 바꾸었다. 곤미현은 다시 두 개의 방으로 나뉘는데, 학산면 지역은 으뜸이 되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곤일방(昆一坊)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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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에서 발원하여 서호면을 거쳐 군서면에서 영암천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학산천(鶴山川)이라는 이름은 하천이 지나는 학산면(鶴山面)에서 유래하였다. 1932년 영암군 곤이시면(昆二始面)을 학계리(鶴溪里)의 학(鶴)자와 용산리(龍山里)의 산(山)을 따서 학산면으로 개칭한 것이다.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 월각산 남서쪽 윗골에서 발원하여 묵동 마을을 지나 동쪽 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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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군종면(郡終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고춘동, 원교리(院橋里), 월송정(月松亭), 구상리(舊上里), 반송정(盤松亭), 학동(學洞)을 통합하면서 학동의 학(學) 자와 반송정의 송(松) 자를 합하여 학송리(學松里)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 영암군 군종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영암면 학송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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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학송리 반송정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공동 제사. 영암읍 학송리 반송정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안과 무사 안녕을 비는 뜻에서 당산나무에 제사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이 비용을 걷어 제물을 장만하고 제관을 선정하여 당제를 지내는데, 마을 주민이 날로 노령화되는 추세라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하다. 당산신의 신체(神體)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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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저수지. 학파1 저수지 명칭은 무송(撫松) 현준호(玄俊鎬)[1889~1950]의 부친 현기봉(玄基奉)[1855~1924]의 호인 학파(鶴波)에서 기원하였다. 현준호는 학산면 학계리 117번지 광암 마을에서 현기봉과 어머니 남평 문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학파1 저수지는 1939년 서호면 엄길리와 서호면 몽해리 사이의 아천포(牙川浦) 어귀에 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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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을 흐르는 하천물이 여름에도 시원하고, 겨울에 영암읍에서도 눈이 가장 많고 가장 추워서 찰 한(寒) 자와 큰 마을이라고 하여 큰 대(大) 자를 사용하여 한대리(寒大里)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 영암군 군종면(郡終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서 서당동(書堂洞), 광대동(廣大洞), 평촌리(平村里), 상촌리(上村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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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에 있는 전주 최씨 문중의 재각. 합경당(合敬堂)은 조선 전기 문신인 최덕지(崔德之)[1384~1455]를 기리는 재각이다. 최덕지의 본관은 전주, 자는 가구(可久), 호는 연촌(烟村) 혹은 존양(存養)이다. 합경당의 ‘합경(合敬)’은 『예기(禮記)』에 나오는 ‘사해지내 합이경지(四海之內合以敬之)’의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합경당은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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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때부터 영암의 해로 입구로 조세를 수집·보관하던 창고가 있어 해창(海倉)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 영암군조를 보면 영암에는 총 네 곳에 해창이 있었으며, 지금의 해창 마을은 군에서 15리에 위치한 곳으로, 목포로 가는 중요한 길목 중 하나였다. 영암군 서시면(西始面)의 지역이었으며, 조세 창고가 있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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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은행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은행정 또는 행정이라 불리었다. 행정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옥봉리(玉峰里), 송암리(松岩里), 조동(早洞), 화산리(花山里), 광산리(光山里), 광암리(光岩里), 유호정(柳好亭)을 병합하여 신북면에 편입하고 행정리(杏亭里)라 했다. 동쪽에 호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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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행정리 광암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행정리(杏亭里) 광암(光巖)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행정리 광암 마을 두 곳에 분포한다. 가군은 광암 마을 북쪽의 농로와 천지산 남서쪽의 구릉 말단부와 만나는 야산에 3기가 있다. 나군은 광암 마을에서 유호정 마을로 가는 도로를 따라 약 300m 가면 821번 국도와 만나는 사거리가 나오는데,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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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에서 발원하여 동호리에서 영암천과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호동천(虎洞川)은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서시면(西始面) 호동(虎洞)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노적봉[421m] 북서쪽 작수골에서 발원하여 월암, 군서면 소재지 동네인 월산을 흐른다. 1965년 축조한 월산제, 군서 농공 단지로 지금은 없어진 월산 2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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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앙리와 산호리 경계에 있는 산. 호등산(虎嶝山)[127m]은 우뚝 솟은 뫼로 ‘콧등〉홋등〉호등’으로 변하였다. 영암군 신북면 호산(虎山)과 마찬가지로, 산의 모양이 호랑이와 같다고 하여 범 호(虎) 자와 고개 등(嶝) 자를 써 호등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호등산은 소동산(少童山) 또는 소등산(蘇嶝山)으로도 부르기도 한다. 한편 산호리와 용앙리 사이의 길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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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와 나주시 반남면 석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 호산(虎山)[156m]은 구릉지에서 솟구쳐 오른 산을 뜻하며, 호랑이 형국 명당이 있다고 전한다. 풍수에서는 ‘호산 호랑이가 쫓으니 영암 도포의 돼지머리가 되었다.’