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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노동 마을에 있는 밀양 김씨 유남공파의 사우. 1936년에 밀양 김씨(密陽金氏) 김병규(金炳圭)가 선조를 배향하기 위해 세운 사우(祠宇)로 김견을 중심으로 김경발, 김종환을 배향한다. 김견(金堅)[1565~1608]의 자는 중실(仲實), 호는 신제(愼齊)로, 1585년에 무과에 올랐고, 임진왜란 때 의거(義擧)하여 이순신의 휘하에서 당항포 대첩과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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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인·효자. 박응원(朴應元)[1552~?]은 부모님이 병환으로 고생하시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한 효자이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선백(善伯), 호는 아천옹(鵞川翁)이다. 군수를 지낸 박성림(朴成霖)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박세장(朴世長)이고 형제는 박응형(朴應亨)과 박응정(朴應貞)이 있다. 박응원은 10세 때 아버지가 병환으로 위중하니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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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박인손(朴麟孫)[1498~1553]은 원래 전라남도 영암 출신인데, 아버지 박이검(朴而儉)과 함께 영암으로 향하다 공주 경천역에 머물던 중 병이 나서 혼자 남아 있다가, 정세규(鄭世規)의 사위가 되면서 공주 경천역[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의 순천 박씨 입향조가 되었다.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처는 정세규의 딸 진주 정씨(晋州鄭氏)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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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학자. 박태초(朴泰初)[1646~1702]는 대과 초시에 합격했지만 과거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지냈다. 박태초의 학행을 높이 산 조정으로부터 관직이 제수되었지만 출사하지 않았다.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길부(吉夫), 호는 경재(警齋)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지낸 박응복(朴應福)[1530~1598]이고, 증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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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서예가·시인. 백진남(白振南)[1564~1618]은 문장과 필체가 매우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씨와 시를 사서 모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본관은 해미(海美), 자는 선명(善鳴), 호는 송호(松湖)이다. 아버지는 최경창(崔慶昌)[1539~1583], 이달(李達)[1539~1618]과 더불어 삼당시인(三唐詩人) 가운데 한 사람인 옥봉(玉峯) 백광훈(白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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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에 있는 광산 김씨 원정공파의 사우. 사권당(思勸堂)은 광산 김씨(光山金氏) 원정공파의 후예인 김용채(金容彩)가 부친 김현수(金顯洙)의 뜻을 이어받아 1930년에 건립하였다. 군서면사무소 앞 성양 교차로에서 영산로를 따라 3.5㎞ 가면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모정 마을 입구 주차장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모정 1길을 따라 모정 보건 진료소를 간 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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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서약(徐鑰)은 아버지가 편찮으시자 변을 맛봐 병세를 살폈다고 전해질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아버지는 서희노(徐希怒)이다. 서약은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림(柳琳) 의병 부대의 비장(裨將)이 되어 전쟁터로 나아갔다.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 고기를 먹지 않는 등 행동을 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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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이천(利川) 혹은 남평(南平), 자는 경립(景立), 호는 송와(松窩)이다. 판윤(判尹)을 지낸 서숙명(徐叔明)의 증손자이며, 아버지는 서홍필(徐弘弼)이다. 서희신(徐希信)[1542~?]은 1567년(선조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41세 때인 1582년(선조 15)에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6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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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감사를 지낸 신기(愼幾)의 8세손이다. 신경훈(愼慶勛)은 어려서부터 매우 효성스러웠고, 부모님을 섬기는 정성이 지극하였다. 또한 스스로 학문을 연마하여 세상에 모범이 되었다. 아버지가 병이 드셨을 때는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아버지께 드려 사흘을 더 연명할 수 있게 하였고, 부모님 상을 당하여 각각 삼 년간 시묘를 살며 밤낮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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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여임(汝任)이다. 감사 신희남(愼喜男)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 동생은 신성필(愼聖弼)과 신성망(愼聖望)이다. 신성윤(愼聖尹)[1617~?]은 성품이 온후하고 부모님에게 예를 다하는 효자였다. 