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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던 포구. 남해포(南海浦)는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남해포 마을에 있었다.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갯고랑이 삼포천으로 변하였는데, 이 삼포천의 하류에 남해포가 있다. 남해포의 동쪽 언덕에 남해신사(南海神祠)[남해당]가 있다. 남해신사는 조선 시기 국가에서 비용을 부담하여 바다의 안녕을 위하여 해신에게 제사[中祀]를 지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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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덕진면 사이 바다에 있었던 포구. 덕진포는 조선 시대 전라남도 영암군에 있었던 포구로, 덕진교의 서쪽 바다에 있었다. 조선 시대 영암군 읍치와 가장 가까운 포구로 바다로 통하는 문[海門] 역할을 하였다. 근대 시기 덕진교 서쪽에는 모래사장이 발달하여 단오 축제를 열기도 하였지만, 포구는 퇴적으로 인하여 수심이 깊지 않아 큰 배는 다닐 수가 없었다. 조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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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에 있었던 포구. 도포는 영암군 도포면 도포리에 있었던 포구로 조선 시대 포구명은 도시포(都市浦)였으며 나주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에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호구 총수(戶口總數)』와 여러 고지도에는 도시포라 기록되었다. 도포리 도포는 조선 후기에는 중요한 상항(商港)으로 발전하였는데, 제창포(濟倉浦), 영강포(榮江浦), 삼포(三浦)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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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호포리 문수 마을에 있었던 포구. 문수포는 본래 조선 시대 영암군 곤일시면 지역 문수 마을에 있었던 포구로, 문숫개라고도 불렀다. 포구에 50여 척의 어선이 붐빌 정도로, 일대에서 가장 큰 어항이었다. 마을 이름인 미암면 문수포 마을 문숫개에서 유래한다. 18세기 중반에 발행된 전국의 호수(戶數)와 인구수를 기록한 책인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도 문수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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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 배널리 마을에 있었던 포구. 망호리 배널리 포구는 영암읍 망호리 배널리[부춘동] 마을에 있었으며, 원해창 또는 구해창이라고 했다. 고려 시대에는 12대 조창, 즉 장흥창이 설치된 곳으로 비정되고 있다. 위치는 부춘정 동쪽 건너편으로 비정되며, 속칭 ‘뱃마테’ 또는 ‘배나테’라고도 하였다. 바다였을 당시에 갯고랑이 망호리 배널리 포구와 부춘정 앞을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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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었던 포구. 상대포는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 마을 서쪽에 있었다. 현재 인근에 영암 도기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상대포에는 누각과 작은 연못이 복원되어 있다. 상대포는 인근 들판의 해발 고도가 2m 내외로, 밀물이 되면 깊이 2m 정도의 바다가 되어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가항 수로의 끝단에 해당된다. 설화에 의하면 상대포에서 왕인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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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흥리에서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화성리를 왕래할 때 건너던 나루. 새원 나루는 영암군 시종면 신흥리에서 나주시 공산면 화성리를 왕래할 때 옛 바다를 건너던 나루였다. 조선 시대에는 나주목 종남면에 있어 종남진이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간척으로 인해 새원 나루 상류의 갯고랑은 삼포천이 되었다. 나루 주변에 신원 마을, 즉 새원 마을이 있어 새원 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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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와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를 왕래할 때 건너던 나루.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 은곡 마을에서 영산강을 건너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 우비 마을을 왕래하는 나루이다. 조선 시기의 지리지와 구한말 지도, 1918년에 발행된 『조선 오만분 일 지형도(朝鮮五萬分一地形圖)』에 표기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 후기에 신설된 근대 나루이다. 챙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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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에 있었던 포구. 서창 포구는 조선 시대 서창(西倉)에 있었던 포구이다. 조선 시대 영암의 서쪽에 있는 창고라 하여 서창이라 하였으며, 조선 시대 서호면, 학산면, 삼호읍 일대에서 거둔 세곡을 보관하였던 창고이다. 『대동지지(大東地誌)』 창고조에 의하면 “서창은 영암에서 서쪽으로 40리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영암군 삼호읍 서창리 원서창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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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성재리에 있었던 포구. 성재포는 영암군 소호면 성재리 무송동 마을 동쪽에 있었다. 지금 학산천의 하류에 해당하여 성재 포구의 아래에서, 학산천과 영암천이 합류한다. 1940년대 말 학파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새로 만들어진 포구이다. 포구가 성재 마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57년 성재포에 건립된 간척 기념비에 의하면, 영암군 학산면 출신 사업가 현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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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에 있었던 나루. 소댕이 나루는 영암군 서호면 일대의 사람들이 나룻배를 타고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장에 가거나 일로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라남도 목포 등을 왕래할 때 주로 이용하였던 나루이다. 나루 사이 물길에는 소댕이샘이 있는데, 이를 돌아 건넜다. 조선 시대 지리지 기록과 일제 강점기 초기의 지도에서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 후기에 등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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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에 있었던 포구. 아천포는 몽해리 아천 마을 동쪽 아천교 아래에 있었는데, 지금의 학산천 중류에 해당한다. 일제 강점기 후기에 목포를 왕래하는 객선이 잠시 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나 1940년대 말 간척으로 인하여 물길이 차단되면서 뱃길이 중단되었다. 아시내개라고도 한다. 영암군 서호면 몽해리 아천 마을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지금의 학파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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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에 있었던 포구. 용당리 포구는 조선 후기에 지금의 전라남도 목포시 만호동에 있었던 목포진과 영암군 삼호읍 용당리를 연결하는 포구였다. 용당진(龍塘津), 용당 나루, 용댕이 나리라고도 하였다. 전라남도 삼호읍 용당리 마을에서 유래한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용당진은 무안 목포진과 통한다.”라고 하였으며, 『1872년 지방 지도(1872年地方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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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영산강가에 있었던 포구. 석포는 영암군 학산면 은곡리 석포 마을에 있는 포구로 원이름은 돌개였다. 포구는 지금은 간척지로 변한 마을 앞 소시랑개라고 하는 곳에 있었다. 영산강가에 위치한 석포는 중선배가 와서 닿았으며, 마을에서 십여 척의 배로 숭어 등을 많이 잡아 나라에 진상한 곳으로 유명했다. 석포는 도팍개 또는 돌개에서 유래한다. 조선 시대에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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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에 있었던 나루. 주룡포는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매월리 미교 마을 나릿개에서 영산강을 건너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를 왕래하던 나루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주룡진(駐龍津)은 남쪽 50리에 있으며 영암의 경계로 통한다.”라고 한 곳이다. 주룡은 영암과 무안 사이를 흐르는 지금의 영산강 물길을 말하는데, 약 500m의 좁은 물목이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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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학리와 영암군 서호면 금강리를 왕래할 때 이용했던 나루이자 포구. 창진포는 시종면 신학리 창진 마을과 서호면 금강리 지네 머리를 왕래할 때 이용하였던 나루이자, 어선이 정박하거나 목포를 왕래하는 객선이 기착하던 포구였다. 현재 영암천의 하류가 영산강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에 있었다. 2012년 완공된 신금 대교가 창진 나루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한국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