라고도 해석하는데, 산줄기의 뻗어가는 모양을 동물에 견주어 풀이한 것이다. 『1872년 지방 지도』 중 「영암군 지도(靈巖郡地圖)」에 읍치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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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청림 마을에 있는 성산 현씨 문중의 재실. 호연재는 성산 현씨의 문중 재실로 현진후(玄振後)·현징(玄徵)[1629~?]·현약호(玄若昊)[?~1709]·현수초(玄守初)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현진후의 아들 현징의 자는 사휴(士休)이며 1660년(현종 1년) 증광시 진사에 입격하였다. 현징(玄徵)의 아들 현약호의 자는 음보(飮甫), 호는 삼벽당(三碧堂)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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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정자. 호은정(湖隱亭)은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는 정자로 건립 연대와 건립 주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위치하며, 영암 도기 박물관에서 약 300m 떨어져 있다. 「호은정기(湖隱亭記)」에 의하면 호은정은 낭주 최씨(朗州崔氏) 호은(湖隱) 최동식(崔東植)의 은거지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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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한 호음곡(好音谷)의 호(好) 자와 문수포(汶水浦)의 포(浦) 자를 따서 호포리(好浦里)라고 이름을 붙였다. 호포리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곤일시방(昆一始坊) 지역이었다. 1898년(광무 2)에 방(坊)을 면(面)으로 고치면서 곤일시방이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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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 문수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 문수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기 위해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에서 제관을 선정하고 제물을 장만하여 당산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모신다. 당산 할머니를 모시는데, 당산나무는 마을 주민의 집에 위치한 둘레 3m가 넘는 나무이다. 매년 정월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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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 호음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 호음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1일에 마을의 평안과 무사 안녕을 비는 뜻에서 마을 회관 앞에 있는 두 그루의 팽나무 앞에 제상을 마련하여 당산제를 모신다. 호포리 호음 마을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오래 된 당산나무를 베어 버렸다. 그 후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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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화송리(華松里) 선돌 2기(基)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민들은 선돌 2기를 부부로 여긴다. 화송리 선돌은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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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송정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화송리(華松里) 송정(松亭)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송정 마을 두 곳에 분포하고 있다. 가군은 마을 앞밭에 1기와 양동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정상부에 4기가 있고, 나군은 마을 동북쪽으로 난 농로 옆 구릉 정상부에 2기가 있다. 가군 고인돌은 총 5기로 1기는 구릉 사면에, 4기는 고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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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송정 마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제사.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송정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안과 무사 안녕을 빌기 위해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에서 제관을 선정하고 제물을 장만하여 당산나무 앞에서 제사를 모신다. 당산 할아버지와 당산 할머니를 모시고 있으며, 마을 뒷산에 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신체(神體)이다. 정초가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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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화송리(華松里) 화소(化所) 고인돌 떼는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에 있다, 영암-독천 간 지방 도로에서 화소 마을 입구를 약 400m 지나면 우측의 구릉에 7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곳은 화소 마을의 서북쪽 구릉에 해당되며 지방 도로 확장 구간에서 약 20m 떨어진 곳이다. 화송리 화소 고인돌은 대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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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화소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유물 산포지. 화송리 화소 유물 산포지(華松里 華所 遺物 散布地)는 고고학적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지표상에 드러난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유물들이 확인된 유적이다. 고고학적으로 유물 산포지는 지표상에 드러난 유물들과 유구들의 흔적을 가지고 유적의 존재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지표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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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회현 마을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영암군 서호면 화송리 회현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안과 무사 안녕을 빌기 위해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는 당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마을에서 제관을 선정하고 제물을 장만하여 당산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모신다. 화송리 회현 마을 입구 우산각[회현정] 옆에 수령 150여년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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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있는 하동 정씨 감찰공파의 재각. 화수정(花樹亭)은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411번지에 있다. 