집안을 다스리는 데도 법도가 있었고, 살림이 어려웠으나 항상 예를 갖추며 지냈다. 1660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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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감사를 지낸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 참봉 신성윤(愼聖尹)이 형이다. 신성필(愼聖弼)은 천성적으로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를 타고났으며, 부모를 섬기는 정성이 매우 지극하여 이웃에서 칭찬하며 감복하였다. 학문에도 힘을 쏟아 예로써 행하며 몸가짐을 항상 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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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호는 산정(山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찬성을 지낸 신이충(愼以衷)이고, 할아버지는 통정대부로 이조 좌랑을 거친 신기(愼幾)이다. 아버지는 통례원 좌통례를 지낸 신후경(愼後庚), 동생은 신영명(愼榮命)이다. 부인은 이조원(李調元)의 딸 광주 이씨(光州李氏)이다. 신영수(愼榮壽)[1442~1497]는 진사에 합격하고 아버지가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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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백거(伯擧), 호는 소은(素隱)이다. 참의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신여경(愼餘慶)[1538~1592], 아버지는 신인(愼諲)이다. 어머니는 이용(李溶)의 딸이다. 신천익(愼天翊)[1592~1661]은 1612년(광해군 4)에 문과에 급제한 뒤 1615년(광해군 7)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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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신해익(愼海翊)[1592~1615]은 22세 때 알성 문과(謁聖文科) 장원 급제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으며, 천성이 고결하여 한 점의 티끌도 없었다. 문장이 매우 뛰어나 오숙(吳䎘)[1592~1634]은 신해익의 문장을 두고 당세에 제일이라는 칭찬을 하였다.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중거(仲擧), 호는 병은(病隱)이다. 참의 신희남(愼喜男)[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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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은곡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경리의 사당. 아산사(雅山祠)는 공조 참판을 지낸 오경리(吳慶履)[1813~1893]를 배향하는 사당으로 영정과 신위를 모시고 있다. 오경리는 자는 중화(仲和), 호는 소포(素圃), 본향은 해주(海州)이다. 1849년(헌종 1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承政院假注書)가 되었고, 정자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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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무신·의병장. 양달사(梁達泗)[1518~1555]는 시묘살이 중에 을묘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자는 도원(道源), 호는 남암(南岩)이다. 감역(監役) 양흥효(梁興孝)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주부(主簿) 양승조(梁承祖)이다. 문인 양팽손(梁彭孫)[1488~1545]이 아버지의 팔촌 형제이다. 양달사는 15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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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학자. 양득중(梁得中)[1665~1742]은 17세에 박태초(朴泰初)[1706~1762]의 문하에서 배우고 20세에 명재(明齎) 윤증(尹拯)[1629~1714]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다. 1694년(숙종 20)에 조정에 천거되어 벼슬을 지냈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택부(擇夫), 호는 덕촌(德村)이다. 아버지는 양우주(梁禹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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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모정 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정자. 원풍정(願豊亭)은 영암군 군서면 모정리 모정 마을 초입에 위치한다. 원풍정은 1934년 김권수와 마을 주민들에 의해 마을의 자치 공간으로 건립된 최초의 정자이다. 1987년 마을 부인회의 주관으로 중수가 이루어졌다. 1996년 한 차례 더 중수를 거쳤다. 정면 3칸, 측면 3칸인 골기와 맞배지붕이며, 기둥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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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임구령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우. 월당 영당(月堂 影堂)은 임구령(林九齡)[1501~1562]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사우(祠宇)이다. 임구령의 자는 대년(大年), 호는 월당(月堂)으로서 조선 중종 대에 광주 및 홍주 목사를 지냈다. 월당 영당은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룡리 영모정 마을의 깊숙한 곳에 있다. 월당 영당은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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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유준(柳浚)[1584~1661]은 영암 출신으로 효성이 깊고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영암 모산사(茅山祠)를 세웠다.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징원(澄遠), 호는 사교(四矯)이다.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유희저(柳希渚)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감찰(監察) 유용공(柳用恭)이고 아버지는 첨정공(僉正公) 유몽익(柳夢翼)이다. 