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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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양주의 누원점(樓院店)에서 활약한 사상인(私商人). 양주의 누원점은 함경도로부터 한양으로 올라오는 모든 물산의 집산지였으며, 18세기 이후 한성부의 시전 상인을 위협하는 유통의 거점이었다. 동북 지방에서 생산되는 북어(北魚)·마포(麻布)와 삼남 지방에서 생산되는 면포(綿布) 등이 누원점에서 활발하게 교환되면서 누원점의 상인은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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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무녀(巫女)·무당(巫堂)을 높여 부르는 명칭. 만신은 한자로는 만신(萬神)으로 쓴다. 남자 무당은 박수(薄數)라고 한다. 개성과 한양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어 예로부터 양주 지역에는 만신이나 박수들이 많았다. 이들은 아들이 없는 집에는 아들을 빌어 주고, 아픈 사람은 낫게 해주는 굿을 펼치며 비명횡사한 원혼(冤魂)은 그 혼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굿을 해줌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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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민간에 전승된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신앙. 민간 신앙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자연발생적 신앙이다. 따라서 뚜렷한 교조나 체계화된 교리도 없으며, 교회 역시도 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연 종교적이며 주술적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민간 신앙은 오랜 역사를 통해 민간의 생활 속에서 존속되었고 기층문화(基層文化)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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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비암리에서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비암리 천태동」은 현석부락(玄石部落), 천태동(天台洞) 등에 얽힌 지명 유래담이자 비암(比岩)에 있는 바위 구멍에 막대기를 꽂으면 생남을 한다거나, 출가를 할 길운이 있다고 하는 암석 유래담이다. ‘현석(玄石)’은 바위가 검은 빛을 띠고 있어서 부르는 명칭이고, 천태동은 하늘 아래에서 첫 동네라는 뜻인데,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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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근중(勤仲), 호는 소한당(所閒堂). 증조할아버지는 신이충(愼以衷)이고, 할아버지는 신전(愼詮)이며, 아버지는 영의정이자 거창부원군 신승선(愼承善)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영가부부인 안동 권씨로 권람(權擥)의 여섯째 딸이고, 둘째 부인은 청원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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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기도 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통신 제도.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 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의 일종이다. 역은 국가가 지방 통치를 위한 정령(政令)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외교 사행의 영송(迎送), 군사의 왕래 등 국가의 공적 행위가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는 교통·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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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역(驛)은 고대 이래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영서역(迎曙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개경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양주 치소에서 서쪽 60리[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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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홍중(弘仲). 증조할아버지는 승의교위(承義校尉) 유지(柳漬)이고, 할아버지는 진도 군수 유호지(柳好池)이며, 아버지는 도총 경력(都摠經歷) 유의(柳依)이다. 어머니는 남조(南祚)의 딸이다. 부인은 신공제(申公濟)의 딸이다. 아들은 진사 유탱(柳樘)이고, 손자가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저자인 유몽인(柳夢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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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이은찬(李殷贊)·이언찬(李諺瓚)·이헌찬(李憲瓚)이라고도 한다. 종실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석하이고 동생은 이은호이다. 이은찬(李殷瓚)[1878~1909]은 강원도 원주군 부흥사면[현 원주시 판부면]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을 공부하던 유생으로,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경상북도 문경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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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기도 양주 출신의 의적. 임꺽정[?~1562]은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 신분으로 태어났다. 그 후 황해도에서 생활하였던 임꺽정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비슷한 처지의 농민 수십 명과 가족처럼 집단을 이루어 황해도 구월산 일대의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도적 활동을 하였다. 1559년경부터 양반과 토호들의 재물을 빼앗는 것은 물론 관군의 방비와 토벌대의 허점을 교묘히 찌르며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