영암읍 영암 여객 자동차 터미널에서 5시 방향의 천황사로를 따라 약 800m 가면 세실 마을이 나온다. 다시 세실길을 따라 7시 방향으로 약 250m 가면 화수정을 만날 수 있다. 화수정은 학남(鶴南) 정순종(鄭淳宗)이 1910년부터 1940년까지 강학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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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연소리와 영암읍 농덕리·한대리 경계에 있는 산. 활성산(活城山)[498m]이라는 이름은 정상에 있던 활성산성(活城山城)에서 유래하였다. 임진왜란 때 궁성산과 함께 활 쏘는 훈련장으로 쓰였다고 전하며, 토성(土城)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활성산 정상에 서면 월출산과 함께 영암 읍내를 조망할 수 있으며, ‘남궁성산’이라는 별명이 있다. 활성산은 무등산에서 국사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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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농덕리와 한대리, 금정면 연소리의 경계인 활성산에 있는 산성 터. 활성산성(活城山城)이 입지하고 있는 영암읍 일대는 삼국 시대 때부터 군현(郡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어 왔던 곳이다. 백제 때 월내군(月奈郡)[월나군]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에 영암군(靈巖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성종(成宗)[960~997] 때는 일시 낭주 안남 도호부(郎州安南都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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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학동리에 있는 효자비. 황정주(黃正周)는 철종 때 사헌부 감찰을 역임한 인물로 본관은 장수이다. 효성이 깊은 인물로 할머니가 병석에 눕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나온 피로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황정주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장수 황씨(長水黃氏) 종중과 지역 유림들이 황정주 효자비(黃正周 孝子碑)를 건립하였다. 장수 황씨 종중과 지역 유림들이 황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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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에 속하는 법정리. 회문리(會門里)의 명칭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는 영암군 군시면의 녹문(鹿門), 녹평(鹿坪), 녹암(鹿巖), 신촌(新村), 회의촌(會蟻村), 송계(松溪)를 합할 때, 회의촌에서 회 자와 녹문에서 문 자를 취하여 회문리라 하였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을 앞 월출산에 둘러싸여 있는 명당의 자리인 용치암에 힘입어 모인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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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녹암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회문리(會門里) 녹암(鹿巖) 고인돌은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녹암 마을에 있다. 국도에서 녹암 마을 진입로를 따라 약 300m 가면 대나무 밭 속에 있는데, 약 400m 길이로 33기가 열 지어 분포하고 있다. 마을 입구 진입로 옆 논에 있던 1기는 회문리 510번지와 513번지 일대로, 2006년 고인돌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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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녹암 마을에 있는 선돌. 선돌은 선사 시대의 거석 기념물로서 자연석 또는 일부 가공한 기둥 모양의 돌을 땅 위에 하나 이상 세워서 기념물이나 신앙 대상물로 삼은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분포하여 있다. 녹암 마을에서는 회문리(會門里) 선돌을 ‘짐돌’이라고도 부른다. 3기(基)의 선돌의 명칭은 ‘수놈[정문]’, ‘정문’,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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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회촌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회문리(會門里) 회촌(會村) 고인돌은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 회촌 마을에 있다. 영암-독천 간 819번 지방 도로와 접해 있는 회촌 마을 입구 외곽 도로의 좌측과 우측 밭에 있다. 2007년 12월 26일부터 2008년 2월 8일[현지 조사 7일]까지 동북아 지석묘 연구소에서 영암-독천 간 지방도 819호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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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회문리에서 발원하여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를 거쳐 군서면 송평리에서 영암천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 회문천(會門川)은 영암읍 회문리(會門里)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회문리는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군시면(郡始面) 회의촌(懷義村)과 녹문(鹿門)에서 회의촌의 회(會)자와 녹문의 문(門)을 따 회문리(會門里)가 되었다. 회문천은 영암읍 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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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회사정(會社亭)은 구림 대동계의 모임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세워진 정자이다. 구림 대동계는 1565년경 조행립(曺行立), 현건(玄健), 박성오(朴省吾), 임호(林浩), 박규정(朴奎精) 등에 의해 창설된 이래 2013년 현재까지도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에 있다. 지방도 819번 도로 신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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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효성으로 부모를 잘 섬긴 사람. 조선 시대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국가는 이들 덕목의 실천자들인 충신·효자·열녀들에게 관작을 제수하거나 정려(旌閭)로서 칭송토록 배려하였다. 영암 지역에는 많은 효자들이 기록과 정려를 통하여 전하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충·효·열의 기념비적 유적들이 남아 있은데,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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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와 해남군 계곡면 가학리 경계에 있는 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해남]에 “현 북쪽 30리에 흑산(黑山) 옛 성이 있다.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580자, 높이가 7자인데 지금은 절반이 무너졌다.”라는 기록이 있다. 『해동 지도(海東地圖)』[해남]에도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흑석산(黑石山)[653m]이 고성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