부인은 태종(太宗)의 7대손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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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미암리 미촌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이상서의 사우. 유허각(遺墟閣)은 이상서(李商緖)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1894년에 미암 마을이 동학 마을로 오해를 사 관군이 마을을 초토화시키려고 파견되었을 때 함평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퇴역한 이상서(李商緖)가 관군을 저지하여 마을이 무사하였다. 마을을 지켜준 은덕을 기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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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육우당(六友堂)은 박흡(朴洽) 장군이 지은 정자이다. 박흡 장군의 자는 여윤(汝潤), 호는 육우당(六友堂)으로,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증손이다. 구림에서 출생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김천익 장군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전투 등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운 충절의 장군이다.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323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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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남(海南)으로, 감사(監司)를 지낸 윤복(尹復)의 증손자이다. 윤선술(尹善述)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더할 수 없이 애통했으나, 슬퍼하는 어머니가 염려되어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고 밖으로 크게 표현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이었으나 항상 어머니를 위해 필요한 물건을 갖추어 놓았으며, 어머니가 병이 나 겨울에 생선을 드시고 싶어 하니 노복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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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무신. 이계정(李繼鄭)[1539~1595]은 무과 병과 급제 뒤 중시(重試)를 거쳐 충청도 수군절도사(忠淸水使)를 지냈으며,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맹장으로 여러 차례 왜병을 격파하였다.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경윤(景胤)이다. 할아버지는 사정(司正) 이예건(李禮健)이고, 아버지는 통훈대부를 지낸 이장(李樟)이다. 형제는 이대형(李大亨)과 이선형(李善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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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신·의병장. 이유길(李有吉)[1576~1619]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으며, 명나라 원군으로 출정하여 후금과 싸우다 요동백(遼東伯) 김응하(金應河)와 함께 전사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지(有之)이다. 할아버지는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봉된 이후백(李後白),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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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무인·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운(子雲)이다. 아버지는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낸 이주남(李柱男)이고, 형제로는 형 이정량(李廷亮)과 동생 이정빈(李廷彬), 이정찬(李廷讚)이 있다. 이정필(李廷弼)[1640~?]은 1672년(현종 14) 임자(壬子) 별시(別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냈다.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공양하고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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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의병장. 전몽진(全夢辰)[1565~1597]은 정유재란 때 형 전몽성(全夢星), 첨사 김덕흡(金德洽)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본관은 천안(天安). 아버지는 충순위를 지낸 전방필(全邦弼)이며, 형제로는 전몽일(全夢日), 전몽성, 전몽태(全夢台)가 있다. 전몽진은 1597년(선조 30)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형 전몽성, 첨사 김덕흡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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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효자. 아버지는 첨사를 지낸 정지총(鄭之叢)이다. 정시교(鄭時僑)는 영암 출신이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노루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자식 된 도리로 이를 구하고자 백방으로 돌아다녔으나 얻지를 못하고 슬퍼하던 중에 노루 한 마리가 집 뒤의 대나무 숲에서 나타나 잡아 드렸다. 또한 어머니가 한여름에 꿩 고기를 드시고 싶다고 해서 꿩을 사냥하려는 즈음에 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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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 조일주(曺一周)는 머리가 영특하고 성격이 온화했지만 사람됨이 바르고 엄격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매우 아꼈던 문하생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호는 정한재(靖閒齋)이다. 태호(兌湖) 조행립(曺行立)[1580~1663]의 손자로, 아버지는 조경보(曺敬甫)이다. 조일주(曺一周)는 18세에 송시열의 문하에서 배웠는데, 송시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