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42
한자 趙友慤
이칭/별칭 학중(學仲),창헌(蒼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3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65년연표보기 - 조우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24년 - 조우각 「대명복수가」 저술
몰년 시기/일시 1839년연표보기 - 조우각 사망
출생지 조우각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3리 사촌 마을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조우각 이주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만리관
거주|이주지 조우각 이주지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수학|강학지 조우각 수학지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 3리 유자정
수학|강학지 조우각 강학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만리관
묘소|단소 조우각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성격 학자
성별
본관 한양(漢陽)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학중(學仲), 호는 창헌(蒼軒). 조광현(趙光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시태(趙時泰)이고, 아버지는 조희창(趙希昌)이고, 어머니는 서치용(徐致龍)의 딸 달성 서씨(達城 徐氏)이다. 부인은 아주 신씨(鵝州 申氏)이다.

[활동 사항]

조우각(趙友慤)[1765~1839]은 일찍부터 같은 동네의 김종덕(金宗德)에게 학문을 배웠다. 조광조(趙光祖)이현일(李玄逸)의 도학과 포부, 조경(趙絅)허목(許穆)의 문장과 기개를 흠모하여 평생의 스승으로 추앙하였다. 벼슬에는 뜻이 없어 사마시에도 응시하지 않았다.

1796년(정조 20)에 영천의 매곡(梅谷)에 임시로 머물며, 초당(草堂)을 신축하고 강학하였는데, ‘만리관(萬里館)’이라 이름 지었다. 이후 영천과 경주 지역의 유생들이 그의 문하에 들어왔다.

배청숭명(背淸崇明) 사상을 마음에 품고서,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명 황실의 회복을 도모하지 못하는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기면서 살았다. 1824년(순조 24) 이러한 마음을 담아 「대명복수가(大明復讐歌)」를 지었다. 이 가사는 필사되어 널리 불려졌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1830년 영천 매곡에서 영천 화북 자천동(慈川洞)으로 다시 이주하여, 1839년 죽었다.

[학문과 저술]

『창헌집(蒼軒集)』 6권 3책이 전해진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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